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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보고서… 믿어? 말어?

최종학 | 31호 (2009년 4월 Issue 2)
2007년 10월 2000포인트를 넘어섰던 종합주가지수가 2년째 하락을 거듭하니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들린다. 퇴직금을 몽땅 펀드에 털어 넣었다가 날린 퇴직자, 남편 몰래 비자금을 투자했던 주부, 결혼 준비 자금을 넣었다는 젊은이 등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간 걸핏하면 주식을 사라고 권하던 유명 애널리스트나 증권회사 대표들을 요즘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한때 종합주가지수가 3000포인트까지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까지 떨어졌는데도 항상 지금이 바닥이라고 매수를 권유한다. 양치기 소년도 이런 양치기 소년이 없다.
 
증권정보업체 Fn가이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증권업계 애널리스트가 2008년 하반기 발표한 9000개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은 단 하나도 없었다. ‘비중 축소’ 의견도 단 7건에 불과했다. 반면 ‘적극 매수’ 또는 ‘매수’ 의견은 전체 보고서의 84%에 달했다.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에서도 애널리스트들은 계속 주식을 사라는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었던 셈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최근 발표되는 보고서의 숫자가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이 호황일 때는 한 달에 발표되는 보고서만 1500개에 육박했다. 하지만 요즘 이 수치는 400∼500개에 불과하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져 일반 투자자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있지만, 기업 정보를 공급하는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 수는 대폭 줄고 있다.
 
매도 보고서가 사라진 이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애널리스트들은 해당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그렇다고 변명한다. 해당 기업의 전망이 좋지 않으니 주식을 팔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면, 그 기업이 애널리스트의 회사 출입을 막거나 정보를 주지 않으므로 매도 보고서를 낼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애널리스트가 직접 밝히기 힘든 이유도 있다. 애널리스트가 속해 있는 증권회사는 주식거래 중개 업무 외에 기업 상장, 증자, 인수합병(M&A), 자사주 매입 대행 업무 등을 수행한다. 이때 중개 업무를 맡고 있는 고객 기업의 전망이 좋지 않으니 주식을 팔라는 보고서를 내기란 쉽지 않다. 해당 기업이 엄청난 비난을 제기하며 중개 업무 계약을 파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매도 보고서는 종종 주가 하락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애널리스트가 팔라고 추천한 주식을 사는 투자자는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면 주가는 더욱 떨어지고, 증권회사의 수수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M&A 중개도 마찬가지다. M&A 대상 회사가 고평가 상태라는 보고서를 냈다가 그 보고서 때문에 매수자가 사라지거나 매수 가격이 떨어지면 역시 증권회사의 손해는 막심하다. 연기금 등의 기관 투자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형 기관 투자자가 대규모로 투자한 회사에 부정적 의견을 내놓는 것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매수 보고서를 발표하는 증권업계가 매도 보고서를 꺼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내용은 애널리스트들이 이런 행동을 할 만한 요인을 갖고 있다는 뜻이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필자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애널리스트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절대 없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다.
 
한국 증권회사와 외국 증권회사의 차이
외국 증권회사의 상황은 어떨까. 애널리스트의 보고서 발표 이후 해당 기업 주가 변화를 살펴보면, 외국 증권회사가 보고서를 발표한 뒤에 주가가 움직이는 폭이 더 크다. 투자자들이 외국 증권회사의 보고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증권회사의 국적에 관계없이 긍정적 보고서보다 부정적 보고서가 나왔을 때 주가가 반응하는 정도가 더 크다는 점이다. 즉 긍정적 보고서가 나온 후에는 주가 상승폭이 별로 크지 않은 반면, 부정적 보고서가 발표된 후에는 주가가 많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외국 증권회사가 한국 증권회사에 비해 부정적 보고서를 훨씬 자주 내놓는 편이다. 외국계 증권회사의 보고서가 나올 때 시장 반응이 더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외국계 증권회사의 부정적 보고서는 종종 한국 주식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준다. 2008년 말 JP모건이 하나금융지주에 대해 부정적 보고서를 발표하자 하나금융지주의 주가는 불과 4일 만에 무려 40% 떨어졌다. 하나금융지주는 JP모건이 정확하지 않은 통계치를 사용했다며 곧바로 반박했다. 금융감독원이 JP모건에 경고 조치까지 내렸지만 주가 회복 정도는 미미했다. JP모건이 펀드 자금 이탈로 미래에셋증권의 실적이 나빠질 것이라며 2008년 말 매도 의견을 내놓았을 때도 미래에셋 주가는 순식간에 급락했다.


부정적 보고서가 나왔을 때 시장이 강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주식시장에 나와 있는 보고서들이 워낙 천편일률적으로 주식을 사라는 내용뿐이니 긍정적 보고서가 나와봐야 새로울 게 없다. 투자자들은 이미 증권회사가 웬만해서는 매도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매도 보고서가 나올 정도라면 해당 기업의 상황이 정말 안 좋다고 평가하고, 그 결과 투매로 인한 주가 하락만 심해진다.
 
둘째 이유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4호에 기고한 필자의 6번째 글 ‘먼저 맞는 매가 덜 아프다’에 나온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이다. 이 이론의 골자는 투자자가 이익을 볼 때는 효용이 완만하게 증가하지만, 손실을 입을 때에는 그 효용이 급격히 감소한다는 것이다. 즉 부정적 보고서는 투자자의 효용을 급격히 감소시켜 주가 하락을 가져온다.
 
정확한 보고서 발표를 독려하려면
외국 증권회사들이 국내 증권회사보다 매도 보고서를 자주 발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미국계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개별 보고서에 자신의 회사가 발표하는 매수, 중립, 매도 의견의 전체 비중을 모두 표기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08년 JP모건의 매수, 중립, 매도 의견 비중은 각각 41%, 44%, 15%였다. 반면 Fn가이드가 조사한 2008년 한국의 수치는 각각 84%, 16%, 0.1%다.
 
이는 한국 증권회사의 보고서가 얼마나 매수 의견에 치우쳐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증권업계의 현실과 애널리스트 보고서의 특성을 잘 모르는 투자자라도 이 수치를 본다면 국내 증권회사의 보고서에 큰 신뢰를 갖기 어렵다.
 
그렇다면 미국 증권회사는 왜 회사 전체의 추천 의견 상황을 일일이 공개할까. 2002년 미국 증권업협회와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공동으로 ‘애널리스트의 이해 상충에 관한 규정(SR-NASD-2002-12)’을 만들어 회사 전체의 추천 비중을 보고서마다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조치로 미국 증권회사들은 회사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매수 보고서를 쏟아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자사의 보고서와 다른 증권회사의 보고서를 동시에 받아보는 투자자들이 ‘매수’ 비중이 높은 증권회사의 투자 의견을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 당국의 제도 보완이 매도 의견 발표 빈도를 높인 셈이다. 이 제도 도입 전 미국 증권업계의 매수 추천 비중은 최대 74%에 달해 한국 증권업계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제도 도입 후 이 비율은 40%대로 확 떨어졌다. 2%에 불과하던 매도 의견 비중도 17%대로 늘었다. 제도 하나가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필자는 한국도 하루속히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증권업계 전반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계속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자본 시장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금융감독원에서 애널리스트 윤리 기준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니 반드시 이런 구체적 규정을 포함시키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는 이 모든 상황이 애널리스트들 때문에 발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엄연히 제도 보완을 통해 막아야 할 문제다. 애널리스트가 부정적 의견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기업이나 기관 투자자가 해당 애널리스트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엄격히 방지하는 규정도 꼭 필요하다. 해당 애널리스트의 출입을 막거나 해당 증권회사를 의도적으로 거래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이 사실을 감독당국에 의무 보고하고 시장에도 공시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 투자자들도 자신의 보유 주식에 애널리스트가 매도 의견을 발표했다고 해당 애널리스트를 위협하는 품격 낮은 행동을 삼가야 한다. ‘밤길 조심하라’며 협박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있는 한 애널리스트들은 매도 의견을 꺼릴 수밖에 없다.
 
애널리스트의 실력은 보고서의 정확성으로 평가하면 그만이다. 금융투자자협회 등에서 개별 애널리스트의 정확성을 주기적으로 평가해, 애널리스트가 발표하는 보고서마다 해당 애널리스트의 점수를 표시하는 방법도 좋다. 또는 애널리스트가 발표하는 보고서마다 과거 애널리스트가 해당 기업에 대해 발표했던 예측치와 실제 기업 성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간단한 표를 추가해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의 공부와 노력도 필요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를 작성할 때 해당 기업 정보를 수집해 우선 기업의 미래 이익이 얼마나 될지를 예측한다. 이익 예측치로 미래 주가를 전망하고, 목표 주가와 현재 주가와의 차이를 비교해 투자 의견을 내놓는다. 필자가 각종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애널리스트들이 발표한 이익 예측치는 상당히 정확한 수준이었다.
 
다만 해당 기업이 이익을 부풀리거나 줄이는 것까지 미리 파악해 미래 이익을 예측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한 감이 있다. 필자는 애널리스트가 회계사 못지않은 회계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계 수치에 숨어 있는 행간의 의미까지도 꿰뚫어볼 수 있어야 진정한 애널리스트다. 아직 국내 애널리스트들의 전반적인 능력은 그 정도는 아니다.
 
애널리스트가 목표 주가를 결정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것이 주가수익 비율(PER)이다. 이외에도 주가장부가치 비율(PBR), 주가현금흐름 비율(PCR), 주가매출액 비율(PSR)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 헤지펀드와 증권회사들이 2000년대 이후 사용하고 있는 잔여지분 이익모형(residual income model)은 PER이나 PBR보다 훨씬 우수한 기업 가치 계산법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부분적으로만 이를 사용하고 있어 아쉽다.
 
애널리스트는 상당한 전문 지식이 필요한 직업이다. 간단히 애널리스트라 칭하지만, 넓은 의미의 애널리스트는 거시 경제의 흐름을 짚어보고 금융 시장의 장기 움직임을 예측하는 이코노미스트,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참고해 중장기적 입장에서 주식 매매를 결정하는 스트래티지스트, 기업 정보를 철저히 분석해 이익 예측치와 목표 주가를 발표하는 협의의 애널리스트를 모두 포함한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학 전문 지식을, 스트래티지스트는 재무 관리와 회계학 지식을, 협의의 애널리스트는 회계학 전문 지식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하지만 ‘회계를 전혀 몰라도 애널리스트 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애널리스트가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애널리스트가 본인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면 자신은 물론 해당 증권회사의 명성과 업적도 올라갈 것이다. 필자의 연구 결과, 애널리스트의 연구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연구 지원 체계를 도입한 증권회사는 이후 소속 애널리스트의 보고서 예측치가 훨씬 정확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윤경·최종학·김명인, ‘증권회사의 연구 지원 시스템 도입이 소속 재무 분석가의 이익 예측치 특성에 미친 영향’, 회계저널, 2008)
 
현대종금 펀드매니저 출신 황성택 사장이 설립한 트러스톤 자산운용은 설립 당시부터 마케팅 부분을 줄이고 리서치 역량 강화에 주력한 결과, 기관투자자들의 기금 운영 평가에서 대형 자산운용사를 제치고 거의 매년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최근의 급락장에서도 트러스톤 자산운용이 돌풍을 일으킨 이유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명제는 언제나 유효하다.
  • 최종학 최종학 | - (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 동시 수상
    - 홍콩과기대 교수
    ac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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