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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카카오페이지의 콘텐츠 플랫폼 혁신 전략

“기다리면 무료… 콘텐츠 보는 시간을 판다”
발상 전환 통해 몰입하는 소비 경험 선사

배미정 | 278호 (2019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카카오페이지가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이자 슈퍼 IP 기업으로 성장한 노하우를 분석한다.
1. 재밌는 스토리를 발굴하고 모바일 게임 애니팡을 벤치마킹한 결제 모델 ‘기다리면 무료’를 결합해 유료 콘텐츠 거래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켰다.
2. 새로운 결제 모델을 통해 사용자에게 짧은 호흡으로, 기다리지 않고 작품을 몰입해서 보는 콘텐츠 소비 경험을 제공했다.
3. IP 투자와 2차 제작을 통해 콘텐츠의 가치를 극대화함으로써 CP가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임희진(서울대 지리교육과 4년), 이승빈(숙명여대 경영학부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신이 빚어낸 마스터피스, 이 세상 내 맘대로 안 되는 건 없는 유일그룹 부회장 이영준. 9년 동안 그런 이영준의 옆에는 개인, 수행, 의전 비서, 때로는 운전기사, 때로는 파티 파트너까지 모두 소화했던 능력 만점 외모 만점, 비서계의 명장, 김미소가 늘 곁에 있었다. 환상의 콤비로 무려 9년간 함께했던 두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김 비서가 폭탄선언을 던진다. 저, 이제 그만둘게요! 김 비서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1


2013년 로맨스 소설 커뮤니티 로망띠끄에서 최초 연재되고 책으로도 출간된 웹 소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2014년 카카오페이지에 다시 연재되면서 단숨에 밀리언셀러로 등극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은 로맨스 소설이 카카오페이지 플랫폼을 통해 대중적인 상품성을 증명한 것이다. 1화부터 “김 비서가 왜 그러지?”라는 이영준 부회장의 물음표로 끝나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는 당찬 여주인공의 똑 부러진 대사, 완벽주의 재벌 부회장의 허당 매력이 어우러져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스토리의 상품 가치를 발견한 카카오페이지는 소설을 웹툰으로 제작했고 무려 하루 만에 100만 조회 수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대한민국 최초로 609만 명이 본 순정 만화로 등극시킨 것이다. 또 박서준, 박민영 주연으로 2018년 방영된 동명의 tvN 드라마는 그해 웹툰 원작 드라마 중에서 가장 높은 최고시청률인 8.7%를 기록했다. 웹툰과 드라마의 흥행으로 다시 주목받은 소설은 2019년 7월 현재 카카오페이지에서 누적 기준 209만 고객이 읽고 있다. 한 편의 ‘스토리’가 벌어들인 누적 매출액(소설과 웹툰)이 무려 100억 원이다. 웹 소설이 웹툰과 드라마로 제작돼 인기를 끌면서 다시 원작 소설까지 재흥행시키는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본업이 약사로 취미 삼아 로맨스 소설을 썼다는 원작자 정경윤 작가는 현재 전업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가 발굴하고 개발해 상품 가치를 극대화한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 이진수 카카오페이지 대표가 직접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적극적으로 민 작품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소설 첫 화를 읽자마자 김 비서가 왜 그러는지 너무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됐다. 로맨스 소설인데 남자가 읽어도 재미있다. 남자도 즐길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이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지는 이 밖에도 ‘달빛조각사’ ‘황제의 외동딸’ 같은 인기 웹 소설을 줄줄이 웹툰으로 제작해 흥행시킴으로써 플랫폼의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했다. 소설 스토리를 웹툰으로 제작한 일명 ‘노블 코믹스(novel comics)’가 인기를 끌면서 유명 작가들이 카카오페이지를 찾기 시작했고, 유저들 사이에 팬덤이 확산되면서 카카오페이지는 국내 최대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현재 카카오페이지에서는 개인 작가, 출판사 등 1300개 이상의 콘텐츠 공급자(CP)들이 제공한 6만 개 이상의 누적 콘텐츠가 소비되고 있다. 하루 평균 조회 수가 약 4000만 회에 달한다. 카카오페이지는 플랫폼으로서 콘텐츠를 유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만화, 소설 출판사 등 CP에 투자해 오리지널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고, ‘김비서가 왜 그럴까’처럼 소설을 웹툰과 드라마, 영화 등으로 2차 제작함으로써 플랫폼을 IP 비즈니스의 허브로 발전시키고 있다.

카카오페이지가 이처럼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에서 IP 비즈니스로 진화할 수 있었던 비결은 유료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의 탄탄한 수익모델에서 찾을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 특히 콘텐츠 플랫폼은 ‘콘텐츠=공짜’라는 인식 때문에 수익 모델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플랫폼 기업은 콘텐츠를 무료로 서비스하는 대신 트래픽을 확보해 광고 수익을 추구하는 우회로를 택한다. 하지만 카카오페이지는 처음부터 콘텐츠의 가치를 극대화함으로써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수익 모델을 개발해왔다. 카카오페이지는 현재 카카오의 자회사다. 하지만 시작은 포도트리라는 모바일 콘텐츠 전문 스타트업으로 이진수 대표가 2010년 창업했다. 김범수 당시 아이위랩 대표가 카카오를 세우기 전부터 눈여겨보고 투자한 회사지만 카카오와는 엄연히 별개 회사였다. 이 대표는 10년 전 아이폰이 막 출시돼 모바일 앱 시장이 태동하던 때부터 모바일 콘텐츠의 가치에 주목하고 유료 콘텐츠 기반의 수익 모델에 천착했다.

하지만 콘텐츠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이진수 대표는 생각했던 비즈니스 모델이 실패를 거듭하자 ‘아, 역시 콘텐츠는 안 되는구나’라고 좌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적자에서 벗어나려고 초창기부터 회사에 몸담았던 직원들을 구조 조정하는 아픔도 겪었다. 수차례의 생존 위기에 놓였던 카카오페이지가 부활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게임 애니팡의 성공이었다. 카카오페이지는 애니팡의 비즈니스 모델을 벤치마킹한 ‘기다리면 무료’ 비즈니스 모델을 국내 최초로 콘텐츠 업계에 적용해 성공시킴으로써 수익 기반을 확보하고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카카오페이지는 전신인 포도트리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면서 콘텐츠 자체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혁신을 이끌고 있다. DBR이 카카오페이지의 이진수 대표, 차상훈 부사장 등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카카오페이지가 유료 콘텐츠 플랫폼으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를 분석했다.



아이폰 출시 2주 만에 모바일 콘텐츠 창업 결심

서울대 경영학과 92학번인 이진수 대표는 동기들과 달리 사회 초년생 때부터 창업을 꿈꿨다. 1999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커뮤니티 포털 사이트 프리챌의 초창기 멤버로 들어간 것도 IT 벤처 창업을 준비하겠다는 일념에서였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의 돌풍을 일으켰던 프리챌은 창업 3년 만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대표는 2004년 국내 최대 포털인 NHN으로 옮겨 글로벌 사업과 마케팅총괄 등을 맡았다. 그가 일하는 동안 NHN은 1조 원대에서 10조 원대 회사로 급성장했다. 이진수 대표는 “망한 회사, 잘나가는 회사를 모두 경험하면서도 내 목표는 오로지 하나, 창업이었다. 월급, 승진보다 나중에 같이 창업할 후배들을 모으는 게 나한텐 더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이진수 대표가 본격적으로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2009년 아이폰의 국내 출시였다. 아이폰 앱스토어는 웹과는 완전히 다른 콘텐츠 제작과 소비 환경을 예고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모바일 앱 개발자가 많지 않았다. 이 대표는 콘텐츠를 모바일 앱 포맷에 맞게 최고 수준으로 개발하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온라인 게임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처럼 말이다. 깃발을 먼저 꽂는 자가 콘텐츠 시장을 선점할 것이다. 이 대표는 2009년 12월, 아이폰이 국내 출시된 지 2주가 채 안 됐을 때 NHN을 퇴사한다. 그리고 NHN 시절 상사로 모셨던 김범수 의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당시 김 의장도 NHN에서 나와 오늘날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을 창업하고 카카오톡 등을 개발해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하던 때였다. 김 의장도 모바일이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콘텐츠 영역에서도 파괴적인 혁신을 가져올 것이란 이 대표의 확신에 동의했다. 그리고 아이위랩에 들어와 창업을 준비하라고 제안한다.

김 의장의 제안을 수락한 이 대표가 아이위랩 부사장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카카오톡이 출시됐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박이었다. 마케팅이고 뭐고 할 필요도 없이 카카오톡은 앱스토어에 올라가자마자 메신저 부문 무료 앱 1위로 등극했다. 출시된 지 6개월이 채 안 돼 가입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아이위랩에서 카카오톡 업무와 창업 준비를 병행하던 이진수 대표는 카카오톡이 기대 이상으로 흥행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새로운 시장에 깃발을 먼저 꽂아야 하는데 이대로 가다가 창업은 물 건너갈 것만 같았다. 김범수 의장이 이진수 대표에게 “그냥 톡에 남아서 톡에서 번 돈으로 나중에 창업하면 되지 않겠나. 아이위랩에 투자하라”고 권유하던 차였다. 하지만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이진수 대표의 창업 의지는 강력했다. 이 대표의 비전에 공감한 김범수 의장이 투자하겠다고 나섰고, 이 대표는 결국 아이위랩을 떠나 카카오페이지의 전신인 포도트리를 창업하게 된다.

만약 당시 이 대표가 아이위랩에 남아서 콘텐츠 비즈니스를 설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대표는 당시 카카오톡이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면 안 되는 이유로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당시 카카오톡은 트래픽을 늘리는 게 우선이지, 별도로 자체 콘텐츠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둘째, 아이위랩 멤버들의 DNA가 콘텐츠 비즈니스와 맞지 않았다. 김범수 의장은 콘텐츠 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에 공감했지만 다른 멤버들은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가 가져올 커뮤니케이션 혁명에 투신하던 때였다. 카카오톡의 아성 속에서 멤버들에게 콘텐츠 비즈니스를 해보자고 설득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뜻이 통하는 인재들과 함께 콘텐츠 비즈니스에 올인하겠다는 생각으로 고달픈 창업의 길을 택했다.


세계 최고 수준 앱 개발사 창업, 오버슈팅의 한계에 부딪히다

포도트리는 전 세계적으로 누구나 아는 콘텐츠를 생동감 있는 앱으로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스타트업이지만 처음부터 일본, 미국 등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 2011년 3월 앱이 출시되기도 전에 2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김범수 의장의 초기 투자와 당시 IT 업계에서 뛰어난 역량을 자랑하던 개발자들이 뭉친 데 따른 기대감이 반영됐다. 이진수 대표는 창업 초반부터 속도감 있게 개발을 밀어붙였다. 이 대표는 “우리는 세계 최초로 100억 원 ‘적자’를 내는 게 목표였다. 그만큼의 ‘적자’를 감당할 정도로 단시간 내 빠르게 성장하자고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세계 인물 학습만화 ‘who?’ 시리즈, 어휘 학습 애플리케이션 ‘super 0.99’ 같은 앱들이 줄줄이 한국과 일본 앱스토어에 출시되자마자 유료 앱 1위를 차지했다. 어학, 유아교육, 유틸리티, 헬스케어 등 분야를 막론하고 앱을 개발해 출시했다. 창업 1년이 채 안 된 포도트리가 출시한 앱의 개수는 무려 50개가 넘었다. 글로벌 유료 앱 시장에서 포도트리는 금세 독보적인 1위 앱 개발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1등 앱이 늘어나는 데도 불구하고 정작 회사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UX, UI, 엔지니어링 등의 분야에서 업계 최고 인재들이 모였기에 제작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앱스토어에서 앱을 유료로 파는 게 전부였다. 세계 최고 수준급의 앱을 만들어도 0.99달러 가격으로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앱 다운로드는 나날이 늘어났지만 재방문과 사용빈도는 점점 떨어졌다. 당시만 해도 앱스토어에 별도 추천 혹은 광고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앱스토어의 상위 랭킹에 노출되려면 매출 대비 높은 광고비를 집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비용 마케팅 구조가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앱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정작 킬러 앱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앱이 늘어나는데 수익성은 떨어지는, 일종의 규모의 불경제(diseconomies of scale) 문제에 빠졌다. 직원들은 과도한 업무에 따른 번아웃에 시달렸다. 외부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앱을 만드는 회사라고 칭찬이 자자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거지?” 하는 회의감이 퍼져나갔다. 투자자들의 의구심도 커졌다. 공교롭게도 그해 5월 삼성벤처투자로부터 약속받은 투자금 30억 원의 집행이 자꾸 연기됐다. 12월에는 회사 통장 잔고가 800만 원밖에 안 돼 직원들 월급조차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막판에 투자금이 입금돼 파산 위기는 면했지만 이진수 대표는 악몽 같았던 그때를 잊지 못했다. “포도트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앱 제작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전략만 있었지 비즈니스 모델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앱의 과도한 고급화에 집착하면서 오버슈팅(overshooting)2 의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포도트리가 스스로에게 내린 진단이었다.

다음 해인 2012년 전 직원이 모인 새해 첫 회의에서 이 대표는 ‘플랫폼’ 회사로 방향 전환을 전격 발표한다. 창업 1년 반 만에 앱 개발사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지 않고도 참여자와 시장 규모에 비례해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이다. 마침 카카오톡이 이모티콘, 선물하기, 게임하기 등의 서비스를 출시해 모바일 플랫폼 비즈니스의 허브로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포도트리는 카카오톡과 연동하는 콘텐츠 플랫폼 서비스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 콘텐츠 오픈마켓 출시,수익 모델 부재로 실패

이진수 대표가 그린 큰 그림은 앱스토어에서 개발자와 소비자가 거래하듯 CP와 개인이 콘텐츠 상품을 자유롭게 거래하는 개방형 장터였다. 포도트리가 간편한 모바일 맞춤형 저작 툴을 제공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콘텐츠를 제작해 업로드할 수 있도록 오픈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CP에서, 콘텐츠 거래를 매개하는 플랫폼 사업자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콘텐츠의 제작 형태, 방식, 상품 패키징 등을 포도트리의 저작 툴로 표준화하면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로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카카오톡의 트래픽과 친구 추천 장치 등을 활용하면 유저도 금방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포도트리는 카카오와 이 같은 플랫폼 구축 내용을 담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국내 최초의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카카오가 전면에 나서자 콘텐츠 업계가 들썩였다. 사업자 간담회에서 무려 800여 개의 CP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CP들 입장에서는 유료 콘텐츠 거래의 장을 만들겠다는 카카오의 구상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수익 배분 방식도 CP들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허영만 작가는 신작 ‘식객2’를 카카오페이지에 독점 연재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텐센트 등 기관투자가들도 140억 원을 펀딩하면서 새롭게 출범하는 플랫폼에 기대감을 높였다.

2013년 4월, 드디어 첫 성적표가 공개됐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 국내 최초로 론칭된 모바일 콘텐츠 오픈마켓 플랫폼 ‘카카오페이지’는 쓴잔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첫날 100만 원을 기록한 매출액은 둘째 날 80만 원, 셋째 날 50만 원으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진수 대표는 론칭 3일 만에 전 직원을 소집해 솔직하게 실패를 인정했다. “우리가 틀렸다. 이 플랫폼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지켜보자는 직원도 있었지만 론칭 일주일 만에 하루 매출은 10만 원대로 고꾸라졌다. CP들 사이에서는 “카카오페이지에서 하루에 3만 원어치가 팔리면 톱 5 랭킹에 들어간다더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플랫폼은 구축했지만 가장 중요한 참여자인 CP와 유저가 예상한 대로 움직이지 않은 게 문제였다. 카카오페이지는 오픈마켓이 열리면 CP들이 자유자재로 다양한 콘텐츠를 올리고, 유저들은 그중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 결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저는 콘텐츠가 마음에 들면 카카오톡을 통해 자발적으로 친구들에게 추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콘텐츠가 많다고 해서 유저가 자발적으로 찾아와 결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백 개의 콘텐츠가 올라왔지만 유저들은 정작 자기가 원하는 콘텐츠를 고르기 힘들어했다. 특히 콘텐츠의 수준과 지속성을 신뢰하지 못한 유저들은 선뜻 결제에 나서지 않았다. CP들의 콘텐츠 수준도 들쑥날쑥했다. 일부 연재를 시작한 CP들은 중간에 업로드를 연기하거나 중단하기도 했다. 이진수 대표는 “카카오의 트래픽과 연결되면 무조건 잘되겠지 싶은 막연한 기대감이 패착이었다”며 “CP도, 유저도 낯선 모바일 플랫폼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플랫폼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됐다.


“돈은 애니팡처럼 벌어야 한다”

1. 국내 최초 이용권 개념 도입해 작품 분절
야심 차게 출범한 플랫폼이 완벽히 실패했지만 좌절하는 데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이진수 대표는 론칭 한 달 후인 5월 CP들에게 플랫폼 개편을 알리는 콘퍼런스를 열기로 계획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대표가 김범수 의장과 상의하던 중 자연스럽게 당시 가장 핫한 게임이었던 애니팡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애니팡은 퍼즐 세 조각을 연결하는 단순한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단시간에 남녀노소의 사랑받는 국민 게임으로 등극했다. “돈은 애니팡처럼 벌어야 하는데 말이야. 애니팡은 계속 하트를 충전해주면서 사람들을 결제할 때까지 붙잡고 있잖아. 사람들이 콘텐츠에 결제를 안 하는 게 콘텐츠가 재미없어서일까? 콘텐츠도 게임처럼 결제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김 의장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은 이 대표는 카카오페이지 서비스를 애니팡 서비스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보기로 구상한다.

제일 먼저 벤치마킹한 아이디어가 바로 회 차별 이용권 비즈니스 모델이다. 애니팡은 보유한 하트를 소진하고, 충전하면서 이어가는 게임이다. 애니팡의 하트처럼 개별 작품에도 이용권의 개념을 적용해 이용권을 충전해서 열람하는 소비 패턴을 설계했다. 당시만 해도 웹툰이나 웹 소설 모두 권당 결제가 기본이었다. 개별 작품을 일정한 가격의 이용권으로 쪼개려면 작품을 이용 회 차별로 분절해야만 했다. 예컨대, 만화 한 편을 20회 차로 잘라 회당 100원짜리로 만드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모바일에서 짧은 호흡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익숙한 소비자들의 성향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열람하려면 권당 결제 이외의 다른 결제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용권 모델이 도입되면서 소비자는 콘텐츠를 짧게 소비하면서 본인의 취향에 맞는지 저렴한 가격에 테스트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이란 제한된 공간에서 짧은 시간 단위로 소비하는 것은 콘텐츠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소비자는 회차별로 작품을 소비하면서 밀도 높은 즐거움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카카오페이지는 소비자들의 심리적인 가격 장벽을 낮추기 위해 가격 정보를 최대한 감췄다. 예컨대, 콘텐츠를 열람할 때 소비자는 어디에서도 가격을 볼 수 없다. 보유한 이용권을 다 소진했을 때 비로소 ‘이용권을 충전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유저는 게임의 스테이지를 클리어(clear)하듯이 콘텐츠를 회 차로 열람하면서 이용권을 소진하고, 추가로 보고 싶으면 다시 결제하면 된다.

하지만 이용권 모델을 도입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CP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용권 모델을 도입하려면 작품을 회 차별로 잘라야 했는데 CP들은 이를 두고 작품을 훼손한다며 거부감을 보였다. 이진수 대표는 “대다수 CP가 플랫폼 초기 버전에 이미 크게 실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직접 CP를 찾아다니면서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유료 결제가 발생하는 콘텐츠는 입시 교육, 19금 성인물, 일본 만화, 장르소설 정도에 불과했다.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하는 카카오페이지는 19금 성인물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고했다. 이 대표는 만화와 장르소설을 전문 출판하는 대원씨아이, 학산문화사, 서울문화사 같은 출판사를 찾아가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을 공급해달라고 읍소했다. 새로운 결제 모델을 테스트해보려면 대중성과 인지도가 검증된 작품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삼고초려로 출판사를 설득한 끝에 이 대표는 ‘달빛조각사’ ‘진격의 거인’ ‘열혈강호’ ‘하백의 신부’ ‘신의 물방울’ 등 만화 20개, 소설 10개를 포함한 총 30개 유명 작품을 확보했다.

2013년 9월, 새로 론칭한 카카오페이지 2.0 버전에서 판타지 웹 소설 ‘달빛조각사’에 이용권 결제 모델이 최초로 적용된다. 론칭 첫날 달빛조각사는 400만 원이 넘는 거래액을 달성했다. 결제 방식만 바꿨을 뿐인데 1.0 버전 때보다 개별 작품 기준 매출이 무려 10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이용권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한 작품들이 줄줄이 매출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카카오페이지 2.0은 론칭 3개월 만에 최초로 일 거래액이 2000만 원을 돌파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만족하기는 일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 거래액은 다시 1000만 원대 수준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상승세가 꺾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 이 대표는 카카오톡과 프렌즈 이모티콘 이벤트를 추진했다. 카카오톡을 통해 트래픽이 크게 증가하면 거래도 동반 상승할 거라고 기대했다. 놀랍게도 이모티콘 이벤트를 진행한 당일, 일 거래액 증가분은 고작 100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유저는 카카오페이지에 가입해서 무료 이모티콘의 열매만 따 먹고 플랫폼을 떠난 것이다. 이 대표는 “솔직히 충격이 컸다.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이 없으면 콘텐츠 비즈니스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깨달은 날이었다”고 말했다.


2. ‘기다리면 무료’ 모델,기다리지 않는 ‘시간’을 팔다
2014년, 창업 4년 차인 카카오페이지는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했다. 더 이상 수익성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이진수 대표는 시무식에서 올해 반드시 흑자를 내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회사의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하루 기준 거래액이 6000만 원대를 달성해야 했다. 이 대표가 직접 만화 TF팀장을 맡아 작품을 선정하고 홍보 마케팅도 지휘했다. 이 대표는 “그해 추석 연휴 5일 동안 읽은 만화책이 200권에 달했다. 작품을 선정하고, 구매전환율을 체크하고, 마케팅 비용을 집행해 하루 매출을 10만 원이라도 더 올리는 데 사활을 걸었다”고 전했다. 좀처럼 거래액이 오르지 않아 직원들마저 떠나보내야 했다.

생존의 기로에 놓인 카카오페이지를 구한 것은 바로 그해 11월23일 도입한 ‘기다리면 무료’ 서비스, 일명 ‘기다무’였다. 기다무는 애니팡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다. 애니팡에서 게임 이용권인 하트는 결제하지 않더라도 8분이 지나면 1개가 다시 생기고 40분을 기다리면 5개를 다 채울 수 있다. 40분을 참지 못한 유저들은 친구에게 하트를 구걸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결제를 한다. 기다리는 시간을 참지 못한 유저들의 결제 러시가 대박으로 이어졌다.

카카오페이지가 애니팡에 착안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유료 결제 모델, 기다무는 고객이 보유한 이용권이 소진된 시점에서 일정한 주기, 예컨대 1주일이 지나면 1회 차 이용권을 자동 충전해주는 모델이다. 그전까지 카카오페이지 서비스는 ‘여기까지만 무료’라고 고객에게 통지하는 모델이었다. 예컨대, 10회까지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유저에게 결제할지, 말지 결정하라고 통보하는 것이다. 11회를 결제할까, 말까 망설이던 유저가 떠나면 이 사람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반면 ‘기다리면 무료’ 서비스는 10회까지 공짜로 보고 나간 사람에게 일정 기간, 예컨대 하루가 지난 다음에 11회가 무료라고 푸시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까지만 무료’ 모델이 고객이 결제 여부를 한 번만 고민하게 했다면 ‘기다리면 무료’ 모델은 주기적으로 수차례 고민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카카오페이지의 모델은 다른 콘텐츠 플랫폼의 무료 모델과 달리 콘텐츠 무료 제공 기간과 기다리는 기간을 완전히 개인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용자별로 작품을 이용한 시간과 회 차에 따라 기다리는 시간,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이 달라진다. 이용자에게 스스로 회 차별로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하고, 결제 여부를 결정하도록 선택권을 준 것이다. 천천히 읽어도 되는 이용자는 기다렸다가 읽고, 그렇지 않은 이용자는 결제해서 바로 보면 된다. 이진수 대표는 “콘텐츠가 마음에 들면 기다리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한 유저가 결제를 하게 된다. 이때 유저는 콘텐츠를 기다리지 않고 보는 ‘시간’을 구매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자체가 아닌 콘텐츠를 보는 시간을 판다는 사고의 전환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이진수 대표는 11월23일 기다무가 최초 시작된 날의 감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기다무 서비스가 시작된 지 두 시간 만에 기다무 서비스가 탑재된 작품의 클릭 수와 구매율이 요동치는 게 데이터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애니팡의 비즈니스 모델이 콘텐츠에도 통하는구나”를 직감했다고 했다. 첫날은 일정량 풀린 무료 이용권 때문에 트래픽이 늘어난 반면 구매전환율은 1%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예상된 수순이었다. 물론 이대로 모든 이용자가 이용권이 무료 충전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한다면 큰일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구매전환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5일가량 지나자 이전 구매율이 회복됐고, 그 이후로는 2배 이상 급성장했다. 일부 작품들은 구매전환율이 무려 25%까지 상승했다. 작품을 클릭한 100명 중에 25명은 결제를 했다는 얘기다. 이전까지 3000만 원대에 불과했던 일 거래액은 기다무 시작 후 첫 달 평균 6800만 원으로, 한 달 만에 2배 이상 급등했다. 그해 12월 카카오페이지는 2010년 창업한 지 4년 만에 최초로 1억 원의 월 영업이익 흑자를 내게 된다. 이는 카카오페이지가 진정한 유료 콘텐츠 플랫폼으로 거듭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그림 1)



3. ‘캐시프렌즈’, 사용자-광고주-CP 상생 모델 구축
카카오페이지는 초반에 겪은 플랫폼의 실패에서 CP와 유저가 만족하지 않는 플랫폼은 생존할 수 없음을 배웠다. 우선 플랫폼에서 양질의 콘텐츠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플랫폼을 통한 CP의 수익 기반을 탄탄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CP들 중에는 당장 하루 매출이 아쉬운 곳도 많았다. 기다무를 초기 도입할 때 영세한 CP들은 모든 유저가 무료 혜택만 기다려서 매출이 급감할 것을 우려했다. 이런 고충을 십분 이해한 카카오페이지는 우수한 CP에 1억 원, 2억 원가량을 미리 투자함으로써 인기 작품을 확보했다. 이런 과감한 투자는 CP들에게 카카오페이지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콘텐츠에 투자하는 회사라는 평판을 심어줬다.

또 우수한 CP가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예컨대, 콘텐츠 제공자인 작가에게 다른 플랫폼에도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판로를 열어줬다. 또한 단기간, 단발성 계약도 활성화해 작가들의 연재 부담을 줄였다. 작가들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작품의 스크린숏을 허용하지 않은 조치도 CP들의 신뢰를 얻었다.

2017년 6월 도입된 ‘캐시프렌즈’는 광고 수익 대부분을 유저가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캐시로 돌려줌으로써 결국 CP들에게 수익이 돌아가게끔 만든 혁신적인 모델 중 하나다. 유저가 플랫폼에서 광고를 시청하거나 이벤트에 참여하면 캐시를 주는데, 기존 리워드 광고와 달리 광고 수익의 대부분을 유저에게 돌려주는 게 특징이다. 내 돈 내고 콘텐츠를 보기 싫은 유저는 콘텐츠를 보듯이 광고를 소비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개인정보를 일부 제공함으로써 캐시를 받으면 된다. 광고주가 유저를 위해 콘텐츠를 대신 사주는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유료 결제 고객뿐 아니라 돈을 내지 않는 고객까지 플랫폼에 남아 있게 됨으로써 유저와 광고주, CP까지 모두 만족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기다무 서비스와 캐시프렌즈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카카오페이지에는 무료 혜택을 받기 위해 일정 주기로 반복적으로 사이트를 방문하는 유저들이 늘어났다. 습관적인 재방문이 늘어날수록 다음 콘텐츠에 대한 누적된 갈증을 참지 못하고 결제하는 유저들도 증가했다. 차상훈 부사장은 “개별 작품에서 떠났던 유저들이 반복적으로 돌아오면서 전체 서비스에 대한 잔존율도 뒤따라 증가했다. 이로 인해 유저풀이 늘어나는 동시에 구매자와 매출 또한 같이 증가하는 가장 이상적인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카카오페이지에서는 약 4000여 개의 작품에 기다무 서비스가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카카오페이지의 일평균 거래액은 6억 원, 일 최대 거래액은 9억2800만 원을 찍었다. 개별 작품 기준으로 누적 매출 1억 원 이상을 창출한 작품은 1256개에 달하는데 현재 가장 큰 매출을 가져다준 효자 소설은 웹 소설 ‘닥터 최태수’다. 소설 하나만으로 누적 매출 100억 원이 넘었으며 현재 웹툰으로 연재 중인데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그림 2)


플랫폼에서 IP 비즈니스의 허브로
플랫폼 수익은 카카오가 IP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실탄이 됐다. 2015년 말 카카오의 자회사로 편입된 카카오페이지는 웹툰 플랫폼인 다음웹툰을 사내독립기업(CIC)로 편입하면서 본격적인 오리지널 IP에 대한 투자를 강화했다. 그동안 CP들과 축적한 협력 관계도 오리지널 IP에 대한 투자와 개발로 발전시켰다. 2018년 삼양씨앤씨, 학산문화사, 대원씨아이 등 만화, 도서 등 콘텐츠 제작 업체 7곳에 약 700억 원가량을 투자함으로써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했다. 카카오페이지가 투자한 디앤씨미디어는 IP의 경쟁력을 인정받아 웹 소설·웹툰 업체 최초로 2017년 8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또 원작 콘텐츠의 IP를 소설, 웹툰,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2차 개발, 판매하는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가 웹 소설을 기반으로 웹툰으로 제작한 노블코믹스 작품은 150개가 넘는다. 영화 ‘강철비’는 웹툰과 영화를 동시에 제작해 성공한 이례적인 사례다. 2011년 양우석 영화감독이 다음웹툰에 연재했던 ‘스틸레인’을 기본으로 스토리를 덧붙여 웹툰과 영화를 동시에 제작해 미디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IP 비즈니스의 확장성을 확인시켰다.

카카오페이지의 흥행작들은 해외에서도 호응이 높다. 카카오페이지는 2017년 1월 한국 최초로 중국 대형 웹툰 플랫폼 ‘텐센트 동만’과 계약을 체결해 국내 작품을 중국 현지에 진출시켰으며, 북미에서 타파스미디어, 일본에서 카카오재팬의 ‘픽코마’를 통해 한국의 스토리, 일명 ‘K-Story’를 확산시키고 있다. 2018년 말에는 인도네시아 웹툰 1위 기업 ‘네오바자르’를 인수해 동남아시아 진출의 포석을 확보했다. 특히 카카오페이지가 밀고 있는 일명 ‘로맨스 판타지’ 장르의 작품들이 국경을 초월해 반응이 좋다고 한다. 차상훈 부사장은 “로맨스 판타지는 로맨스와 판타지를 결합한, 카카오페이지가 개발한 장르 영역인데 배경이 특정 국가가 아닌 제3세계로의 현실 도피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수용도가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2018년 영화 VOD, 방송 VOD 서비스까지 도입한 카카오페이지는 만화, 소설, 영상을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IP를 소설, 웹툰,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유통해 유기적인 시너지를 발휘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콘텐츠 제작사인 카카오M, 간편 결제 업체인 카카오페이 등 다른 카카오 자회사와의 협업도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페이지는 2020년 상장을 준비 중이다. KTB투자증권은 카카오페이지의 기업 가치가 1조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진수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K-story로 승부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180조 원, 1년 콘텐츠 투자비만 12조 원이다. 지난 10년에 걸쳐 1조 원대 회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는 10조 원대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DBR mini box: 기다리기 싫은 고객의 ‘진실의 순간’ 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디지털 콘텐츠가 소비되는 시대다. 초기 인터넷 서비스는 일반적으로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해 많은 사용자를 유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광고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거뒀다. 반면 카카오페이지는 스마트폰을 통해 콘텐츠를 유료로 유통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정보재(Information goods)의 가격
인터넷의 도입은 많은 콘텐츠와 정보 서비스를 무료로 만들었다. 이용자는 검색, 뉴스, e메일, 동영상,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돈을 내지 않고 사용한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경쟁이 존재하는 동일 상품 시장에서 가격은 한계비용(marginal cost)에 수렴한다. 여기서 한계 비용이란 생산량을 한 단위 증가시키는 데 필요한 생산비의 증가분을 의미한다. 정보재는 특성상 고정비용은 매우 높고 한계 비용은 매우 낮다. 예컨대, 전화번호부 정보를 파일로 만든다면 처음 만들 때에는 많은 비용이 투입되나 일단 전화번호부 파일이 준비된 후 추가로 복사본을 만드는 비용은 매우 적다. 사실 파일을 복사하는 정도의 비용만 추가로 증가하기 때문에 정보재의 경우 한 단위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 드는 한계비용은 0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보재의 가격은 0으로 수렴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1986년 미국에서 나이넥스(Nynex)라는 회사는 뉴욕 지역의 전화번호부 정보를 CD에 저장해 1만 달러에 판매했는데 이후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경쟁자들이 나타나면서 CD 상품은 20달러까지 큰 폭으로 떨어졌고 이후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제공됐다.



가격 차별화(Price Discrimination)
그렇다면 모든 정보재는 무료여야 할까? 그렇지 않다.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그 내용이 모두 다르고 동일 상품이 아니다. 또 디지털 콘텐츠는 경험재(Experience goods)이므로 소비자들에게 주는 가치가 다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노래가 있다면 A라는 사람은 그 노래가 좋아서 그 노래의 mp3 파일을 다운로드받고자 하겠지만 B라는 사람은 스트리밍으로 충분하고, C라는 사람은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아서 미리 듣기를 한 후에 더 듣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가격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차별화를 [표 1]에서 정리된 바와 같이 크게 1급, 2급, 3급 가격 차별로 구분한다.

카카오페이지는 디지털 콘텐츠를 이용권 개념으로 분절해 회 차별 혹은 충전을 통해 묶음으로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2급 가격 차별에 해당되는 버저닝(versioning) ii 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버저닝을 통해 이용자들에게 디지털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림으로써 이용자가 플랫폼에 고착화(lock-in)되도록 하는 전략을 취했다. 콘텐츠의 가치는 경험을 하면 할수록 호불호가 나눠지고, 좋아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소비가 지속되는 고착화 경향이 나타난다. 고착화 현상은 한 상품에서 다른 상품으로 옮겨가는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을 높여 고객이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예컨대, 일단 한 번 보기 시작한 웹툰 작품에서 다른 웹툰 작품으로 옮겨 가는 데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동안 캐릭터와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들어간 노력, 구독 시간, 캐시 등 때문이다.


기다리면 무료(Wait or Pay)
카카오페이지의 디지털 콘텐츠 과금 모델은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 게임 애니팡의 부분 유료화 판매 모델에서 영감을 받았다. 부분 유료화(Free to Play)는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게임 패키지를 사거나, 월정액 결제 없이 무료로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게임 내 아이템 및 추가적인 콘텐츠를 유료로 판매해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말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최초로 부분 유료화에 성공한 사례는 1999년 넥슨의 ‘퀴즈퀴즈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게임 분야 전반에 부분 유료화 모델이 적용됐다.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 게임인 애니팡은 아이템 및 추가적 콘텐츠를 판매하는 수익모델인 부분 유료화를 채택했다. 애니팡 게임의 특징은 카카오톡 친구들에게 서로 하트(게임 이용 아이템)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소셜 네트워크의 강화 효과를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하트 충전을 위해 일정 시간 무료로 기다리거나 돈을 내고 사도록 디자인돼 있다. 다른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 게임에서도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을 수 있는데, 징가(Zynga)의 게임 팜빌(FarmVille)에서는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건물을 지을 때 일정 시간이 걸리는데 돈을 내고 아이템을 쓸 경우 건물이 즉시 완성돼 다음 단계로 곧바로 진행할 수 있다. 이용자는 성향에 따라 시간을 두고 기다릴 수도 있지만 기다리지 못하고 돈을 지불할 수도 있다. 이런 고객 성향을 감안해 세분화를 잘하는 것이 부분 유료화 모델의 핵심이 된다. [표 2]는 게임에서 고객세분화를 활용하는 메커니즘을 정리한 것이다.



카카오페이지의 ‘기다리면 무료’ 비즈니스 모델은 모바일 게임의 아이템 유통 방식을 디지털 콘텐츠 유통에 적용한 것이다. 상품별 이용 시간의 차이를 버저닝한 상품이 ‘기다리면 무료’라고 볼 수 있다. 새로 공개된 웹 소설, 웹툰의 에피소드를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읽어도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새로운 에피소드를 바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출판사가 인기 소설을 출시할 때 처음에는 하드커버 버전의 책을 비싸게 팔다가 일정 시간 이후에 페이퍼백 버전의 책을 출간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기다리면 무료도 지불 의사가 높은 그룹과 낮은 그룹을 시간 차 버저닝해 모두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바일 환경에서 소비자는 단시간 내에 짧은 간격으로 구매할지, 혹은 기다릴지의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카카오페이지 비즈니스 모델의 강점은 이용자들의 콘텐츠 몰입 정도에 따라 콘텐츠 가격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데 있다. 예컨대, 웹 소설책 한 권을 10개 회 차로 잘라서 100원짜리로 만듦으로써 가격 저항을 낮췄다. 이용자들은 마치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거치듯이 웹 소설을 읽으면서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전체 충전 금액에 관계없이 이용자가 콘텐츠에 빠져들게 되면서 가격을 신경 쓰지 않고 ‘팝콘 먹듯이’ 다음 회 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험재의 특성상 고착화 현상이 강화되면 콘텐츠가 이용자에게 주는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이용자는 ‘몰입의 즐거움’ 때문에 다음 페이지, 다음 회 차 보기를 누르면서 소비를 지속하게 된다.

물론 이용자는 기다리면 무료 서비스를 이용해 무료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몰입도가 떨어져 재미도 줄어들게 되고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을 다시 낼 수 있을지 불확실성도 커진다. 결국 이용자들은 캐시가 다 떨어지는 시점에 몰입을 지속하기 위해서 지갑을 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무료로 소비되던 콘텐츠가 유료로 전환되는 ‘진실의 순간(The Moment of Truth)’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콘텐츠를 팔고 단골을 만드는 때이다. 카카오페이지의 유료 콘텐츠 유통 모델은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언제 구매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콘텐츠 창작자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카카오페이지는 웹 소설, 웹툰, 영화 외에도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상품의 확대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도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앞으로 이 같은 가격 차별화에 대한 고객 반응을 계량적으로 검증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직관이나 관례에 따라 가격을 결정할 경우, 때에 따라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용자 행태에 대한 실험과 실증 분석의 결과를 바탕으로 무한 콘텐츠 글로벌 경쟁시대에 넷플릭스보다 뛰어난 콘텐츠 유통 체계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용자의 이용 행태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현재의 ‘기다무’를 발전시켜 개인별로 가격을 차별화하는 실험도 가능할 것이다.


필자소개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 smjeon@gachon.ac.kr
전성민 교수는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사를 마치고 동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 박사 학위를 받았다. IBM과 삼성에서 다수의 IT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서울 및 미국 산호세에서 창업자로 일한 경력도 갖고 있다. 벤처회사들의 실증 데이터 분석을 통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P2P lending, 소셜커머스 등 신규 사업 모델을 분석 중이다. 역서에 『페이스북 시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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