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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가 꿈꾸는 미래

“기술이 바꾸는 아름다운 세상 열게요”
예술가들과 손잡은 창의 인재 놀이터

이규열 | 357호 (2022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현대자동차의 창의 인재 플랫폼 ‘제로원’은 오픈이노베이션의 범주를 예술가로까지 확대해 아트-테크-비즈 분야의 크리에이터의 협업을 지원하는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를 운영한다. 예술가와 기업 모두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는 공간이다. 제로원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창작 비용, 공간, 네트워킹을 지원하며 크리에이터들로부터 통찰을 얻는다.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들은 예술계에서도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으며 현대차 내부에서 신사업으로도 연계되고 있다.



2022년 9월30일∼10월3일, 총 4일간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에스팩토리 D동 1∼3층에서 한 전시가 진행됐다. 1층 전시 공간에서 제일 먼저 관객들을 맞이하는 건 다름 아닌 로봇 개 ‘스팟(Spot)’. 스팟은 미래 도시처럼 조성된 공간을 돌아다닌다. 관람객들이 손을 흔들면 스팟도 고객을 숙여 반응하는 등 관람객들과 소통하며 관람객들을 안내한다. 이내 스팟이 한 스크린 앞에 멈춰 섰다. 스크린에는 개 혹은 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맹수들이 등장한다. 스팟은 스크린을 골똘히 바라보며 그 속의 개를 따라 하기도 하고 맹수의 포효에 겁을 먹기도 한다. 이외에도 뉴미디어, 설치, 사운드 아트 등 30개의 작품이 전시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이 전시는 다름 아닌 현대자동차(현대차)가 기획한 ‘2022 제로원데이(2022 ZER01NE Day)’다. 현대차는 2018년부터 오픈이노베이션의 범위를 예술로까지 확대하며 크리에이터들의 협업을 지원하는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ZER01NE Playground)’를 운영하고 있다. 제로원데이는 매년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를 통해 탄생한 결과물을 공개하는 행사다. 지금까지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를 거친 뉴미디어 아티스트, 사운드 아티스트, UI/UX 디자이너 등 크리에이터들만 117여 명, 이들이 수행한 프로젝트는 184개에 달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뉴미디어 아트기관의 초청을 받아 상설 전시를 운영하는 팀도 있다.

현대차가 크리에이터로 규정한 건 비단 예술가, 디자이너들뿐만이 아니다. 엔지니어, 스타트업 등 기술과 산업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크리에이터다. 현대차는 ‘아트(Art)-테크(Tech)-비즈(Biz)’ 분야에서 활약하는 크리에이터들 간의 협업을 지원한다. 협업의 결정체가 ‘ZER01NE.CITY v1.0’이다. 자율주행차와 이로 인해 변화한 사람들의 일상을 뉴미디어 아트 형식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미디어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엔지니어들과 테크 스타트업들이 합심해 탄생했다.

자동차를 만드는 현대차가 어째서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하며 예술적으로 인정받는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를 운영하는 권영진 현대차 책임매니저는 “기술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창의적인 관점을 예술가들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며 “실제 크리에이터들의 프로젝트가 현대차 신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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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인재를 위한 놀이터

제로원은 2018년 현대차의 오픈이노베이션을 위해 탄생한 조직이다. 2016년 이후 우버, 테슬라 등 실리콘밸리의 테크 스타트업들이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었다.1 현대차 내부에는 IT 기술력을 수혈하기 위한 오픈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2017년 4월 ‘창의 놀이터 구축을 위한 사내 태스크포스팀(TFT)’이 꾸려졌고, 이들에게는 창의적인 인재들을 육성하고, 이들과 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회사의 본래 의도는 IT 인재를 중점적으로 포섭할 방법을 강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TFT는 오픈이노베이션의 범위를 확장해 사고했다. 당시 한 자문위원이 TFT에 질문 하나를 던졌다. 어떤 프로그래머가 가장 코딩을 잘할까? 정규 교육 과정으로 코딩을 학습한 프로그래머일까? 자문위원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인문학을 공부한 프로그래머가 ‘재밌게’ 코딩을 잘한다고 답했다. TFT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지향점이 함께 협업할 기술자나 스타트업을 데려오는 데 그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앞서가는 경쟁자와의 격차를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창의적인 비즈니스 솔루션을 제시하기는 부족해 보였다. 대신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창의 인재들이 함께 긍정적인 ‘케미(화학적 결합)’를 일으킬 수 있는 실험과 놀이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TFT는 ‘아트-테크-비즈’라는 오픈이노베이션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예술가 기술자, 스타트업 등을 지원하고 이들이 협업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아이디어를 경영진에게 전달했다. 경영진은 장기적인 가능성을 보고 이를 수용했으며, 2017년 9월 TFT에는 제로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 협업을 위한 공간을 서울 강남구에 마련하는 등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2018년 3월 창의 인재를 위한 놀이터 제로원이 공식 출범했다.

크리에이터들의 협업을 이끌다

제로원이 가장 먼저 크리에이터로 손을 내민 건 예술가들이었다. 아트-테크-비즈 중 현대차와 가장 이질적인 분야와 협업을 우선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8년 20명의 예술가를 크리에이터로 선발했고, 이들과의 협업을 기대하며 현대차가 투자, 육성할 8개의 스타트업을 뽑았다. 이들 예술가, 스타트업에는 작업 및 사무 공간이 지원됐다. 예술가들과 스타트업을 한 공간에 모아 이들이 부대끼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협업의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적극적인 협업이 이뤄지진 않았다. 제로원 내부에 이들의 협업을 어떻게 독려하면 좋을지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고, 스타트업들 또한 예술가들과의 협업보다는 사업 개발, 투자 유치 등 생존을 위한 활동이 급선무였다.

대신 예술가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당시 제로원 구성원들 역시 현대차 내부의 기술자, 마케터, 연구원 등으로 모두 예술에는 문외한이었다. 이들이 예술가들을 보며 깨달은 건 ‘예술가들은 자신들과 정말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제로원 구성원들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최적화된 사고방식을 갖췄다. 반면, 예술가들은 대중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세상의 변화들을 민감하게 포착했다. 패러다임으로 정착한 현상에도 그 이면을 주목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동시에 예술가와 현대차의 고민이 교차하는 지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새로운 관점’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예술가가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듯이 기업 역시 시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찾아내고자 한다. 특히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관심도 일치한다.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은 사람들의 삶을 급격히 바꾸고 있다. 기업과 예술가도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아트-테크-비즈 프레임과 예술가들과의 협업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2019년에는 크리에이터의 범주를 아트에서 테크, 비즈 분야로까지 확대해 25명의 크레이에이터를 선발했다. 투자, 육성할 스타트업들과는 별개로 예술가들과 같은 크리에이터로서 협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기술자, 기업가 등을 뽑았다. 또한 크리에이터들의 역량을 높이고 서로 간의 소통을 촉진하기 위한 교육, 세미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매달 2번씩 모여 각자가 가진 역량을 공유하고, 자신이 바라는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를 나눈다. 이를 통해 서로에게 필요한 역량을 갖춘 크리에이터들이 매칭되기도 하고, 제로원에서 관련 전문가를 현대차 안팎에서 섭외해주기도 한다. 연구 주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외부 연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1년에 3번 각자가 제로원에서 탐구한 내용을 발표하며 프로젝트를 점검한다.

2020년에는 이들 간의 협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인터-유니버설리티(Inter- Univerality)’ ‘유동하는 모빌리티(Liquid Mobility)’ ‘플로팅 스트럭처(Floating Structure)’ ‘멀티 휴머니티(Multi-Humanity)’라는 네 가지 연구 주제를 설정했다. 2021년에는 ‘모빌리티×사용자(Mobility×Player)’ ‘새로운 배움(New Learning)’ ‘미래 모빌리티(Future Mobility)’ ‘초연결(Hyper Connectivity)’ 등 4가지 연구 주제를 도출했고, 올해 2022년에는 ‘미래 모빌리티(Future Mobility)’ ‘초연결(Hyper-Connectivity)’ ‘새로운 기반(New Territory)’ ‘초월적 휴머니즘(Meta Humanity)’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 5가지로 확정했다. 특히 올해 제로원이 선정한 연구 주제들은 현대차의 미래 전략과도 맞닿아 있어 한동안 큰 변화 없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탐구할 예정이다.2

올해 제로원데이에는 크리에이터들의 다양한 협업의 결과물들이 발표됐다. 뉴미디어 아티스트 언해피서킷, 엔지니어 김예진, 설치 예술 및 그래픽 디자이너 서동주,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요요진, 작곡가 이원우는 제로원의 크리에이터 네트워킹 프로그램 ‘테크 길드(Tech Guild)’ 프로그램을 통해 Team NRDDE를 결성했다. Team NRDDE는 제로원 크리에이터들의 연구 모임을 지원하는 R-LAB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NRDDE: NeRDy Defenders for the Earth’라는 작품을 공개했다. “바보들이 지구를 지킨다!”는 유쾌한 메시지를 갖고 현 인류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소한 위험이 무엇인지 고찰하고 해결 방안을 탐구해 영상, 그래픽, 패션 등의 결과물로 선보였다. InterFour(디자이너 강인성•고현진, 기술자 이규호)는 ‘자율주행 안심귀가로봇과 사용자의 인터랙션 및 UX/UI’를 통해 안심 귀갓길 로봇 ‘에그모니’를 공개했다. 에그모니는 사람을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주는 동시에 사람의 반응에 웃고, 생각하고, 슬퍼한다. 이로써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기술과 디자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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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의 범위도 확대됐다. 자율주행기술의 미래 지향점을 보여주는 ‘ZER01NE.CITY v1.0’는 미디어 작가 카로리네 라이즈(Caroline Reize), 작곡가 박승순 등 제로원 크리에이터뿐만이 아니라 현대차 남양연구소 차량유저빌리티개발팀, 제로원 운영진, 미디어 기술 스타트업 뉴툰(Neutune), 애니랙티브(Anyractive) 등이 대거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다.

미디어월에 둘러싸인 자동차에 탑승하면 2035년 미래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도심 외각에 위치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공항에서부터 도심으로 자율주행차를 타고 초고속 이동 및 전기차 충전 인프라 ‘하이퍼웨이’를 이동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AI가 일정을 안내하고 이동하는 동안 탑승자가 즐길 콘텐츠를 제시한다. 자율주행차의 라이다(LiDARs) 센서로 취득한 환경 데이터가 인터랙션 게임과 음악으로 구현돼 이동 경험 자체가 새로운 미디어 콘텐츠로 재탄생한다. 이 작품은 이동수단을 넘어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자율주행차의 미래를 보여준다. 환경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콘텐츠화되는 것 역시 5G, 6G로 대변되는 초연결 시대에 환경-인간-AI가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권 책임매니저는 “미래 모빌리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것이 어떻게 미래를 바꿀지에 대한 고민은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모빌리티의 새로운 역할을 주도해야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며 “현대차에서는 그 역할을 제로원이 크리에이터들의 협업을 통해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제로원도 내부적으로 재정비 과정을 거쳤다. 크리에이터들의 협업을 지원 및 운영하는 프로젝트에는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로원 액셀러레이터(ZER01NE Accelerator)는 기술 및 서비스 분야의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 및 육성하는 데 집중하며, 제로원 컴퍼니빌더(ZER01NE Company Builder)는 현대차그룹의 사내 벤처를 육성한다.

협업의 결실들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아트-테크-비즈 분야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8년 크리에이터로 활동한 미디어 아티스트 양숙현, 시각예술가 최진훈, 디자이너 현박은 ‘서울라이다(Seoul LiDARs)’라는 팀을 꾸려 ‘Volumetric Data Collector’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들은 자율주행차량에서 사물 인식에 사용되는 3D 레이저 센서인 라이다가 장착된 백팩을 메고 인왕산, 청계천 골목 상가, 강남역 주변을 돌아다니며 서울 지역의 클라우드 포인트 데이터3 를 수집했다. 이들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장면 역시 라이다를 통해 360도로 기록되며 이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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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기술이 가진 의도된 기능을 비활성화하고 신체의 확장된 감각 장치처럼 활용함으로써 신체 외부에서 발생한 감각으로 물리적 공간을 규정하는 방식과 이것이 인간의 지각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Volumetric Data Collector’는 오스트리아에 위치한 국제적인 미디어 아트 기관인 아르스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의 2018년 페스티벌에 초청받았으며, 이후 아르스일렉트로니카 센터에 상시 전시되고 있다. 제로원의 결과물이 미디어 아트계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것이다. 모빌리티 업계에는 라이다가 반드시 자동차에 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는 통찰을 건넸다. 가령, 보행자나 배송 로봇 등 자동차가 아닌 이동 주체들이 자동차가 지날 수 없는 도심 곳곳을 다니며 공간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로써 도시 전체의 이동성이 향상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실제 현대차에서 상용화를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있다. 2020년 인공지능 엔지니어인 윤동국 크리에이터는 ‘최신 기술을 사용해 장애인의 이동평등권을 보장할 순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어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이에 영감을 받아 다양성(Diversity)과 보편성(Universality)을 가진 모빌리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현대차가 주도하는 중장기 프로젝트 ‘모두(MoDU, Mobility for Diversity and Universality)’가 시작됐다. 현대차와 스타트업 전기자전거 스타트업 하이코어, 스마트모빌리티 스타트업 튠잇, 서울시립미술관, 분당서울대병원 등이 파트너로 참가했다.

모두가 주목한 건 자율주행 휠체어다. 미술관과 병원은 이동 동선이 길고 복잡한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 자율주행 휠체어가 설비돼 있다면 어떨까. 이동약자들이 동선 걱정 없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휠체어를 이동약자들만 타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실내형 모빌리티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나아가 휠체어는 실내와 실외 모두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모빌리티로도 이해할 수 있다. 자율주행기술의 보편성을 넓히는 의미도 있다. 고가의 자율주행차를 구입하지 않아도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술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모두는 모듈 형식의 자율주행 휠체어를 제작했다. 수동 휠체어에 필요한 기능들을 모듈처럼 탑재할 수 있다. 작고 가벼운 모터와 배터리를 활용해 기존 전동 휠체어의 4분의 1 정도의 가벼운 무게를 자랑한다. 2021년 11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제작된 자율주행 휠체어 프로토타입의 시연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현재 현대차 내에서 상용화와 관련한 사회공헌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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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확장하는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는 아트-테크-비즈를 융합하는 데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애를 썼다. 앞으로의 과제는 지금까지 도전의 결과들을 커리큘럼으로 다듬는 등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프로세스로 정립하는 것이다.

또 다른 과제는 협업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 예술계, 학계, 공공기관, 스타트업과의 협업도 늘려나갈 예정이다.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현재 싱가포르의 스마트팩토리를 거점으로 예비 크리에이터 3인을 선발해 파일럿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싱가포르는 소셜섹터가 강한 국가다. 아트-테크-비즈를 넘어 소셜섹터의 혁신가들을 발굴하고자 한다.

현대차 내부 조직과의 협업도 확대하고자 한다. 최고경영진은 제로원에 지속적으로 “오픈이노베이션 문화를 확산하는 구심점이 돼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남양연구소 연구원들이 참여한 ‘ZER01NE.CITY v1.0’를 시작으로 현대차의 임직원들이 제로원의 크리에이터로 활약할 기회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ZER01NE.CITY v1.0’에 참여한 한 연구원들은 “다양한 관점에 의해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기술의 확장성을 배웠다”고 말했다. 또한 “협업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며 “협업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통해 관점이 변하는 것을 체감했다”고 설명했다.


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DBR mini box: Interview: 권영진 현대차 이노베이션 담당 제로원팀 책임매니저

“나를 공개하고 남을 포용하는 것이 협업의 미학”

권영진 책임매니저는 2004년부터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 상품전략본부를 거쳐 현재 제로원팀에서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를 이끌고 있다. 2017년 제로원 준비를 위한 TFT부터 지금까지 제로원에서 ‘아트-테크-비즈’를 망라하는 협업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했다. DBR가 그에게 현대차가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하는 방법을 물었다.

이번 제로원데이의 반응은 어떠한가.

경계가 묘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떤 작품이 예술가의 것인지, 기술자의 것인지, 스타트업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다소 모험적이었지만 예술과 기술과 비즈니스의 경계를 기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하나로 엮고자 했던 실험적인 시도의 결과다. 크리에이터들 역시 각자의 영역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다음 전시를 제안받은 예술가도 있고, VC에게 투자를 제안받은 엔지니어팀과 스타트업도 있다. 15개 예술 기관, 구글 등 테크 기업, 카이스트 등 학계 관계자가 여럿 방문했다. 제로원과의 협업을 문의하거나 벤치마킹을 위해 직접적으로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의 프로세스를 묻는 이들도 있었다.

운영진 가운데 예술 전공자가 없다고 들었다.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준비하기 위해 초기엔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다. 소통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함께 탐구할 주제와 지향점을 찾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외부 전문가를 들이기보다는 내부에서 퍼실리테이션 역량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직접 부딪히며 겪는 충돌과 화합은 필수적인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 과정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융합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도출해내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제로원 크리에이터들에 대한 기준도 세워졌고 협업의 노하우도 생겼다.

크리에이터를 선발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독창적인 관점을 지녀야 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이 명확해야 한다. 끝으로 협업에 대한 태도가 열려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을 공개하고 남이 가진 것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심사 과정에서 학력, 성별, 나이 등은 블라인드 처리된다. 그러다 보니 정말 다양한 출신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인다. 기술을 새롭게 활용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은 화이트 해커 출신 크리에이터도 있고, 미디어아트계에서 잘 알려진 중견 작가, 교수들도 있다.

소위 ‘돈 쓰는 프로젝트’이다. 내부에 반대의 목소리는 없었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예산을 쓰는 만큼 그에 대한 결과물을 궁금해하는 건 기업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 프로젝트를 외적으로 알리는 데 더 힘써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오히려 최고경영진에서 제로원의 취지에 크게 공감하며 제로원에 일관된 메시지를 보낸다. 처음 제로원이 생길 때 “누군가 제로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제로원이라고 답하라”고 했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정으로 넓으니 한계를 정하지 말고 자유롭게 탐구하라는 것이었다. 이번 제로원데이가 끝난 이후에도 “대중에게 보이는 형식과 규모보다 진정성 있게 협업을 주도하는 일에 집중해라”라고 말했다. 최고경영진의 일관된 의지와 믿음이 있기에 지속될 수 있는 프로젝트이며, 그로 인한 실험의 성과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는 단계다.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를 겪은 크리에이터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는 이름처럼 기술을 장난감으로 삼는 놀이터를 표방한다. 놀이터는 단순히 노는 공간을 넘어 여러 장애물에 도전하고 함께 노는 규칙을 배우는 공간이다. 예술가들은 평소 궁금했던 기술을 실제 접하는 계기를 갖고, 기술자들은 자신의 기술이 세상에 어떻게 스토리텔링될 수 있을지 배운다. 제로원이 창작을 위한 비용과 공간도 지원해주지만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남긴 피드백은 ‘네트워킹을 통해 작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기반을 쌓은 점이 좋았다’는 것이다. 기술자들은 늘 연구실에서만 고민하던 자신의 연구를 대중에게 선보이고, 다른 창작자들에게 또 다른 영감을 주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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