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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샤테크와 슈테크의 미래

김현진 | 326호 (2021년 08월 Issue 1)
유학생이었던 15년 전. 프랑스 파리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벼룩시장, 브로캉트(brocante)는 나름의 주말 힐링 코스였습니다. 이곳에선 손때 묻은 은식기며 새침한 표정의 도자기 인형, 바로크 스타일의 거울과 가구까지 다양한 중고 제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브로캉트를 찾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두 가지 가치는 요즘의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즉 ‘새 제품보다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기회’(가성비 소비)와 ‘이곳에서 산 중고 제품을 새 제품보다 비싼 가격에 다시 팔 수 있는 기회’(리세일을 통한 투자)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 샀다면 10만 원 이상 썼어야 할 리모주산 유명 브랜드 찻잔 세트를 흥정 끝에 단돈 5유로에 구입하는 등 ‘득템’ 재미에 빠졌습니다. 또 브로캉트에서 우연히 구입한 그림 한 점이 알고 보니 피카소 판화 작품이어서 재판매를 통해 대박을 맞았다는 금손 유학생의 전설을 내심 부러워했던 기억도 납니다.

가성비냐 투자냐. 중요도에 대한 비중 차이는 있겠지만 중고 시장이 그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아닌 재테크의 기회까지 될 수 있다는 점은 사람들을 리세일 플랫폼에 모이게 하는 강한 동인이 됩니다. 매장이 열리자마자 달려간다는 의미로 ‘오픈 런’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샤테크(샤넬+재테크)족과 한정판 운동화가 나올 때마다 이 제품을 손에 넣기 위해 밤새워 긴 줄을 서는 슈테크(슈즈+재테크)족의 열풍에는 리세일 비즈니스의 ‘3박자’인 희소성, 인기, 시간차가 맞물려 있습니다. 사고 되팔기까지의 시간 사이에 새로운 부가가치가 더해지면 리세일은 취미를 넘어 비즈니스가 됩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중고 및 리세일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확대된 것은 온라인을 통한 거래에 한층 익숙해진 중장년층이 대거 유입된 덕분입니다. 또한 원래부터 이 시장의 성장세를 주도해 온 MZ세대는 중고 거래를 더욱더,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즐기게 됐습니다. 이에 더해 이들 세대는 중고 거래 자체가 트렌디할 뿐만 아니라 친환경적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중고 패션 시장만 봐도 『의식 있는 옷장(The conscious Closet)』의 저자 엘리자베스 클라인의 말처럼 “기존 패스트패션의 옷 바꿔 입기 재미를 유지하면서 막대한 의류 쓰레기를 양산하지 않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로 인식됩니다. 이처럼 중고 거래가 지속가능성과 순환경제 등 시대적 가치에 부합하는 소비 행위로 받아들여지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많은 통계 자료가 시장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2018년 200만 명 수준이던 국내 모바일 중고 거래 이용자는 2020년 6월 기준 1090만 명으로 5배 이상 늘었습니다(닐슨코리아클릭). 글로벌 중고 시장 역시 올해 360억 달러(약 40조 원) 규모에서 5년 내에 770억 달러로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글로벌데이터).

중고 거래 전문 플랫폼뿐 아니라 신제품을 생산, 거래하는 일반 브랜드 또는 유통업체 역시 중고 시장을 관심의 대상을 넘어 관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 2020년 BCG와 베스티에르 컬렉티브의 공동 조사 결과 소비자의 62%는 중고 거래 사업자와 협력하는 패션 브랜드에 대한 구매 의사가 그렇지 않은 브랜드 제품의 구매 의사보다 높다고 답했습니다. 또 중고 소비자의 48%는 중고 거래를 통해 특정 브랜드를 처음 접하게 됐다고 답했고, 이들 중 거의 전부가 이 브랜드 신제품에 대한 구매 의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고 판매자 중 31%는 중고 제품을 팔고 손에 쥔 돈으로 신상을 사는 소비자로 ‘환생’했습니다. 중고 거래 활성화가 신제품 판매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제품 구매 경험과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기존 브랜드 입장에서도 중고 및 리세일 시장은 경계 대상이 아닌 통합 또는 협업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이에 이미 해외에선 중고 판매 통로를 자체 플랫폼에 통합하고 중고 전문 플랫폼과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는 이처럼 코로나 시대가 가속화시킨 전 세계적, 신인류적 현상인 중고 및 리세일 시장을 조망했습니다. 흔히들 벼룩시장을 ‘숨은 보석 찾기’에 비유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물건의 순환’이 빚는 중고 생태계에서 금맥을 캐는 기회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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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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