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는 인사철이다. 임원, 부서장에 이어 부서원들도 인사 발령이 난다. 가장 변동이 많은 부서 중 하나는 일선 영업점이다. 영업부장, 지점장 등 영업부서 관리자들은 보통 주변 영업 환경과 영업 사원의 영업력이 좋은 점포를 맡고 싶어 한다. 확보하고 있는 고객층은 어떤지, 잠재 고객들의 구매력은 어떤지 등 외부 환경과 내부 영업력에 의해 실적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영업 중에서도 어려운 편이라는 보험업의 일선 영업 관리자(지점장, 영업소장 등)들에게 어떤 점포를 맡고 싶은지 물어봤더니 흥미로운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영업 환경이 좋은 점포를 원하는 건 당연하다. 우수한 영업 사원들이 많은 점포도 선호한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갖췄더라도 직전 연도 또는 직전 1, 2년간 특히 탁월한 영업 실적을 올린 점포는 큰 인기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기피 대상이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빨대’에 쪽쪽 빨렸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는 영업 관리자가 판촉 수단이나 영업사원 지도를 통해 마치 ‘빨대로 빨아마시듯’ 가능한 최대한의 단기성과를 뽑아냈다는 뜻이다.
보험과 같이 장기간 거래가 필요한 금융 상품이나 고가의 내구재는 주로 인맥을 기반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지인을 설득해 고객으로 만들고,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이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면서 차츰 영업 기반을 넓혀가는 구조다. 하지만 우수한 영업 사원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아는 인맥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계약을 한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 결국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계약을 쌓아나가면 미래에 올릴 성과는 줄어들게 된다.
영업 사원들은 단기성과의 한계와 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각종 판촉 시책과 영업 독려 수단이라는 당근과 함께 인사 평가권이라는 채찍으로 무장한 ‘빨대’형 영업관리자를 만나면 속도 조절이 어렵다. 빨대에 쪽쪽 빨린 영업 사원들이 떨어져 나간 영업 점포는 서비스 담당자가 없는 계약들만 즐비해 관리 부담이 커진다. 다시 예전 수준의 영업력을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개별 영업 점포 또는 특정 산업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한 기업이 고객을 어떤 관점에서 대하는지, 그리고 고객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한 문제인 만큼 모든 기업들이 주목해야 한다.
고객관리 분야 전문가인 마타 로저스 듀크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경영을 농사에 비유한다. 한 작물을 재배한 땅에는 다른 작물을 심고, 일정 기간 땅을 놀리기도 해야 오랫동안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비료를 듬뿍 쓰면서 수익성이 좋은 작물만 계속 심으면 몇 년간 수확량은 극대화할 수 있지만 결국 그 땅은 못 쓰게 된다. 농사는 ‘작물’을 재배할 뿐 아니라 ‘땅’을 관리하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현재의 성과를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미래의 고객 가치를 잠식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피하는 데서 출발한다.
2011년을 맞아 많은 기업 경영자들이 신년사에서 ‘지속가능 경영’ 또는 ‘상생’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10년 후 주력 사업을 키워내기 위한 ‘창조와 혁신’을 주문한 경영자들도 많다. 하지만 단기성과 중심의 평가 보상체계, 관리와 통제 중심의 인사제도로는 창조와 혁신, 지속가능한 성장은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창조와 혁신을 실행하고 고객을 통해 그 결실을 보는 주체는 내부 직원들이다. 창조적 조직 문화를 배양하고 제도를 정비해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 21세기 경영자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혹시 눈은 미래를 보고 있지만 몸은 과거의 관행에 따라 ‘빨대’처럼 움직이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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