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인생에는 아웃소싱이 없다”

하정민 | 130호 (2013년 6월 Issue 1)

 

미국 시애틀의 한 종합병원을 무대로 한 ABC방송의 장수 메디컬 드라마그레이 아나토미는 시즌마다 충격적인 피날레를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즌 8화의 마지막 회는 비행기 사고가 소재다. 주변 도시의 작은 병원으로부터 긴급 지원 요청을 받은 이 병원의 핵심 의사 여럿이 소형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허허벌판에 추락한다.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 수일이 지났고 그동안 탑승 의사 7명 중 2명이 사망했다. 생존자 5명 중 한 사람은 다리를, 한 사람은 손의 감각을 잃었다.

 

5명의 생존 의사들은 해당 항공사를 상대로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비행기 조종사는 사고 당시 숨졌고 영세한 회사는 이 돈을 물어낼 능력도, 제대로 된 보험도 없다. 분노한 의사들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낸다. 자신들을 그 열악한 비행기에 태워 보낸 병원에도 잘못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외과 과장 오웬 헌트가 경비 절약을 위해 수십 년간 거래한 대형 항공사에서 저렴한 항공사로의 교체를 무심코 승인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때문에 헌트는 과장 자리를 박탈당하고 병원 또한 막대한 배상금 지출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불황기를 맞은 기업들은 늘 경비 절감의 압박에 시달린다. 회사 곳곳에이면지 사용’ ‘지나친 냉난방 금지’ ‘엘리베이터 이용 자제와 같은 문구가 붙고 아웃소싱이 등장한다. 아웃소싱은 핵심 업무 외 부수적인 일을 외부 회사에 저렴하게 위탁하는 방식이다. 조직의 군살을 빼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아무리 효율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아웃소싱을 할 때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아닌지, 즉 핵심 업무를 부수 업무로 오판하는 것은 아닌지를 세심히 체크해야 한다.

 

병원의 핵심 자산은 최첨단 의료기기도, 휘황찬란한 건물도 아닌 의료진이다. 실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들뜬 초보 외과 과장 오웬 헌트는 의료진의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의 비용을 줄이려다가 오히려 조직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비슷한 예는 한국 언론계에서도 발견된다. 지난해 7월 한 신문이 3년 전 찍은 태풍 사진을 마치 그날 찍은 것처럼 속여 1면에 대문짝만 하게 내보내며 물의를 빚었다. 해당 신문은 사과문을 게재하며프리랜서 기자의 잘못이며 그는 이미 사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면도 아닌 1면에 실린 사진을 프리랜서 기자 사진으로 채우려면 그만큼 치밀한 준비를 해야 했다.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웃소싱을 해야 할 부분과 아닌 부분이 어디인지, 아웃소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영자가 초래한 인재(人災).

 

올 초 세계 IT업계를 흔든 최대 뉴스는 한때 세계 최대 PC회사로 군림했던 델의 상장폐지다. 온라인 판매를 통해 48시간 안에 상품을 배송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대성공을 거둔 델은 사업 규모가 커지자 대만 아수스에 소형회로 및 마더보드 생산을 맡겼다. 이후 컴퓨터 조립은 물론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아웃소싱 항목을 늘리다가 결국 브랜드 이외 모든 부문을 넘겨주고 말았다. 델의 재무제표는 좋아졌지만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칭송받던 DNA는 사라지고 평범한 회사만 남았다. 반드시 스스로 해야 하는 일조차 남의 손을 빌리면서 핵심 경쟁력과 미래의 성장 동력이 사라져버렸다.

 

지나친 아웃소싱은 아니함만 못하다는 교훈은 비단 조직의 리더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영 구루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암과 사투를 벌이면서 작년 말 인생 경영 지침서인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인생에는 아웃소싱이 없다고 단언한다. “많은 부모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조차 전문화라는 명목하에 지나치게 남의 손을 빌리려 한다. 너무 많은 것을 아웃소싱하면 아이의 가능성을 개발할 기회를 놓친다. 당신 아이의 가능성을 개발할 기회를 놓치고 싶은가?”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필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국정책대학원(KDI)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2005∼2007년 여기자 최초로 뉴욕특파원을 지냈다. 저서로 스포츠와 기업 경영의 공통점을 분석한 <건곤일척: 모든 것을 걸어라>가 있다.

 

 

 

 

 

가입하면 무료

인기기사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