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엽편 소설: 우리가 만날 세계

월 2000달러짜리 ‘마인드 컨트롤’

345호 (2022년 05월 Issue 2)


편집자주

올해 데뷔한 신예인 이경 작가가 SF 엽편소설을 연재합니다. SF 장르의 인기는 인공지능, 로봇과학과 같은 과학기술이 바꿀 미래에 대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보여주는 문화적 트렌드입니다. ‘콩트(conte)’라고도 불리는 엽편소설은 ‘나뭇잎 한 장’에 비유할 정도로 아주 짧은 분량에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문학 양식입니다. 짧은 스토리를 읽으면서 작가의 SF적 상상력을 따라가는 동시에 신선한 영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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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지은 씨. 하루 이틀 일해요?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착 가라앉은 이수민 팀장의 목소리가 파티션을 넘자 온 사무실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부산해진 키보드 타자 소리와 함께 사내 메신저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뭐야뭐야뭐야? 왜 저래요?] AM 10:23

[아 지가 시켜놓고 딴소리야~ 저 지랄도 하루 이틀이냐 진짜] AM 10:23

[와 왜 일을 이렇게 꼬아서 하냐는데 저게 할 소립니까 막말로 자기 똥은 누가 다 치워줬는데] AM 10:24

벼르던 건수를 잡은 기쁨에 단체 대화창은 팀장 뒷담화로 와르르 터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하영은 거기 끼는 대신 지은과의 개인 대화창을 열었다.

[에휴… 너무 신경쓰지마. 이따 타르트나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AM 10:26

메시지를 전송한 순간, 팀장이 뭔가를 팍 신경질적으로 책상에 내려놓는 소리가 이 사태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하영은 재빨리 대화창을 닫은 다음, 마우스를 전광석화처럼 클릭한 다른 팀원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척했다. 너무 집중력이 높아 주위의 소음이 차단된 나머지 지금 나와 내 일 사이에서 일어난 일 외의 다른 일, 예를 들면 팀장이 일부러 본보기를 보이듯 지은을 제 자리에 불러다 세워놓고 큰소리로 질책한 일 따위는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이.

지은이 터덜터덜 지친 걸음으로 돌아와 자리에 풀썩 앉았다. 그리고 두 팔을 책상 위에 올리더니 몸을 깊이 숙이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떡해.. 지은이 우나봐..] AM 10:34

잠시 얼었던 단체 대화창에 조심스러운 추측이 올라옴과 동시에,

[아싸 저 구럼 젤 비싼 거요 희희:)] AM 10:34

지은이 보낸 답이 하영의 개인 대화창에 떴다. 하영은 얼떨떨하게 그 창을 바라보았다.

방금 신명 나게 깨진 사람치고는… 좀 밝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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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레몬버터타르트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그러니까, 월요일 오전부터 남들 다 보는 데서 팀장한테 개박살 난 사람에게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행복한 얼굴로 말이다.

“언니 이거 한 입 먹어봐요, 완전 맛있어요!”

하영은 지은이 내미는 플레이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은아, 너 요즘 뭐 해?”

“네?”

지은은 하영 앞에 놓인 몽블랑까지 크게 잘라 한 조각을 입에 쏙 넣었다. 그리고 또 그,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명상? 요가? 킥복싱? 아니면, 발레?”

“아 뭐야, 그런 거 안 해요.”

“그럼 뭐, 담배 펴? 냄새 안 나는데.”

하영의 계속되는 헛다리에 지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 언니. 나 진짜 이럴 때마다 언니랑 세대 차이 느껴지는데.”

“그럼 뭔데. 지난번에 깨졌을 땐 죽상이 돼서 며칠을 우울하게 돌아다니더니, 이번엔 왜 멀쩡해. 왜 행복한 건데?”

“알려줄까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지은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킨 후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하영에게 보여준 것이 파란 바탕에 흰색 선글라스가 그려진 앱, ‘MindControl’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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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00달러?!”

깜짝 놀란 하영이 꽥 소리를 지르다 제풀에 놀라 입을 가렸다.

“너무 비싼 거 아니야?”

“그쵸? 비싸 보이죠? 그런데 해보면 하나도 안 비싸요, 언니. 효과가 너무 좋아. 제 최애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한국말 하는 게 처음엔 좀 어색할 순 있는데, 보다 보면 금방 적응돼요. 얼굴도 목소리도 똑같고, 위화감도 안 들어요. 참 요즘 기술 좋아…. 그냥 아, 인성 글러먹은 셜록과 일하는 게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면 몰입도 잘되고.”

“와… 많네. 이게 다 구독 가능한 연예인들이야?”

“응. 이거 근데 안경을 계속 끼고 있어야 해. 음성은 골전도 형식으로 전해지는 거래요. 구독하면 보내줘요. 취소하면 회수하고.”

아, 그러고 보니 지은의 안경이 며칠 전부터 바뀌어 있긴 했다. 하영은 지은이 쓰고 있는 얇은 은테 안경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보통 안경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안경이다.

“그래도 비싸긴 비싸다……. 목소리까지 하면 700달러나 되잖아.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하영이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지은은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타르트로 주의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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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회사는 다녀야 할 거 아냐… 내가 여길 어떻게 들어와서 어떻게 버텼는데. 스트레스로 카운셀링 다니다 자진 퇴사하는 것보단 싸게 먹힐 걸요. 한 달만 더 하고 끊어보려고. 그때까지 마인드 컨트롤 열심히 해야지.”

“그래, 네 마음이 편하면 됐지 뭐.”

그리고 스크롤을 내리며 구독 가능한 연예인 목록을 살펴보던 하영을 향해 지은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너무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하면 안 되겠더라. 팀장 때문에 그 사람까지 싫어지더라고. 언니도 해볼 거면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으로 고르는 게 나을 거예요.”

 3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나가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은 이수민 팀장은 안경을 벗고 콧잔등을 주물렀다. 평생을 2.0 시력으로 살아온 이수민 팀장은 종일 안경에 눌리는 콧잔등이 이렇게 시큰거리는 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도대체가 큰 그림을 보질 못하는 팀원들의 맹한 얼굴에 대고 매일 소 귀에 경 읽는 대가로 위염이 또 더치느니 콧잔등 좀 시큰거리고 마는 편이 낫다고 이수민 팀장은 생각했다.

2000달러. 이수민 팀장이 MindControl에 매월 지불하는 금액이다. 그는 ‘일 년 정기 플랜 결제 시 5인당 1인 무료’ 옵션을 이용해 팀원 여섯 명의 얼굴을 시트콤 프렌즈의 여섯 배우의 얼굴로 구독하고 있다. 팀장급 업무 추진 경비 한도 때문에 목소리까지 구독하지 못하는 게 통한일 따름이다. 아무래도 목소리가 그대로다 보니 마인드를 단단히 컨트롤하고 팀원들과 효율적으로 소통하려 해도 듣다 보면 갑갑하다 못해 속 터지기가 부지기수다.

아까만 해도 그렇다. 이수민 팀장은 일부러 가장 똑 부러지는 모니카의 얼굴을 지은에게 배정해놓았다. 쟤도 원래는 모니카처럼 똘똘한 구석이 있는 애다, 그 사실을 계속 상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똑 부러지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매가리 하나 없는 목소리로 주워섬기는 변명을 잠자코 듣고 있노라면 마인드 컨트롤이고 뭐고 짜증이 불쑥 치솟고 만다.

이수민 팀장은 한숨을 쉬고 눅눅해진 갈색 종이봉투 안에서 햄버거를 꺼냈다. 요즘 따라 다들 무슨 약이라도 먹었나 하나같이 아둔하게 구는 모양이 빡쳐서 같이 식사를 하기도 꺼려졌다. 밥이라도 마음 편히 먹어야지 않겠는가.

‘이제 프렌즈도 질리네. 슬슬 바꿔볼까.’

차게 식은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으며 이수민 팀장은 구독 가능 리스트의 스크롤을 천천히 내렸다. 그가 종이봉투 옆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VR 안경 렌즈에서 아지랑이 같은 빛이 피었다.


이경 소설가 plumkr@daum.net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고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로 2022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가작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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