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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거버넌스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오너는 ‘지배주주’, 소액주주는 ‘일반 주주’로
가치중립적 용어 사용이 문제 해결 출발점

김우진 | 299호 (2020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국내 기업에 존재하는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은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간의 대리인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는 거버넌스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1. 경영진이 일반 주주, 특히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를 포함한 기관투자가를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너’는 지배주주로, ‘소액주주’는 ‘일반 주주’로 가치중립적인 용어를 쓸 것을 제안한다.

2. 이사회를 포함한 경영진은 외부의 주요 주주들과 다양한 대화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GE처럼 이사회 소통을 지원하는 조직의 활동 범위와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3.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사회가 주체가 되는 객관적인 CEO 승계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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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 ship Code)1 가 정식으로 제정되고 2018년에 국민연금이 이를 도입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주주권 행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식회사에 있어서 주주권은 국가에 있어서 국민의 기본권에 대응될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주주의 권리다. 하지만 한국에서 용어 자체부터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국내에서 주주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아닌가 싶다. 특히 주주권이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등의 국내 기업에 대한 영향력 행사 시도와 맞물려 언급되는 경우가 많아 해외 자본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국내 정서상 주주권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더욱 증폭된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왜, 주주권인가

주주권을 논하기에 앞서 주주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분명하다. 특히 소유권이 분산돼 전문 경영인에 의해 운영되는 대부분의 전통적인 미국 기업의 경우 (장기적인) 주주가치, 즉 주가의 극대화가 기업의 목표임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내와 같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controlling shareholder)가 없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기업의 주인으로서의 주주는 모든 주주를 통칭하며, 이는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이 국민인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주주들이 전문 경영인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이는 국민들이 투표권, 선거권을 통해 입법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를 ‘오너’ 또는 ‘주인’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오너’들의 입장에서는 나머지 주주를 기업의 ‘주인’으로 인식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지배주주만을 ‘주인’으로 지칭해 온 관행도 이러한 인식의 바탕이 돼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호칭 방식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미국 기업들은 다 ‘주인 없는’ 기업이 돼 버린다. 따라서 이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이런 지배주주들은 계열사를 통해 실제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에 비해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소유-지배 괴리에 따른 전통적인 미국 기업에서의 주주와 경영진 간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보다 더 심각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의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대규모 상장기업의 경우 지배주주의 배당권은 5% 미만인 경우가 허다하며 나머지 95%는 ‘소액주주’로 표현되는 기관 및 개인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회삿돈 중 5%만 본인 부담이고, 나머지 95%는 남이 부담하기 때문에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유용하고자 하는 인센티브가 존재한다. 이것이 국내 기업에 존재하는 대리인 문제의 핵심이다. 지배주주를 계속 ‘오너’로 부를 경우 이러한 대리인 문제를 인식하기 어렵다. 오너는 대리인이 아니라 본인이기 때문이다. 모 상장회사의 지배주주가 본인의 형사재판에서 회삿돈으로 변호사를 고용했다고 검사 앞에서 스스럼없이 ‘자백’한 적이 있다. 본인이 하는 모든 일은 회사를 위한 것이고, 따라서 회삿돈으로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이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요즘 표현으로 참으로 웃픈 현실이다.

국내 거버넌스 논의의 문제점

주주권 행사는 이러한 대리인 문제를 축소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인 장치 중의 하나다. 학술적으로 거버넌스 메커니즘(Governance mechanism)은 이와 같은 대리인 문제를 축소하기 위한 모든 장치를 말한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경영진의 보수 구조, 이사회 등이 대표적인 거버넌스 메커니즘이고, 외부적으로는 주주권 행사를 통한 주주 행동주의, 기업 경영권 시장을 들 수 있으며, 이를 포괄하는 사회 전반적인 환경으로 투자자에 대한 법적인 보호가 있다.

반면, 국내 일부 언론에서의 지배구조 논의는 어떻게 하면 지배주주들이 계열사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원래의 거버넌스 취지에서 볼 때 가히 역설적이다.

국내에서는 지배주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을 기업의 주인으로 인식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가들이 상당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본인이 투자한 금액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최소한의 모니터링(monitoring)을 하려고 하는 시도조차 ‘경영 간섭’으로 인식한다.

만일 지배주주가 이런 경영 간섭을 배제하고자 한다면 회사의 모든 주식을 사들여서 상장폐지시키면 된다. 얼마 전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자본 시장에서의 경영 간섭이 싫어서 상장폐지를 추진했다는 일화가 있다. 100% 지분을 소유해 상장폐지를 한 지배주주는 진짜 ‘오너’이다.

이러한 진짜 오너들은 회삿돈을 자기 마음대로 써도 탈세를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다. 국내에서 사모펀드로 다소 오역된 프라이빗에쿼티펀드(Private Equity Fund)2 는 위와 같이 상장기업의 주식(public equity) 전체를 매입해 상장폐지(go private)시킴으로써 대리인 문제를 최소화한 구조다. 근래에 국내 PEF가 인수한 기업들의 영업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이론적으로 어느 정도 예측된 결과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실적으로 상장폐지를 하지 못하고 ‘남’의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한, 그 남이 투자한 돈을 제대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모니터링은 경영 간섭이 아니다. 이를 경영 간섭이라고 한다면 공무원들이 받는 감사도 ‘행정 간섭’이므로 이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공공 조직에 감사가 많은 근본 원인은 공공 부문은 이론적으로 대리인 문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 시스템의 적용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감사를 통해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최근에 논란이 된 일부 시민단체의 회계 처리 문제도 결국 남의 돈으로 사업을 추진해 왔던 데서 비롯된다.

‘오너’는 지배주주, ‘소액주주’는 일반 주주로 표현

그럼 주주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일반 주주들, 특히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가를 포함한 기관투자가(국민연금, BlackRock, APG 등)를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차제에 ‘오너’는 지배주주로, ‘소액주주’는 일반 주주로 표현할 것을 제안한다. 다 같은 주주지만 지배주주는 경영권을 행사한다는 차원에서 일반 주주와 달리 지배주주로 지칭하는 것이 가장 가치 중립적이며, 학술적인 용어와도 일치한다.

지금까지는 지배주주 일가를 제외한 외부의 주주가 어떠한 형식으로 접촉을 하더라도 기존 경영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기관/외국인 투자가는 경영 간섭, 외압의 주체가 아니라 기업 가치 극대화라는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한 동반자다. 이미 삼성전자 주주들은 130만 명을 넘어섰다. 말 그대로 국민기업이다. 직접 주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대다수의 국민은 국민연금을 통해, 또는 기타 주식형 펀드를 통해 삼성전자, 현대차의 간접 주주다. 기업 가치가 일반 국민의 이해와 직결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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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vs. 한진의 사례

관련해 2019년 주주총회에서 현대차와 한진이 보여준 입장 차이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대차 주총에서는 엘리엇이 제안한 대부분의 주주 제안(배당, 이사 선임 관련)이 주총 안건으로 정식 상정됐으나 국민연금을 포함한 일반 주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다수의 의결권 자문사가 엘리엇의 주장이 무리함을 지적했고, 경영진은 주총에서 이를 활용해 정면 돌파했다. 하지만 엘리엇 제안 안건 중 보수위원회와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하는 정관 변경안은 경영진도 수용했으며 국민연금도 이에 찬성해 가결됐는데, 이는 아마 대규모 기업 집단 소속 기업 주총에서 주주 제안이 통과된 거의 유일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현대차는 지난 2018년에 모비스를 인적 분할한 후 분할 사업부를 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개편안을 추진한 바 있다. 본 건은 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한 분할합병 비율과 단일 회계법인이 이를 자문했다는 이해상충 문제가 제기됐다.3 주총에서 통과 가능성이 낮아지자 현대차가 이를 자발적으로 철회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시 합병 비율의 부당성이 지금까지도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현대차가 위 개편안을 철회한 것은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매우 잘된 일이라 평가한다. 또 작년 주총에서 보여준 정공법을 택하는 모습은 앞으로 한국 기업의 주주총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신선한 시사점을 준다.

반면, 2019년 주총에서 한진 지배주주 및 경영진이 보여줬던 모습은 다소 실망스럽다.4 한진은 KCGI(강성부펀드)가 제기했던 주주 제안에 대해 제안 자격이 없음을 법적으로 다투었다. 상장기업의 경우 6개월 보유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지가 쟁점이었는데 1심에서는 KCGI가 승소하면서 주주 제안이 주총안건으로 포함돼 우편 발송됐으나 주총 며칠 전에 고등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따라서 KCGI 주주 제안은 주총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2대 주주도 주주 제안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가정이지만 한진이 현대차처럼 KCGI의 주주 제안을 받아서 주총에 상정한 후, 국민연금을 포함한 일반 주주들을 진정성 있게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년 주총에서는 기존 지배주주와 경영진이 3자 연합에 대항해 일반 주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비록 3자 연합이 주총에서는 패했으나, 이 과정에서 주주 가치 증대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결과적으로 주가 상승에 반영됐으니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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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 대화를 통한 관여 촉진

다음으로 외부의 주요 주주들과 이사회를 포함한 경영진과의 다양한 대화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각에서 주주행동주의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행동주의 펀드들이 항상 기존 경영진과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적대적 경영권 위협은 기관투자가의 일반적인 목표가 아니다. 해외 연기금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대결(confrontation)’ 이 아니고 ‘관여(engagement)’다. 이러한 관여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비공식적인 대화다. 기관투자가들은 이사회, 경영진과의 일상적, 우호적 대화 채널 확립을 희망한다. 실제로 미국 기업 및 연기금을 대상으로 한 실증 연구 결과를 보면 이와 같은 비공개 대화가 경영진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5 미국과 유럽의 적극적 기관투자가 설문 결과,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경영 참여 방식은 경영진과의 대화였고, 반대표 행사 등 주총을 통한 의견 표명은 부차적 채널에 불과했다.6 이와 같은 기관투자가의 관여가 있을 경우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의 반응도 호의적으로 나타났다.7

이와 같은 대화 채널 수립에 있어서 GE가 운영 중인 투자자 관여 프로그램(Investor Engagement Program)을 참조할 만하다.8 투자자 관여 프로그램은 경영진과 이사회가 주주의 관심 이슈를 이해하고 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업 비서(Corporate Secretary)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 조직은 이사회 사무국을 확대 개편한 것으로서 단순한 이사회 보좌 기능을 넘어 기업의 현안에 대한 이사회, 최고경영진 및 주주 간 소통의 핵심 창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종래 우리 자본시장법은 기관투자가의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와 ‘경영 참여’로 이분법적으로 칼 같이 구분해 이와 같은 넓은 의미의 관여를 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 예컨대, 임원 보수에 대한 주주 제안이나 배당 관련 주주 제안도 모두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목적으로 해석돼 해당 주주들은 내부자로 간주되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 금지 및 6개월 이내 단기 매매 차익 반환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됐다. 2019년 대한항공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주주 제안을 하지 못한 직접적인 이유도 10% 이상 보유한 주주가 정관 변경 주주 제안을 할 경우 경영 참여에 해당되고 이 경우 바로 단기 매매 차익 반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 1월에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돼 임원 선임, 해임 등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목적은 없으나 임원 보수 또는 배당 관련 주주 제안을 할 수 있도록 단순 투자와 경영 참여 사이에 ‘일반 투자’라는 새로운 보유 목적이 신설됐다. 재계에서는 이것도 경영 간섭의 확대라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나, 이는 일반 주주의 관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물론 이와 같은 대화 채널 확보는 위에서 언급한 인식 전환을 전제로 한다. 외부 주주들을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형식적인 대화 채널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제 조건은 이사회/경영진과 외부의 주요 주주 간에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주주들은 기업 가치 극대화가 목표인데, 만약 경영진의 목표는 인수합병 등 자산 규모 확대를 통한 재계 서열 상승이라면 아무리 양자 간에 대화를 해도 생산적이기 어렵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의 목표는 ‘인류 공영에 이바지한다’는 식으로 매우 추상적이고 선언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 문구 어디에서도 주주 또는 기업 가치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이재용 부회장이 발표문을 통해 삼성의 목표는 ‘기업 가치 극대화’라고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사회, 실질적 CEO 선임 주체 돼야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은 물론이다. 이론적으로 이사회는 주주에 대해서는 대리인이지만 경영진에 대해서는 본인이다. 이처럼 이사회는 이중적인 지위를 가지기 때문에 때로는 경영진과 협력하면서 회사 내부자로서 외부 주주들과 소통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영진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이 핵심적인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주식회사를 ‘공화정(republic)’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주주는 국민 또는 유권자, 경영진은 행정부, 이사회는 의회에 해당한다.9 의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이듯이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능도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기업 경영 현장에서 이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국의 경우 이사회의 핵심 기능은 (1) CEO를 포함한 최고경영진의 선임 및 해임 (2) 최고경영진에 대한 보수 수준 및 구조의 결정 (3) 인수합병, 자산양수도 등 주요 경영 의사결정 (4) 위험 관리 및 회계감사 등으로 돼 있다. 국내에서는 이사회의 기능을 경영진 ‘자문’ 기능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이사회의 근본적인 역할을 오해한 것이다.

이사회는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에서도 중요하지만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 과거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돌이켜 볼 때 아직 국내에서는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에서의 대리인 문제가 경우에 따라서는 더 심각하다. 이러한 기업에서는 이사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 기업의 CEO는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선임한다.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CEO 승계 작업이다. 우리처럼 각종 탈법적인 방법으로 지분을 확보해 주는 승계가 아니고, 후임 CEO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 후임자를 발굴하는 작업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를 선임하기는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경우가 많고,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에서는 대개 대표이사가 사전에 내정되고 이사회에서는 이를 사실상 추인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전과 같이 정부가 지배주주인 기업에서는 CEO 선임에 있어서 정부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나 정부의 지분이 전혀 없는 포스코, KT 및 금융지주사의 CEO는 이사회가 실질적인 CEO 선임 주체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정부의 영향력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선언을 계기로 앞으로 삼성에서도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미국식 CEO 승계 절차에 대해 심도 있는 사전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woojinkim@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재무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자원부 사무관(행시 40회),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고려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기업 재무 및 지배구조이며, 공정위 경쟁정책 자문위원 및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 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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