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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우리’와 ‘창작’이 만났을 때

김현진 | 346호 (2022년 06월 Issue 1)

“The New World of Work.”

세계 최대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가 표방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개인 창작자들이 만드는 콘텐츠 생태계)’의 비전이자 방향입니다. 에밋 시어 트위치 CEO는 최근 HBR(하버드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에이터 경제는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경제의 화두였던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단기 계약 기반의 임시직 경제)’와는 또 다른 양상의 새로운 큰 물결이 될 것이라 강조했습니다. “긱 이코노미에서는 노동을 제공하는 개인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았고 ‘나(I)’의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대엔 같은 취향을 가진 집단, 즉 ‘우리(we)’라는 동질감과 연대감이 중요하다.”

실제로 크리스마스와 같이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큰 명절 직후, 트위치 사용자 수가 급증하는데 이는 ‘연결’이란 정서적 감정을 온라인에서도 이어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시어 CEO의 분석입니다.

연결감이 결핍됐던 팬데믹 기간에도 이런 이유로 다양한 소셜 공간에서 같은 취미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크리에이터들의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한류 콘텐츠를 접하는 K팝, K드라마 팬들에게는 특히 낯익은 미국의 팬십(fanship) 후원 플랫폼 ‘패트리온’ 역시 팬데믹 시기, 창작자와 구독자가 모두 급증했습니다. 기업 가치는 2020년 9월 12억 달러(약 1조5120억 원)에서 지난해 4월 40억 달러(약 5조390억 원)로 7개월 사이 3배 이상 껑충 뛰기도 했습니다. 패트리온은 플랫폼들이 주요 수익 모델로 삼는 조회 수나 광고 대신 팬들이 직접 크리에이터들에게 제작비를 후원하는 유료 구독 형태의 수익 모델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K팝 팬덤처럼 결속감이 큰 소비자는 ‘독점 콘텐츠’를 원하고 창작자들 역시 유튜브와 달리 운영만으로도 돈이 되는 이 모델을 선호하면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트위치나 패트리온 모두 기존 플랫폼 대비, 플랫폼 자체의 힘보다는 이곳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델의 부상은 크리에이터와 플랫폼 간 역학 관계가 급변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실 지난해 문화계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던 ‘오징어게임’은 세계 최고의 흥행작이 됐는데도 인센티브 등 금전적 혜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는 이 작품의 저작권이 유통 플랫폼인 넷플릭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플랫폼의 파워가 크리에이터보다 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대 강자 넷플릭스마저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후 주가가 40% 이상 폭락하는 등 풍파를 맞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대형 콘텐츠 플랫폼이 주도했던 헤게모니의 변화’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넷플릭스는 주로 소유권과 저작권 일체를 자신들이 갖고 유통하는 방식을, 유튜브도 광고비 일부를 제외하곤 프리미엄 서비스 가입비 등의 수익은 나누지 않는 제한적인 방식을 구사했기에 크리에이터들이 수익을 거두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콘텐츠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지고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와 메타버스 등 기술의 발전으로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콘텐츠를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장이 생겨나면서 판도가 달라진 겁니다. 먼저 크리에이터들의 몸값이 높아지면서 ‘크리에이터 우선’ 정책을 전면에 내건 새로운 플랫폼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기사 작성자에게 독자들이 지불한 사이트 가입비의 90%를 지급하는 미국의 뉴스 사이트 ‘서브스택’, 거래 수익의 70%를 크리에이터에게 배분하는 국내 저작권 콘텐츠 거래 플랫폼 ‘OGQ’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앞으로의 주력 소비 세대가 어려서부터 창작에 익숙한 ‘본 크리에이터(born creator)’라는 점도 이 시장의 잠재력을 짐작케 합니다. 크리에이터를 ‘부캐’로서 선호하는 Z세대에 이어 등장한 알파세대(2010년 이후 출생)는 로블록스와 제페토에서 게임과 각종 아이템을 생산, 거래하는 ‘메타버스 속 인생’에 이미 익숙합니다.

크리에이터가 주로 명성과 자기만족으로 보상을 받던 ‘열정 페이’의 시대에서 기술을 바탕으로 보다 주체적으로 콘텐츠를 생산, 유통하는 생산자 우위의 시대로 접어든다는 것은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생길 수 있음을 예고합니다. 엔데믹, 기술, 다양성, 취향 등의 키워드가 어우러져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이러한 키워드를 관통하는 입체적인 대응 전략을 모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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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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