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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장 파워포인트를 이기는 한 장짜리 보고서

김남국 | 260호 (2018년 11월 Issue 1)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더 어렵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한 이 말은 우리의 상식에 반합니다. 복잡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는 게 단순한 자료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복잡한 금융상품이 단순한 금융상품보다 설계하기 더 힘들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잡스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단순함과 복잡함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면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운전자 입장에서 자동차의 자동변속기는 수동에 비해 훨씬 단순합니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만 밟으면 알아서 변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브레이크와 액셀 외에 클러치까지 쉼 없이 밟아가며 한 손으로 변속기를 조정해야 하는 수동 방식은 사용하기 훨씬 복잡합니다. 그런데 이면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수동보다 단순한 자동변속기가 훨씬 구현하기 어렵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잡스의 말대로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단순함은 난도가 매우 높은 과제입니다.

가치를 창출하는 단순함을 확보하려면 강한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100장짜리 파워포인트를 만들려면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나열하면 됩니다. 하지만 한 페이지로 이를 요약하려면 핵심을 명확하게 짚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자수성가로 거대 금융기업을 일군 오너 경영자는 수천억짜리 투자 결정도 한 페이지 보고서로 한다고 합니다.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단순함은 용기를 요구합니다. 많은 조직에서 수많은 사람이 결제에 관여하고 복잡한 회의 절차를 거치는 근본 이유는 불안감과 관련이 있습니다. 의사결정에 따른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관여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면 책임이 분산되고 구성원의 불안감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에 투자돼야 할 조직원들의 관심 및 시간 자원이 크게 낭비되고 맙니다. “자신감 없는 관리자일수록 더 복잡한 절차를 만든다”는 잭 웰치의 말은 풍부한 현장 경험에서 나온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불안에 맞선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단순함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단순함에 대한 세상의 오해와 맞서야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한 열쇠 수리공은 오랜 기간 기술을 연마해 아무리 복잡한 열쇠도 순식간에 고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열쇠를 고치자 그렇게 쉬운 일에 많은 돈을 줄 수 없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이 생겼다고 합니다. 결국, 열쇠 수리공은 금방 고칠 수 있는데도 오랜 시간 열쇠와 씨름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줬다고 합니다. 복잡한 프로세스와 구조가 더 우월한 것이라는 통념이 지배하는 조직에서 단순성을 추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단순성을 무기로 경쟁력을 강화한 대표적인 사례로 넷플릭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인사책임자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기존 관행과 절차, 프로세스를 없애는 것입니다. 실제 넷플릭스는 “복장에 대한 규칙을 없앴지만 아무도 벌거벗고 다니지 않더라”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휴가, 경비, 출장 등과 관련한 복잡한 규정과 절차를 모두 폐지하고 임직원 자율에 맡겼습니다. 넷플릭스 직원들은 관리나 통제 업무로 인한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고 고객 가치 창출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DBR은 이번 스페셜 리포트로 단순성을 집중 탐구했습니다. 이번 리포트를 계기로 적어도 조직 내 복잡한 절차와 프로세스, 복잡한 상품 구조 등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복잡한 구조를 혁파하고 고객 가치 창출에 자원을 오롯이 투자하는 조직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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