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의 뛰어난 선수들이 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체중을 유지하고, 충분히 숙면을 취하고, 정확한 시간에 경기장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승리의 절반은 이룬 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구단들이 이 간단한 일을 해내지 못한다.”
전설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감독은 저서 <리딩(알에이치코리아, 2016)>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분들은 불가능한 과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난관을 극복하는 불도저 같은 열정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이런 시각에 반대합니다. 그에게 성공이란 엄격한 규율과 꾸준한 훈련의 결과일 뿐입니다. 기본적인 규율을 지켜가며 충실히 훈련하고 약점을 꾸준히 보완해서 1대0 승리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우승의 비밀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 그의 책 곳곳에서 규율과 훈련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 출신 미드필더였던 세바스티안 베론은 놀라운 기술을 보유한 선수였다고 합니다. 너무나 빨랐고 예측이 불가능한 곳으로 이동해서 적의 허를 찌르는 기술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는군요.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팀에 융화하지 못했습니다. 탁월한 재능이 있었지만 퍼거슨 감독은 규율과 팀워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2년 만에 그를 방출했습니다. 반면, 박지성 선수에 대한 평가는 극찬에 가깝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지시를 내리면 박지성 선수는 강한 의지를 갖고 완벽하게 과업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2010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밀란과 경기를 펼쳤는데 퍼거슨 감독은 상대팀의 천재적 미드필더이자 모든 공격의 출발점이었던 안드레아 피를로를 마크하라고 박지성에게 지시했다는군요. 박지성은 피를로의 존재감 자체를 사라지게 했을 정도로 완벽하게 마크했다고 합니다.
조직의 성과는 단순한 개인 역량의 산술적 합계와 전혀 다릅니다. 때로는 개인 역량을 더한 것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성과를 내기도 하고, 역량에 비해 형편없는 결과를 내기도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를 퍼거슨은 규율에서 찾습니다. 기본적인 규율과 원칙이 있는 조직에서는 이를 토대로 창의적인 플레이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그때 원칙이 달라지면 단기적으로는 승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성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현대 기업 조직에서 원칙과 규율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성과평가입니다. 성과평가가 흔들리면 조직의 근본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이 원하는 인재상, 그리고 전략이 무엇인지에 따라 일관되게 성과평가가 이뤄져야 조직력이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천재급 선수를 방출한 것은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조직 역량 극대화에 훨씬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정치적 고려, 단기적 이익을 얻기 위한 원칙 훼손 등이 빈번하게 성과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면 조직의 장기 생존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판단에 따라 CEO가 직접 수십 시간을 투자해서 정치적 고려로 인사평가 결과가 왜곡되지 않았는지 직접 검증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DBR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성과평가에 대한 대안을 모색했습니다. 현실에서 성과평가가 왜곡되는 이유와 현황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조직이 최근 10년, 혹은 5년 동안 기존 성과평가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도 틀림없습니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성과평가를 혁신하며 강한 조직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다른 많은 경영 난제와 마찬가지로 성과평가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우리 조직의 특성과 고민을 담은 우리만의 모델을 정립해야 합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이런 고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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