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제국

영웅은 신의 후손이 아니다 죽어서 신이 된 사람들이다

196호 (2016년 3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헤라클레스 숭배의 본질

이탈리아의 주요 궁전이나 명승지, 박물관, 미술관에 가보면 헤라클레스 상이나 그림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단순히 헤라클레스가 전사들을 위한 신, 혹은 힘으로 집이나 가정을 지켜주는 신이어서가 아니다. 헤라클레스 숭배의 본질은 영웅을 향한 존경과 추앙이다. 폭력과 분쟁, 전쟁이 빈번해지는 약육강식의 시대에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이런 헤라클레스의 신적 가계(家系)를 부정했다. 헤라클레스야말로날 때부터신이 아니라죽어서신이 된 영웅임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헤라클레스는 영웅이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운명에 도전하며 그 성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존재임을 말한다. 소위금수저’ ‘흙수저논란으로 갈등과 반목이 만연한 현 시대에 곰곰이 되새겨볼 교훈이다.

 

편집자주

그리스·로마 문명은 르네상스의 모태였고 서구 문명과 현대사회를 만든 힘입니다. 로마제국과 르네상스의 이야기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생생한 교훈을 던져주는 이유는 서구 문명과 현대사회가 지닌 공통성 때문입니다. 그리스 문명과 로마제국을 만든 사람들과 그들 세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키워나가시기 바랍니다.

 

영웅과 제국

 

피렌체 남쪽에 있는 피티(Pitti)궁전은 메디치가의 라이벌이었던 피티가가 메디치가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 세운 저택이다. 하지만 제대로 착공도 하지 못하고 건설이 끝났다. 정작 피티 저택을 진짜 궁전으로 개조하고 완성한 사람은 메디치가의 군주 토스카니 대공 코시모 1(Cosimo , 1537∼1574)였다. 피티가로서는 통탄할 일이지만 그들에겐 다행스럽게도 궁전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메디치궁전이 아닌 피티궁전으로 불린다. 이 피티궁전 안쪽 깊숙한 곳에 경호원들이 대기하던 방이 있다. 금장에 붉은 벨벳의자가 놓인 이 방의 천장과 벽에는 온통 헤라클레스의 신화를 묘사한 그림으로 도배가 돼 있다. 경호원의 방이니 세계 최고의 전사이자 무신을 아이콘으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싶다. 하지만 이곳만이 아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궁전과 저택의 입구나 복도 곳곳에 헤라클레스의 조각상이 버티고 서 있다. 이탈리아의 주요 궁전이나 박물관, 미술관에 헤라클레스 상이나 그림이 없는 곳이 없다. 몇 개씩 있는 곳도 부지기수다.

 

명승지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수많은 장소에서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헤라클레스가 발견된다는 사실은 헤라클레스가 결코 전사들을 위한 신, 혹은 힘으로 집이나 가정을 지켜주는 신만이 아님을 말해준다. 어찌 보면 헤라클레스는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에서 조금 퇴색하기는 했지만 굳건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근육질 스타의 원조 중의 원조다. 그런 스타성이 헤라클레스를 스타로 만든 것일까?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로마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헤라클레스 숭배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헤라클레스 숭배의 본질

 

플루타르코스의 명저 <영웅전> 1편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 테세우스 편이다. 그리고 테세우스 편의 첫 이야기는 헤라클레스의 무용담으로부터 시작한다. 테세우스 편은 사실상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의 합편인데,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신화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멋진 사례다.

 

헤라클레스가 등장한 시대는 원시시대 이후로 형성돼온 씨족 또는 부족사회가 분화하고 해체되던 시기였다. 촌락에는 상류의 권력자와 귀족층이 생기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생겼다. 상류층과 하류층에서 모두 자기 가족, 집단에서 도태되거나 이탈하는 사람이 발생했다. 권력가, 귀족가문에서는 권력계승이나 상속에서 소외되는 사람과 서자들이 발생했고, 하류층에서는 빈곤으로 몰락하거나 노비가 되는 사람이 생겨났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삶을 위해, 혹은 강제로 공동체에서 떠나야 했다. 이들은 강도나 도적 떼와 같은 사회불안 세력이 되기도 하고, 야심가들은 이들을 규합해 더 크고 위협적인 군사집단이 되기도 했다.

 

사회가 분화하면 개개인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와 공동체 간에도 힘의 차이가 발생한다. 집단이 집단을 정복해서 멸망시키기도 하고 지배하기도 한다. 약육강식이란 단어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맴돌기 시작했다. 치안이 불안해지고 폭력과 소요 사태, 분쟁, 전쟁이 점점 빈번해졌다. 치안이 불안해졌다는 건 치안을 유지하는 기능이 필요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헤라클레스는 새로운 수요를 깨닫고 해결사이자 용병이 됐다.

 

헤라클레스는 강도를 소탕하고, 용병이 돼 지역 분쟁에도 끼어들었다. 그의 해결 대상에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도 있었다. 부에 대한 욕구와 도구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산야를 개간하고 거주지를 넓혀갔다. 그 과정에서 사자, , 멧돼지가 인간과 충돌하게 됐다. 그는 농부와 목동의 의뢰를 받아 이런 맹수를 사냥했다. 헤라클레스의 전설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그의 10가지 모험이다. 10가지 모험에서 첫 번째 과업이 네메아의 사자 사냥이다. 네메아의 사자는 거대하고 칼과 창이 들어가지 않는 단단한 피부를 지닌 괴수였다. 그 사자와 대적한 헤라클레스는 무기 대신 자신의 괴력을 이용해 사자의 목을 졸라 죽인다. 그리고 사자 발톱을 빼고 가죽을 벗겨 자신의 갑옷으로 삼는다. 이후 네메아의 사자 가죽은 수많은 전투에서 헤라클레스를 보호해줬고 그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군대를 만들었고, 자신의 영토까지 만들어 왕이 됐다. 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스파르타 왕가는 자신들의 선조가 헤라클레스라고 선전했다.

 

플루타르코스는 네메아의 사자 사냥이 실화였다고 말한다. 다만 헤라클레스가 그 가죽을 들고 다닌 이유는 가죽이 도검불침(刀劍不侵)의 갑옷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이렇게 큰 사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헤라클레스의 또 다른 수법도 공개했다. 당시 무법자들은 특이한 무기를 사용하거나 반항자를 제거할 때 나무에 매달아 찢어 죽이거나 절벽에서 밀어 죽이는 등 인상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자기 과시를 하고 공포를 퍼트렸다. 헤라클레스는 그 모든 수단에 군림하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는데, 그들을 소탕할 때 그들의 장기나 사용한 방법을 그대로 사용해서 되갚아 주는 것이다. 씨름꾼은 씨름으로 제압하고, 박치기 왕은 박치기로 쓰러트렸다. 사람을 나무에 달아 찢어 죽이는 강도는 그 수법 그대로 똑같이 나무에 달아 찢어 죽였다. 이 효과는 탁월했다. 그의 무용담은 불사의 뱀 히드라와 같은 신화적 이야기로 각색됐고, 그를 따르는 무리는 점점 늘어갔다. 마침내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군대를 만들었고, 자신의 영토까지 만들어 왕이 됐다. 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스파르타 왕가는 자신들의 선조가 헤라클레스라고 선전했다.

 

 

 

이탈리아의 거상 조각가 잠볼로냐(Giambologna)헤라클레스와 싸우는 켄타우로스 네소’(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신의 가계(家系)로 미화된 헤라클레스의 출생

 

헤라클레스의 성공이 회자되면서 그의 출생이 미화됐다. 인간의 이중적 심리는 참 이상해서 소위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의 성공은 폄하하고흙수저출신의 성공에는 열광하면서도, 자신의 선조나 위대한 영웅의 가계는 어떻게든금수저로 포장하려고 한다. 헤라클레스의 가계도 순식간에 포장됐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의 아버지는 신들의 아버지이자 최악의 바람둥이인 제우스다. 어머니는 미케네의 왕 엘렉트리온의 맏딸 알크메네였다. 알크메네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는 그녀의 남편인 암피트리온으로 변신해 그녀와 동침해서 헤라클레스를 낳았다.

 

신과 왕족을 결합시키는 이금수저심리는 세계 공통인 듯하다. 우리 역사에서도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천제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환웅과 비슷한 신분을 지녔다는 해모수와 하천의 신인 유화부인의 아들이다. 궁예는 신라왕의 서자였다고 하고, 고려 태조 왕건의 조상에는 바다의 용왕과 당나라 숙종 황제까지 들어간다.

 

그런데 플루타르코스는 이런 신의 가계를 부정한다. 물론 그도 영웅전에서는 헤라클레스를 위시해서 아테네의 왕이 된 테세우스,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소위신적인 가계를 그대로 소개했다. 그러나 맨 뒤에 적은 평론에서는 헤라클레스 이하 테세우스, 로물루스와 같은 건국자들은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솔직한 판단을 적었다.

 

헤라클레스가 진짜 왕족이었다고 해도신의 가계는 그에게 우월한 조건이 아니라 역경의 원인이었다. 헤라의 무서운 질투를 받은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천민 신분은 물론 미치광이로까지 추락해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특별한 증거도 없는데 플루타르코스는 왜 굳이 영웅들의신의 가계를 부정하고 바닥까지 깎아내렸을까? 그 다음의 서술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죽어서 신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메시지다. 인간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 흙수저 출신으로 태어났느냐, 혹은 풍요로운 황금시대에 태어났느냐, 저주받은 혼란의 시대에 태어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영웅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운명에 도전하며, 그 성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사람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이것이 수많은 영웅들을 만든 비결이며 로마가 티베르 강가의 작은 도시에서 세계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봤다. 그가 영웅전을 쓴 이유도 로마제국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가치와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영웅의 조건에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새로운 시대의 징조들을 불운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역사가로서 감히 말하건대, 헤라클레스 이래 신세대의 앞에 황금빛 시대가 도래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잠시 그렇게 보인 짧은 순간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성세대가 산업혁명, 세계대전과 같은 극악한 역경을 겪은 결과로 맞이한 잠깐의 안정기였을 뿐이다. 그것을 새로운 황금시대의 도래로 알고 안주하는 적이 많았는데, 그 결과는 더 참혹했다. 헤라클레스가 직면했던 시대가 인류 최초의 분열기였던 것처럼 새로운 시대는 언제나 격랑과 두려움, 모순의 덩어리로 다가온다.

 

 

1. 현존하는 최대 크기의 헤라클레스 상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2. 베네치아 두칼레궁전 입구에 세워진 조각상(왼쪽)헤라클레스. 오른쪽은 아틀라스

 

3. 피티궁전에 전시된뱀을 죽이는 아기 헤라클레스그림

 

 

()이 된 영웅의 조건

 

인간이 신이 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신처럼 존경받고 추앙받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과 신의 차이는 창조의 능력이다. 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인간의 지식과 경험 밖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꼭 신에게만 해당하는 능력일까? 인류는 세대 차이, 기술의 발전과 진보, 사회 및 경영환경의 변화라는 이름으로 늘 신의 영역에 직면해왔다. 황금시대와 불운한 시대로 세상을 구분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인간에게 현실은 인류의 시대이고 미래는 언제나 신의 시대, 즉 경험 밖의 시대, 구름 위에 있는 올림포스 산처럼 미지와 공포의 시대, 창조로 자신이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였다.

 

이것은 젊은 세대에게만 필요한 교훈이 아니다. 신진세대, 기성세대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는 과거에 겪었던 것보다 더 무수히, 더 빠르게 변화와 신의 시대에 직면해야 한다. 황금수저라 불릴 만한 업적과 역량을 쌓은 기성세대에게도 황금수저는 없다. 낡은 사자가죽 한 장과 쇠몽둥이를 들고 새로운 운명의 문 앞에 서는 것. 그것이 신이 된 영웅의 조건이었다.

 

기성세대든, 젊은 세대든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싶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고 싶다면 플루타르코스가 헤라클레스의 삶에서 발견한 교훈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yhkmyy@hanmail.net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전쟁과 역사> <세상의 모든 전략은 전쟁에서 탄생했다> <명장, 그들은 이기는 싸움만 한다> <뇌물의 역사>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0호 Pet Humanization 2021년 05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