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뱀을 떠받든 큰 뱀처럼…

43호 (2009년 10월 Issue 2)

내가 높아지려면 주위 사람부터 높여라. 진정 내가 높아질 수 있는 방법이다. 일명 ‘섬김의 리더십’이라고 불리는 역발상 철학이다. 여기에는 주변 직원들을 우대하고 소중하게 대한다면 리더도 직원들로부터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직원들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면 결국 같은 대접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하찮은 직원들을 데리고 일하는 리더를 누가 인정해주겠는가.
 
<한비자(韓非子)>는 물이 말라버린 연못 속의 뱀 이야기를 통해 역설과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학택지사’라는 고사다. 학은 ‘물이 말라버렸다’는 뜻이고, 학택은 ‘물이 바짝 마른 연못’을 의미한다. <한비자> ‘설림(說林)’ 편은 물이 말라버린 어느 연못에 사는 뱀, 학택지사의 생존 전략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여름날 가뭄으로 연못의 물이 말라버렸다. 그 속에 사는 뱀들은 다른 연못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른 연못으로 이동하는 일이 걱정이었다. 이때 작은 뱀이 나서서 큰 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앞장서고 제가 뒤따라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보통 뱀인 줄로 알고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를 당신의 등에 태우고 가세요. 사람들은 조그만 저를 당신처럼 큰 뱀이 떠받드는 것을 보면 아주 신성한 뱀, 즉 신군(神君)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두려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오히려 떠받들 것입니다.’ 큰 뱀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뱀들은 사람들이 많은 길로 당당히 이동했다. 사람들은 큰 뱀이 작은 뱀을 떠받드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건드리지 않았다. 결국 뱀들은 목적지까지 아무런 방해도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이 고사는 리더가 부하 직원을 떠받든다고 해서 리더의 권위가 떨어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권위를 높이는 일이 될 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齊)나라 정치가 전성자(田成子)가 위기에 빠져 정치적 목적으로 연(燕)나라로 떠날 때, 그의 부하였던 치이자피(鴟夷子皮)는 이 학택지사의 고사를 들어 전성자를 설득했다.
 
“주군은 훌륭하시지만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당신을 따른다면 남들은 당연한 일로 생각하겠지만, 주군처럼 훌륭하신 분이 저를 받들고 따르신다면 세상 사람들은 저의 지위를 짐작하지 못하고 모두 융숭한 대접을 할 것입니다. 당신같이 훌륭한 사람이 받드니 사람들은 제 신분을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성자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이들 일행은 연나라에서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이 <한비자>의 고사는 리더들이 어떻게 신하를 대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리더보다 뛰어난 부하가 어디 있겠는가. 애초부터 능력이 출중했다면 그가 리더가 됐을 터다. 하지만 남이 보는데도 자신보다 못한 부하를 우대하고 대접해준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 조직에 경외심을 갖게 될 것이다. 부하 직원을 무시하기보다는 그들의 작은 능력도 인정하고 북돋아준다면 조직의 생존 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리더가 보는 안목은 높고 넓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의 안목과 상식 정도로 조직을 이끈다면 진정 위대한 리더가 되지 못한다. 나보다 못하지만 부하를 예우하고 그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인정해줬을 때 사람들은 그 리더의 사람 보는 눈과 부하를 예우하는 능력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작은 뱀을 모시고 저 거친 들판을 건너가라. 사람들은 그 무리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다. ‘학택지사’가 던지는 역발상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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