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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其所無事:근본적 처방의 힘

한상만 | 136호 (2013년 9월 Issue 1)

 

 

‘행기소무사(行其所無事)’는 말 그대로 직역한다면일 없는 바를 행한다이다. 비가 오면 항상 물에 잠기는 지역이 있었는데 우()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다와 연결된 수로를 뚫어서 물이 자연스럽게 소통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근본적 처방을 했다. 맹자는 우()왕이 물을 소통시킨 것이 일이 없도록 처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행기소무사(行其所無事)는 일이 없도록 근본적인 처방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당장의 문제만을 해결하도록 일을 처리하는 것은 맹자가 이야기하는 행기소무사(行其所無事)의 처방이 아니다.

 

중소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발주기업의 납품단가 인하요구 64%로 가장 높다. 그 다음 두 번째와 세 번째도 원자재 가격상승분의 납품단가 미반영(56%)과 대금결제일 장기화(32%)로 주로 가격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납품단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들이 많이 만들어진다면 중소기업들의 문제점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소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맹자가 말하는 행기소무사(行其所無事)의 처방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소기업들에 필요한 것은 경쟁력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올해 삼성전자가 선정한 한국형 강소기업 14개 기업에 포함된 부전전자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흥미롭다. 부전전자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내장형 스피커에 올인해 스피커만으로 연 매출 3000억 원을 올리는 성공적인 중견기업이다. 부전전자의 이석순 대표는 인터뷰에서삼성의 전략을 일부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경영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부전전자가 여타 중소기업들과 다른 경쟁력을 갖추게 된 가장 큰 행기소무사(行其所無事)의 처방은 바로 삼성전자의 사업전략을 공유하고 이에 맞게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신기술에 대한 투자, 디자인 역량, 그리고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정보력이 필수적이다. 중소기업들은 이런 분야에서 경쟁력이 취약하다. 부전전자처럼 삼성의 부품공급업체가 돼 제품에 대한 수요를 미리 확보하고 삼성이 요구하는 제품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를 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기술정보를 공유하는 중소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중소기업이 부전전자와 같이 삼성전자의 독점적인 공급업체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부전전자와 같이 기술력과 디자인 역량, 그리고 시장 정보력에서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지원해줄 수 있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기업조직이 필요하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 이미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제4섹터형 기업이 바로 그러한 조직이다. , 중소기업이 기업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 중소기업들을 섹터별로 묶어서 그들이 취약한 기술, 디자인, 시장조사 등을 지원해주는 새로운 형태의 한국형 제4섹터형 기업이 필요하다. 기존 영리기업과 비영리기업의 장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제4섹터형 기업은 중소기업들을 느슨한 네트워크조직으로 연결함으로써 이들이 독자적인 기업경영이 가능하면서도 필요한 기술지원, 디자인지원, 시장정보지원을 받게 한다. 또한 참여하는 중소기업들은 회사 이익의 일정 부분을 다시 이러한 제4섹터형 기업에 재투자하게 함으로써 자생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처럼 중소기업들이 지금 당장 느끼는 애로사항만 해결하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처방이 필요하다. 중소기업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이들에게 필요한 원천기술과 디자인 역량 및 시장정보를 지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제4섹터형 기업의 설립이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기소무사(行其所無事)의 근본적인 처방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한상만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소비자학회 공동회장

한상만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학기술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한국소비자학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古典에서 배우는 경영 인사이트40> <현대마케팅> <브랜드전략> <경쟁우위 마케팅 전략> <웹마케팅 혁명> 등의 책을 썼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시간에 <사서삼경>을 배우는 수업을 청강하는 것에서 큰 즐거움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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