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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경영대학원의 Case Method

’더 나은 대안’ 찾는 하버드의 토론식 교육경영교육을 공연예술로 승화시켰다

조진서 | 194호 (2016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지난 114일 열린 DBR/HBR Korea 월간 정기 세미나에는 HBS 정덕진 교수의 케이스스터디 시범강의가 있었다. HBS는 교수들이 작성하는 교육용 케이스를 전 세계 경영대학과 기업 등에 연간 1200만 건(2014년 기준) 판매한다. 하버드가 전파한 케이스 교수법은 현실 기업의 사례를 놓고 참석자 간 토론을 통해더 나은 대안을 찾는 것이 특징이다. 교수는 강연자가 아닌 토론 사회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 참석자들의 수준 높은 코멘트를 유도하기 위해 하버드대는 속기사를 매 강의에 참석시키고 수업 중 나오는 모든 코멘트에 점수를 매겨 성적에 50% 반영하는 시스템을 갖춰놓았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양원철(건국대 기술경영학과 3학년), 김나경(고려대 심리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경제학, 경영학 수업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 하나가 독과점이다. 정통 경제학에서는 독점을 악()으로 여긴다. 소비자와 사회 전체에 돌아가야 할 효용의 상당 부분을 소수 기업이 가로채기 때문이다. 반대로 경영학과와 MBA 과정에서는 모든 기업이 가치 차별화를 통해 특정 시장, 혹은 특정 고객군을 독점하라고 가르친다. 남들이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할 수 없는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서 긍정적인 독점 효과를 만들어내라는 뜻이다.

 

이런 경영 이론을 스스로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경영교육 기관이 있다. 바로 하버드경영대학원(HBS)이다. 이 학교는 케이스스터디(case study) 수업방식을 창안하고 보급시켰으며 케이스 판매에서 다른 학교가 넘보지 못하는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하버드가 만드는 케이스스터디는 실제 기업에서 경영자 혹은 관리자가 맞닥뜨리는 경영적 판단의 문제를 제시하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삼성전자가 소니와 합작 LCD 공장을 지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주변 정황과 회사 내부 상황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이런 수업 방식은 1912년에 시작됐고 이젠 대부분의 톱 MBA/EMBA 과정이 하버드 케이스스터디를 구매해 사용한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2014년 전 세계 4000여 개 학교와 교육기관이 약 1200만 건의 하버드 케이스를 샀다. 판매액은 약 3000만 달러( 360억 원).1 케이스 판매 2위인 버지니아대 다든경영대학원의 2014년 판매부수는 70만 건으로 하버드의 6% 수준이다.

 

물론 이런케이스 메소드(case method)’ 교수법에 비판론도 있어왔다. HBS의 원로교수인 제임스 헤스킷은 2008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낸 아티클2 에서 케이스 교수법은 1) 가르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2) 개별적일 수도 있는 여러 경영적 안건을 하나로 뭉뚱그려 보여주며 3) 정량적(quantitative) 기법을 가르치기에 부적절하고 4) ‘경영에 정답은 없고 다른 대안보다 더 나은 결정만 있을 뿐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헤스킷 교수의 자아비판 이후에도 하버드에서 제작하는 케이스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지위가 공고해지는 추세다.

 

케이스 수업의 사업적 성공은 이 학교 교수들이 작성하는 케이스의 높은 완성도, 그리고 독특한 수업방식 덕분이다. 최근 DBR은 케이스스터디의 효과를 경험할 수 있도록 HBS의 정덕진(Doug J. Chung) 교수를 초대해 시범 수업을 가졌다. 이날 수업은 하버드 강의실과 흡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고려대 경영대학원 LG-포스코관 강의실에서 진행됐고 선착순으로 신청한 90여 명의 DBR/HBR Korea 정기구독자들이 참여했다. 유료 강좌였고 SNS를 통해서만 홍보했지만 수십 명의 대기자가 나올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다뤄진 케이스는 미국 티타늄 가공업체인 타이테크(Ti Tech) B2B 마케팅 사례였다. 케이스는 강의 1∼2주 전에 참석자들에게 영어와 한국어 요약본으로 배포됐고 당일 수업에선 따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토론은 한국어로 진행됐다. 고객가치(value), 가격결정(pricing) 등에 대한 경영학 이론 설명도 중간중간 곁들여졌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낯설 수 있는 참여형, 토론형 수업이 잘 진행될 것인지, 참석자들이 케이스를 충실히 읽어올 것인지에 대한 의심은 기우로 끝났다. 다양한 직무 경험을 가진 참석자들은 케이스의 내용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에 자신만의 견해를 더해 의견을 발표했고 때론 서로 반박했다. 정 교수는 토론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참석자들의 발언을 정리해주고 논의를 다양한 각도로 발전시켜나갔다. 강의실 구석구석을 뛰다시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었고 소수의 참석자가 논의를 독점하지 않도록 발언권을 조절했다. 판서도 많이 했다. 강의실 전면을 다 덮는 대형 칠판을 몇 번이나 지워야 할 정도였다.

 

참석자들은 사후평가에서 100%의 만족도를 보였다. ‘매우 만족 62.5%, ‘만족 37.5%였다. 2014 2월 시작한 DBR/HBR Korea 월간 정기 세미나 사상 최고 평점이다. ‘다시 케이스스터디 특강이 열리면 참석하겠는가라는 질문엔그렇다 100%였다. 시간이 짧아 아쉬웠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참석자는열정적으로 강의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참가자 곁에 가서 질문을 하고 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단에 서서 학생들이 듣든 말든, 졸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여타 강의실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동일한 사안을 다양한 시각에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는 감상도 있었다.

 

특히참가자들의 준비성에 놀랐고, 아주 구조화된 과정진행에 매우 만족했다는 참석자 의견은 국내 대학과 경영교육 기관들에게 시사점을 남겼다. 최근 국내 주요 대학의 MBA 과정들은 글로벌 랭킹과 입학경쟁률 측면에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13개 한국형 MBA 과정의 2015학년도 경쟁률은 1.641, 전년도 1.741에서 소폭 감소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선정하는 ‘2015 세계 경영대학원 순위에서는 4년 만에 처음으로 100위권에서 한국 대학들이 사라졌다. 학교마다 영어강의를 늘리거나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려 애쓰고 태블릿 같은 IT 장비를 수업에 도입하기도 하지만 교육의 기본은 역시 강의의 품질과 수업 몰입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전후로 정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경영교육을 공연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할 수 있는 하버드 MBA의 케이스스터디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지 물었다. 정 교수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특전사 장교로 복무했다. 기업체 근무 후 예일대에서 경영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HBS에서는 MBA, EMBA 코스에서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다.

 

오늘 시범 강의를 마친 소감은.

토론 수준이 하버드 MBA 수업에 못지않게 높았다. 나도 놀랐다. 참석하신 분들께서 수업 준비를 굉장히 충실히 해오신 것 같다. 집중도도 높았다.

 

하버드 케이스스터디 강의법의 특징은 무엇인가.

케이스에는 정답이 없다. 이번에 다룬 케이스는 티타늄 가공업체인 타이테크가 이미 최대 생산능력을 동원하고 있는 가운데 추가로 들어온 고객사의 주문들을 얼마만큼 받을 것인지, 가격은 얼마를 부를 것인지, 그리고 들어온 주문을 다 받을 수 없다면 그중 어떤 고객사 혹은 어떤 주문을 우선할 것인지를 다룬다. 같은 케이스를 15번 정도 가르쳐봤지만 그때마다 수업의 결론이 다 다르게 나왔다. 예를 들어 마지막 질문은 어떤 고객사가 특정 조건으로 긴급 발주한 오더에 최대 얼마로 입찰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수업 중에는 1억 달러까지 받자고 주장한 학생이 있었다. 오늘 이 세미나에서는 480만 달러 받자는 의견이 최대치였다. 같은 상황이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답에 약 20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같은 계약이라도 거기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고 그것이 제시하는 가격으로 이어진다.

 

 

DBR/HBR Korea 정기세미나에서 케이스스터디 수업 중인 HBS 정덕진 교수 (디유넷 김종원)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같은 케이스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비즈니스스쿨 학생들과 반응이 아주 달라서 재미있었다.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MBA 학생들은 현재 회사가 갖고 있는 생산라인 용량이 모자라더라도 들어오는 주문은 일단 다 받아두자는 의견들을 내곤 한다. 반면 로스쿨 학생들은 현실적인 요인들을 지적한다. ‘지금도 주문을 제대로 소화 못하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주문을 받냐며 정반대의 의견을 낸다. 기본적인 성향이 다르고 판단도 다른 것 같다.

 

이렇듯 케이스스터디 수업은 참석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수업의 약 80% 정도가 토론이고 나머지가 교수의 해설이다. 참석자들의 경험에 따라, 또 얼마나 충실히 수업을 준비해오느냐에 따라 결론도, 수업의 질도 달라진다.

 

학생들 간의 활발한 토론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버드 MBA는 각 과목별 성적의 50%가 시험으로, 50%가 수업 참여도로 결정된다. 따라서 수업 중 한 번도 코멘트를 하지 않는 학생이 있다면 아무리 시험을 잘 봐도 낙제할 수밖에 없다. 낙제하는 과목이 여러 개 되면 학교에서 나가야 한다.

 

수업 참여도를 성적에 50%나 반영한다면 교수의 주관이 너무 많이 개입되는 게 아닌가. 공정성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은 없는가.

HBS의 모든 강의엔 속기사가 한 명씩 들어온다. 강의 중 교수와 학생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기록한다. 예를 들어학생 A XXX라는 발언을 했다’ ‘교수가 OO에 관련된 비디오 자료를 보여줬다하는 식이다. 사소한 말도 다 그대로 적는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 기록을 정리해서 교수에게 쏴준다. 그러면 교수는 각각의 발언(코멘트) 옆에 점수를 부여한다. 그 코멘트가 얼마나 좋은 분석인지, 또 어떤 독특한 인사이트가 있는지 등을 놓고 평가한다. 그러면 학교 측이 이 점수들을 모아서 학기가 끝날 때 수업 참여도로 성적에 반영하는 것이다. 모든 코멘트를 일일이 다 기록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받은 성적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교수 방까지 찾아와서왜 내게 발언 기회를 더 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학생들은 종종 있다. 다들 적극적이다.

 

발언권은 어떻게 배정하나.

한 강의실에는 약 90명의 학생이 있다. 케이스 토론 한 시간 반 동안 발언권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35명 정도만 말할 수 있다. 그러니 교수가 질문을 할 때마다 90명 전부가 번쩍번쩍 손을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과거에 발언 횟수가 적었던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이것도 그냥 감으로, 주먹구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학교에서 학생들의 명단을 주는데, 여기에는 좌석배치와 개인 프로필, 그리고 과거 발언 횟수가 기록돼 있다. 지난 두 번의 수업에서 발언을 못한 학생들은 교수가 얼굴을 보면 바로 알 수 있게끔 학생 얼굴 사진에 노란색으로 표시해놓는다. 그 학생에게는 우선적으로 기회를 준다. 또 교수가 첫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학생의 전문 분야 및 신상을 미리 알고 들어간다. 예를 들어 마케팅 측면의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면 마케팅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학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수업 전에 교수가 학생들을 철저히 파악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 다 알고 있다고 보면 된다. 매 학기 좌석 배치도 무작위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학교에서 지정해준다.

 

그러면 교수가 강의 외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지 않나.

대신 HBS 교수들은 1년에 코스를 2개만 맡는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있다. 한 학기만 수업을 하고 나머지 학기는 연구에 투자한다.

 

대형 칠판을 몇 번이나 지워야 할 정도로 판서를 굉장히 많이하시더라.

오늘은 필기를 그다지 많이 한 편이 아니다. HBS 강의실엔 대형 칠판이 아홉 개 있다. 강의실 전면에 칠판 세 개가 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고, 각각 세 겹씩 돼 있어서 아래위로 움직여 펼쳐놓을 수 있다. 그래서 칠판 지울 일이 별로 없다.

 

 

 

DBR Mini Box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

이날 강연 중 정덕진 교수는 간단한 질문을 참석자들에게 던졌다. 누군가에게 ‘1만 원을 줄 테니 다른 사람 1명과 마음대로 나눠 가져라. 다만 받는 사람이 당신의 제안을 수용해야지만 둘 다 돈을 가질 수 있고, 그 사람이 당신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둘 다 돈을 빼앗긴다. 당신은 상대방에게 몇 대 몇으로 돈을 나누겠다고 제안하겠는가. 또 당신이 제안을 받는 입장이라면 몇 대 몇의 제안을 받아야 받아들이겠는가.’

 

 

참석자 중엔 10%, 1만 원 중 1000원만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50% 이상 주지 않으면 거절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중 누가 주도권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일견 제안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진 것 같지만 제안을 받아들이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사람이 실질적인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이 게임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단 1원을 주겠다는 제안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받지 않는 것보다는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교수에 따르면 대체로 MBA 학생들은 제안자에게 55로 나눌 것을 요구한다. 특히 자신의 몫이 20% 아래로 내려가면 거의 대부분차라리 안 받고 만다라며 거절한다. 나라에 따라 다르지도 않다. 여러 문화권에서 같은 실험을 해봤지만 큰 차이가 없이 비슷했다고 한다.

 

 

, 예외는 있다. 유치원 갈 나이의 아이들에게 (돈 대신 M&M’S 초콜릿을 이용해) 같은 최후통첩 게임을 해 보면 초콜릿 1알만 줘도 기꺼이 받는다. 하지만 아이들조차도 나이가 들면 급격하게 변한다. 초등학교 3학년만 돼도 성인처럼 55 비율로 나눌 것을 요구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최후통첩 게임은 기업의 가격결정이 얼마나 미묘한 문제인지, 얼마나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위의 그림과 같이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할 때는 자신들의 비용(cost)과 소비자가 생각하는 가치(value) 사이에서 가격을 정하게 된다(물론 비용과 소비자 가치가 정확히 얼마인지 알아내는 것부터 쉽지 않다). 이론적으로 소비자는 단 1원의 이익(customer surplus)만 얻을 수 있어도 그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소비자는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 강의실에서 진행된 최후통첩 게임에서 본 것같이 생산자가 챙기는 이익에 비해 소비자 본인이 가져가는 이익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즉 공평한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아무리 순이익이 있다고 해도 구매를 거부할 수 있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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