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영원한 과제인 ‘혁신’과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입니다. 기업의 경계를 넘어 외부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면 훨씬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개방형 혁신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엄청난 자원이 기업 내부에도 있습니다. 바로 직원들의 아이디어입니다. 직원들이 주인 의식을 갖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조직은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구본무 회장이 “경제가 어렵다고 사람 내보내면 안 된다”고 선언한 후, LG그룹이 위기 극복의 핵심 솔루션으로 제시한 것도 바로 직원들의 아이디어 제안입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제안 제도 혁신을 위한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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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기업들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혁신 동력으로 삼기 위해 제안 제도를 운영한다. 하지만 성과를 내는 기업은 많지 않다. 경영진은 각종 포상과 인센티브를 주며 제안을 독려하지만 직원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당장 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인데 언제 아이디어를 내느냐” “좋은 개선안을 내봐야 상사들이 왜 진작 이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느냐고 질책할 뿐”이란 불만도 터져 나온다.
그러나 지식 기반 경제 시대에 기업의 가장 소중한 자원은 바로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직원들의 지식과 지혜, 아이디어다. 선도 기업들은 직원들이 마음껏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제도, 시스템,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산업화 시대에 도입했던 케케묵은 사내 제안 제도를 새롭게 정비하고 있다. LG전자, 한국IBM, 웅진코웨이, 일진다이아몬드, 유한킴벌리 등 제안 제도를 통해 혁신을 이룬 기업들의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1. 재미있어야 제안도 나온다
웅진코웨이는 지난해 4월 직원들의 제안 제도 시스템인 ‘상상오션’을 만들었다. 사내 인트라넷에 구축한 상상오션에서 직원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아이디어를 등록하고, 다른 직원들의 아이디어에 댓글을 달 수 있다. 채택된 아이디어가 현재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웅진코웨이는 사실 1995년부터 전 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사내 제안 제도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지극히 형식적이었기에 참여율이 매우 저조했다. 웅진코웨이 혁신팀은 직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게임을 하는 듯한 재미있는 제안 제도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이 취지 하에 지난해 초 상상오션을 개발했다. 게임이나 인터넷에서는 참여도가 높은 사용자들에게 ‘내공’을 주는데, 이것이 바로 자발적 참여의 원동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직원이 상상오션에 아이디어를 내거나, 댓글을 달거나, 제출한 아이디어가 우수 등급 판정을 받으면 웅진코웨이는 보상 명목으로 일종의 포인트를 지급한다. 혁신팀은 특히 상상오션이라는 제도명의 바다 이미지와 연관 지어, 평범한 명칭인 ‘포인트’ 대신 ‘새우’를 준다는 독특한 발상을 했다. 이는 싸이월드의 사이버머니인 ‘도토리’와 유사한 개념이다. 새우 1마리는 현금 100원에 해당하며, 새우 100마리부터는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새우 1만 마리가 모이면 돌고래 1마리(100만 원 상당)와 교환할 수 있다.
실력이 늘수록 게임 운영 능력이 높아지는 것처럼 제안 제도에도 10단계의 등급제를 도입했다. 아이디어를 적게 낸 직원은 ‘초보 선원’이 되고,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낸 직원은 ‘선장’ 직위에 오를 수 있다. 돌고래가 3마리 이상이면 ‘항해사’ 자격으로 미주 및 유럽 연수 기회를 갖고, ‘선장’ 단계에 올라가면 특진 기회까지 주어진다.
웅진코웨이 이상빈 경영혁신본부장은 “상상오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등급을 높이고 보상도 받는 재미가 쏠쏠해 직원들이 자연스레 아이디어 제안을 일상적 업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발랄하고 톡톡 튀는 제안 제도를 만들자, 직원들의 반응도 확 달라졌다. 2007년에는 직원당 월평균 제안 아이디어 수가 1.36건에 불과했지만, 상상오션 도입 후인 지난해 7월에는 이 수치가 8.61건으로 껑충 뛰었다. 참여율도 높아졌다. 현재 웅진코웨이 전체 직원의 96.5%가 상상오션을 이용하고 있다. PC를 사용하는 사무 직원뿐 아니라 방문 서비스 직원(코디)들도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내기 쉽도록 PDA를 활용해 제안을 한다.
웅진코웨이 유구공장 기술연구팀의 이인탁(33) 선임연구원은 상상오션에 활발하게 참여한 덕에 지난해 12월 사내 ‘상상 왕’으로 뽑혔다. 200만 원의 현금과 승진을 위한 포인트도 얻었다. 그는 “상상오션에 재미를 붙이니, 일을 할 때도 그 일과 관련해 상상오션에 등록할 만한 아이디어를 고민하느라 바쁘다. 그러다 보니 업무의 완성도도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평소에 일을 하면서 생각한 아이디어를 노트에 정리해놓고, 매달 20건 이상의 제안을 상상오션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