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주요 관심사는 ‘우리의 경쟁우위는 어디에 있는가?’다. 관련된 이론 중 대표적인 게 ‘자원기반이론(Resource-based view)’이다. 자원기반이론에선 기업이 가진 자원이 얼마나 가치 있고(valuable) 희귀하며(rare) 모방하기 힘들고(inimitable) 대체가 어려운지(non-substitutable) 여부가 경쟁우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자원기반이론에서 기업의 능력(capabilities)은 자주 반복되는 것(routine)에 대해 조직 구성원들이 현상을 빨리 이해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변화가 심한 환경에선 자원기반이론이 말하는 능력으로 경쟁 우위를 얻기 힘들다. 반복되는 일을 찾기란 매우 힘들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기업이 어떻게 경쟁 우위를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이론 중 하나가 ‘동적역량관점(Dynamic Capability Perspective)’이다. 동적 역량이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문제를 빠르게 분석하고 외부로부터 필요한 지식을 빨리 획득하는 능력(흡수능력: acquisition or absorptive capability), 외부로부터 얻은 지식을 회사의 프로세스에 맞게 자원으로 창출하는 능력(융합능력: assimilation), 외부로부터 얻은 지식을 기존의 지식과 통합하고, 활용해 새로운 지식으로 전환하는 능력(변환능력: transformation), 기존 역량과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지식을 바탕으로 레버리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능력과 새로운 것을 탐색하려는 능력(탐색능력: exploitation) 등 4가지 요소들의 프로세스로 정의될 수 있다.(그림1)
흡수능력을 측정 가능한 변수로 바꾼다면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능력으로 표현할 수 있다. 또 나머지 프로세스, 즉 융합능력에서 변환능력으로, 또 변환능력에서 탐색능력으로 변하는 일련의 과정은 사내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할 수 있다. 사내 기업가정신은 조직 내의 개인들이 자원의 제약에 구애 받지 않고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회를 추구하며(흡수: assimilation), 기회를 조직 내부에 보유하고 있는 자원과 결합하거나 재구성해(변환: transformation),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창출(탐색: exploitation)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내 기업가정신의 핵심 요소와 융합, 변환, 개척 등 동적 역량의 세 가지 프로세스가 일치한다. 따라서 개념적으로 동적 역량은 흡수 능력과 사내 기업가정신의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
f(동적역량) =
흡수능력(absorptive capability) × 사내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
최근 들어 개방형 혁신의 필요성을 인식한 많은 기업들이 내부 연구개발(R&D)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적극적인 기술 탐색 방법인 인수합병(M&A), 전략적 제휴, 혁신 네트워크의 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흡수된 지식과 기술을 어떻게 내재화해 실제 가치를 창출하고, 경쟁우위를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즉 개방형 혁신을 통해 흡수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으나, 그 이후 단계인 융합, 변환, 탐색의 과정, 즉 사내 기업가정신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하다.
본 글에서는 흡수능력과 사내 기업과정신의 두 가지 차원을 기준으로 기업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 각 기업군에 속하는 국내 벤처기업 사례1
들을 들어 이들이 사내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그림2)
시장 전문가 기업
시장 전문가 기업들은 주로 창업자가 기술기반을 가진 엔지니어 출신은 아니지만 기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은 전문가들이다. 시장 수요를 잘 파악하는 역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기술은 외부에서 확보할 수 있고 중요한 것은 내부의 마케팅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에 대한 높은 이해 덕택에 대개 신규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을 모색한다.
이 영역에 속하는 기업들은 기술개발을 내부에서 추진하기보다는 창업자 혹은 CEO들이 기술의 흐름을 파악한 후 주로 M&A를 통해 기술을 확보하거나 기술제휴를 통해 공동개발을 추진한다. 또한 시장에 대한 이해 및 중요성을 강하게 인지하고 있어서 단순히 기술개발을 위한 흡수능력의 발휘뿐만 아니라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방형 혁신을 추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기업군들은 조직 내부에서 혁신을 일으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게 하기 위한 시스템, 즉 사내 기업가정신 시스템 구축은 매우 미비하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을 잘 파악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지나치게 시장을 확장하거나 다각화함으로써 전략적으로 집중성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위험 요소 역시 내포하고 있다.
인피니트 헬스케어는 1997년 의료기기 전문 벤처기업인 메디슨에서 분사해 메디페이스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2년 모기업인 메디슨의 부도로 메디슨의 다른 계열사 및 관계사들처럼 타격을 입고 위기에 처한다. 부도나기 직전인 2001년 이선주 대표는 전문 경영인으로서 인피니트 헬스케어(당시 메디페이스)에 영입됐다. 그는 ㈜대우에서 20년간 근무하면서 조선, 중공업 및 기계 분야의 국내 영업 및 해외 영업·기획을 담당했었다. 이선주 대표는 합류 당시 인피니트 헬스케어의 주 고객인 병원 방사선과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의료기 분야에 문외한이었지만, 해외 시장에서 오랜 기간 쌓은 경력이 높이 평가돼 CEO로 발탁됐다. 시장 전문가 기업군에 속하는 전형적인 CEO의 특성, 즉 시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기술흡수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인피니트 헬스케어가 속해 있던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 시장은 1997년 이후 정부 정책(PACS를 보험수가에 포함시키는)으로 인해 삼성SDS, GE, 지멘스, 필립스, 후지, 아그파, 코닥 등의 대기업이 진출, 과당경쟁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 대표는 불리한 경쟁상황에서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3D 영상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3D MED라는 기업을 인수, 3차원 의료영상 기술과 국내 최고수준의 연구 인력을 확보했다. M&A를 통해 외부 기술을 흡수함으로써 제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 출혈경쟁으로 시장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많은 기업들이 PACS 사업부를 포기하거나 기업폐쇄를 하는 상황에서 이 회사는 당시 치과용 전문차트를 개발하던 메디큐를 인수, 국내 치과용 의료정보 솔루션 분야의 기술까지 확보했다. 2005년에는 비트컴퓨터의 계열사인 네오비트를 인수해 PACS분야에서의 국내 시장점유율을 확대한 것은 물론, 일본과 중국시장에까지 진출했다.
인피니티 헬스케어는 외부흡수능력은 매우 뛰어난 반면, 사내 기업가정신 역량은 부족해 조직 내에서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인피니트 헬스케어는 2009년 인피니트 테크놀로지에서 인피니트 헬스케어로 사명을 바꾸고 2014년까지 의료영상 솔루션 및 서비스 분야에서 글로벌 Top 5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취약했던 조직 내부의 혁신 역량 강화를 추구한다는 계획이다. 인피니티 헬스케어는 현재 기업 내부에 사내 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CEO 지원 하에 준비하고 있으며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 문화 구축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