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lumn : Behind Special Report

사람 살리는 AI로 이끄는 길

285호 (2019년 11월 Issue 2)




인공지능(AI) 관련 주제를 다룬 이번 호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스페셜 리포트 콘텐츠를 준비하면서 유독 생각이 났던 인물이 있다. 앨런 튜링 같은 ‘수학자’도, 제프리 힌튼 같은 ‘컴퓨터 과학자’도 아닌, 바로 한국 최고의 지성이자 ‘인문학자’인 이어령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었다.

알파고와 이세돌 간 대국이 열렸던 2016년 여름 어느 날, 그를 만났다. 바둑 천재 이세돌의 패배를 두고 “이제 AI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그는 “AI가 위험한지, 아닌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 자체가 지식인들의 위선”이라고 일축했다. AI라는 말(馬)의 등에 올라타 말을 이용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말과 사람이 직접 경주해 인간이 졌다는 당연한 결과를 놓고 호들갑을 떠는 게 답답하다는 설명이었다.

AI를 경쟁이 아닌 활용 대상으로 볼 때 중요한 건 뭘까. 결국 AI 시대에도 핵심은 ‘사람’이란 결론이 나온다. 어떤 대장장이는 자신의 기술을 활용해 논밭을 가는 호미와 괭이를 만들지만, 어떤 대장장이는 사람을 죽이는 칼과 창을 만든다. 같은 칼이라도 의사가 들면 생명을 구하는 도구가, 강도가 들면 생명을 해하는 흉기가 된다. 같은 기술, 같은 물건이라도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목적과 의도,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지는 법. AI 시대라고 뭐가 다를까.

올해 초 이 이사장을 다시 만났다. 당시 그는 “AI 기술 자체보다 중요한 건 이를 어떠한 틀 안에서 바라보고 활용하느냐”라며 “‘생명자본주의(vita capitalism)’ 관점에서 AI 기술을 활용해 사람을 살리는 일에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DBR 스페셜 리포트에서 다뤄진 다양한 AI 활용 사례 중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케이스는 이른바 AI 농업 대회인 ‘자율온실국제대회(Autonomous Greenhouses International Challenge)’다.

물론 AI의 기술적 잠재력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선 AI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한 다른 사례들(예: 범죄자 색출, 설계사 채용, 직원 맞춤형 트레이닝 설계 등)이 훨씬 극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적으로 훌륭하다 해도 이 사례들은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일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 AI가 인간 농부들과 온실에서 토마토 키우기 실력을 겨루는 자율온실국제대회는 다르다. 당장 내가 먹을 수 있는, 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싱싱한 농산물을 AI가 만들어 낸다. 생명자본을 위한 AI 활용의 대표적 예다.

주지하다시피 네덜란드는 농업 강국이다. 우리나라 면적의 약 40%에 불과한 땅덩이임에도 농식품 수출량은 한 해 130조 원 규모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첨단 시설을 갖춘 거대한 유리 온실은 네덜란드 농업의 주요 원동력 중 하나. 여기에 AI를 접목해 생산성을 더욱 높인다면 인류가 직면해 있는 식량 안보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게 자율온실국제대회가 마련된 배경이다.

대회 주최 기관은 네덜란드 와게닝겐대학과 중국 IT 기업 텐센트. 와게닝겐대학이야 세계적인 농업 대학이니 의아할 게 없지만 대체 텐센트는 왜 AI 농업 대회에 관심을 갖는 걸까. 이에 대해 텐센트의 최고탐색책임자(CXO, Chief eXploration Officer) 데이비드 왈레스타인은 “인류가 직면한 식량 부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술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일념하에 분야를 막론한 ‘문샷 프로젝트(moonshot project,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는 혁신적 신규 사업)’ 발굴을 책임지는 CXO다운 답변이다. 텐센트가 CXO 조직을 실리콘밸리에 두고 있어 미국에 본거지를 두고 일하는 그는 “텐센트는 위챗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을 때에도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것인가가 아닌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사업을 했다”며 “자율온실국제대회 역시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기에 시작했지 당장 이를 통해 돈을 벌려는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물론 전 세계 스마트 농업 분야 기업들을 대상으로 텐센트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장기 목표는 갖고 있지만 그건 정말 먼 미래의 일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당장 계산기를 두드려 보기에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에 관심을 갖는다는 텐센트의 행보는 인상 깊다. 이런 AI 활용이야말로 인류를 위협하기보다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수 있어서다. 결국 AI와 함께할 미래를 유토피아로 만들지, 디스토피아로 만들어갈지는 전적으로 우리,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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