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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노멀 시대, 한국엔 혁신의 기회

롤랜드 빌링어 | 50호 (2010년 2월 Issue 1)
경기 불황의 실제 여파가 초기의 파국적 전망보다는 덜 심각해 보인다. 각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시장 개입이 불황의 충격파를 완충시킨 결과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불황에서 차입축소(디레버리징), 정부 역할 및 규제 강화, 자산 가치 하락, 세계화의 속도 조절 등의 네 가지 여파를 예상했다. 결과를 따져보자. 디레버리징은 금융 부문에서 시작됐으나 다른 산업으로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확실히 커졌다. 경기 부양 정책이나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규제까지 크게 강화되지는 않았다. 자산 가치는 떨어졌다가 일부 회복됐고, 많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높다. 세계화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선진국 소비자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중국 및 개발도상국으로 경제의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이전과 다르다. 한국 경제도 원화 가치 하락과 정부 개입으로 빠르게 되살아났다.
 
앞으로는 어떨까. 디레버리징은 계속될 것이며, 경제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디레버리징은 5∼7년간 지속된다. 영국, 미국, 스페인에서 디레버리징의 규모가 크고, 한국과 캐나다에선 그보다는 작을 것이다.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을 밑돌 수 있다. 선진국의 소비도 계속 줄어들 것이다. 반면 개도국의 성장은 빠르다. 맥킨지의 연구 결과 2008년부터 2025년까지 전 세계 소비의 52%가 개도국에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인도에서만 2025년까지 10억 명의 새로운 중산층이 형성될 전망이다.
 
경제는 정부 규제와 자유로운 시장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다. 규제와 관련한 불확실성에 대비할 필요도 있다. 특히 한국 금융 시장처럼 규제에 많이 좌우되는 곳에서는 규제 변화와 불확실성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조직이 경쟁력을 갖는다. 새로운 환경에 맞춰 비즈니스 모델을 과감하게 재정비할 필요도 있다. 대출 비용이 높아지고, 대출 기준이 까다로워지면 사업성도 달라진다. 투자의 적정성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는 상당한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산 가치의 등락이 심해질 수 있다. 일부 국가들이 실질 ‘제로 금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산 가치 거품의 붕괴 위험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으로 투자자들 사이에 낙관론이 팽배하다. 고정 환율 제도로 통화 정책도 느슨하게 운영돼 금융 기관의 대출이 시장에 과잉 자본을 공급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변화하는 환경을 기회로 만들려면 국제 경쟁, 특히 비용이 낮고 규모가 큰 개도국 대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에 대비해야 한다. 값을 60∼80%까지 낮춰도 살아남을 만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현지화 전략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高) 성장하는 개도국의 수요를 잡기 위해서는 각 시장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주요 교역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세계 각지에 형성된 역내 무역 블록이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국제 경쟁력 강화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 생산성을 끌어올릴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중소기업과 서비스 부문이 취약하다. 서비스 부문을 육성해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 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외 의존도를 낮추는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다. 기업과 관련한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도 급선무다. 그래야만 기업들이 점점 역동적으로 변하는 환경 속에서 투자 계획을 짜고 집행할 수 있다.
 
앞으로는 혁신 능력이 더 중요하다. 기존의 혁신을 업그레이드해서 쓰는 ‘빠른 추격자 (fast follower)’ 전략이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개도국 추격자의 학습 능력도 탁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혁신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북미 기업에 주도권을 빼앗겼지 않은가. 한 번 혁신이 영원하지는 않다. 개인 차원에서도 평생 학습을 준비해야 한다.
 
위기는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국의 원화 가치는 상승 추세에 있다. 특히 일본 엔화에 비해 그렇다. 그러기에 한국의 쇄신 작업은 당장 시작돼야 한다. 한국은 이번 불황을 상대적으로 잘 넘겼다. 대신 한국 기업들은 근본적인 구조조정 작업을 피할 수 있었다. 이는 앞으로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이번 위기로 큰 타격을 입은 국가의 기업들을 보라. 그들이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재기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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