강상무를 구하라
아무래도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될 것 같다. 지금도 이미 너무 늦었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미래생명사업본부의 기강을 잡고, 체계를 바로 세우는 일은 요원해질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바닥까지 떨어진 본부장으로서 나의 체면이 달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시작은 약 일주일 전, 지나가다가 우연찮게 눈이 간 손 사원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 위에 띄워진 메신저 창을 보게 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 지금 느끼는 소외감과 배신감의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주인을 대신해서 대화 내용을 올려주고 있는 메신저 창의 내용을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아는 이름들이 계속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 구성원들의 단체 채팅창인 듯했다.
언뜻 보기에는 오늘 점심 메뉴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았는데 ‘회의할 때에는 의견도 잘 말하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에서는 말도 참 많이 하네’라는 꽁(?)한 생각보다 이렇게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말로 하는 것보다 이렇게 메신저로 대화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도 요즘의 소통 방식을 활용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때 마침 자리로 돌아온 손 사원.
“이게 지금 우리 팀원들 단체 채팅창인가?”
나는 그저 좋은 마음으로 물어봤을 뿐인데 손 사원은 당황해서 갑자기 채팅창을 감추고 근처에 있던 이 대리도 놀란 토끼 눈을 뜨고 나와 손 사원을 쳐다본다.
“아, 네…. 그냥 회의 자료 나누고, 업무 이야기도 하고요.”
“그래? 그럼 나도 여기에 초대 좀 해줘. 평소 여러분들 생각을 들으면 업무 진행도 더 좋아지지 않겠어?”
“네?”
미래생명사업본부 구성원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고, 더 친밀하게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함께 대화하자는 나의 당연한 요청에 당황하던 손 사원의 얼굴도, ‘그러라’고 눈짓으로 손 사원에게 신호를 주던 이 대리의 표정도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다.
어쨌든 이 대리, 임 주임, 손 사원이 있는 대화방에 초대됐고,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반가워요∼”라는 인사말을 듣자 마치 한 가족이 된 것처럼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젊은 친구들과는 젊은 방식으로 소통해야지. 친구 같은, 선배 같은 상사가 돼서 이 친구들이 우리 회사의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는 거야!’
비록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하직원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고민이 있다고 하면 나의 경험에 비춰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면서 권위적이지도 않은, 그러니까 친구 같지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한 선배 같은 직장 상사가 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날 이후, 매일 아침마다 대화방에 가장 먼저 인사도 하고, 좋은 글귀도 찾아서 올리고, 일하면서 느낀 점들도 올리기 시작했다. 사소한 결정이 필요한 사안도 대화방에 올려서 이 친구들의 의견을 먼저 물어봤다. 그럴 때마다 호응해주고, 즉각 반응해주는 팀원들의 모습도 만족스러웠다.
세상에, 이런 세상이 있었다니….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데까지 불과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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