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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의 비밀 : 1600만 관객·매출 1위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쉽고 단순한 ‘2인극 구조’가 몰입 높여
희망보단 ‘절망의 온도 맞추기’로 공감

권문혁,정리=백상경 | 440호 (2026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관객수 16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왕과 사는 남자’는 거대한 정치 서사와는 거리가 멀다. 제목 그대로 왕, 그와 함께 사는 남자가 벌이는 2인극이다. 굴곡진 계유정난의 역사를 ‘청령포 속 생존’이라는 1대1의 인간 관계로 쉽고 단순하게 압축하면서 영리하게 관객을 몰입시켰고, 흥행에 성공했다. 주목할 부분은 흥행 공식으로 여겨지는 ‘승자의 서사’가 아니라 ‘패자의 이야기’로 대중의 열광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소비 트렌드가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중은 해피엔딩과 승리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패배와 무력감을 함께 확인하는 ‘정서적 동기화’로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 ‘패배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를 묻는 서늘한 동기화의 물결을 주목할 때다.



편집자주 | 권문혁 교수가 대중문화 산업의 트렌드를 읽고 히트 콘텐츠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흥행의 비밀’을 연재합니다. 시대와 사회, 대중 정서와 문화 산업의 변화를 포착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흥행의 역사는 늘 예측 불가능한 반전 속에서 쓰인다. 스펙터클한 대규모 전투신이나 자극적인 정사 장면 하나 없는 팩션 사극,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 이야기다. 4월 23일 기준 1664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2위, 매출액(1606억 원)으로는 압도적인 1위로 올라섰다.

제작비는 105억 원. 그 두 배가 넘는 235억 원을 투입한 ‘휴민트’(198만 명)를 일찌감치 제쳤다. ‘베테랑(1341만 명, 2015년)’ 등의 시리즈를 연속 히트시키며 한국 액션 영화의 대표 주자로 불리던 류승완 감독의 대작을 압도했다. 투입된 자본의 크기가 곧 대중의 환호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흥행의 역설’을 입증했다. 더욱이 OTT의 공세로 관객이 이탈하고 문을 닫는 극장이 늘어가던 위기 속에 거둔 성과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크고 값지다.

세간에선 ‘왕사남 4대 미스터리’가 회자된다. ① ‘예능 입담’ 장항준 감독이 ‘액션 베테랑’ 류승완 감독에게 완승한 것 ② 제작비 105억 원으로 235억 원의 대작을 이긴 것 ③ 흥행이 어렵다는 ‘패자 서사’로 초대박을 낸 것 ④ 죽어가던 극장가에서 1600만 관객이 터진 것 등이다.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밈(meme)처럼 소비되는 우스갯소리지만 그 속엔 이번 흥행의 역설이 예리하게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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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남이 자본과 장르적 격차를 이겨내고 흥행을 이끌어낸 진짜 비밀은 놀랍게도 이 영화의 가장 단순한 구조에 숨어 있다. 왕사남은 겉으로는 거대한 정치 서사처럼 보인다. 단종이란 비극적인 군주를 중심으로 유지태(한명회)나 이준혁(금성대군)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비쳐지기에 충분한 요건이다. 그러나 스토리의 살을 발라내고 앙상한 뼈대만 추려내면 매우 직관적인 구조가 드러난다. 왕과 사는 남자라는 제목 그대로 ‘왕 + 남자’가 벌이는 ‘2인극’에 불과하다. 이것이 이 영화의 초대박 흥행 행진을 이끌어낸 숨은 열쇠다.

2인극(DuoDrama)은 무대 장치와 등장인물을 최소화하는 ‘최소 단위 인간관계 성찰형’ 연극 형식 중 하나다.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먹히는’ 스타일이다. 한국에서도 ‘월드 2인극 페스티벌(World DuoDrama Theater Festival)’이 대학로 일대에서 26년째 개최되고 있다. 아는 사람이 드물 뿐이다.

2인극의 최대 매력은 압도적인 집중도다. 화려한 외부 변수를 차단하는 대신 오직 두 배우의 쫀득한 연기력과 대사의 밀도, 심리적 긴장감으로 극을 완성한다. 두 인물 간의 대화와 마찰에만 오롯이 집중하기 때문에 인간의 고립, 관계의 균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다.

왕사남은 바로 이 2인극의 강점과 문법을 무서울 정도로 영리하고 집요하게 스크린에 이식했다. 영화는 영월 청령포라는 고립된 섬을 거대한 연극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소년 왕 단종(박지훈)과 가장 낮은 곳에서 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현실주의자 촌장 엄흥도(유해진)를 한데 밀어 넣고는 가차 없이 문을 닫아버린다. 이때부터 벌어지는 심리적 탁구 게임은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고, 때로는 가슴을 저미게 한다. 한양에서는 만백성의 어버이였던 왕이, 유배지 방 안에서는 민초의 조롱과 겁박까지 받는 처지로 전락한다.

“전하, 여기서 안 드시면 저만 곤란해집니다.” 거친 밥상을 들이미는 엄흥도의 일갈은 2인극의 고전적 장치인 ‘지위의 전복’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특히 엄흥도를 연기한 배우 유해진은 특유의 친근한 얼굴로 조선 시대 천민을 넘어 우리 시대 삶에 지친 소시민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살려낸다. 그 덕분에 관객은 스크린 속 엄흥도에게 자신의 팍팍한 삶을 기꺼이 투영하게 된다.

거대한 계유정난의 역사가 ‘청령포 속 생존’이라는 1대1의 인간관계로 압축되는 순간, 관객은 비로소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영악한 2인극 세팅이 흥행에 미친 영향은 결정적이다. 관객이 머리 아프게 해석해야 할 변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복잡한 정치 암투 대신 두 사람의 감정선만 따라가면 되니 서사의 진입 장벽은 한없이 낮아지고 몰입도는 대폭 상승한다.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된 유머 코드는 관객의 심리적 무장마저 완전히 해제시킨다.

이렇게 대폭 낮아진 진입 장벽은 소구 대상(Target Audience)을 획기적으로 확장한다. 실제로 CGV 예매 분포를 보면 1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고른 지지세를 보인다. 평소 극장 방문을 주저하던 7080 노년층마저 기꺼이 스크린 앞으로 모여들었다. 세대의 벽을 허물고 1600만 관객을 끌어안은 경이로운 결과 뒤에는 쉽고 명확한 ‘2인극 구조’의 마법이 숨어 있다.


승자의 무대 뒤편,
패자의 서사가 1600만의 마음을 울리다

역사와 대중매체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언제나 ‘승자의 서사’를 편애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조선 전기 권력의 정점에는 늘 태종과 세조라는 강력한 승자들이 군림한다. 역사학자 박현모조차 단종을 밀어낸 세조를 두고 “어리석은 자는 하늘에 미루고 지혜로운 자는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살핀다(愚者推之於天 智者審之於人)”는 어록을 인용하며 피로 권력을 쟁취해 낸 탁월한 정치적 리더십을 치켜세운 바 있다. 이처럼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역사의 본무대는 언제나 세조와 같은 승자들의 독무대였다.

세조는 인간의 펄떡이는 욕망, 그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인 권력욕의 화신이라는 이미지로 수없이 소비돼 왔다. 피를 나눈 숙부가 어린 조카의 목에 서늘한 칼을 겨눈다!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얼마나 끔찍하고도 매혹적인가.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은 시대를 막론하고 최고의 흥행 보장 소재다. 대개 그 콘셉트는 ‘왕의 자리는 정당해야 하는가 아니면 강해야 하는가’라는 매혹적인 질문으로 압축된다. 세계적인 메가 히트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바로 그 전형 아닌가. ‘철왕좌’를 차지하려는 귀족 가문 간의 비정한 투쟁을 그린 대서사시(大敍事詩)에 전 세계인이 그토록 열광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대중문화에서 킬러 콘텐츠의 왕좌는 언제나 이 피 튀기는 권력 투쟁과 승리 서사가 차지했다. 그러니 카메라의 메인 포커스도 언제나 권력을 쥔 자, 즉 ‘승자’의 화려한 얼굴에만 맞춰지기 마련이다. 역사의 편집실에서 패자의 눈물은 철저히 가위질당한다. 16세에 권좌에서 쫓겨나 차가운 영월 땅에 묻힌 정치적 패자, 단종(端宗)은 후세 수백 년 동안 철저히 소외됐다.

우리가 기억하는 미디어 속 조선 전기는 온통 세조와 그의 책사 한명회의 독무대였다. 과거 안방극장을 뒤흔든 ‘조선왕조 5백 년: 설중매’가 그랬고, 영화 ‘관상’에서 이정재(세조 역)가 짐승처럼 뿜어내던 그 ‘숨을 조이는 권력의 위압감’을 보라! 심지어 악역조차 매력적인 인물로 포장하는 미화(美化)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 삼촌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은 비극의 주인공임에도 늘 극의 주변부에 머무는 장치에 불과했고 기존 흥행 공식에서는 철저하게 배제해야 할 인물이었다. 그렇게 외면받던 처절한 ‘언더도그(Underdog)’ 단종을 왕사남은 역사의 편집실 바닥에서 건져 올려 무대 한가운데에 내세웠다. 승리와 승자의 성취를 통해 관객을 사로잡는 기존의 흥행 공식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아주 용감하고도 위험한 선택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승리하고 성공하는 스토리에 열광하는 것이 흥행의 흔들림 없는 기본 법칙이다. 패자를 다루는 콘텐츠가 대중에게 먹히는 법은 거의 없다. 가까운 예로 병자호란의 참담한 굴욕을 다룬 영화 ‘남한산성’은 김훈 원작이라는 거대한 후광과 탄탄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흥행 면에서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왕사남은 정반대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마치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을 뒤흔들었던 이광수의 소설 『단종애사』가 2026년 지금 여기에 부활한 것만 같다. 1928년 11월부터 이듬해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단종애사가 불러일으킨 현상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주권을 잃고 억압받던 식민지 백성들은 숙부에게 권좌를 빼앗기고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소년 왕’ 단종에게 처참한 현실을 완벽하게 투사했다. 단종의 서러운 눈물 속에서 자신들의 억울함과 한을 달래고 위로를 받았다.

그 시절 단종애사는 요즘으로 치면 단연 1000만 관객을 훌쩍 넘긴 최고의 메가 히트 콘텐츠였다. 소설을 읽고 눈물지은 독자들의 편지가 수천 통씩 신문사로 쇄도했고 작가 이광수를 직접 만나 감상을 전하려는 인파가 줄을 이었다. 신문 연재란을 오려가며 밤새워 읽고 함께 슬퍼하던 그 뜨거운 사회적 공감과 연대의 열풍이, 1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지금 전국 영화관에서 놀랍도록 똑같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 속 패자가 이토록 뜨거운 조명과 환영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권력의 최정점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자의 짙은 파토스가 어떤 얄팍한 성공담보다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건드리는 훨씬 더 강력한 울림을 만들어낸 것이다. 승자의 오만한 기록에는 결코 담을 수 없었을, 비운의 왕과 평범한 촌장이 나누는 체념과 슬픔이 어떻게 이렇게 강렬하게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보통 사극은 왕권, 정치, 음모 등 복잡한 요소를 다룬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것과 반대로 갔다. 복잡한 역사 대신 단순한 관계를 선택하고 그 관계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2인극의 문법으로 거대한 역사를 두 사람의 관계극으로 축소했다. 흥행 문법의 위험한 함정인 ‘언더도그 서사(Underdog Narrative)’를 2인극의 집중력으로 돌파한 것이다. 왕사남의 성공은 여기에 뿌리를 둔다.

또 하나, 왕사남의 출발점은 단종이라는 확정된 비극이다. 관객은 이미 결말을 안다. 이로 인해 관객은 서사적 긴장 대신 정서적 준비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슬퍼할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저 두 사람이 얼마나 더 버티며 아픔을 겪게 될까’에 집중한다. 이건 흥행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관객의 인지적 부담은 낮아지고 감정 몰입은 올라가기 쉬운 설정이기 때문이다.

왕사남의 성공은 ‘생각은 줄이고, 감정은 채워줘라’라는 흥행 법칙을 아주 효과적으로 작동시킨 결과물이기도 하다. 대중은 이미 정보 과잉으로 인한 이해 피로, 선택 과잉으로 인한 판단 회피, 감정 결핍으로 인한 정서 갈증 상태에 놓여 있다. 기획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영화는 다음 3가지 핵심 설계 원리(Core Design Principles)로 관객의 감정을 설계했다.

① 인지 마찰(Cognitive Friction) 최소화: 누구나 알고 있는 소재인 역사(단종)를 차용했다. 구조는 2인 관계로 묶고 사건을 단순하게 세팅해 관객의 이해 비용(Cost of Understanding)을 낮췄다.

② 감정 밀도 극대화: 스펙터클한 사건 대신 관계를 축소하고 대사보다 상황을 보여줬다. 설명보다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관객의 감정 체류 시간을 길게 늘렸다.

③ 결과 확정 구조: 단종의 운명이라는 결말이 이미 알려진 뼈대로 서사적 불안을 제거하고 심리적 몰입을 안정시켰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럼 유지태(한명회)의 열연이 빠지잖아?” 하시는 분도 있겠다. 그가 연기한 한명회의 몫이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강렬한 존재감조차 결국 단종과 유해진, 두 사람의 감정 밀도를 팽팽하게 조이기 위한 철저한 ‘외곽 설정’에 불과했다. 유지태 스스로 인터뷰에서 밝혔듯 그의 역할은 순전히 두 주인공의 갈등을 선명하게 빚어내는 정교한 수단이었다. 당연히 이 영화의 다른 모든 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과 장면들도 두 사람의 대결을 부각하기 위한 배경이자 완벽한 2인극을 완성하는 장치로 쓰였다. 영화 관람 후 시간이 지나서 여러분 기억에는 어떤 장면이 남아 있는가?

필자에게는 ‘단종과 유해진’의 롱 테이크 2샷(Long-take Two Shot)과 두 인물의 표정 클로즈업(Close-up)이 잔영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초반 도입부 20여 분을 제외하면 오직 두 사람만 나오는 장면이 영화를 거의 지배했다.

오늘날 대중은 깊이를 소비하지 않는다. 심리적 이성적 마찰이 낮은 경로를 선호한다. 진입 장벽이 높아서는 안 된다. ‘쉽고 단순해야 한다(Easy & Simple)’라는 흥행 원칙은 이것을 정확히 짚어낸 통찰 중의 통찰이다. 왕사남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밋밋하고 단순한 스토리 라인이라는 힐난을 들을 여지도 많다. 밀도가 부족하고 엉성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관객평 중에는 “배우 한 명의 원맨쇼 같다”는 아픈 지적이 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쉽고 단순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단골 흥행 공식인 남녀 간의 로맨스나 자극적인 정사신마저 없애 버렸다. 대규모 비용이 발생하는 화려한 몹 신(Mob scene)도 찾아볼 수 없다. 복잡한 흥행 코드들을 덧붙이는 대신 오직 2인극의 단순함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곁가지를 모두 쳐낸 이 과감한 ‘뺄셈의 승부수’는 오히려 관객의 감정 몰입도를 극대화하며 강렬한 중독성을 빚어냈다. 일단 이 묵직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중독된 관객들은 스스로 자발적인 영화 마케터가 되어 뛰기 시작했고 이는 곧장 폭발적인 N 차 관람 열풍으로 이어졌다.

흥행(興行)은 글자 그대로 마음속에 흥(興)이 일어야 발걸음(行)이 움직이는 법이다. 왕사남은 개봉 직후부터 자발적인 팬덤이 형성됐다. 그래서 입소문도 쉽게 퍼지고 자가 증폭(Self-Reinforcement)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시사회에서 관객들이 감정 자극 요소에 강한 반응을 보이자 곧바로 ‘통곡 상영회’를 개최한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자가 증폭을 대대적으로 자극한 이 기획 이벤트는 흥행 임계점을 돌파하는 데 강력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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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하이 콘셉트(High Concept)’와 25단어의 마법

지금까지 숱한 대중문화의 명멸을 지켜봤지만 흥행의 불변하는 법칙 중 하나는 바로 ‘쉽고 단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한 문장만으로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전체 내용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아이디어여야 한다”는 유명한 ‘하이 콘셉트’ 원칙도 마찬가지다.

단순성의 법칙을 철저한 상업적 논리에 접목해 하나의 산업적 표준으로 정착시킨 곳이 바로 할리우드다. 아무리 서사가 장대하고 예술적 메타포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투자자와 관객에게 이를 단숨에 설명하며 상업적 잠재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거대 자본의 선택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만약 ~한다면?(What if?)’이라는 단 한 문장의 질문만으로 전체 줄거리를 관통하고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마이클 크라이튼의 방대한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그 복잡한 서사를 단숨에 관통하는 강력한 로그라인(Logline, 핵심 콘셉트) 때문이었다. “만약 현대의 과학기술로 호박 속에 갇힌 모기의 피에서 공룡을 복제해 낼 수 있다면?”이라는 영화 ‘쥐라기 공원(Jurassic Park)’을 상징하는 이 한 줄의 질문은 명료했다. 이 직관적인 한 문장만으로도 전 세계 관객들은 머릿속에 시각적인 스펙터클을 떠올리며 맹렬한 호기심과 기대감에 휩싸였다.

한국 영화 역사상 전무후무한 17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 역시 할리우드식 하이 콘셉트 문법을 한국적 서사에 완벽하게 이식한 전형적인 성공 사례다.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의 장엄한 승리.’ 이토록 명쾌하고 선명하며 전형적인 영웅 서사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역사적 지식이 깊든 얕든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열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왕사남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고 명쾌하다. “왕좌에서 쫓겨난 소년 임금 단종과 가장 낮은 곳의 현실주의자 촌장이 만난다면?”이다. 이 단순한 질문에 ‘2인극의 텐션’이 더해지자 관객의 감정은 최대치로 고조됐다. 그 결과 언더도그 서사라는 한계마저 뛰어넘어 16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적을 썼다.

이제 왕사남의 흥행이라는 거대한 현상은 단순한 개별 작품의 성공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한 ‘패자 서사의 예외적 흥행’이 아니라 대중의 엔터테인먼트 소비 방식이 명백한 변곡점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대중이 이 흐름에 동조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여전히 승리와 역전을 향한 자극적인 서사는 강력하게 소비된다. 그러나 주목할 지점은 이제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또 하나의 감정 소비 축이 분명하게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1600만 명이라는 숫자는 그 새로운 축이 주변부가 아니라 시장의 중심부까지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증거다.


‘카타르시스’에서
‘동기화(Synchronization)’의 시대로

과거의 흥행이 승리와 극복을 통해 감정을 폭발시키는 ‘카타르시스의 산업’이었다면 지금의 흥행은 패배와 무력감을 안전한 거리에서 반복 확인하며 정서를 맞춰가는 ‘동기화(Synchronization)의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기화’란 거창한 연대나 뜨거운 공감과는 다르다. 그것은 “우리 함께 이겨내자”는 선언이 아니라 “아, 당신도 나와 비슷한 상태구나”라는 조용한 확인에 가깝다. 낯선 이와 소주잔을 부딪치며 의기투합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밤 포장마차에서 스쳐 지나가는 눈빛 하나로 서로의 피로를 알아보는 감각 정도를 말한다. 스크린 앞의 수많은 관객은 바로 이 낮은 온도의 감정 상태를 서로 맞추기 위해 극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래서 이 흥행은 위로나 치유의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내면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불안과 무력감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종의 감정적 동기화의 폭발로 봐야 한다.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이 이야기를 소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어딘가에서 무너지고 있는 패배의 예감을 타인과 조용히 일치시키기 위해 이 이야기를 선택했다.

이런 동기화는 아무 이야기에서나 발생하진 않는다. 패자 서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정신적 승리’나 ‘도덕적 보상’이 뒷받침돼야 했다. 그러나 단종은 그러한 장치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끝내 복권되지도, 승리하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패자일 뿐이다. “노산, 저것이 아직도 지가 왕인 줄 아는구나!”라는 냉혹한 외침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그 무기력한 소년에게, 그리고 “차갑지요. 나갑시다. 따뜻한 데로 갑시다”라는 투박한 위로에 관객의 감정의 둑이 터져버렸다는 사실은 이제 대중이 더 이상 승리의 환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지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가 일회적 현상이 아님은 이미 다른 장르의 압도적인 흥행 기록이 증명한다. 무려 100만 명 이상의 독자를 위로하며 밀리언셀러 반열에 오른 김호연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보자. 이 작품은 기억을 잃은 노숙자, 만년 취업 준비생, 퇴직의 벼랑 끝에 선 가장 등 정상 궤도에서 밀려난 ‘국외자’들의 교차로를 그렸다. 극 중 인물들은 끝내 극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덜 무너지고, 조금 덜 외로워질 뿐이다. 그럼에도 이 소박한 패자의 이야기가 그토록 거대한 폭발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대중이 더 이상 ‘극복’이 아니라 ‘지속’을 감정의 해소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그 지점에서 독자들은 깊이 반응한다. 이것이 바로 타인의 삶을 통해 나의 실패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태와 너의 상태를 서로 조용히 승인하는 동기화의 경험이다.


엔터산업의 구조적 변곡점:
‘절망의 온도’를 맞추는 기술

결국 이번 흥행 돌풍이 입증하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대중이 더 이상 ‘이기는 이야기’에만 감정을 의탁하지 않는다는 구조적 전환, 다시 말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감정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분화하고 확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향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대중의 결핍을 메우는 ‘대리 만족’의 프레임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고단한 현실과 무력감을 있는 그대로 승인(Validation)하는 영역으로까지 시야를 넓혀야 함을 시사한다.

과거의 흥행이 ‘우리도 저렇게 이길 수 있다’는 찬란한 대리 만족을 팔았다면 지금의 흥행은 ‘우리는 어쩌면 이미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서로 확인하는 장이 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대중문화라는 거울을 통해 희망을 학습하지 않는다. 대신, 그곳에 비친 서로의 모습으로 절망의 온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왕사남의 흥행은 그래서 ‘따뜻한 위로’나 ‘연대의 회복’ 같은 말로 섣불리 정리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묻던 시대에서 ‘이 패배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를 묻는 시대로 넘어가는 엔터 산업의 분명한 전환기이자 변곡점 위에 서 있다. 이 서늘한 동기화의 물결이 기존의 경쟁과 승리의 서사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다만 그것과 나란히 공존하며 또 하나의 강력한 소비 축으로 시장을 재편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 권문혁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필자는 MBC-TV 시사교양PD로 ‘인간시대’‘PD수첩’ 등을 제작하고 기획했다. 편성국 프로그램개발TF팀장, ‘PD수첩’ CP,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강원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대중문화 흥행 비결을 분석하는 개인 연구소 ‘히트 메카닉스’ 대표로 다양한 킬러 콘텐츠 기획을 자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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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백상경baek@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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