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사람과 물류의 이동을 아우르는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 완전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기차(EV) 플랫폼이 개발되면 차체를 자유롭게 탈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동일 플랫폼을 가지고 사람이 집중되는 시간에는 승용차로, 물류가 집중되는 시간에는 화물차로 그때그때 차체만 바꿔 전천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플랫폼의 활용도와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모빌리티 산업은 사람의 이동 관점에서 보는 MaaS(Mobility as a Service, 서비스형 모빌리티)나 물류 이동 관점에서 보는 LaaS(Logistics as a Service, 서비스형 물류)보다 상위의 개념인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 서비스형 운송)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산업과 기술의 방향이 디지털을 중심으로 변하면서 자동차를 비롯한 많은 ‘탈 것’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기존 자동차 산업을 변화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도록 압박하고 있다. 과장이 아니다. 이미 소비자들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연동되지 않는 차는 구매목록에서 제외시키고 있고, 고속도로주행보조(Highway Driving Assist, HDA) 같은 세미 자율주행 기능이 없으면 장시간 운전에 피로를 느낀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우버나 디디추싱, 그랩, 올라, 카림 등으로 자동차를 호출하고 라임, 빔, 윈드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micro mobility) 서비스로 라스트 마일(last mile) 이동을 해결한다. 마이크로 모빌리티부터 대중교통까지 모든 것을 통합한 멀티모달(multi-modal) 서비스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기차만 생산하는 미국의 테슬라도 숱한 고비를 넘기고 SEXY(모델 S, 3, X,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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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모두 공개하거나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사이버 트럭(Cyber Truck)까지 선보인 테슬라는 중국 생산공장 가동에도 돌입했다. 오랜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면서 100년 전통의 GM과 포드의 시가총액을 차례로 넘어섰을 뿐 아니라 이제는 이 두 업체 시가총액의 합마저 두 배 가까이 추월할 기세다.
자동차의 디지털 혁신 - CASE자동차의 혁신이 기존 내연기관 부품 3만여 개 중 1만1000개를 없애버리는 전동화(Electrification)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연결(Connectivity), 자율주행(Autonomous), 공유(Sharing)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다 보니 대부분 자동차 기업이 대응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에 없던 신기술에 대응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각각의 변화마다 새로운 이종 산업 경쟁자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최근 CES 2020에서 퀄컴이 저전력 고사양의 자율주행 플랫폼인 스냅드래곤 라이드(Snapdragon Ride)를 선보인 것이나 소니가 마그나(Magna)의 도움으로 비전-S(Vision-S)라는 완성도 높은 콘셉트카를 출품한 것, 중국에서 신에너지차(New Energy Vehicle, NEV) 정책의 보조금 수령을 위해 등록한 전기차 업체만 480여 개에 달한다는 사실만 봐도 엄청난 수의 경쟁업체가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 경쟁 심화는 더욱 확산될 것이란 데 있다.
자동차 산업은 3만여 개에 달하는 부품 공급망관리(SCM) 능력과 연구개발(R&D) 능력, 막대한 자본지출(CAPEX)과 고도의 조립기술, 글로벌 딜러망 및 AS 네트워크, 제품 하자로 인한 사고 대비 엄청난 충당금이 필요한 산업으로 진입장벽이 정말 높았다. 하지만 이제 다양한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ICT 기업과 플랫폼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업체들이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진입자들에게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산정해주면서 자금 부담까지 낮춰주고 있다. 이런 환경의 급속한 변화 때문에 기존 업체를 멸종을 앞둔 공룡으로, 새로운 경쟁자들을 운석이나 포유류로 비유하기도 한다.
필자가 중요한 관찰 포인트로 여기는 것은 여기에 더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특성으로 인한 ‘공간의 변화’다. 전기차는 (면적과 무게를 가장 많이 차지할 뿐 아니라 기술장벽이 가장 높은) 동력생성 장치인 엔진과 동력 전달 장치인 트랜스미션이 불필요하다. 테슬라 전기차의 보닛을 열면 엔진과 트랜스미션이 놓여 있어야 할 공간에 텅 빈 트렁크룸만 있다. 배터리는 차 바닥에 넓게 깔리고, 주행 관련 부품들은 바퀴 부근으로 집중된다. 따라서 앞으로 전기차 플랫폼은 배터리와 구동, 조향, 완충, 제동의 4대 기능을 담당하는 휠모듈(wheel module)이 일체형으로 제작될 것이다. 현재의 변화를 종합해볼 때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기차(EV) 플랫폼(예: 폴크스바겐 MEB 플랫폼, 도요타 e-TNGA 플랫폼, 리비안 EV 플랫폼 등)은 별도로 판매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림 1)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가의 배터리 셀 가격을 고려하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기 위해 생산 수량을 크게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은 얼마든지 성능 좋은 전기차 플랫폼을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율주행 역시 Level 5의 완전자율주행이 현실화되면 인간-기계의 인터페이스로 차내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해 왔던 조종석(Cockpit)이 사라지는 대신 카메라, 초음파센서, 레이더,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 조명 감지 및 범위 지정) 등으로 구성된 센서 모듈과 자율주행 연산 플랫폼(AV Computing Platform), 모뎀,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이 장착돼 인간의 인지-판단-제어를 대신할 것이다. 이렇게 본격적인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하면 현재의 복잡한 구조는 두께가 매우 얇고 심플한 센서 퓨전 시스템으로 통합되고, 기존의 전력/신호용 배선(wiring harness) 다발은 기성형된 회로로 쉽게 부착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시스템이 진보하면 로봇에 의한 자동 생산 공정이 가능해 대량 생산에 적합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능이 동시에 구현되면 엔진룸과 조종석이 사라지게 된다. 지금처럼 보닛과 트렁크를 확보해 적극적으로 충돌을 회피하려는 충돌 안전 설계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는 차량의 공간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껏 4인이 탑승하던 자동차의 공간은 8∼12명이 탈 수 있도록 넓어질 것이고, 1톤 트럭에 필적하는 탑재 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우버풀(Uber pool)같이 합승 시 요금이 할인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현재의 우버나 택시보다 월등히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CASE(Connectivity, Autonomous, Sharing, Electrification) 4가지 변화는 각기 기술 기반과 성질이 다르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며 결국엔 하나의 완성차에 다 녹아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술들로 인해 변화된 공간과 용도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 형태를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