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겸의 Sports Review

스포츠도 경영도, 기술의 생명은 타이밍

299호 (2020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골 넣는 골키퍼’로 유명한 김병지 선수는 불안한 골키퍼라는 평가를 받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뛰지 못했다. 발기술은 좋지만 수비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빌드업(Build-up) 축구가 대세가 되면서 골키퍼에게도 정교한 볼 컨트롤이 요구되고 있다. 빌드업 축구는 골키퍼를 포함해 수비에서부터 플레이를 쌓아 올려 공격하는 전술이다. 수비 시프트(야구), 센터의 3점 슛(농구)처럼 과거 인정받지 못한 전술이나 플레이가 시간이 지나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 비즈니스에서도 후일 위대한 업적으로 꼽히는 발견이 처음엔 인정받지 못하고 오랫동안 묻혀 있는 일이 적지 않다. 스포츠도, 비즈니스도 무엇이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례 1 1946년 7월14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연속경기(doubleheader) 첫 경기에서 11대10, 1점 차로 아깝게 패한다. 거의 매일 경기를 하는 야구에서 한 경기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패배 자체보다 더 힘이 빠진 것은 그 이유였다.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에게 5타수 4안타, 8타점을 빼앗긴 것. 거기다가 홈런을 무려 3개나 헌납했다. 윌리엄스에게 당한 충격이 큰 나머지 선수 겸 감독인 루 부드로(Lou Boudreau)는 두 번째 경기에서 ‘모 아니면 도’인 도박을 감행한다. 2번째 경기에서 윌리엄스가 첫 타석이 돌아오자 좌익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를 2루 오른쪽에 몰아놓은 것이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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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타자인 윌리엄스가 당겨 치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타구가 우익수 쪽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타석에서 4할 타자 윌리엄스가 친 공은 정확하게 위치를 바꾼 유격수 정면으로 날아가 잡힌다. 게다가 이 유격수가 다름 아닌 부드로! 윌리엄스 시프트라고도 불리는, 수비 시프트(defensive shift)의 시초다.

당시 많은 흥미와 관심을 끌었지만 윌리엄스를 상대할 때를 제외하고 수비 시프트를 사용하는 팀은 거의 없었다. 윌리엄스도 수비 시프트를 그리 자주 맞닥뜨리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이 족보 없는 작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등장한 요행수 정도로 보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실제 효과를 증명하기도 어려웠다. 윌리엄스에게 효과가 있는지조차 결론이 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처음 시도했던 경기에서도 윌리엄스가 2타수 1안타를 기록해 고작 한 타석 성공했을 뿐이다. 길게 봐도 윌리엄스의 통산 타율은 시프트를 상대하기 전(.353)과 후(.348) 차이가 없다. 부드로는 시프트의 목적이 기술적인 효과보다는 심리 교란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윌리엄스는 “앞으로 팀들이 이런 짓을 하기 시작하면 나도 오른쪽 타석에서 치겠다”라고 농담까지 해가며 비웃었다고 하니 ‘심리 효과’도 신통치 않아 보였을 것 같다.

또한, 수비 시프트가 도발적 작전이었던 만큼 대응하는 아이디어도 금방 등장했다. 장타 욕심을 버린 3루 쪽 번트는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실제 몇 타석 재미를 본 시카고 화이트 삭스가 수비 시프트를 계속 사용하자 윌리엄스는 좀처럼 대지 않던 번트로 시프트를 깨버린다. 화이트 삭스 감독 다익스(James Dykes)는 즉시 수비를 원위치시켜 버린다. 이렇다 보니 시프트는 전술적 가치보다는 오히려 윌리엄스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보여주는 증거 정도 외엔 별 쓸모가 없어 보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후 50년이 넘게 수비 시프트는 제대로 된 전술이라기보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진풍경 정도에 불과했다.

사례 2 1990년대 초반 한국 축구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스타일로 플레이하는 골키퍼가 나타나 큰 인기를 끈다. 원래 골키퍼는 골문이나 잘 지키면 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 선수는 강하고 정확한 킥과 드리블 능력, 거기에 100m를 11초에 달리는 뛰어난 스피드를 바탕으로 공을 차고 앞으로 나가는 적극적인 전진 수비를 펼쳤다. 1998년 10월24일 K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 울산과 포항이 1대1 동점으로 맞선 경기 종료 40여 초 전, 소속팀 울산이 마지막 프리킥 기회를 얻는다. 김병지는 포항 골대까지 올라와 극적인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골키퍼 최초 필드골 기록을 남긴다. ‘골 넣는 골키퍼’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선수 생활 중 그가 넣은 골이 무려 3골이나 된다.

그런데 다른 골키퍼에겐 없는 발기술이 김병지 선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프로선수로서 인기를 얻는 데는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병지는 선수 생활 내내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선수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다면 골키퍼로서 기량과 성과 면에선 어땠을까? 김병지가 선수 시절엔 공을 자주 몰고 나가 전진 수비를 펼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위험한 플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킥과 발기술을 사용해 볼을 치고 나가는 일이 잦은 김병지는 화려하지만 수비 안정성이 떨어지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재능과 전례 없는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김병지는 선수 인생 최대 시련을 겪기도 한다. 2001년 1월 파라과이와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중앙선 근처까지 볼을 몰고 나갔다가 뺏겨 실점으로 이어질 뻔했다. 이 실수에 당시 국가대표 감독 히딩크는 격노했을 뿐만 아니라 김병지가 불안한 골키퍼라는 최종 평가를 굳힌다. 결국, 축구선수로서 꿈의 무대였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골문만 잘 지키는 이운재에게 밀려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만다. 이후 오랫동안 우리나라 축구에서 김병지 선수 같은 볼 처리 능력과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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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3 NBA 1992∼1993시즌 피닉스 선스의 돈 넬슨(Don Nelson) 감독은 센터 마뉴트 볼(Manute Bol)에게 3점 라인 바깥에서 적극적으로 슛을 던지게 하는,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던 전략을 선보인다. 더군다나 볼은 키가 231㎝나 되는 당시 NBA 최장신 선수였다. 1993년 3월3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경기에서 볼은 겨우 24분 뛰면서 3점 슛을 6개(12개 시도)나 성공시키며 10점 차 승리에 이바지하기도 한다. 한국 프로농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금은 연예인으로도 크게 성공한 서장훈은 선수 시절 3점 슛을 경기당 3개 이상 시도한 최초 장신 센터였다(207㎝). 서장훈은 통산 3점 슛 성공률이 36%로 동시대 전문 슈터 문경은 SK 감독(39.5%)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그러나 센터나 장신 포워드가 3점 슛을 많이 던지는 것은 문제가 많고, 지는 농구라는 것이 농구계 정설이었다. 우선 신장이 큰 선수에 대한 고정관념(stereotype)이 발목을 잡았다. 키가 클수록 모든 기술의 정교함이 떨어지기 때문에 3점 슛도 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니 원래 키 큰 선수가 더 잘하게 돼 있는 공격 기술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 팀 전술 면에선 더욱 비효율적이라는 게 상식이었다. 확률이 더 높은 2점 슛 대신에 3점 슛을 택할 이유가 없으며, 큰 선수가 골대 먼 곳에서 슛을 던지니 공격리바운드에 불리하고, 골대 가까이에서 공격하는 것보다 파울을 유도해낼 확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편 장신 선수와 골 밑에서 적극적 몸싸움을 피하는 것이니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승부욕이 약한 선수로 비쳤다. 서장훈 선수의 경우 “진짜 센터가 아니고 외곽 슈터”라는 비아냥을 사기도 했다. 마뉴트 볼 이후 20년 가까이 센터가 한 경기에서 3점 슛을 10개도 넘게 던지는 이런 깜짝쇼를 다시 시도하는 선수나 팀은 거의 없었다. KBL에서도 서장훈처럼 3점 슛을 자주, 정확하게 던지는 센터나 장신 포워드는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종목도, 나라도 각각 다르지만 셋 다 세상에 조금 미리 태어난 사람이나 아이디어(concept of prematurity)에 대한 스포츠 사례다. 이들 모두 세상에 처음 등장하고 오랜 시간 후에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다. 수비 시프트는 야구에서 2010년 이후 가장 중요한 전술 혁신(strategic Innovation)으로 꼽히고 있다. 나이가 올해로 일흔을 훌쩍 넘겼는데 혁신 대접을 받으니 방부제 외모를 가진 최강 동안인 셈이다. 수비 시프트는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핵심 수비 전략이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머니볼(Money Ball)’ 이후 데이터 기반 야구 ‘세이버메트릭스’가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효과와 중요성에 대한 냉소와 부정은 간데없다. 사용빈도와 영향이 얼마나 커졌던지 메이저 리그에선 야구 보는 재미를 떨어뜨린다며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자는 주장이 큰 호응을 받고 있을 정도.

빌드업(Build-up) 축구는 세계적인 대세다. 빌드업 축구는 건물을 짓듯이 수비에서부터 플레이를 차근차근 쌓아 올려 공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빌드업 축구에서 골키퍼는 단지 최후방에서 골문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시작하는, 즉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마누엘 노이어와 김병지 선수같이 정교한 볼 컨트롤과 빠른 드리블 능력을 이용해 전진 수비가 가능한 골키퍼가 이 전술에 이상적이다. 얼마 전, 파울루 벤투(Paulo Bento)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이 러시아 월드컵 스타 조현우를 붙박이 선발로 기용하지 않는 이유가 빌드업에 필요한 능력이 약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김병지 선수가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공을 몰고 나가는 것을 좋아해 히딩크 감독에게 미운털 제대로 박혀 대표팀 주전 자리를 내준 지 20년이 지나 상황이 정확하게 역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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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칼 앤서니 타운스(Karl-Anthony Towns)는 NBA에서 공격력이 가장 우수한 센터로 주목받고 있는 선수다. 키가 213㎝나 되는 이 선수가 가장 인정받는 공격 기술은 다름 아닌 3점 슛이다. 마뉴트 볼이 한 경기에 12개 3점 슛을 시도한 후, 210이 넘는 장신 센터 중 10개 이상 3점 슛을 시도한 선수는 30년 가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올 시즌에 타운스는 한 경기가 아니라 경기당 평균, 즉 매 경기 3점 슛을 10개씩 던져댄다. 성공률이 40%가 넘으니 많이 안 쏘면 오히려 손해일 정도다. 타운스뿐만이 아니다. 현재 세계 농구는 3점 던지는 센터(Stretch Big Men) 전성시대다. 3점 슛이 좋은 센터들이 멀리 나와 코트를 넓게 사용하면서 농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라졌고, 다양한 움직임과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 덕분에 농구는 팬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주고 재밌어졌다. 반면에 체격만 산더미만 하고 슈팅력과 다양한 공격 기술을 갖추지 못한 센터는 이제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제 장신 선수가 3점을 쏘는 것은 비난받는 일이 아니라 못하면 안 되는 일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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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면 진작 활용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이제 수비 시프트, 전진 수비, 센터가 3점 쏘는 것은 중요하고 자연스럽다. 이들이 과거에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세상에 수십 년 미리 나왔기 때문이다. 즉, 시기상조였다. 물론 이런 일이 스포츠에만 국한됐을 리 없다. 비즈니스에서도 후일 위대한 업적으로 꼽히는 발견이나 발명이 처음엔 인정받지 못하고 빛을 볼 때까지 오랫동안 묻혀 있는 일이 적지 않다. 다만 조금 일찍 나왔을 뿐인데 사람들이 필요성과 중요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영국 수학자 찰스 배비지(Charled Babbage)는 1837년에 디지털 컴퓨터를 고안해 냈지만 그 진가를 알아보는 투자자를 찾지 못해 개발을 끝마칠 수 없었다고 한다. 전기차는 가솔린,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차보다 먼저 1830년대에 고안됐지만 그 후 150년이 넘게 자동차 업계에서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2007년에 아이폰(iPhone)이 채용한 터치 컴퓨팅(Touch Computing) 기술을 발명한 것은 애플도, 스티브 잡스도 아니다. 1980년대 초반에 아이디어 정도가 아니라 이미 시제품이 나와 있었다. 30년 가까이 그게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뿐이다.

스포츠도, 비즈니스도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무엇이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타이밍이 전부다(Timing is everything)’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다행히 비즈니스에서 적절한 타이밍을 찾는 데 필요한 조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사람들 마음에 새로운 개념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전문가는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연구에 근거해 “인간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쾌해하고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거나, 이런 심리적 저항이 적은 개념이나 제품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극적으로 주변 의견을 구하며,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고, 실패를 분석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라’와 같은 제안들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배우고 소비자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발명은 하루아침에 창조하는 것도, 미래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가까운 곳에 보란 듯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기차의 대명사가 된 테슬라는 전기차를 발명하지도, 획기적인 전기차 기술을 개발하지도 않았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 때가 무르익은 친환경 기술이 전기차임을 발견했고 재빨리 행동해 남들보다 조금 먼저 기회를 잡았을 뿐이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ykim22@snu.ac.kr
필자는 서울대 체육교육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플로리다대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주립대에서 7년간 재직하며 종신교수직(tenure)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등 국제 저명 학술지 편집위원과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European Sport Management Quarterly』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논문 100여 편을 발표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5호 New Era of Data Business 2020년 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