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감각의 시대

256호 (2018년 9월 Issue 1)

중고 트럭 한 대로 장사를 시작해 연 매출 100억 원대의 사업을 키워냈다고 말하는 배성기 씨는 『트럭 모는 CEO(OCEO, 2018)』라는 저서를 통해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잘나가던 강남의 청과 매장이 홍수로 물에 잠기며 모든 것을 잃고 과일 트럭을 운영하며 재기를 모색했던 그는 장사 수완이 부족해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그의 트럭에서 참외를 사가며 밥을 먹었는지 물었다는군요. 장사도 잘 안 되는데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기도 민망해서 굶으며 일했던 시절이었는데 고맙게도 아주머니가 트럭을 봐 줄 테니 김밥 한 줄 먹고 오라고 제안했답니다. 그는 아주머니에게 트럭을 맡기는 게 불안했던 탓에 김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트럭을 보고 있었다는군요.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더니 나중에 줄까지 섰다고 합니다. 그가 장사할 때는 그렇게도 안 팔리던 참외가 갑자기 아주머니 덕분에 인기 상품이 된 것입니다.

잠시 후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비결을 물었습니다. 만약 경영 컨설턴트에게 장사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면, 좋은 입지에서 질 좋은 참외를 공급받아 적정한 가격을 정하고 눈길을 끄는 마케팅 구호를 외치라는 식의 제안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제안은 전혀 달랐습니다. 바로 “웃어라”였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너무나 힘든 모습이 느껴졌다며 장사꾼은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웃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주머니의 조언을 실천했습니다. 심지어 진상 손님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때에도 웃었다는군요. 그러자 극적 반전이 찾아왔습니다. 하루 20만 원어치도 팔기 어려웠는데 웃고 난 뒤에는 평균 150만 원어치를 팔았고 많을 때는 400만 원까지 매출이 올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웃으라고 조언해준 분은 장사로 큰돈을 벌어 빌딩 여러 채를 보유한 ‘미아리의 전설’이었다는군요.
환하게 웃는 표정 하나가 이렇게 극적인 반전을 가져온 것을 이성적 관점에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품과 가격, 마케팅 구호도 모두 이전과 같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품질과 가격을 비교해 구매 결정을 한다는 이성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웃음의 효과는 아주 제한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감각 경험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판단합니다. 세세한 품질의 차이를 구분할 전문지식이나 시간을 가진 고객은 많지 않습니다. 대신 고객들은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자극을 토대로 품질을 추론합니다.
장사의 달인이 웃음을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은 고객의 감각기관에 긍정적 자극을 줘서 편하게 트럭에 다가갈 수 있게 했고, 품질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품을 만들 때 고객들에게 긍정적 감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성과를 더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제품의 우수성을 고객들이 직접 오감을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감각디자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DBR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로 감각디자인 이론과 방법론을 집중 제시했습니다. 김병규 연세대 교수에 따르면 많은 고객은 와인 병의 무게가 무거우면 고급스럽다고 생각하고, 자동차 문을 닫을 때 나는 소리가 중후하고 안정적이면 차량의 안전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효과적인 감각 자극을 통해 품질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현명한 대안을 모색하시기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 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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