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Marketing Classics-3

스마트의류 시대, 패션은 과학이다

105호 (2012년 5월 Issue 2)



편집자주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패션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어느 누구도 패션을 벗어나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패션은 인간 삶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패션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됩니다. 정인희 교수가 Fashion Marketing Classics을 통해 흥미로운 패션 마케팅을 소개합니다.

 

미래 유망 산업 분야는 6T로 정의된다. 6T란 여섯 가지 미래형 신기술로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기술), BT(bio-technology·생명기술), NT(nano technology·나노기술), ET(environment technology·환경기술), ST(space technology·우주항공기술), CT(culture technology·문화기술)를 말한다.

 

이들 중 나노기술이란 나노 단위에서 관찰하고, 분석하고, 반응시키고, 조립하고, 제조하는 초정밀기술을 말하는데 나노(nano)란 바로 10-9을 뜻하는 그리스어 수량 접두사다. 10-3은 밀리(milli), 10-6은 마이크로(micro) 10-9은 나노(nano). 10-12은 피코(pico)라고 한다. 국제단위체제(SI·프랑스어로 Système International)에서는 10-15인 펨토(femto), 10-18인 아토(atto), 10-21인 젭토(zepto) 10-24에 해당하는 욕토(yocto)까지 1보다 작은 수량 단위를 규정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에서 아주 작다는 뜻을 갖는 단어는 마이크로(micro)인데 이는 아마도 아주 오랜 동안 인간이 알고 있었던 가장 작은 크기가 10-6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현재는 나노(nano) 미터 크기가 인간이 인지하는 가장 작은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피코(pico)의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IT의 비약적 발전 덕분에 1보다 큰 단위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킬로바이트(kilobyte)에서 시작해서 메가(mega), 기가(giga), 현재의 테라(tera)바이트까지 컴퓨터 메모리의 용량이 증대돼 가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12에 해당하는 테라(tera) 이후에도 페타(peta·1015)를 거쳐 엑사(exa·1018), 제타(zetta·1021), 요타(yotta·1024)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수량 단위가 정해져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패션도 과학과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 중 하나다. 패션에 대한 기술의 영향은 직접적인 형태로, 혹은 간접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패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중요한 과학기술적 사건 중 하나는 나일론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일론은 1934년 월리스 흄 캐러더스(Wallace Hume Carothers·1896∼1937)가 개발했다. 나일론은 고가(高價)의 광택 있는 섬유인 실크를 대체할 만한 섬유를 찾던 듀퐁연구소 프로젝트의 엄청난 성과였다. 이로써 면, , (실크), 모의 천연섬유에 의존하던 인간의 의생활이 확장되면서 패션의 대중화가 촉진된다. 나일론으로 만든 최초의 제품인 스타킹은 단연 히트상품이었고 한국전쟁 후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들도 나일론으로 만든 블라우스와 나일론 양말에 열광했다. 1963년부터 한국에서도 나일론이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한국은 세계적인 합성섬유 생산지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을 이끈 방적기나 직기, 재봉틀도 의생활 혁명을 이끈 중요한 기계적 발명이다. 최근에는 NT, 즉 나노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기능성 섬유들이 개발되고 있다. 등산복이나 스포츠 웨어, 기능성 속옷 등에 쓰이는 소재의 투습방수1 , 흡한속건2 , 자외선 차단, 항균, 발열 등의 기능이 모두 나노기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패션에 대한 기술의 간접적인 영향을 살펴보는 일도 매우 흥미롭다. 1960∼1970년대에 일상복처럼 착용됐던몸뻬3 는 왜 사라졌을까? 물론 패션 자체의 변화와 트렌드에 따라 몸뻬 이외의 다른 입을거리들이 많이 생겨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아파트 생활의 확산이 그뒤에 숨은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과거의 재래식 부엌은 주로 쪼그리고 앉아서 물일을 해야 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발목 부분을 조여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으면서도 앉고 일어설 때의 자세 변화에 따른 여유분이 넉넉한 몸뻬가 집안일을 할 때 착용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입식 부엌이 갖춰진 아파트에서는 노동의 상징이기도 한 몸뻬를 더 이상 채택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동차 소유의 보편화도 패션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다. 걸어서 다닐 일이 많았던 과거에는 비가 오는 날에는 비옷과 장화가 필수품이었겠지만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회사 지하주차장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로 사무실까지 이동하는 오늘날의 생활양식에서는 비옷과 장화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최근 다채로운 색상과 아기자기한 패턴으로 재등장하고 있는 장화나 비옷은 지구 온난화로 일시적 강풍을 동반한 호우가 잦아지면서 날씨에 대한 관심이 증대됐고 이것이 복고적 트렌드와 결합해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텔레비전과 비행기는 패션의 글로벌화에 시동을 걸었으며 인터넷과 디지털카메라는 패션의 글로벌화를 완성시켰다. 세계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오가기 힘들었던 20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파리와 서울의 유행 시차는 3년가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컬렉션 무대만이 아니라 외국의 거리 모습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다른 나라의 안방까지 전달되고 나아가 인터넷 기술이 이를 지원하면서 파리의 유행과 서울의 유행 시기는 거의 같아졌다.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가서 견문을 넓히면서도 필름을 아껴가며 기념사진을 촬영하던 사람들이 이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세계 각국을 내 집처럼 오가며 전 세계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IT, 즉 정보기술이 오늘날 패션 산업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막대하다. 인터넷 쇼핑몰도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인터넷 쇼핑몰에는 그래픽을 사용한 가상공간에의 상품 진열에서부터 상품 검색과 대금 결제, 배송추적까지 다양한 기능이 결합돼 있다. 여기에 각종 게임과 광고 제공, 여론 조사, 온라인 CRM까지 수많은 부가 기능이 제공된다.

 

사실 패션 상품은 색채나 소재, 디테일 같은 특성을 화면으로 표현하고 전달하기 어려운 문제 등으로 인해 초창기의 인터넷 인프라를 유통에 접목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인터넷 쇼핑몰에서 패션은 결코 빠질 수 없이 중요한 핵심 품목이 됐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쇼핑까지 아우르며 발전을 거듭해가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을 보면 IT 업계의 청년사업가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IT는 의류 제품 그 자체에도 적용돼스마트 의류라는 이름으로 IT와 패션의 융합이 이뤄지고 있다. 착용하고 달리면 저절로 건강 상태가 점검되는 옷, 기후 변화에 따라 온도가 조절되는 옷, LED 화면을 부착해 디스플레이 기능을 가진 옷, 착용하면 렌즈에 각종 정보가 뜨는 안경 등 스마트 의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NT가 접목된 패션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수요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IT 융합 패션의 시장성이 그리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아직은 기술을 위한 기술 발전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패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현 시점에서 IT 발전에 따라 소비자가 패션에서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최근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휴대폰의 크기가 많이 커졌다. 한때는 소형화·경량화 일변도로 가던 휴대폰 외형이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크면 클수록 최신형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바지 주머니에 쏙 들어갔던 휴대폰을 겨울을 지나며 스마트폰으로 바꾼 뒤 양복 안주머니에 휴대폰의 거처를 마련했던 직장 남성들은 이제 재킷을 벗어던져야 하는 여름철에 최신형 고급 휴대폰을 어떻게 갖고 다녀야할지 고민일 것이다. 패션 상품을 개발하는 디자이너들은 이제 주머니의 크기를 휴대폰 크기에 비례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성들은 이미 옷에 달린 주머니에 휴대폰을 두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다. 가방에 만들어 놓은 휴대폰 주머니도 크기가 작아 사용하기 어렵다. IT가 세상을 지배하는 유비쿼터스 세상에서 휴대폰은 옷만큼이나 사람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대상이다.

 

IT와 패션의 접목은 많은 부분 IT 전공자의 손에 좌우돼왔다. 이제 패션을 하는 사람들은 패션의 입장에서 IT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휴대폰의 크기를 좇아 패션의 디테일에 변화를 주는 노력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건 손에서 휴대폰을 놓을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라도 휴대폰을 둘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은 어쩌면 옷의 새로운 사명일지도 모른다.

 

 

 

정인희 금오공과대학교 교수 ihnhee@kumoh.ac.kr

필자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과 기업에서 강의와 실무를 병행하며 일하다 2000 3월부터 금오공대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패션 시장을 지배하라> <이탈리아, 패션과 문화를 말하다> 등이, 역서로 <재키 스타일> <오드리 헵번: 스타일과 인생> <서양 패션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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