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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로 보는 세상

전환형 영구채권과 HMM 둘러싼 논란

최종학 | 385호 (2024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영구채권을 사용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① 자금을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고 ② 이자 지급액이 비용이 아닌 배당으로 표시돼 당기순이익을 높일 수 있으며 ③ 회계상에서는 자본이지만 세법에 따르면 부채이므로 이자 지급액이 과세 소득에 잡히지 않아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 특히 전환형 영구채권(영구CB)의 사용은 투자자와 발행사 모두에 매력적인 선택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특정 기한이 되면 발행사가 옵션을 행사해 투자금을 상환받을 수도 있고, 그 이전에 투자자가 전환권을 행사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발행사 입장에서도 투자자들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시장에서 매각하면 회사의 현금이 유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HMM(구 현대상선)도 생존의 위기를 겪던 2010년대 중후반 영구CB 등을 발행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이후 업황 개선으로 주가가 상승하면서 HMM의 영구CB를 매입했던 산업은행 등은 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했다. 2023년 말 벌어진 입찰에서 하림이 6조4000억 원의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HMM은 산업은행의 품을 떠나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됐다.



2010년대 중반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이 현대글로벌을 지배하고, 현대글로벌이 현대엘리베이터를 지배하고,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을 지배하고, 현대상선이 현대증권과 현대아산 등의 기타 회사들을 지배하는 복잡한 형태의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계열사들 중 해운사 현대상선이 특히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이는 2008년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교역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여러 조선사가 위기에 직면했고,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비롯한 해운사들도 생존의 위기를 겪었다. 현대상선 때문에 현대그룹은 그룹 전체가 망할 수도 있었던 위기를 겪었고, 위기를 극복하고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법적 또는 윤리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러 거래를 벌이기도 했다.1

이런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현대상선은 산업은행 등의 채권은행들과 2014년 들어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했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계속 보유하되 은행과 약속된 스케줄에 따라 재무구조를 개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계속 악화돼 2015년 동안 현대상선은 68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2015년 말 부채비율은 약 2500%에 이를 정도였다. 그 결과 채권단과 약속한 조건들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결국 채권단은 2016년 6월 들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박탈하고 직접 현대상선을 경영하기로 결정했다. 그 방법으로 현 회장 및 현대그룹이 보유한 현대상선의 지분 23%를 무상감자했다. 즉 이 주식을 무효화한 것이다. 무상감자의 결과 현 회장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했던 현대상선의 지분 가치는 0이 됐다. 그리고 채권단은 보유하고 있던 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출자전환을 실시했다. 그 결과 현대상선의 지분 중 산업은행이 14%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게 됐다.

비슷한 시기인 2016년 1월 한진해운도 한진그룹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단 자율 협약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2017년 2월 정부는 한진해운을 파산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을 두고 사후적으로 여러 논란이 벌어진다. 업계 1위 한진해운을 파산시키고, 한진해운보다 시장점유율도 낮고, 국제 해운사들 사이의 네트워크 관계도 적으며, 재무 상태도 더 열악했던 현대상선은 채권단이 경영권을 인수해 살려준 것이 올바른 결정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즉 경제적 이유가 아닌 숨겨진 다른 이유 때문에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고 짐작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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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와 자본 분류의 중요성

회계를 공부했다면 ‘자산 = 부채 + 자본’이라는 재무상태표(대차대조표) 등식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기업이 영업 및 생산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자원(resource)인 자산은 채권자가 공급한 자금(즉 부채) 또는 주주가 공급한 자금(즉 자본)을 이용해 마련한 것이다. 자금을 조달한 기업 입장에서 보면 부채는 상환의무가 있지만 자본은 상환의무가 없다. 자금을 제공한 공급자 입장에서 보면 채권자는 정해진 이자를 지급받아 효익을 얻지만 주주들은 이자가 아니라 이익 배분의 성격을 가진 배당금을 지급받거나 주가 상승을 통해 효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자율은 사전에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배당이 얼마인지는 사전에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기업의 성과에 따라 배당률이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기업의 청산 시점에서는 채권자가 먼저 투자금을 모두 돌려받은 후에 남는 자금이 있어야 주주가 소유 주식 수에 따라 비례적으로 남는 자금을 배분받을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 이를 전문 용어로 채권자가 주주에 비해서 선순위에 있고(즉 주주가 채권자보다 후순위에 있으며) 주주는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잔여 지분에 대한 청구권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상의 부채와 자본의 차이를 보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채권의 투자자(즉 채권자)가 되는 것이 주식의 투자자(즉 주주)가 되는 것보다 좀 더 안정적인 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채권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보다 주식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더 높다. ‘High risk, high return’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채와 자본을 엄격히 구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부채는 대부분 정해진 시점에 정해진 이자를 지불해야 하므로 지속적인 현금유출이 일어나고, 또 만기가 되면 원금을 채권자에게 상환해야 한다. 따라서 채권을 발행한 또는 대출을 받은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에 채권이나 대출금의 상환 시기가 왔을 때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재무적 압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자본은 상환할 필요도 없으며 배당을 꼭 지급하지 않아도 되므로 상대적으로 재무적 압력이 적다.2 그러므로 규제기관, 은행,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 개인투자자들은 부채비율(부채/자본 또는 부채/자산)을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부채비율이 높을수록 그 기업은 ‘재무적 압력이 높다’ 또는 ‘재무건전성인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3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인수한 후인 2016년과 2017년 동안 산업은행과 기타 주주들은 수차례에 걸친 유상증자를 실시해 현대상선에 총 2조2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한다. 또한 당시까지만 해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던 새로운 형태의 자금조달 수단인 영구전환사채(영구CB)와 영구신주인수권부사채(영구BW)를 발행해 총 3조3000억 원 정도를 조달한다. 이 사채를 인수한 것은 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특수관계인인 한국해양진흥공사다.4


IFRS의 도입에 따른 부채와 자본 분류 기준의 변화

영구CB와 영구BW는 ‘영구채권(perpetual bond)’이라고 불리는 채권의 한 종류다. 2010년까지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회계기준을 사용했지만 2011년부터 국제회계기준(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IFRS)을 도입해 상장기업들에 한해 사용하고 있다. IFRS보다 좀 더 쉽고 기업에 유리하게 재무제표를 표시할 수 있는 K-GAAP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독자 회계기준은 비상장기업들만 사용한다. 현재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가 IFRS를 사용하고 있다.

K-GAAP에서는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을 부채와 자본 중 무엇으로 분류할지에 대해 법률적인 판단을 따른다. 이는 미국의 분류 기준을 따른 것이다. 즉 채권의 형태로 발행돼 조달한 자금은 부채로, 주식의 형태로 발행돼 조달한 자금은 자본으로 분류한다. 이 이야기가 당연한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식의 형태로 발행됐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사가 주식의 매수자(즉 주주)들에게 원금을 상환하고 소멸하는 주식인 상환우선주(refundable preferred stock, RPS)를 생각해보면 분류가 애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GAAP에 따르면 상환우선주는 자본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5년 만기 채권을 발행해서 채권시장에서 매각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면 이 자금이 부채로 기록되므로 부채비율이 상승한다. 반면 동일한 금액을 5년 후에 상환하는 조건의 상환우선주를 발행해 조달하면 이 자금이 자본으로 기록되므로 부채비율이 하락한다. 5년 후 자금을 상환하는 것은 동일한 데도 말이다.

2011년 IFRS가 도입됨으로써 회계기준이 상당히 변하는데 그중에서도 부채와 자본의 분류 기준이 크게 달라졌다. IFRS에 따르면 부채의 정의의 핵심은 ‘상환 의무의 존재 여부’다.5 즉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 중 상환의무가 없는 금융상품은 자본으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우선주는 회사가 투자자에게 상환해야 하는 의무가 없으므로 자본으로 분류한다. 그렇지만 투자자가 요청하면 상환을 해줘야 하는(즉 상환청구권을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상환우선주는 부채로 분류한다. 그러나 기업이 원하는 경우에만 상환을 할 수 있는 상환우선주라면 상환의무가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자본으로 분류한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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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 도입 이전 기업들이 상환우선주를 활용한 이유

IFRS 도입 이전에는 상당수 기업이 자금조달 수단으로 상환우선주를 사용했다.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해 사용하다가 상환할 때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으므로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자금을 부채로 기록하든 자본으로 기록하든 회사의 경제적 실질은 동일한데 회계를 잘 모르는 상당수의 외부 이해관계자가 부채비율만을 보고 회사의 재무건전성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즉 부채비율이 낮으면 재무건전성이 높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둘째, IFRS 도입 이전에는 상환우선주가 자본으로 분류되고 기업은 상환우선주를 보유한 주주에 대해 배당을 줬으므로, 이때의 배당금 지급액은 손익계산서에 이자비용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손익계산서의 구조를 알면 쉬운 이야기지만 배당금 지급은 손익계산서에 기록되지 않고 자본으로 분류된 이익잉여금을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즉 손익계산서에서 당기순이익을 계산한 후, 그중의 일부를 사후적으로 배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채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면 이자비용으로 손익계산서에 기록돼 당기순이익이 줄어들지만 상환우선주에 대해 배당을 지급하면 손익계산서에 표시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을 때에 비해 상환우선주를 발행하면 이자비용을 주지 않는 것만큼 이익이 더 높게 표시된다.7 즉 부채비율을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이익을 더 높게 표시할 수 있다는 의미다. 회계 지식이 부족한 이해관계자들이 경제적 실질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부채비율이나 이익 수치만 보기 때문에 상환우선주가 널리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내용을 요약하면 IFRS 도입 이전 상환우선주를 발행하면 ① 부채비율을 낮춰 표시하고 ② 이자 지급액이 배당으로 표시되므로 당기순이익을 높게 표시한다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IFRS 도입 이후 상장기업들이 상환우선주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

2011년부터 IFRS를 도입한 결과 상환우선주가 부채로 분류되게 되자 이때부터 IFRS를 적용하는 상장기업들은 상환우선주를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됐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보통주 주주들에게 지급하는 배당금은 사전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기업의 성과에 따라 매년 변할 수 있다. 상환우선주도 배당을 지급하는데 보통주와는 달리 상환우선주의 배당률은 사채 이자와 마찬가지로 사전에 정해져 있다. 즉 상환우선주는 기업이 몇 년 후 상환해야 하므로 실질적으로 보면 부채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치 이자를 지급하는 것과 동일하게 사전에 정해진 금액을 배당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즉 형식은 배당이지만 실질은 이자다.

그런데 이 배당률이 사채의 이자율보다 높다. 투자자(우선주에 대한 주주와 채권에 대한 채권자를 모두 포함한 개념) 입장에서 보면 회사에 부도가 발생했을 때 남아 있는 자산에 대한 청구권에 대한 우선순위를 채권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남아 있는 자산이 있으면 채권자가 먼저 받아가고(즉 채권자가 선순위이고), 그다음에 남는 자산을 우선주주 – 보통주주의 순서로 받아간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채권에 대한 투자가 우선주에 대한 투자보다 덜 위험하기 때문에 동일한 기업이 발행하고 만기도 동일하더라도 채권의 이자율이 상환우선주의 배당률보다 낮다. 위험한 투자일수록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즉 기업 입장에서 보면 상환우선주를 발행했을 때가 채권을 발행했을 때보다 더 많은 현금이 유출된다.

IFRS 도입 이전에는 상환우선주를 자본으로 분류해 부채비율은 낮게, 이익은 높게 표시할 수 있었으므로 현금의 유출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용하는 기업이 일부 있었다. 그러나 IFRS 도입 이후에는 상환우선주를 부채로 분류하게 돼 이런 유리한 점이 사라졌다. 일반 채권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할 때와 부채비율은 동일한데 더 많은 배당(형식은 배당이지만 실질은 이자)을 지급해야 하는 상환우선주를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K-GAAP을 사용하는 비상장 기업들 중에서는 상환우선주를 2011년 이후도 사용하는 경우가 존재한다.8 앞에서 이미 소개한 것처럼 K-GAAP에서는 상환우선주를 자본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를 보면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의 재무제표를 같은 잣대로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9

IFRS 도입 이후 상장기업들이 상환우선주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그 대신 사용하게 된 새로운 금융상품이 있다. 바로 영구채권이다. 영구채권은 만기가 없거나 만기가 형식적으로는 존재하지만 발행사(기업)가 만기를 연장할 수 있는 채권이다. 예를 들면 만기가 5년이지만 5년 후 발행사가 아무 조건 없이 다시 만기를 연장할 수 있다. 즉 이 채권을 구입한 투자자는 발행조건 그대로라면 앞으로 원금 상환은 받지 못하고 이자만 받을 수 있다. 이 채권은 발행사에 상환의무가 없기 때문에 IFRS에 따르면 부채가 아니라 자본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채권이므로 K-GAAP에서는 부채로 분류된다.


자본으로 분류되는 영구채권의 탄생

그렇다면 원금을 상환받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채권을 매수할 투자자들이 과연 존재할까? 모 기업이 이런 금융상품을 발행해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다. 상식적으로 보면 대다수의 투자자는 상당히 비싼 이자를 지급해야만 이런 금융상품을 매수할 것이다. 그런데 이자율이 그렇게 높지 않아도 판매가 가능하도록 구조를 만든 상품이 생겨났다. 영구채권 발행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이후 발행사가 콜 옵션(call option)을 행사할 수 있는데 콜 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가산 금리가 부과되도록 구조를 조정한 것이다. 콜 옵션이란 발행사가 판매한 채권을 원한다면 상환할 수 있는 옵션이다.

예를 들어 발행 시에는 5%의 이자율을 지급하는 채권인데 발행사가 3년 후 행사할 수 있는 콜 옵션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콜 옵션을 행사한다는 것은 발행사가 부채를 갚는다는 뜻이다. 콜 옵션을 행사할지는 발행사가 정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 발행사가 상환의무를 가지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IFRS에 따르면 부채의 정의에 부합되지 않으므로 자본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3년 후 발행사가 콜 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그다음 날부터 가산금리가 3% 추가돼 이자율이 8%가 된다고 해보자. 이 경우라면 발행사는 콜 옵션을 행사해서 영구채권을 상환할 가능성이 높다. 굳이 3%나 더 비싼 이자를 내면서 해당 영구채권을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시점에서 시장이자율이 변하지 않아 과거와 동일한 조건으로 영구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새로운 영구채권을 5%의 이자율로 발행하고 판매해서 마련한 돈으로 3년 전에 발행했던 영구채권을 상환하면 3%의 이자율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 마련한 빚으로 과거의 빚을 상환하는 행위를 전문용어로 ‘리파이넌싱(refinancing)’이라고 한다. 또한 3년 이후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르면 다시 가산금리가 붙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2년의 시간이 더 흘러 5년 차가 된 시점에 다시 콜 옵션을 행사할 수 있고, 행사하지 않는다면 다시 3%의 가산금리가 붙어 이자율이 11%로 올라가는 형태다. 발행사가 꼭 옵션을 행사하도록 이자율이 매우 높아지게 조건을 정한 것이다.

영구채권을 IFRS 도입 이후 국내에서 처음 사용한 것은 2012년 12월 두산인프라코어였다.10 그렇지만 영구채권이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10년쯤 빨리 유럽에서는 IFRS가 사용되고 있었고, 국내에선 유럽에서 사용되던 금융상품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뿐이다. 그 이후 많은 기업이 영구채권을 사용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 기업들은 모두 다 콜 옵션 행사가 가능한 첫 번째 시점이 도래했을 때 옵션을 행사했다. 즉 이 시점에 부채를 상환하는 것과 동일하게 옵션을 행사해서 채권을 갚았다.


흥국생명의 영구채권 콜옵션 미행사가 자본시장에 미친 여파

그런데 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기업이 2022년 처음으로 나타났다. 흥국생명의 5억 달러 규모 달러 표시 영구채권과 관련된 사례다. 2022년 말 ‘자본시장에 돈이 말랐다’는 표현이 회자될 정도로 기업들이 돈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던 한전이 자금조달을 위해 2022년 동안 30조 원이 넘는 채권을 발행해 판매함으로써 자본시장에 대기하던 자금 대부분을 끌어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하고 싶어도 거의 조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과거 영구채권을 발행했던 흥국생명이 기한이 돌아온 콜 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가산금리를 더 내겠다고 발표하자 자본시장이 완전히 마비가 될 정도로 큰 충격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시장 이자율이 급등해서 흥국생명으로서는 가산금리를 내는 것이 새로운 영구채권을 발행하는 것보다 이자율이 더 낮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사실 이는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이 결정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자 흥국생명은 다시 의사결정을 번복해서 콜 옵션을 행사했다.11 이 사건을 보면 영구채권 투자자들이 당연히 흥국생명의 콜 옵션 행사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모두 채권을 상환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상환하지 않는다고 하니 놀랐던 것이다. 즉 투자자들은 영구채권 매수를 두고 주식을 산 것이 아니라 부채를 빌려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영구채권을 사용할 경우의 장점은 앞에서 소개한 자본으로 분류되는 상환우선주를 사용할 때의 장점 두 가지와 동일하다. 첫째, 자본으로 분류되므로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 둘째, 이자 지급이 비용이 아니라 배당으로 지급되므로 이익을 높게 표시할 수 있다. 여기에 추가해 세 번째 장점이 있다. 설명하기 복잡한 내용이지만 세금 효과다. 영구채권의 이자 지급액은 회계적으로는 배당금이지만 세법에서는 부채에 대한 이자비용으로 본다. 따라서 이자를 지급한 것만큼 과세소득이 줄기 때문에 법인세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전문용어로는 세법상 ‘손금 인정’이 된다고 한다. 즉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영구채권을 자본으로 분류하면 이익이 늘어나는 데도 불구하고 세금은 늘지 않는다.

이상에서 설명한 영구채권은 모두 특정 시기가 되면 발행사가 옵션을 행사해 현금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하고 채권을 회수해 소각하는(즉 채권이 소멸되는) 형태를 띠었다. 이런 종류의 영구채권을 현금결제형 영구채권이라고 부른다. 영구채권이 사용되던 초기에는 이 형태의 영구채권만 존재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전환형 영구채권이 탄생했다. 영구CB와 영구BW가 대표적인 예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 좀 더 널리 사용되는 영구CB에 대해 살펴보자.


현금결제형 영구채권과 전환형 영구채권의 차이

일반적인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CB)란 채권이지만 투자자(즉 채권자)가 보유 중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채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채의 이자를 지급받다가 해당 기업의 주가가 많이 올라 이자를 받는 것보다 주식으로 전환해 매각하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경우 주식으로 전환하면 된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일반 채권보다 한 가지 옵션이 더 있는 것이므로 유리하다. 이에 CB의 발행사 입장에서는 일반 사채를 발행할 때보다 약간 낮은 이자율을 지급해도 채권의 매각이 되므로 이자비용을 아낄 수 있다. 즉 투자자와 발행사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상품인 것이다. 따라서 CB는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큰 기업들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일반 채권을 발행하면 판매가 안되는 위험한 기업의 경우라도 CB를 발행하면 판매가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영구CB는 일반적인 영구채권과 유사하게 발행사가 채권의 상환을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CB다. 상환일이 돼 발행사가 채권을 상환하지 않으면 가산금리가 붙는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현금결제형 영구채권과 동일하다. 그런데 투자자가 상환일 이전 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이 현금결제형 영구채권과 다른 점이다. 즉 전환형 영구채권의 투자자는 특정 기한이 되면 발행사가 옵션을 행사해서 투자금을 상환받을 수 있지만 그 이전에 투자자가 옵션을 행사해서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일반 CB와 마찬가지로 주가가 상승해서 이자를 받는 것보다 주식으로 전환한 후 팔아서 더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다면 영구CB의 투자자는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 가지 옵션이 더 있는 셈이므로 현금결제형보다 전환형 영구채권이 더 유리하다.

따라서 발행사 입장에서 보면 현금결제형보다 전환형 영구채권을 발행할 때 이자율을 좀 더 낮게 책정해도 된다. 또한 현금결제형인 경우 기한이 되면 채권을 상환하기 위해 회사의 현금이 유출된다. 그러나 전환형의 경우 투자자들이 주식으로 전환한 후 시장에서 주식을 매각하면 회사에서는 현금이 유출되지 않는다. 즉 발행사도 전환형 영구채권의 발행이 도움이 되므로 결과적으로 투자자와 발행사 모두 윈윈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최근 들어 현금결제형보다 전환형이 더욱 널리 사용되게 됐다. 영구BW란 투자자가 옵션을 행사하면 채권 발행사가 신주를 발행해서 지급해야 하는 옵션이 부가된 영구채권을 말한다. 이 채권의 장점도 영구CB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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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의 영구채권 발행 사례12

앞에서 이미 소개한 것처럼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발발 이후 경기가 침체되면서 무역량이 줄어든 결과 2010년대 들어 현대상선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다. 당시 현대상선의 재무 상황과 경영 성과에 대해서는 [그림 1]을 참조하기 바란다.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인수한 후인 2016년과 2017년 동안 산업은행과 기타 주주들은 수차례에 걸친 유상증자를 실시해 현대상선에 총 2조2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한다. 또한 현대상선은 영구CB와 영구BW를 발행해 총 3조3000억 원 정도를 조달한다. 이 사채를 인수한 것은 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특수관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해양진흥공사다. 이런 자금조달의 결과 한때 2500%에 육박했던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2017년 말 기준 302%로 크게 개선됐다.

2016년과 2017년도 동안 총 5조5000억 원의 막대한 자금을 조달했는 데도 불구하고 부채비율이 302%에 달했던 것은 [그림 1]에서 알 수 있듯이 2016년 약 4500억 원, 그리고 2017년 1조2000억 원의 막대한 당기순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자금을 조달했던 것이다. 자금조달 결과 2017년 말 현재 현대상선의 자본총계 8969억 원 중 영구채권이 6200억 원으로 67% 비중을 차지한다. 5조5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도 자본총계가 8969억 원이라는 것은 회사가 얼마나 많은 돈을 잃고 있었는지를 짐작게 한다.

당시 재무상태표를 보면 영구채권이라는 계정과목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기타자본 항목 내에 신종자본증권(hybrid securities)이라는 명칭으로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즉 영구채권이란 명칭은 자본시장에서 흔히 사용되지만 회계상으로는 신종자본증권이라고 불린다. 이외에도 미래 기간 동안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전환사채도 수천억 원 규모였다. 2017년 말 당시 산업은행의 지분비율은 13.13%이고 한국선박해양의 지분비율은 4.45%라 둘을 합쳐도 17.58%에 불과했지만 영구채권과 전환사채를 보통주로 전환하면 약 45%의 지분비율을 산업은행이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17년 이후에도 2020년에 이를 때까지 회사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현대상선은 총 466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다. 그 결과 자본 확충을 위해 현대상선은 추가적으로 전환사채와 영구채권을 발행한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발행된 전환사채, 영구CB, 영구BW는 각각 7400억 원, 2조6800억 원, 6000억 원이다. 즉 약 4조 원 가까운 돈이 보통주로 전환될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 발행된 것이다. 이런 자금의 수혈에도 불구하고 2020년 말 기준 회사의 부채비율은 450%에 이르렀다. 그리고 2020년 회사는 사명을 현대상선에서 HMM으로 변경한다. HMM은 Hyundai Merchant Marine의 약자인데 과거 현대상선의 영문명을 회사의 새 이름으로 바꾼 셈이다. 2020년 말 기준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지분율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물량을 모두 합하면 잠재적 지분율은 72%에 달했다.


팬데믹의 발생과 HMM의 회복

2020년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세계 각국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엄청난 돈을 뿌리기 시작했다. 넘치는 돈 때문에 소비가 급증했고, 증가한 소비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각국의 수출입 물량이 늘어났다. 그 결과 해운 물동량이 크게 늘어 그동안 생존의 어려움 속에서 헤매던 해운업계에 희망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수출 주문이 와도 국내에서 해외로 주문받은 물건을 실어 보낼 배가 없을 정도였다. 그 결과 2020년도 중반부터 해운 운임이 급등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HMM은 9000억 원의 영업이익과 12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다. 2021년 들어서는 수에즈운하가 사고로 막히면서 운송 요금이 폭등해 HMM은 무려 7조4000억 원의 영업이익과 5조30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한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이 웬만한 대기업 집단 전부가 벌어들인 이익을 넘어선 것이다.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한진해운이 사라진 덕분에 살아남은 2위 업체 HMM이 반사효과를 본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변하자 오랫동안 오르지 않던 HMM의 주가가 치솟기 시작한다. 2021년 3월 전환사채의 전환권이 행사돼 주식으로 바뀌어서 주식 수가 늘어나는 희석화(dilution)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주가는 계속 올랐다. 2021년 6월에는 4만5000원을 넘기도 했다. 그러다 6월 들어 산업은행이 보유 중이던 일반 CB의 전환권을 행사하자 주식 수가 늘어나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10월 들어서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보유 중이던 6000억 원 규모의 영구CB의 전환권을 행사한다. 이 CB의 전환가액은 주당 7173원이었기 때문에 전환 당시 2만9400이라는 주식의 시가와 비교하면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전환의 결과 엄청난 이익(주당 2만2227원 = 2만9400원 – 7173원)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지분율은 4%에서 20%로 크게 증가했고 산업은행의 지분율은 주식 총수가 늘어남에 따라 25%에서 21%로 감소했다. 그 후 주가는 점차 하락해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2만 원대였는데 2023년 중반기에는 1만5000~1만8000원대에서 움직였다. 2017년부터 2023년 9월까지 HMM의 주가 변화는 [그림 2]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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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말 기준 자본총계 20조 원 중 신종자본증권(영구CB와 영구BW)은 2조7000억 원 정도의 규모로 자본의 대략 13%의 비중을 차지한다. 현 상황에서 보면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영구채권의 전환권을 행사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2023년 10월 말 현재 주가가 1만5000원대이므로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때 각각 채권 가액 7498원 또는 5000원마다 주식 1주를 받게 되므로 큰 이익이 된다. 이 채권을 모두 주식으로 전환하면 산업은행의 지분비율은 21%에서 36%로,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지분비율은 20%에 35.7%로 증가하게 된다. 당시의 시가총액이 7조5000억 원이므로 전환 후 시가총액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대략 5조4000억 원의 가치가 있는 주식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HMM의 인수 대금은 어떻게 결정됐을까?

그러나 주식으로 전환하면 자본 총액이나 회사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주식의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희석화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1주당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따라서 주가 하락을 우려하는 소액주주들이 채권의 주식 전환에 대해 반대한다는 뉴스가 수차례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소액주주들의 반대 여부와 관계없이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고, 그렇다면 주식 전환을 할 것이 분명했다. 주식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이익을 볼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므로 업무상 배임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주가가 떨어져서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나 대신 손해를 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2022년 말부터 산업은행은 HMM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 2023년 9월 하림, 동원 LX그룹이 입찰적격후보로 선정됐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2023년 10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기한이 도래한 1조 원 규모의 영구CB를 보통주로 전환해서 지분 규모를 크게 늘렸다. 회사의 자본가치는 동일하지만 전환 결과 주식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으므로 희석화 현상으로 인해 1주당 주가가 주식 수 증가에 비례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합리적인 예상과는 달리 주가는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8조 원 규모이던 회사의 시가총액이 이날 갑자기 11조 원대로 늘어났다. 이런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보면 자본시장이 효율적이라서 주가가 합리적으로 결정된다는 전통적인 재무관리/경제학 이론이 꼭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굳이 이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면 HMM의 새 주인 결정을 앞두고 HMM의 경영권이 바뀌면 회사가 더 발전될 것이라는 소액주주들의 기대감이 이날 갑자기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전환 이후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계속 보유하고 있는 영구채권의 가치는 대략 2조 원대 초반, 보유하고 있는 주식 58%의 가치는 대략 6조 원대 초반이 됐다.13

이렇게 주가가 변하지 않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자 HMM의 인수에 관심이 있던 기업들은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원래 대략 4조 원대 초반 정도 가치의 주식을 인수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그 주식이 6조 원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경영권을 포함해서 인수를 해야 하므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실제 인수가는 6조 원보다 훨씬 높아야 한다. 국내에서 벌어진 M&A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대략 40~50% 정도라는 점을 그대로 고려하면 인수 자금이 8조~9조 원 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LX그룹은 발을 뺐고, 최종적으로 하림과 동원그룹이 남았다. 그리고 11월 말 열린 최종 입찰의 결과 인수가로 6조4000억 원을 제시한 하림그룹에 HMM이 팔리게 됐다. 동원그룹이 입찰에서 제시한 액수와 불과 수백억 원 정도의 차이만 있다고 하니 두 기업이 얼마나 열심히 분석을 하고 서로의 눈치를 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변화된 산업은행의 모습과 HMM의 매각 결정

그렇다면 두 기업은 왜 HMM 지분 58%의 입찰가를 8조~9조 원이 아니라 6조4000억 원으로 정했을까? 6조4000억 원은 인수해야 하는 주식 58%의 입찰 당시 시가총액 정도다. 즉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10월에 발생한 영구CB의 보통주 전환 이전의 주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한 수치다. 즉 두 기업은 보통주 전환 이후의 주가가 비정상적이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주가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를 고려해 입찰가를 결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HMM을 인수해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결과 성공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많은 이익도 볼 수 있게 됐다.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실패 때문에 본 손실의 상당 부분을 만회하고 명예도 회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입찰이 진행되던 시점 일부 정치권이나 정치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 인사들은 HMM을 매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졸속 매각을 하지 말라는 주장도 있었고, HMM을 팔지 말고 공기업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해운업의 대호황이 다시 오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호황의 결과, HMM을 손해 보지 않고 매각할 수 있게 됐을 때 신속하게 매각하는 것이 더 옳다고 믿는다. 물론 기다리다 보면 회사의 가치가 더 상승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희망만 가지고 언제까지나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산업은행에서 경영권을 인수한 후 21년이 지난 시점인 2022년에서야 매각이 이뤄졌는데 그동안 구조조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경영 성과도 부진해 회사의 가치가 수분의 1로 하락한 바 있다. 사모펀드들이 인수한 기업들이 몇 년 이내에 구조조정을 끝내고 성공적으로 매각되는 것과 대비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기업에 투자됐던 많은 공적자금(즉 국민의 세금)이 낭비됐다.14 심각한 대리인 문제가 발생했고, 정권이 임명한 경영진이나 직원들이 기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극대화하려고 했던 결과라 생각된다. 횡령, 배임, 막대한 보너스 등으로 빠져나간 돈이 엄청났다. 퇴직자의 일자리를 잡아주기 위해 산업은행이 자회사들을 일부러 매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다.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려고 했을 때도 졸속 매각이니 팔지 말라거나 공기업으로 운영하자는 이야기가 동일하게 등장했다. 산업은행의 경영하에 계속 있는 것이 편하니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간 아시아나항공이나 대우조선해양의 경영권을 매각한 것처럼 산업은행은 과거와는 많이 다른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회사를 제대로 경영하는 것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다. 논란의 대상이 됐던 여러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HMM의 매각에 따라 오랫동안 HMM에 묶여 있던 공적자금이 드디어 풀려나게 된 것이다. 산업은행이 지금처럼 신속하게 노력해 앞으로도 부실기업에 투자한 국민의 돈을 낭비하지 않고 신속하게 회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림과 HMM의 미래는?

하림은 HMM의 인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의 유명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와 힘을 합쳤다. 과거 하림은 2015년 또 다른 해운사 STX팬오션을 인수할 때도 JKL파트너스의 도움을 받은 바 있다. STX팬오션은 그 이후 팬오션으로 이름을 바꿨고 하림이 성공적으로 경영을 한 결과 부활에 성공한 바 있다. 이번 인수건에는 JKL이 약 7500억 원을 투자하며 금융사로부터의 차입(즉 인수금융)을 통해 약 2조5000억~3조 원, 자체 보유 자금과 유상증자를 통해 2조5000억~3조 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금액이 너무 많아 이자비용만도 매년 수천억 원이 된다. 따라서 앞으로 하림의 경영 형편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승자의 저주’에 빠질 것이라고 언급한 언론 기사도 있었다.

인수 금융의 규모만 보면 이런 견해가 틀렸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하림이 배당을 받아 인수 금융 상환과 이자 지급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HMM이 1년 내 상환해야 하는 유동부채가 2조6000억 원이 조금 넘는데 10조 원 이상의 현금이 있으므로 유동부채를 상환한 후 7조4000억 원, 그리고 운영자금을 고려해도 6조 원 정도의 여유 현금이 있다. 하림이 58%의 HMM 주식을 인수한 후 HMM이 여유자금 6조 원을 배당이나 유상감자의 형태로 주주들에게 지불한다면 하림은 그중 58%인 3조5000억 원을 받는다. 물론 갑작스럽게 이 돈을 다 빼내간다면 회사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게 된다. 이에 산업은행은 3년간 매년 배당액을 5000억 원으로 제한한 인수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조건대로 5000억 원만 배당한다고 해도 58%인 2900억 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인수 금융에 대한 이자비용을 지급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회사가 불필요한 현금을 다량 보유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다. 따라서 앞으로 HMM은 그 돈으로 배당을 지급하든, 새로운 대규모 투자를 하든지를 선택해서 기업가치를 증진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경기가 풀리고 HMM의 경영 형편도 더 개선된다면 JKL파트너스는 이번에 인수한 HMM 주식을 시장에서 팔아 이익을 실현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도 현재 보유 중인 영구CB를 주식 14%로 전환해 시장에서 매각할 것이다. 시장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가만 오른다면 하림이 JKL파트너스나 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을 되살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과 서방의 대립 등의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지금, HMM의 미래가 꼭 밝다고는 볼 수 없다. 하림이 팬오션을 인수한 후 성공적으로 경영해 발전시킨 것처럼 앞으로 HMM도 잘 경영하기를 바란다. 규모가 작은 팬오션과는 달리 HMM은 국내 최대 규모의 해운사다. 만약 HMM이 망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대규모 해운사가 하나도 없게 된다. 즉 HMM이 어려워진다면 국내 경기에 미치는 효과도 클 것이다. 따라서 하림의 성공이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도 이익이 될 것이다.


영구채권에 대한 공시를 강화해야

마지막으로 영구채권과 관련해 정책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짚어본다. 2022년 12월 31일 기준 HMM의 재무상태표를 보면 총자본이 20조 원이다. 자본항목 내에 자본금, 기타불입자본, 이익잉여금, 기타자본구성요소등의 세부 항목이 등장한다. 구체적인 자본 항목의 모습은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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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자본의 세부 구성항목에 영구채권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구채권에 대해 파악하려면 주석사항을 읽어봐야 한다. 주석사항을 찾아보면 영구채권은 자본의 세부 구성항목 중 ‘기타자본구성요소’라는 항목 3조5000억 원 중 2조7000억 원을 차지한다. 즉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금 2조4000억 원보다도 더 많다. 이렇게 비중이 큰 항목이 기타자본구성요소라는 이름 밑에 숨어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수차례 설명한 것처럼 영구채권은 형식적으로는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실질은 부채에 더 가까운 항목이다. 이런 금융상품을 사용하는 것은 기업의 자유다. 그렇지만 이해관계자들이 이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이런 상품은 재무상태표의 자본 항목에서 별도로 구분해서 표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그래야 주석을 읽지 않아도 회사가 이런 상품을 발행해서 마련한 자금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관계자들이 좀 더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메자닌 증권에 대해 이럴 필요는 없지만 보통주 자본금 대비 일정 비중 이상의 규모라면 중요한 정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정 규모 이상의 경우라면 구분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게 필요하다.

사실 영구채권을 사용하는 기업들은 이런 내용이 이해관계자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관계 당국이 공시 규정을 바꿔 이에 대한 자세한 공시를 의무화한다면 정보의 투명성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최종학 최종학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ac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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