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울새 vs 사회적 박새

116호 (2012년 11월 Issue 1)

 

1900년대 초반 영국에선 우유 배달부들이 작은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며 교외 집집마다 우유를 배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유병에는 뚜껑이 없었다. 목장에서 갓 짜 내온 우유를 상온에 방치해 놓다 보니 지방 성분이 떠올라 우유병 윗부분에는 크림층이 생겼다. 덕분에 영국의 정원 새들(garden birds), 특히 영국 박새(British tits)와 울새(red robins)는 우유병에 부리를 박고 달콤한 크림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우유 배달업자들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새들이 우유를 건드리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결국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사이에 배달업자들은 우유병을 알루미늄으로 밀봉하는 기술을 도입, 새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새들은 풍부한 영양소가 녹아 있는 크림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박새와 울새 모두 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마개를 뚫어 보려고 용을 썼다. 박새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1950년대 초, 당시 약 100만 마리에 달했던 영국 박새 전부가 알루미늄 뚜껑을 뚫는 방법을 터득했다. 울새는 달랐다. 일부 똑똑한 울새는 뚜껑을 뚫는 데 성공했지만 집단 전체로는 학습에 실패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뉴질랜드 출신의 저명한 생물학자인 앨런 C. 윌슨(Allan C. Wilson)은 이를 혁신(innovation)과 이동성(mobility), 사회적 전파(social propag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풍부한 영양소를 계속 얻을 수 있게 된 박새는 울새보다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박새의 진화 속도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른바가속화된 구조적 진화(accelerated anatomical evolution)’의 사례다. 윌슨은 이런 가속화된 진화가 혁신과 사회적 전파, 이동성을 가진 종()에서 관찰되는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박새는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새(flocking birds). 새끼가 너무 어려 먹여 살려야 할 때는 부부끼리 짝을 지어 살지만 새끼들이 자라 먹이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되면 8∼10마리씩 떼를 지어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반면 울새는 텃새(territorial birds). 수컷 울새는 다른 수컷이 자기 영역으로 들어오는 걸 한 치도 허용하지 않으며, 심지어 서로 적대적인 태도로 의사소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알루미늄 마개를 뚫는 법(혁신)을 발견했을 때 박새는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이동성) 구성원 모두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사회적 전파)했다. 반면 울새는 이따금 한두 마리가 마개를 뚫는 데 성공했지만 그 지식이 종족 전체로 확산되지 못했다. 혼자서 자신의 영역 지키기에만 집중한 탓이다.

혁신을 창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문제는 혁신을 어떻게 조직 전체로 확산시키느냐다. 부서 간 장벽(silos)에 갇혀 서로를 적대시하며 제 밥 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울새조직이라면 아무리 출중한 개인이 혁신적 성과를 낸다 해도 조직 차원에서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혁신이 조직 전체로 스며들도록 하려면 연구개발, 생산, 영업 등을 한데 아우르는 기능간부서(cross-functional team) 설치 등 조직 내 장벽을 걷어내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박새조직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외로운 울새가 아닌 사회적인 박새 조직을 지향하는 리더가 해야 할 일은 혁신의 확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조직 내에학습하는 문화(learning culture)’를 조성하는 일이다. 선진 기업들이 학습총책임자(Chief Learning Officer)를 두고 조직 전체의 학습을 독려하며 경력 개발 단계에 맞춰 종업원들에게 다양한 교육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힘쓰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무리를 지어 서로 간의 지식을 함께 나누도록 독려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없다면 조직은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종업원들에 대한 교육 훈련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영자들이 있다면 울새와 박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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