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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Interview: 원신보 블랙록 투자 스튜어드십팀 본부장

“ESG 리스크 관리의 핵심은 거버넌스
기후변화 문제, 사외이사들이 관심 가져야”

이방실 | 308호 (2020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블랙록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통합 방식

투자 모델과 투자 전략에 반드시 ESG 요인을 분석하고 관련 리스크를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대원칙만 있을 뿐 수많은 투자팀이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반영.

블랙록의 기업에 대한 주요 요청 사항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CFD) 권고안과 지속가능성 회계기준 위원회(SASB) 프레임워크에 따른 공시 강화. 단, 기후변화를 포함한 지속가능성 관련 이슈들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정보를 공개하는 수준에서 그쳐선 안 됨. 반드시 기업의 장기 전략에 통합돼야 하며 경영 전략을 승인해 주는 이사회에서 책임을 갖고 다뤄야 함.



‘월가(Wall Street)의 제왕’이라 불리는 블랙록(BlackRock)의 운용자산(AUM)은 약 7조8000억 달러(2020년 9월 말 기준)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비춰봤을 때 블랙록의 AUM보다 더 큰 곳은 전 세계에서 미국과 중국밖에 없다. 우리나라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AUM과 비교해도 10배가 넘는다. 그만큼 블랙록이 세계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래리 핑크 회장이 매년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국내외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이유다.

핑크 회장은 올해 초 연례 서한을 통해 향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투자의 핵심에 놓고 기후 리스크를 반영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블랙록은 석탄 발전 비중이 전체 매출액의 25%가 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액티브 투자 1 자산에 국한된 이야기긴 했지만 세계 최대의 석탄 산업 투자자 2 인 블랙록의 ‘탈(脫)석탄’ 방침은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속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운 블랙록은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 스튜어드십(Investment Stewardship)팀을 운영하며 투자 기업들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투자 스튜어드십팀이 지난 1년간3 수행한 주주 관여 활동(engagement)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논의 주제 중 환경(E) 관련 토픽이 316건에서 126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99%가 늘었고, 사회(S) 관련 토픽도 353건에서 965건으로 173%나 증가했다.

DBR가 블랙록 투자 스튜어드십팀에서 일본과 호주를 제외한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고 있는 원신보 본부장을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근무하고 있는 원 본부장은 2017년 블랙록에 합류하기 전엔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회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에서 아시아 리서치 헤드로 근무한 경력도 갖고 있다.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후 국내 통신사와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에서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IR) 업무를 10년 넘게 담당했던 그는 “지배구조 이슈로 인한 한국 기업의 고질적 저평가 문제는 IR의 영역을 초월한 구조적인 문제라고 판단해 커리어를 바꿨다”며 “책임 있는 투자자로서 기업들에 건전한 지배구조가 정착될 수 있도록 유도해 투자자(주주)와 기업 모두를 위한 이익 창출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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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록의 지속가능 투자(sustainable investing)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업계에서 내린 지속가능 투자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혼재돼 있지만 블랙록에선 고객 수요에 맞춰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지속가능 투자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스크리닝(screening), ESG 통합, 임팩트 투자다. 우선, 특정 기업이나 산업군을 배제(negative screening)하는 스크리닝 방식 투자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인권 문제가 있는 회사나 대량 살상 무기 제조 업체, 술•마약•도박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는 원치 않는다는 몇몇 고객사(연기금, 종교재단 등)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출발했다고 보면 된다. 물론 당시엔 지속가능이란 용어를 드러내놓고 쓰진 않았지만 투자 철학상 지속가능 투자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런 스크리닝 방식에서 진일보해 최근 비재무적 정보, 즉 전통적인 투자에선 고려하지 않았던 ESG 요인을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ESG 요인과 기업의 장기 리스크 조정 수익률 간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블랙록은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기업 ESG 요인을 고려한 포트폴리오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성과가 더 좋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일례로, 2012년부터 2018년 사이 과거 주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ESG 요인을 고려한 인덱스가 일반 인덱스 대비 동일하거나 더 우월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블랙록은 앞으로 모든 투자팀의 투자 프로세스에 ESG 요소들을 통합시키고, 오는 2030년까지 지속가능 자산을 1조 달러까지 키운다는 목표다.4

마지막 임팩트 투자 방식은 재무적 측면의 수익도 중요하지만 환경이나 사회, 혹은 UN 지속가능개발목표(UN SDGs) 목적에 따라 측정 가능한 긍정적인 결과를 원하는 고객 요구를 반영한 투자 포트폴리오다. 가령,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만 집중한다거나 그린본드에 투자하는 식이다.

블랙록은 ESG 요인과 기업 수익률 간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지만 반대 시각도 존재한다. 최근 지속가능 펀드 실적이 좋았던 이유도 여기에 편입돼 있던 거대 기술 기업의 실적이 코로나19로 급격히 늘어난 재택근무와 디지털 전환 수요에 힘입어 선전했기 때문이지 ESG 요인 때문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모든 ESG 관련 투자 상품이 나스닥에 상장된 빅테크 기업 중심으로만 구성돼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화해 말하기는 어렵다. ESG와 장기 수익률 간 연관 관계를 부인하는 시각이 시장에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트렌드는 ESG 요인이 기업의 장기 수익률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올해 2∼3월 전 세계적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하며 기존 투자 상품에서 굉장히 많은 자금이 이탈했지만 ESG 관련 펀드로는 되레 엄청난 자금이 유입됐다. ESG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연기금, 기관투자가 등 그 많은 자산 보유자가 왜 이런 의사결정을 내렸겠나. 블랙록을 비롯한 많은 투자자가 ESG와 기업의 장기 수익성 간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이유다.

사실 ESG 요인이 수익률 제고에 기여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코로나19 이전 과거 10년간 주식시장이 굉장히 좋았을 때도 그랬다. 당시 ESG 펀드가 양호한 수익률을 달성한 것을 놓고도 업계에선 ‘전반적으로 장이 좋아서 나온 결과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ESG에 신념을 갖고 있던 이들은 ESG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건 시장 침체기가 도래했을 때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들의 가설은 유례없는 팬데믹을 겪으며 입증됐다는 게 많은 이들이 내린 결론이다.

블랙록은 투자 프로세스에 ESG 요인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

흔히 블랙록 내부적으로 ESG를 투자 전략이나 상품에 담아내는 획일화된 방법론이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주식, 채권, 부동산, 현금 등 모든 자산군과 액티브 투자, 패시브 투자5 등 다양한 전략을 다루고 있는 수많은 투자팀이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ESG 요인을 투자 프로세스에 반영한다. 큰 틀에서 ‘모든 팀은 투자 모델을 만들고 투자 전략을 구사할 때 반드시 ESG 요인을 분석하고 관련 리스크를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대원칙만 있을 뿐 전사 차원에서 단일화된 방법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ESG 평가를 위해선 내외부적으로 다양한 자원을 활용한다. 블랙록 애널리스트들이 자체적으로 리서치를 하는 건 물론이고, MSCI나 서스테이널리틱스(Sustainalytics) 등이 내놓은 ESG 평가등급, 렙리스크(RepRisk)가 분석한 ESG 리스크 데이터 등 다양한 외부 데이터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아마 업계에서 블랙록만큼 다양한 제3자 리서치를 활용하는 기업도 없을 것이다.

자체 분석이든, 외부 리서치든 모든 데이터는 블랙록의 리스크 관리 및 투자 테크놀로지 플랫폼인 알라딘(Aladdin)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한다. 가령, 투자 스튜어드십팀에서 주주 관여 활동의 일환으로 어떤 회사와 미팅을 한 후 리서치 노트를 작성하면 통합 플랫폼인 알라딘을 통해 전 세계 모든 투자팀에 공유되는 식이다. 이렇게 축적된 ESG 관련 데이터와 인사이트는 팀별로 고객 요구와 전략에 맞춰 다양하게 활용된다.

동일한 회사에 대해 ESG 전문 평가기관이 내놓는 ESG 등급이 서로 달라 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가령, MSCI는 테슬라의 ESG 등급을 최상위로 평가하지만 서스테이널리틱스는 중간 수준, FTSE는 최하위로 평가했다.6

같은 회사에 대한 평가 등급이 달라지는 이유는 아직까지 표준화된 ESG 정의와 측정 방법이 존재하지 않고 기관마다 평가 방법론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관별 평가 방법론까지 이해하고 ESG 점수를 해석하면 그렇게 문제가 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령, 내연기관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전기차 업체들도 환경적 영향에 대한 공시 수준이나 지배구조는 회사마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평가기관이 어떤 지표를 좀 더 중시하고, 어떻게 가중치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같은 회사라도 ESG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오히려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같은 기관에서 내놓는 평가 결과도 기업의 ESG 정보 공개 수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미국이나 유럽 기업처럼 ESG 정보 공시가 잘 이뤄지고 있는 회사에 대한 평가기관의 분석은 그렇지 않은 아시아 개발도상국 내 기업에 대한 분석보다 훨씬 정교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이 ESG 정보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만큼 평가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여러 제약이 있어도 나름의 방법론을 만들어 ESG 수준을 평가하려는 쪽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 원천적으로 ESG 정보가 공개되고 있지 않는 상황을 탓해야 하는 건지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참고로 현재 블랙록에선 자체적으로 다양한 ESG 평가 툴을 개발하는 중이다. ESG 평가기관이 내놓는 결과물을 신뢰할 수 없다거나 어떤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블랙록 고객의 니즈에 최적화된 툴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구조화돼 있지 않은 빅데이터를 AI와 머신러닝을 활용해 연관 관계를 찾아내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탄소베타(Carbon Beta)라는 고유한 측정 도구를 개발해 탄소세, 배출권 거래제 등 탄소가격제 도입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시나리오별로 적용했다. 지난 4월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파트너십을 맺고 그간 자체 데이터센터에서 관리했던 알라딘을 MS의 클라우드인 애저(Azure)로 옮기는 결정을 내렸고, 5월엔 에너지•기후 관련 독립 연구기관인 로디움그룹(Rhodium Group)과도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첨단 기술 기업과 전문 연구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블랙록의 알라딘 플랫폼과 재무 모델링 역량을 더욱 고도화시킴으로써 전 세계에 걸쳐 있는 다양한 자산군에 대한 분석 역량을 더욱 정교화한다는 목표다.

올해 초 투자 포트폴리오를 기후변화를 고려해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간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설명해 달라.

기후변화 문제는 현재 지속가능 투자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가장 큰 화두다. 지구상에 있는 인류 전체가 영향을 받는 범국가적 이슈로, 기후변화 문제가 정말 현재 과학자들이 예견하는 그대로 진행된다면 지금 우리가 지속가능 투자를 아무리 정교하게 한다 해도 모든 노력이 의미가 없어질 만큼 중대한 리스크다.

블랙록은 기후변화 위기에서 가장 큰 위협이 될 종목을 발전용 석탄(thermal coal, 열탄)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석탄 발전이 전체 매출에서 25%가 넘는 기업에 대해서는 주식이든 채권이든 상관없이 블랙록의 액티브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매각하겠다고 공표했다. 블랙록의 AUM이 워낙 큰데다 그간의 커뮤니케이션 기조에 비춰봤을 때 다소 강경한 입장이었기에 시장에서 반향이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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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블랙록은 올 들어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돼 있는 기업 중 자사 사업 모델에 기후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거나 관련 공시를 소홀히 한 회사 244곳을 공개했다. 그리고 이 중 53개 기업7 에 대해선 지난 상반기 주총 시즌 때 △이사 재선임에 반대8 하거나 △이사의 책임 면제에 반대표9 를 던지거나 △기후 관련 주주 제안에 찬성10 했다. 53개 기업 외 나머지 191개 기업은 ‘예의 주시(on watch)’할 기업으로 구분해 놓은 상태다. 내년 주총 전까지 이들 기업이 기후 리스크 공시나 관리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이지 못할 경우 올해 했던 것과 같은 선상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주주 관여 활동 시 논의 주제를 보니 지난 1년 새 환경 관련 토픽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기후변화를 장기적으로 가장 큰 재무적 위험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년부터 환경 관련 이슈를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환경 관련 주제만 따로 떨어뜨려 놓고 논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를 위해 어떤 거버넌스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는 맥락하에서 질의가 이뤄진다. 혹자들은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가 개별적으로 독립해 존재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게 지배구조 문제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거버넌스는 ESG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근본 요소다.

한국에선 거버넌스란 용어를 지배구조라고 번역해 사용하다 보니 마치 기업을 통제하고 장악하는 컨트롤(control) 개념으로 생각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본래 거버넌스란 의사결정이 어떤 구조하에 어떻게 이뤄지고 있느냐와 관련된 개념이다. 기업에는 매일의 회사 업무를 운영하는 경영진이 있다. 이들을 돕고 감독하며 견제하기 위해 만드는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가 이사회고, 이사의 선임과 해임은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이런 구조로 거버넌스를 만드는 이유는 경영진이 ‘특정’ 주주나 이해관계자에게 편향되지 않고 ‘전체’ 주주를 위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따라서 이사회는 모든 의사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주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기업 이사회의 이사, 특히 사외이사들과 기후변화 이슈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기후 리스크에 대해 주주들에게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드문 게 현실이다. 대부분 기업에서 기후변화 이슈를 단순히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정보를 공개하는 수준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를 포함한 지속가능성 관련 이슈들은 기업의 장기 전략에 반드시 통합돼 고려돼야 하는 문제고, 따라서 경영 전략을 승인해 주는 이사회에서 책임을 갖고 다뤄야 한다. 이 점을 한국 기업들이 반드시 인식하길 바란다.

여담이지만 한국 기업이 실제 가치보다 30% 정도 저평가되고 있는 주된 이유도 거버넌스 리스크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 순위는 훌륭한 기업들이 많이 상장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시아 최하위권이다. 기업들이 전체 시장 안에서 적정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게 하는 일은 해당 기업을 떠나 국가 차원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 한국 주식시장의 절반은 국내 자금이고, 국민연금도 전체 자산의 20%가량11 을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데, 여기에 상장된 기업들이 저평가돼 있다는 건 그 피해가 국민연금이나 국내 기관에 돈을 맡긴 우리 국민들에게 전가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석탄 발전 투자 철회 선언이 블랙록 전체 AUM의 27%(2019년 기준)에 불과한 액티브 포트폴리오 자산에만 국한돼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블랙록은 액티브와 패시브 전략 모두를 다 구사하지만 전통적으로 ETF, 인덱스펀드 등 패시브 투자 비중이 높다. 주식을 사고파는 게 자유로운 액티브 투자와 달리 패시브 투자는 기본적으로 추종해야 할 벤치마크 인덱스가 있기 때문에 종목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달리 생각해 보면 기업 입장에선 블랙록이 거의 반영구적인 주주, 장기 투자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사실 기업에 ESG 측면의 개선 요구를 했을 때 당장 변화가 없다고 해서 그냥 주식을 팔고 나가는 투자자들은 어떻게 보면 기업 입장에선 가장 ‘덜’ 부담스러운 투자자라 할 수 있다. 올해에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해서 관련 문제를 지적하며 끊임없이 개선 요구를 하는 장기 투자자가 가장 부담되기 마련이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실제 블랙록이 투자한 한 기업의 임원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 임원은 ‘다른 어떤 주주(투자자)보다 블랙록과의 미팅 때 제일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그 이유로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블랙록이 끈질기게 문제를 지적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런 점이 장기 투자자로서 블랙록이 갖는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블랙록은 패시브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돼 있는 기업들에 대해 앞으로도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주주 관여 활동을 통해 기업들이 기후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기후 리스크 관리를 위해 기업들에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를 하고 있나?

기후변화를 비롯한 ESG 이슈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국 재무적인 비용으로 나타나고, 이는 곧 수익률과 직결된다. 따라서 기업들이 이런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관리해 주길 바라는 차원에서 모든 기업에 크게 두 가지를 요청하고 있다.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CFD) 권고안과 지속가능성 회계기준 위원회(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 SASB) 프레임워크에 따른 공시 강화다.

많은 기업이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해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물론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각각의 이해관계자가 기업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정보는 그 종류나 질 측면에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A라는 기업이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지역사회에 얼마나 기부를 하고, 어떤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는지와 관련된 내용은 지역사회 이해관계자들에겐 굉장히 가치 있는 정보다. 하지만 이런 정보가 투자자들이나 기업에 대출을 제공하는 금융기관들에도 동일한 가치를 지니진 않는다.

자본 시장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으로부터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건 리스크에 대한 가격을 산정할 수 있는 정보다. 즉, 탄소 배출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따른 재무적 리스크가 얼마나 될 수 있는지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블랙록에서 TCFD 권고안과 SASB 프레임워크에 따른 공시 강화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완벽한 공시 기준은 없다. 하지만 투자자 관점에서 봤을 때 SASB는 ESG 전반에 걸쳐 산업별로 규격화된 재무 리스크 공시 기준을 제공하고 있고, 특히 기후 리스크와 관련해선 TCFD 프레임워크가 가장 유용하다. 기존 GRI 가이드라인에 더해 기후변화를 비롯한 ESG 측면의 리스크로 인해 발생하게 될 재무적 영향이 얼마나 되고, 이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지를 자본시장 이해관계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측정 기준과 항목에 따라 기업들이 투명하게 공개해 주기를 바란다.

이미 블랙록은 몇 년 전부터 주주 관여 활동을 통해 TCFD와 SASB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제는 충분히 블랙록의 입장을 피력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내년 주총 전까지 기후 리스크 관련 공시나 관리 공시가 불충분하거나 앞으로의 이행 계획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의결권 행사를 통해 이사회의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당장 내년부터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라거나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라는 식의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게 결코 아니다.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며 회사의 전략은 경영진과 이사회에서 결정할 문제다. 다만, 블랙록은 ESG 리스크를 기업들이 장기 전략에 체계적으로 반영하고 관리하는지에 대해 예외적으로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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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록이 기업 이사회에 책임을 묻는다고는 하지만 일각에선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ISS 같은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안을 거의 그대로 따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 숫자만 놓고 판단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의결권 자문사의 정책과 권고 기준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제대로 이해한다면 애초에 이런 오해가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우선, ISS는 나름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과 정책에 따라 주총 의안을 분석해 고객사에 권고안을 제시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ISS가 매년 자사 가이드라인과 정책을 업데이트한다는 사실이다. 이때 핵심은 블랙록 같은 대형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해 고객사의 피드백을 반영해 수정한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에선 이러이러한 상법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사회에서 이러이러한 것들이 도입될 예정이라, 향후 이사 선임과 관련해 ISS는 이런 기준으로 찬반 의결을 하려고 하는데 블랙록의 입장은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해 온다. 이런 피드백 프로세스를 통해 해마다 가이드라인과 정책을 조정해 나가기 때문에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안과 기관투자가들의 의사결정이 비슷하게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자문사와 운용사 간 의결 일치도가 높은 건 주로 정기주총 안건이지 주주 제안만 놓고 보면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주주 제안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 주주 제안은 특정 주주가 배당 요청이나 현 이사회의 후보자가 아닌 이사의 선임, 또는 공시 강화 등 주주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안건을 자체적으로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무제표 승인이나 이사 선임, 임원 보수 승인 등 정형화돼 있고 정례적 성격이 강한 정기주총 안건과 달리 그때그때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이 경우 블랙록은 해당 이슈에 대해 경영진과 이사회는 물론 제안을 낸 주주와도 직접 만나 양측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듣고 최종 판단을 내린다. 따라서 사전에 정해진 정책과 기준을 가지고 찬반 권고를 내리는 의결권 자문사와 다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덧붙여 블랙록에 합류하기 전 ISS에서 실제 근무했던 개인 경험에 비춰 말해본다면 ISS의 권고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가장 많이 항의했던 고객이 바로 블랙록이었다. 그건 그만큼 블랙록 내부적으로 주총 안건을 직접 분석하는 이들이 많고 철학이 뚜렷하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 이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태국만 해도 기업이사회협회 같은 기관에서 사외이사의 의무와 독립성에 대한 의무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이사회 멤버들이 투자자와의 직접 대화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선임 사외이사직을 통해 투자자와의 직접 소통이 제도화돼 있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제도 도입을 통해 투자자와의 직접적인 대화가 좀 더 활성화된다면 시장참여자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 지난 3년간 굉장히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사들, 특히 사외이사들이 투자자와 직접 만나는 걸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 같다. 일단 이사회에 접근만 되면 한국의 사외이사들의 경우 경험과 역량이 대체로 훌륭하기 때문에 투자자 관점의 장기 가치에 대한 기업의 이해도를 높여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로 주주 관여 활동을 통해 블랙록과의 대화에 직접 참여한 사외이사들의 피드백도 ‘주주들의 관점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됐고 이사회에서의 논의에 도움이 됐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앞으로 투자자들과의 직접 대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길 바란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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