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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KT&G 글로벌 전략

“국가별 레서피 다르게, 때론 과감한 베팅” 품질 혁신 KT&G, 글로벌 강자로 우뚝

최한나,유재욱 | 245호 (2018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국영기업으로 오랫동안 안정적 경영을 해온 KT&G가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 각 지역에서 다양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성공 요인은?

1. 외국인 비용(liability of foreignness)이 낮고 경쟁사 대비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해 진입장벽 최소화
2. 로컬 기업과의 ‘관계자본’ 형성을 통해 우호적 파트너십 구축 및 이를 통한 효율적인 유통망 진입
3. 현지 소비자 입맛에 맞는 맞춤형 제품을 개발하는 ‘현지화’와 세계적 트렌드에 맞춘 신제품을 출시하는 ‘글로벌화’를 적절히 병행

사무실이나 식당 등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담배를 피워도 아무렇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흡연이 개인의 기호이자 취미의 하나로 존중받던 때였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금연이 장려되며, 담배에 대한 각종 규제가 심해지면서 국내 담배시장은 위축되고 있다. 국내 시장만 놓고 보면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KT&G의 수익성은 갈수록 떨어져야 맞다. 기본적인 시장 규모를 결정하는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데다 흡연을 죄악시하는 사회 문화가 확산되고 있으며 담뱃값 인상과 경고 그림 표기 등으로 담배에 대한 규제 정책이 쉼 없이 등장해 판매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554억 개비. 2017년 KT&G가 해외 시장에서 판매한 담배 숫자다. 1988년 처음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린 KT&G는 30년 만에 첫해(1억4645만 개비) 대비 370배 증가한 기록을 달성했다. 지난 2015년 해외 판매량이 국내를 앞지른 후3년 연속 해외 판매량이 더 많았다. 이에 힘입어 2017년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해외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현재 KT&G의 담배가 판매되는 나라는 전 세계 50여 개국에 이른다. 담배라는 제품의 특성을 명확히 알고 지역에 맞게 차별적 전략을 편 덕분이다. DBR이 KT&G의 해외 시장 개척 과정을 집중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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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담배시장 전면 개방이 발단이 됐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담배는 쌀이나 소금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수요와 공급을 관할하는 생활필수품으로 취급돼 왔다. 우리나라 역시 조선 후기 국영 연초제조소 순화국을 설립한 이래 전매청과 한국전매공사, 한국담배인삼공사 등을 통해 잎담배와 그 가공품의 수급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했다. 정부는 오랜 기간 해외산 담배를 판매 금지 대상으로 묶었다. 한때 ‘양담배 흡연·매매·소지 시 10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엄벌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몰아친 자유무역 바람이 국경을 무너뜨렸다. 거센 통상 압력에 시달린 정부는 1988년 국내 담배시장 문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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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담배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을 비롯해 BAT(British American Tobacco), JTI(Japan Tobacco International) 등 담배업계의 글로벌 강자들이 줄줄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수성을 잘한다고 해도 100% 시장 점유는 더 이상 불가능한 구조였다. KT&G는 국내 시장을 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가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공략할 만한 국가를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해외 시장으로 나간 국산 담배가 있기는 했다. 예컨대 로컬마켓 운영자들이 디스(THIS)나 88 같은 국내용 담배를 소량 구비해두고 현지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들에게 판매하는 식이었다. 수량은 많지 않았고 물량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KT&G는 전사적 차원에서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로 하고 어느 곳을 공략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처음 해외 진출의 교두보로 결정한 곳은 중동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상대적으로 정보를 얻기 쉽고 교민 진출이 많은 지역은 이미 글로벌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높아 파고드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세계에서 담배를 가장 많이 피우는 국가인 중국1 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담배 수입을 철저히 제한했다.

KT&G는 글로벌 강자들의 진입이 어려우면서 동시에 담배 수요가 풍부한 곳을 찾아야 승산이 있다고 봤다. 중동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중동은 서구 기업에 대한 반감이 심하고 통상이나 유통 등 제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필립모리스나 BAT 등 미국과 유럽에 기반을 둔 기업들이 진출을 꺼려 온 지역이었다. 한동원 해외마케팅실 부장은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구두 신고 가는 시장 말고 구두에 흙 묻는 시장을 찾아간다’고 한다”며 “영어가 통하지 않는데다 물류나 유통 등이 잘 갖춰져 있지는 않았지만 후발주자 입장에서는 강자들이 진출하지 않은 곳을 택하는 데서 누릴 수 있는 이점이 클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현지 파트너와의 협업 체계 구축 통해 유통망 진입

담배는 식음료와 성격이 유사하다. 개개인의 기호와 습관을 사로잡아야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담배는 나라마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고 규제가 천차만별이다. 우수한 성능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는 TV나 핸드폰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때문에 덩치 큰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국영에서 민영으로 전환되는 가운데 매물로 나온 현지 담배 기업을 통째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해외 곳곳에 영역을 넓히곤 한다. 직접 진출해 바닥부터 다져나가기보다는 현지 기업을 인수하는 편이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필립모리스가 인도네시아의 담배업체 삼포에르나를 인수한 것이나 BAT가 터키의 국영 담배업체 TEKEL 및 스칸디나비아의 담배공사를 인수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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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가 아닌 방법으로 해외 진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KT&G가 선택한 방식은 현지 수입업체와 손을 잡는 것이었다. 현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직접 공격적으로 나섰다가는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으로 봤다. 특히 담배는 일종의 기호품이기는 하지만 확고 불변한 취향의 결과물이 아니라 쉽게 브랜드를 갈아타는 소비의 대상이기 때문에 신규 브랜드라도 소비자와의 접점이 넓을수록 친숙도가 높아지고 이것이 매출로 연결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지의 유통망을 잘 알고 파고들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협력업체를 찾기로 한 것은 이 같은 고민의 결과였다.

KT&G는 함께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는 현지 수입업체를 찾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우선 기본 조건으로, 담배를 수입해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지 확인했다. 다음은 창고, 차량, 인력 등을 갖추고 KT&G 물량을 잘 관리하고 실어 나를 수 있는지 현지 실사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 아예 방문 자체가 금지된 국가들의 경우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유통 및 판매를 일임해도 괜찮을지 확실히 해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본 것은 조직을 운영하는 대표의 비즈니스 마인드였다. 한두 번 맡길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관계를 갖고 가야 했기 때문에 단기적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 윈윈하는 길을 찾아보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얼마나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폈다. 한동원 부장은 “이 부분은 정량적으로 채점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번 만나 자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며 “KT&G라는 회사나 우리 제품이 낯설 텐데 왜 굳이 우리와 함께하고자 하는지, 앞으로의 사업계획은 어떤지, 우리 제품을 갖다 판다면 어떤 식으로 확장해 나갈 것인지 등 심층 인터뷰를 다각도로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KT&G는 넓은 지역을 커버하는 다국적 수입업체보다는 현지에 뿌리를 두고 있는 토종업체를 우선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다국적 업체보다 전문성이나 노하우가 떨어질 수는 있어도, 토종업체라야 현지 문화와 정서에 익숙하고 유통망 관리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이렇게 중동에 KT&G 담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관계자본’ 토대로 리스크 늘려 물량 확대

2002년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 매각이 완료되면서 KT&G는 민영화 작업을 끝냈다. 당시 한국담배인삼공사였던 사명을 KT&G로 변경한 것도 이때다. 민영기업으로 거듭나면서 KT&G가 본격적으로 무게를 싣기 시작한 사업이 바로 해외 판매다. 공기업으로 여러 면에서 제약을 받았던 해외마케팅에 좀 더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된 것.

국내 담배시장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점도 영향이 컸다. 국내 점유율 1위를 계속 유지하기는 했지만 인구 감소와 흡연율 하락, 각종 규제 강화 등으로 전체적인 시장 자체가 위축되는 추세였다. 1980년대 한때 80%에 육박했던 우리나라 성인 남자의 흡연율은 2000년대 들어 50%대로 떨어졌다.2 건물 내 금연이 추진되는 등 정부 규제도 강해졌다.3 또 다른 수익원을 발굴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매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해외 판매 물량을 늘리기 위해 KT&G가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판매대금 정산방식의 변경이다. 이제까지는 대금을 먼저 받은 후 물량을 내보내는 방식이었지만 이때부터는 물량을 먼저 주고 판매된 만큼 추후에 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으로 전환해보기로 한 것. 사실 업계에서는, 특히 선진국이 아닌 지역일수록, 외상으로 물건을 떼 가는 방식이 더 많이 사용된다. 길거리에 좌판을 깔고 담배를 개비 단위로 판매하는 영세 소매상이 많은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해외 진출 초기에는 리스크를 가급적 줄이기 위해 대금이 완납된 물량만 수입업체에 넘기고 믿을 수 있는 대형 유통업체 위주로 유통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이제는 좀 더 많은 곳에 물건이 깔리고, 더 많이 팔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KT&G 쪽에서 리스크를 부담하기로 했다.

외상 판매를 시작하기로 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소비자와의 접점 확대다. 담배처럼 소량을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상품의 경우 구매 당사자와의 접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판매에 유리하다. 신규 브랜드일수록 노출 횟수가 많아야 한두 번 시도를 거쳐 아예 갈아타는 소비자가 늘어난다. 다른 하나는 판매물량 확대다. 외상 거래가 가능하면 더 많은 소매점이 KT&G의 담배를 취급할 수 있고 전체적인 판매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

중동은 사실 리스크가 작지 않은 지역이다. 정세가 안정적이지 않고 미국이나 유럽 등과 비교해 사회 시스템적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외상 거래 물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KT&G가 짊어져야 하는 리스크가 확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상 판매를 시작하겠다고 결정한 데는 10여 년 동안 현지 수입업체들과 쌓아온 상호 신뢰가 크게 작용했다. 초반에 믿을 수 있는 업체를 신중하게 선정해 10년 이상 거래를 지속해 온 덕분에 이제는 믿고 외상 거래를 해도 괜찮겠다는 신뢰가 형성된 상태였다.

KT&G는 현지의 수입업체를 KT&G가 설치한 또 하나의 ‘별동조직’처럼 여기고 10여 년 동안 이들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KT&G는 이들을 대할 때 ‘우리가 국내에서는 지배적 사업자이지만 해외에서는 도전자인 입장이다. 많이 배워가겠다. 도와 달라. 우리와 함께 커나가자’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들이 영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을 위한 교육 과정을 기획해 운영한다거나 영업 등에 대한 KT&G의 노하우를 적극 공유하고, 현장에서 애로사항을 호소할 때 적극 경청해 빠르게 반영했다. 때로는 한국에 초대해 관련 교육이나 컨설팅을 받도록 하고, 판매에 따른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도 했다. 10년이 지나면서 이들과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고 신제품을 개발한다거나 공격적 영업이 필요할 때 적극 협력하는 우호적 파트너십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신제품 개발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아끼지 않았고 이후 에쎄 등 신제품을 소개했을 때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소매상에게 물건을 선보였으며, 더 좋은 자리에 진열되도록 힘써주기도 했다.

KT&G가 외상 거래를 시작하겠다는 사실을 알리자 수입상들이 더 많은 담배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더 많은 도매업체가 물건을 받을 수 있게 됐으며, 더 많은 소매업체가 중동 구석구석에 KT&G 담배를 진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안홍필 법인관리부 부장은 “군소 유통업체들이 신제품을 취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회전율”이라며 “외상으로 가져갈 수 있어야 소량이라도 들고 가서 전시해두고 소비자에게 권할 수 있으며 반응이 좋다 싶으면 더 가져가려는 곳이 생기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수입상과의 관계가 항상 우호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주재원으로 파견 나간 김동필 부장은 현지에 도착한 후 깜짝 놀랐다. 당시 수입상들은 전산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모든 문서와 보고서 등이 100% 종이로 오가고 있었다. 이 탓에 실적 집계가 매번 며칠씩 지연되고 때로는 금전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영업도 매끄럽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주력으로 판매하던 제품이 에쎄였는데 수입상이 작위적으로 만든 광고판과 판촉물은 대부분 제품의 컨셉이나 이미지와 잘 맞지 않고 허술했다. 김 부장은 수입상 측에 요청해 마케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직원을 채용, 전체적인 전략을 다시 수립하는 한편 한국의 글로벌 브랜드 부서에 연락을 취해 현지 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는 컨셉을 제외하고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전까지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들이 대대적으로 개편되기 시작하자 수입상이 반발했다. 한때는 KT&G와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기도 했다. KT&G 주재원들은 변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모든 사업을 접고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며 강하게 압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수입상 입장에서는 시설 및 운영 등에 투자한 비용이 있어 사업 중단 시 손실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KT&G 의견을 수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변경했다. 김 부장은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분위기가 상당히 살벌했다”며 “한 달 정도 수입상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으며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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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소비자 기호 파악해 맞춤형 제품 개발

지역별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80년대∼1990년대만 해도 국내에서 생산한 담배를 해외에 그대로 가져가서 팔았다. 해외 판매용 담배를 별도로 제작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담배는 식음료와 같아서 소비자들의 기호를 읽고 그것에 맞춰야 하는 면이 강하다. 중동에 진출한 이래 KT&G는 해외 판매 물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으려면 로컬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게 상품을 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국내용 제품을 판매하는 중에도 중동 소비자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KT&G가 수입업체를 통해 국내 담배를 팔아보니 ‘약하다’ ‘순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실제로 중동에서 잘 팔리는 담배들을 조사해보니 국내산 담배보다 훨씬 독하고 향도 강했다.

중동 소비자들을 위해 특화된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수입업체들과 머리를 맞댔다. 담배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70여 가지. 같은 재료들을 섞더라도 몇 년산 잎담배냐에 따라 또는 그 혼합 비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담배 맛은 전혀 달라진다. KT&G는 여러 재료를 혼합해 다양한 프로토타입을 만든 후 현지 수입업체 관계자들을 초대해 테스트를 반복했다. 중동 수입상들이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재료들을 가감하거나 섞는 일을 계속했다.

수입상들의 입맛을 통과한 담배 시제품들을 2차로 테스트한 곳은 대학 캠퍼스였다. KT&G는 현지 대학교 교수들을 컨택해 사정을 알리고 강의실을 찾았다. 직접 작성한 질문지와 담배 시제품, 간단한 답례품을 준비했다. 영어가 통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제품을 나눠주고 질문에 답하게 했다. 한동원 부장은 “지금이야 마케팅 리서치 업체들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중동을 비롯해 몽골이나 네팔 같은 나라에서는 마켓 서베이 업체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며 “이런 곳에서는 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제품 테스트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중동 판매용으로 나온 제품이 파인(PINE)이다. 중동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맛을 고려한 결과물이다. 외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물량이 늘어난데다 중동 소비자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제품이 나오자 수입업체들이 적극 나섰다. 중동에서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파인에 이어 KT&G는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진다. KT&G의 대표 제품 ‘에쎄(ESSE)’를 중동에 팔아보기로 한 것. 에쎄가 나온 것은 1996년이다. 당시만 해도 레종이나 마일드세븐 같은 8∼9㎜ 굵기의 담배가 일반적이었다. 많은 소비자가 익숙해져 있으며 가장 많이 선택받는 제품군이기도 했다. 에쎄의 굵기는 5.4㎜. 시장 지배적 제품군에 비해 2㎜ 이상 가늘다. 통상 시장에서는 7㎜ 정도면 슬림 사이즈로 보는데 이보다도 가느다란 에쎄는 초슬림으로 구분된다.

본래 에쎄는 KT&G의 주력 제품이 아니었다. 20∼30대 전문직 종사자를 타깃으로 하는 틈새 브랜드였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판매가 늘어나기 시작해 2004년 이후 줄곧 국내 담배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담배로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까지 팔리던 담배들에 비해 얇고 가늘다 보니 상대적으로 순하고 타르 함량이 적을 것이라는 느낌을 준 덕분이다.4

사실 ‘순한 담배’라는 인상을 주는 에쎄를 중동에 선보이겠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중동 소비자들은 강하고 독한 담배를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KT&G는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이 변하고 전 세계적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만큼 중동 시장에서도 변화를 노려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초슬림 담배인 에쎄를 중동에 소개했을 때 수입업체 관계자들이 먼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안 팔릴 것 같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KT&G는 ‘일단 한번 깔아봐 달라’고 주문했다. 처음 소비자들의 반응도 수입업체 관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늘어서 잡기 불편하다’ ‘여자들이 피우는 담배 같다’ ‘담배 피우는 맛이 안 난다’ 등이었다. 극단적인 경우 ‘이건 담배가 아니다’라는 반응도 나왔다. KT&G는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수입업체에 넘기는 물량을 늘려 더 많은 소매점에 전시될 수 있도록 독려했다.

그러면서 ‘세련되고 모던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홍보했다. 중동의 허브는 두바이다. KT&G는 중동지역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두바이공항을 집중 공략했다. 도시적인 이미지의 모델을 기용해 공항에서 사용되는 트롤리나 광고판, 쇼핑백 등에 지속적으로 광고했다. 공항을 거쳐 중동 곳곳으로 이동하는 쇼핑백이 특히 효과 좋은 광고판이 됐다. 규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식끽행사를 열어 소비자와의 직접 접촉도 확대했다.

도매상이나 주요 소매점주들을 모아 제품을 소개하고 특성을 설명하는 자리도 자주 가졌다. 이들을 대상으로 에쎄의 특성과 장점을 홍보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요청했다. 그동안 탄탄히 형성된 수입업체들과의 관계가 크게 도움이 됐다. 이들은 관할하고 있는 유통망을 방문해 에쎄가 잘 보이는 곳에 전시될 수 있도록 하고, 잘 보이는 진열대를 차지하기 어려우면 팝업 매대라도 설치하는 식으로 에쎄 홍보에 적극 나섰다.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고 굵은 담배에서 얇은 담배로 이동하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에쎄 바람을 몰았다. 소비자들은 ‘얇으니까 덜 해로울 것’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패셔너블 해 보인다’거나 ‘전문가들이 피우는 담배 같다’는 평이 우세해졌다. 에쎄는 서서히 중동의 인기 제품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내전 등으로 중동 지역 정세가 험악해지는 중에도 KT&G는 사업을 접거나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의 기존 강자들이 주춤하는 상황을 기회로 삼았다. 기존의 주력 제품이었던 파인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우호적으로 형성된 가운데 에쎄 물량을 공격적으로 투입하면서 그동안 탄탄히 다져 온 제품력이 빛을 발했다. 내전 등으로 물류 및 유통이 원활하지 않고 자국산 담배의 품질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KT&G가 질 좋은 담배를 꾸준히 공급하자 에쎄는 중동의 인기 제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파인보다 에쎄가 더 많이 팔린다. 현재 중동 지역 주요국에서 KT&G가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20% 정도. 2017년 기준 파인의 현지 판매량이 100억 개비 수준인 데 비해 에쎄는 170억 개비 이상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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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시장에서의 경험 축적 위해 미국 진출

2010년 KT&G는 가장 치열한 곳으로 꼽히는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다. 2010년 8월 미국 오클라마호에 법인을 세웠다. 이전에도 수입상을 통해 판매하는 물량이 있기는 했지만 많지 않았다. KT&G는 법인을 세우고 직접 영업을 시작, 적극적으로 나서보기로 했다.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등 이미 자리를 잡아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신흥국 시장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선진 시장에서의 경험이다. 미국에서는 담배 관련 규제 및 허가 업무를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주관한다. 미 FDA의 담배 관련 규제는 엄격하고 수준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FDA에서 규제를 새로 마련하면 몇 년 후 유럽이나 아시아 등 다른 나라로 확산될 만큼 영향력도 크다. KT&G는 향후 담배와 관련한 규제들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선진 시장 규제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고 현지 상황을 빠르게 캐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하나는 수익성이다. 미국의 담뱃값은 주마다, 세율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평균적으로 비싼 편이다. 뉴욕의 경우 한화로 평균 1만5000원 정도. 이보다 저렴한 주에서도 7000∼8000원대가 보통이다. 저렴하게 많이 팔 수 있는 신흥지역과 적은 양이라도 비싸게 팔 수 있는 선진시장을 함께 노려야 수익 포트폴리오상 다양성을 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미국은 역시 만만한 시장이 아니었다. 필립모리스와 BAT 등 세계 1, 2위를 다투는 기업은 물론 온갖 국적의 담배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그야말로 초격전지였다. 미국은 넓고 주마다 각기 다른 법규와 세금 제도를 갖고 있다. 담배 도매상이 많은 것은 물론 그 규모와 운영 인력의 인종 등에 따라 특성이 다 달라 어디서부터 공략하면 좋을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법인 설립 초기에는 기존에 관계를 갖고 있던 수입상의 노하우와 운영인력을 승계해 내부화하는 일에 주력했다. 어느 정도 세팅을 마친 후에는 직접 도매상들을 찾아다니며 유통망 뚫는 일에 나섰다. 미국 법인 신설 당시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홍경효 과장은 이렇게 회상한다. “구글 검색창에 지역명과 ‘담배 도매상’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되는 곳마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 ‘KT&G라는 세계 5위의 한국 담배회사입니다. 만나 뵙고 인사드리면서 제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라고 소개하며 만나주기를 요청했다. 아무런 판매 기반이나 연줄이 없는 상태이다 보니 바닥부터 밟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업주는 ‘인지도도 없는 제품을 우리가 왜 취급해야 하냐’며 귀찮아했다. 서너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도 단 10분밖에 시간을 내주지 않는 업주들도 있었다. 간혹 와보라고 하는 업주를 만나면 정성 들여 제품을 소개한 후 무작정 주변을 돌며 인근 도매상들을 찾아가기도 했다.

미국에는 수많은 담배 도매상이 있는데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지역의 중소 규모 도매상과 코스트코처럼 미국 전역에 판매점을 두고 있는 대형 업체들이다. 중소 규모 도매상들은 주로 아시아계나 중동계 이민자들로 의사결정과 실행이 빠르다. 일단 돈이 된다 싶으면 바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업체를 뚫으면 미국 전역에 물건을 깔 수 있고 물량도 많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예 만나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반면 지역의 중소 규모 도소매점들은 만나기도, 주문을 따내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KT&G는 주로 이들을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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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가 특히 효과를 본 것은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곧장 소매점주들을 만나는 방식이었다. 꿈쩍도 않는 도매상 점주를 움직이기 위해 해당 도매상과 거래하는 소매점을 찾아 판매 인센티브 등을 약속하면서 “도매상에 가서 우리 제품을 찾아 달라”고 호소한 것. 이렇게 알음알음 지역 상인들을 설득해 가면서 KT&G는 서서히 판매 물량을 늘려갔다.

처음 미국에 진출했을 때 판매했던 제품은 ‘카니발’이었다. 이후 법인을 세워 직접 영업에 나서면서는 미국 수출용 제품을 별도로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타임(TIME)’이다. 미국 점주들은 한 브랜드에 최소 10가지 타입이 있어야 판매 가능한, 완성된 브랜드로 인식한다. 또한 미국은 흡연구역 지정이 엄격하고 관련 규제 수준이 높아 소비자들이 한번 피울 때 독한 담배를 오래 태울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이를 간파한 KT&G는 수출용 타임을 제작하면서 진한 정도를 기준으로 full flavor, light, ultra light로 나눴고, 여기에 멘솔향을 더해 mensol과 mensol light로 구분했다. 각각의 타입은 84㎜와 100㎜로 길이에 따라 추가 구분했다.

타입별 상품 라인업이 갖춰지고 적극적인 영업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유통망이 확대되면서 미국 시장에서의 성장세가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2017년 기준 KT&G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약 1%, 판매량은 26억 개비 정도다. 절대적 수치만 놓고 보면 다른 시장에 비해 미미해 보일 수도 있지만 법인을 설립한 지 10년이 채 안 됐고,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어느 지역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의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2016년에는 법인을 미국에서 담배 판매량이 가장 많은 댈러스로 이전해 더욱 규모를 키웠다. 안홍필 부장은 “올해는 파견 인력을 늘리고 현지 영업사원들도 더 충원해 미국 권역별 영업에 더욱 힘을 쏟을 계획”이라며 “전략적 차원에서 미국은 굉장히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성공 요인 및 시사점

담배시장의 전면 개방, 경제 성장과 생활수준 향상 및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흡연을 죄악시하는 사회 문화 확산, 담뱃값 인상 및 건물 내 금연 등 담배에 대한 각종 규제 강화 등 1980년대 말 이후 나타난 다양한 경영환경 요소의 변화는 담배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KT&G에 부정적인 것들뿐이었다. 이 같은 위협요소들이 나타났을 때 많은 사람이 KT&G의 미래를 어둡게 봤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이것은 단순히 외부의 위협요소들만이 아니라 KT&G가 가지고 있었던 내부적인 특성도 함께 고려한 우려였음을 알 수 있다. 국영기업으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발전해 온 기업의 특성상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조직 내부에 강하게 존재할 수도 있고, 급격히 변하는 중대한 경영환경들 때문에 자포자기하는 조직문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 기업 전략을 수립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SWOT 분석을 통해 내외부적 측면을 포괄적으로 살펴봐도 KT&G에는 기회(Opportunity)와 강점(Strength)보다는 위협(Threat)과 약점(Weakness)이 더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KT&G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성공적인 전환점을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만들어내기 위한 변화를 도모했다. 국내에서 선택한 전략은 제품 다각화였다. 더 이상 담배만으로는 성장은커녕 생존조차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홍삼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군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더불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고 해외 시장으로 지역적 확장을 도모해 국내 시장점유율 하락에 따른 위협을 보완하고 미래의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모든 기업이 해외 시장에 진출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 시장으로 경쟁의 범위를 확대하는 지역적 다각화는 10개 중 3개 미만의 기업만 성공한다는 제품 다각화 못지않게 사실 성공하기가 매우 힘든, 위험성이 높은 전략이다. 그렇다면 위기를 기회로 극복한 KT&G의 지역적 다각화, 즉 해외 시장 진출 전략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해외 시장 진출의 주요 의사결정 5단계’의 구성요소별로 구분해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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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제품 선택

해외 시장 진출의 주요 의사결정 1단계는 ‘제품 선택(Choice of Products)’이다. 해외 시장 진출에 적합한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현지 시장에서의 수용성과 경쟁력 측면에서 평가돼야 한다. KT&G는 100년이 넘는 담배산업 부문에서의 오랜 경험에 기초해 양질의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별히 국내보다 산업의 발전 속도가 더딘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했을 때 이 같은 상대적 우위요소는 기업과 제품의 중요한 경쟁우위 요소가 될 수 있었는데, 이 같은 주장은 레이먼드 버논(Raymond Vernon)이 주장했던 ‘제품생명주기 확장이론’에 기초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제품생명주기 확장이론에 따르면 선진국 시장에서 수요증가율이 정체되거나 하락한 제품을 개발도상국 시장으로 이전 판매하면 제품의 생명주기를 확장할 수 있다. KT&G는 인구 감소 및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등 국내 시장의 환경변화에 따른 담배에 대한 전체적인 수요 감소와 시장 개방으로 인한 글로벌 기업들의 진입으로 국내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담배 제품의 판매 채널을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강화해서 제품의 생명주기를 확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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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시장 선택

해외 시장 진출의 주요 의사결정 2단계는 ‘시장 선택(Choice of Markets)’이다. 진출 시장의 결정과 관련해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점은 반드시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최적의 시장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기업은 신규 수요 개발에 기초한 매출 확대 목적, 효율적인 생산에 기초한 생산성 향상 목적,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자원 확보 목적, 신기술 확보와 혁신 목적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KT&G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명확하게도 신규 수요 창출을 통한 매출 강화였다. 담배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으로 세계시장 1위 업체인 필립모리스 등 글로벌 강자들이 진입하게 될 경우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 축소와 매출 감소는 불가피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KT&G의 해외 시장 진출은 예상되는 국내 시장에서의 매출 감소를 보완해주고 새로운 성장의 발판이 돼야 했는데 이를 위해 KT&G가 선택한 시장은 중동이었다.

중동을 해외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선택한 것은 글로벌 강자들의 진입이 어려우면서 동시에 담배에 대한 수요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이는 KT&G의 해외 시장 진출 목적이었던 안정적인 신수요 창출에 부합하기 위한 전략적 시장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충족하는 요소들이다. 해외 시장 진출을 고려할 때 기업은 우선적인 진출을 고려해야 하는 전략적 시장의 필요조건들을 검토해야 하는데 KT&G처럼 신규 소비자 창출을 통한 매출 증가를 도모하는 기업에 전략적 시장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충분한 시장잠재력, 즉 현재와 미래의 충분한 잠재 고객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동 시장은 전통적으로 높은 수준의 담배 수요를 나타내는 지역이다. 또한 흔히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진입장벽(entry barrier)’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요인 중 하나가 현지 시장에서 우수한 유통채널을 확보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인데, 중동 시장의 경우 다국적 수입업체들 이외에도 많은 현지 유통업체가 존재해 비교적 용이한 접근이 가능한 시장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조건은 현지 시장의 상황과 고객 특성이다. 특별히 현재와 미래의 경쟁상황에 대한 고려가 중요한데, 중동 시장의 경우 글로벌 선도업체들이 기반을 두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정서가 좋지 않은 지역이라는 점에서 해당 지역 국가 기업들인 다국적 담배 제조사들이 중동 시장에 진입할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소비자 반감이 예상된다. 반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 국가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감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동일한 외국계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KT&G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으므로 다국적 기업들이 태생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외국인 비용(liability of foreignness)’ 측면에서 상대적 우위에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사실 외국인 비용은 외국 기업이 로컬시장에서 현지 기업에 비해 갖는 불리한 점을 의미하는데, 그 원인으로는 경제적 환경의 차이, 지리적 환경의 차이, 정부 규제와 제도의 차이, 문화적 환경의 차이, 외국계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정서 등이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을 준비할 때 기업은 로컬기업과의 경쟁뿐만 아니라 현지 시장에 진출했거나 잠재적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다국적 기업들과의 경쟁관계에 대해서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데 이때 상대적인 외국인 비용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KT&G의 경우 아프리카를 포함한 인근 시장으로의 잠재적 확장성을 고려할 때도 중동이 해외 시장 진출의 중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우 적합한 전략적 시장이라고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3단계: 진입 방법의 결정

해외 시장 진출의 주요 의사결정 3단계는 ‘진입방법의 결정(Choice of Entry Modes)’이다. 해외 시장에 대한 진출 방식을 결정할 때 기업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사항 중 하나는 프라할라드(Prahalad)와 도즈(Doz)가 강조했던 글로벌화(globalization)와 현지화(localization) 간의 갈등이다. 즉 진출하고자 하는 시장 특성이 글로벌화와 현지화 중 어느 부분에 더 중점을 둬야 하는 시장인지에 대한 판단에 기초해 진입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글로벌화는 세계 시장을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보는 전략적 접근법으로서 비용 측면에서의 경쟁우위를 갖기 위해 가장 낮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지역에 생산시설을 집중하고, 규모의 경제 효과를 위해 소품종의 제품을 대량 생산하며, 낮은 비용으로 전 세계 시장에 수출해 지역에 관계없이 동일한 제품을 유사한 방법으로 판매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다국적 기업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글로벌화의 압력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연구개발과 생산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고, GATT와 WTO 체제하에서 무역장벽이 점점 낮아져 왔으며, 정보 공유와 운송 체계의 발달로 전 세계적인 이동성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 소비자들의 수요가 점차 동질화하는 등 산업과 경쟁이 글로벌화하고 있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반면 다국적 기업들은 각국의 서로 다른 지역적·문화적 특성에 맞춰 지역별로 차별화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해야 하는 현지화의 필요성에도 직면하게 된다. 아무리 소비자들의 수요가 동질화하고, 무역장벽이 낮아지며, 규모의 경제 효과 창출이 중요해진다고 해도 한 지역에 생산시설을 집중하는 글로벌화는 매우 위험한 경쟁방법이 될 수 있다. 환율이 급격하게 변할 때 더욱 그렇다. 또한 진출 국가의 정치적 위험은 현지화의 필요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다. 다양한 정치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현지화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각국의 문화적 차이는 유통방식과 채널의 차이 및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호 차이를 유발할 수 있는데 적극적인 현지화는 이 같은 국가 간 차별적 요소들을 충족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다국적 기업은 글로벌화와 현지화라는 상반된 목표를 두고 제품과 운영방식을 적절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이에 부합하는 최적의 진입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기업이라면 글로벌화의 필요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소비자들의 기호가 국가별로 상이한 산업군의 제품이라면 현지화가 더욱 중요하게 강조돼야 한다. 담배는 어떨까? 얼핏 보기에 담배는 모양과 기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글로벌화가 더 중요한 제품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각 국가의 역사와 문화에 기초해 발달한 소비 성향에 큰 차이가 있고, 정부 규제는 물론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또한 매우 다르기 때문에 현지 시장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와 적응이 요구되는 제품이다. 따라서 글로벌화 전략에 기초해 동일한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해 수출하는 방식으로 판매하기보다는 합작투자나 인수합병을 통해 현지 파트너 또는 피인수기업이 현지 시장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 같은 진출방식은 현지 소비자들을 이해하고 로컬시장에서 담배를 유통하고 판매하는 데 가장 적합한 마케팅 방법을 결정해 실행하는 데 도움이 되며 외국계 기업과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정서로 인한 외국인 비용의 부정적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인수합병, 특히 국제적 인수합병(cross-border M&A)의 경우 진출한 시장에서 사업 기반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절감할 수 있고, 현지 인력과 경영 노하우를 빠르게 획득할 수 있으며, 이미 구축된 판매망을 통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성공적으로 실행된다면 높은 성과를 빠른 시간 안에 달성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반면 현지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경영권 인수 프리미엄을 지급하는 등 초기 자금 투자가 크고, 인수대상 회사에 대한 가치평가를 정확하게 하지 못하면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도 피인수기업의 기존 부실까지 떠안을 수 있다는 위험이 내포돼 있다. 즉 높은 수준의 기대성과와 높은 위험성을 한꺼번에 짊어져야 하는 상대적 장단점이 존재한다. 반면 현지의 로컬기업과 협조관계를 구축하는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는 인수합병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시장 진출 방법으로 간주되지만 현지 파트너 기업과 경영자원 및 위험을 동시에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현지 시장 공략에 도움이 되는 보완적 자산과 유통망을 보유한 기업과 제휴할 경우 비용과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좋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또한 현지 시장에 적합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상품화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해 다른 경쟁사들보다 빠르게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고,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KT&G가 선택한 중동 시장 진출 방법은 전략적 제휴였다. 시장 규모와 미래의 성장성 등을 고려할 때 과감하고 공격적인 진출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과 시장의 불안정성 등을 고려할 때 독자적인 진출보다는 현지 파트너와 함께 자원과 역량을 공유하며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KT&G는 제휴 파트너를 성공적으로 선택하고 관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경영학자인 델라 시에라(Dela Sierra)는 전략적 제휴에서 성공하기 위해 최적의 파트너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파트너를 선정하는 세부 기준으로 ‘능력(capability)’ ‘양립성(compatibility)’ ‘몰입도(commitment)’의 3C를 제시했다.

먼저, 첫 번째 조건인 능력과 관련해 전략적 제휴는 많은 경우 자사가 가지고 있지 못한 자원과 역량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되기 때문에 파트너가 갖고 있는 경영자원과 핵심 역량을 파악하고 상호 보완성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KT&G는 현지 파트너 선정의 첫 번째 조건으로 담배를 수입해서 판매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한 라이선스의 보유 여부를 제시하고 확인했다. 그리고 적합한 창고 시설과 차량 및 인력을 보유해 현지에서 KT&G가 갖고 있지 못한 물류와 배송 기능을 보완해 줄 수 있는지를 파악했다.

두 번째 조건은 양립성이다. 전략적 제휴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능력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파트너들이 서로 협력적 관계를 형성해 일을 할 수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휴 파트너 간의 양립 가능성을 평가해야 하는데 이는 양 기업의 전략과 기업문화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전략과 관련해서는 양 기업의 전략이 서로 모순되거나 이해가 상반되지 않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파트너의 전략적 목적과 동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과 리더십 등을 세밀하게 평가해야 한다. 또한 제휴 파트너의 문화와 우리 기업의 문화 차이를 평가하고 이러한 기업 문화의 차이가 제휴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는지, 장애가 될 경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KT&G는 현지의 파트너 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파트너 기업 대표의 리더십과 경영 목표를 파악하기 위한 다각도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단기적인 관계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윈윈 관계를 유지해 나아갈 수 있는 파트너를 선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KT&G가 최종적으로 선정한 파트너는 넓은 지역을 커버하는 다국적 수입 업체가 아닌 소규모 지역에 집중하는 토종 업체들이었다. 이는 비록 전문적인 역량 측면에서는 다국적 수입업체들보다 다소 부족할 수 있더라도 사업영역이나 경영 목표의 충돌로 인한 양립성의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요소는 몰입성이다. 아무리 높은 수준의 핵심 역량과 충분한 경영자원을 갖고 있고 양사의 경영 관리 시스템과 기업 문화의 양립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제휴 파트너가 제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열정을 가지고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 경영자원을 투입하지 않는다면 제휴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의 파트너가 전략적 제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얼마만큼 집중하고, 많은 자원을 투입할 것인지를 사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전략적 제휴가 파트너에게 중요하지 않은 주변 사업 분야에서 이뤄져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미약하다면 파트너는 제휴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많은 시간과 경영자원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며, 작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 쉽게 제휴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전략적 제휴가 제휴 파트너의 핵심 사업 분야에서의 제휴인지와 제휴 결과의 영향이 파트너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KT&G가 다국적 수입 업체보다 현지에 뿌리를 두고 토종 업체들을 잠재적인 파트너로서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점은 앞서 기술한 양립성과 함께 파트너사의 몰입성을 고려한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넓은 지역을 커버하는 다국적 기업보다는 좁은 범위의 로컬 마켓에 집중해 온 현지 업체가 KT&G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KT&G는 제휴 체결 이후에도 파트너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거나 영업 등에 대한 노하우를 현지 파트너사와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등 영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점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KT&G는 파트너사의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일부 파트너사의 직원들에 대해 관련 교육이나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판매에 따른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도 했다. 파트너사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KT&G의 이 같은 노력은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파트너사들과 더욱더 공고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그리고 현지 시장에 적합한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공격적인 영업이 필요할 때 KT&G는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우호적인 파트너십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4단계: 마케팅 활동의 현지화 정도 결정

해외 시장 진출의 주요 의사결정 4단계는 ‘마케팅 활동의 현지화 정도 결정(Extent of the Local Adaptation of Marketing)’이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해외 시장에 진출해 성장을 도모할 때 진출 기업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사항은 글로벌화(globalization)와 현지화(localization) 간의 조정이다. 글로벌화와 현지화 간의 조정은 진출 방법에 대한 결정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진출 이후의 기업운영 방식, 특별히 마케팅 부문의 활동에 대한 의사결정에도 영향이 크다. 즉, 판매제품의 결정 및 개발, 광고 및 판매방식 등에서도 현지 시장과 소비자들의 특성을 얼마나 반영해야 할지 결정하는 문제다. 다국적 기업이 마케팅 활동의 현지화 정도를 강화하면 현지 소비자들의 차별적인 니즈를 충족시켜 만족도를 높일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이 발생하고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있다. 따라서 다국적 기업들은 상대적인 장단점들을 충분히 고려해 마케팅 활동의 현지화의 정도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마케팅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기업은 먼저 이전 가능한 마케팅 부문의 경쟁우위 요소를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마케팅 부문의 경쟁우위란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 제품 개발 능력, 가격경쟁력, 유통, 홍보 및 광고 부문에서의 경쟁력 등을 의미한다. 다국적기업은 이 같은 경쟁우위 요소들을 진출하려는 현지 시장에 이전 및 표준화해서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심의 신라면이 중국 시장에서 중국 현지 제품이나 일본 라면 등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국내에서 축적한 마케팅 지식이나 신라면만의 독특한 맛, 즉 정체성(identity)을 활용하지 않았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 가능한 경쟁우위에 대한 평가 결과는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또한 국내 시장과 문화적 특성이나 소비자 경향이 다른 시장에서 표준화된 마케팅 전략을 실행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시장별로 차별화된 전략의 수립 및 실행이 필요한 경우다.

KT&G가 해외 시장에서 실행했던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보면 많은 지역에서 현지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노력했던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특별히 1990년대 이후에는 현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춘 차별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제품이 중동 시장을 타깃으로 개발했던 파인이다. 파인은 독하고 강한 향의 제품을 선호하는 중동 소비자들의 독특한 기호에 맞춰 개발된 상품이다. 이 밖에도 정향이라는 향료가 첨가된 담배를 선호하는 인도네시아 고객들을 위해 크레텍을 넣은 에쎄 제품을 출시한 경우나 미국 수출용 제품인 타임을 개발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판매량을 확대하기 위해 현지의 유통방식이었던 외상거래를 허용한 것도 현지화다. 사실 중동과 같이 정세가 불안하고, 사회 시스템의 안정성이 취약한 시장에서 외상거래를 허용하는 것은 KT&G 입장에서 상당히 높은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의사결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길거리에 좌판을 깔고 개비 단위로 담배를 판매하는 현지의 판매방식 등을 고려할 때, 외상거래 방식은 쉽게 외면하기 힘든 중요한 성공요인(key success factor)이었을 것이다. KT&G는 외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잠재적 위험을 부담하는 동시에 오랜 시간 축적해 온 현지 파트너와의 신뢰관계를 통해 이를 극복하는 전략을 활용했다.

KT&G가 현지화만 추진한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개발한 제품과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는 글로벌화 전략을 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구축했던 판매방식이다. 인도네시아 수입상이 자체적으로 개발해 활용한 광고판과 판촉물을 제품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는 요소로 판단한 KT&G는 한국의 글로벌 브랜드부와 연계해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했다. 또한 소비자들의 취향이 변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전 세계적 트렌드를 고려해 순한 담배로 인식되는 에쎄를 독한 담배를 선호하는 중동 시장에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의 환경 변화에 대한 분석과 다양한 지역에서 국제화를 통해 학습한 지식들을 통해 중동 시장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대응한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전략적 대응은 중동 시장에서의 매출 확대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에도 불구하고 독한 담배의 판매에만 치중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매출 감소의 위험을 분산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5단계: 시장 확대의 속도 결정

해외 시장 진출의 주요 의사결정 5단계는 ‘시장 확대의 속도 결정(Speed of Global Expansion)’이다. 중동 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KT&G는 대만,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시장 등 진출 지역을 단계적으로 확장했다. 그리고 신규 시장의 개척을 통한 매출 강화와 함께 현지화와 글로벌화 간의 조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더불어 2010년에는 가장 치열한 경쟁시장인 미국 시장에 법인을 설립해 진출했다. 미국은 기존에 진출했던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권의 다른 시장들에서와 달리 선진시장에서의 경험 축적과 수익성 향상이라는 차별적 목적을 갖고 진출한 시장이었다. 즉,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해외 사업 확대로 인해 유발된 복잡성을 감소시키고 각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마케팅 본부 산하의 브랜드국을 신설하는 등 조직 구조 개편을 단행하고 브랜드 매니저 시스템 도입을 통한 전문성 및 차별성 강화를 실행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높아질 경우 KT&G는 포트폴리오상 지역적 다양성을 강화해 위험을 분산하고 선진시장에서 습득한 지식과 노하우를 다른 시장에 적용하는 학습효과를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종합해볼 때 KT&G가 진행해 온 단계적 진출시장 확대는 명확한 목표 아래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진행돼 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국내 시장에 국한해 성장해 온 기업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자 할 때는 이전까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가며 새로운 의사결정들을 해야 한다. 해외 시장 진출과 관련한 좀 더 구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의 고려사항들은 [그림 6]에서 제시하고 있는 ‘의사결정 순서도(flow chart)’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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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KT&G는 현지 시장 환경에 대한 이해와 소비자들의 기호파악 및 제품개발, 유통채널에 대한 접근성 향상 등을 위해 현지 업체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서 전략적 제휴의 최종 결과는 또 다른 경쟁관계의 형성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경쟁관계에 있는 둘 이상의 기업들이 각자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협력하는 전략적 제휴에서 제휴 파트너는 결국 또 다른 경쟁자가 돼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는 다국적 기업은 국내 기업들과 비교할 때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복잡성과 불안정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KT&G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급격한 환율 변동과 같은 경제적 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국가 간 교역관계의 변화, 현지 시장의 다양한 정치·법률적 환경의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지역에 소재한 지사와 생산시설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적자원은 물론 재무자원에 대한 우수한 관리 역량 체계의 구축 및 활용도 필요할 것이다. 끊임없는 탐색과 혁신의 과정을 통해 다국적 기업으로서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해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DBR mini box I

사회자본(Social Capital)

해외에 진출하는 많은 기업이 현지에 파트너 기업을 두고 긴밀히 협업하면서 현지 시장 탐색 및 점유율 확대를 도모하는 방법을 택한다. 현지 협력기업은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 대한 적응을 돕고, 진출에 따른 기회비용을 줄이며,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기업 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시장 거래 관계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가능성과 유인을 배제할 수 없다.

사회자본(social capital) 이론에서는 두 기업 사이의 관계에 내재된 사회자본이 클수록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장기적 관점에서 상호협력하려는 유인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사회자본은 ‘둘 이상의 개인 혹은 조직들의 관계에 존재하거나 파생되는 실질적이며 잠재적인 자본의 합계’로 정의된다.

사회자본은 구조자본(structural capital), 인지자본(cognitive capital), 관계자본(ralational capital)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구조자본은 개인이나 조직 간의 연결 형태나 패턴을, 인지자본은 개인이나 조직 사이에 공유된 가치관이나 공유된 언어 등 주체들 사이에 구축된 공통된 인식체계를 말한다. 관계자본은 개인이나 조직들의 관계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자본으로, 오랜 기간 긴밀한 상호 접촉을 통해 형성된 신뢰나 존중 등의 감정적 특성을 일컫는다. 이런 차원들을 총합한 사회자본이 본국의 기업과 현지의 파트너 사이에 탄탄하게 형성될 때, 두 기업은 각자 보유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거나 문제 해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유인을 가질 수 있다(Nahapiet and Ghoshal, 1998; Muthusamy and White, 2005; Presuti et al., 2007).

DBR mini box II 
KT&G의 ‘브랜드 매니저 시스템’

국가별 트렌드를 분석해서 소비자 맞춤형 담배를 제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마케팅본부 산하의 브랜드국 역할이 컸다. KT&G는 2002년 12월 민영화 작업을 마치면서 조직 개편을 단행했고, 이런 중에 브랜드국을 신설했다. 담배라는 상품에 ‘브랜드’를 입혀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변화다. 브랜드국에는 ‘브랜드 매니저 시스템’이 도입됐다. 파인, 에쎄, 보헴 등 주요 브랜드별로 전담 매니저를 두고 브랜드와 관련된 모든 업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끔 했다. 브랜드 매니저들은 시장 및 트렌드 변화를 읽고 제품 리뉴얼이나 각종 한정판 제품 출시, 디자인 변경, 제품별 라인 확장(product extension) 등을 총괄한다.

해외 현지 수요에 대응해 신규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도 브랜드국에서 담당한다. 이들은 아이디어 창출이나 제품 경쟁력 평가 및 이를 반영하는 과정 전반을 담당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업무한다.

국내 담배시장이 전면 개방된 이후에도 KT&G가 시장점유율 60%를 수성하고 있는 것은 일찍부터 트렌드 파악 및 제품 브랜드 관리에 공들여 온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담배시장이 개방되면 글로벌 공룡기업들의 공세에 밀려 로컬기업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결국 인수합병되고 마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세계 담배산업 사상 시장 개방 후 자국 시장점유율 6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로컬기업은 KT&G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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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가 해외 각국에서 거둔 성과

현재 KT&G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이란, 터키 등 6개 지역에 법인 및 지사를 두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진출해 있는 나라는 세계 50여 개국.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을 간단히 소개한다.

1. 대만: 2002년 대만에 진출하면서 다른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던 에쎄를 첫 타자로 소개했다. 소개 후, 초슬림 제품군에서는 에쎄가 단숨에 판매량 1위로 올라섰지만 전체 담배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다. 고타르 담배를 피우는 중화권 문화의 영향으로 초슬림 저타르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KT&G는 2010년 대만 시장을 공략하는 주력 제품을 보헴(BOHEM)으로 변경했다. 에쎄를 통해 형성된 한국산 담배에 대한 우호적 이미지를 토대로 대만 시장에 맞춤형 제품을 출시하기로 한 것. 보헴은 2007년 국내 최초로 일반 담뱃잎에 쿠바산 시가엽(시가 담뱃잎)을 30% 배합해 만든 제품이다. KT&G는 대만에 젊은 흡연인구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내에서 먼저 선보였던 보헴이 독특한 향을 즐기는 젊은 층에 유독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 착안해 보헴을 대만에 대한 주력 제품으로 선정했다. 담뱃갑 디자인도 흰색 바탕에 제품명이 들어가는 기존 제품과 달리 남색, 상아색, 금색 등을 활용해 색다른 이미지를 선보였다. 주력 제품을 변경한 결과, 2010년 당시 1684만 개비에 불과했던 보헴의 대만 시장 판매량은 2017년 4억7000만 개비로 증가했다. KT&G의 시장점유율도 3%로 높아졌다.

2.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2억60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인 동시에 동남아시아 최대의 담배시장이다. 인도네시아 성인 남성 3명 중 2명이 담배를 피울 정도로 흡연율이 높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정향(Clove)이라는 향료가 첨가된 크레텍 담배가 판매 비중 90%를 차지할 정도로 이 종류의 담배가 선호된다. KT&G는 현지 소비자 기호에 맞는 제품 개발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에쎄를 소개하되 크레텍이 첨가한 버전을 새로 내놨다. 인도네시아 맞춤형 담배다. 또한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 3위 담배업체인 트리삭티를 인수해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는 한편 인도네시아를 발판 삼아 동남아시아 시장을 더욱 확대해가고 있다.

3.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경우 광고 등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이 쉽지 않은 시장이다. 2007년 처음 진출했을 때만 해도 기회 대비 리스크가 크다는 우려가 많았다. 열악한 인프라와 테러 등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고 메이저 담배회사에 비해 진출도 늦었다. KT&G는 아프리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초슬림 미니 담배를 선보이는 한편 신제품을 널리 알릴 수 있는 홍보 방법을 두고 고민했다. 한 수입상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염소를 활용해 보면 어떨까’라는 의견을 내놨다. 자칫 농담으로 넘겨버릴 수도 있는 아이디어였지만 KT&G 아프리카 담당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염소들의 몸통에 KT&G 브랜드를 새겨 풀어 놓은 것. 염소들은 나이지리아 벌판을 돌아다니며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활약했고, 이 지역에서의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허옥엽(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유재욱 건국대 경영대 교수 jwyoo@konkuk.ac.kr


유재욱 교수는 워싱턴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을 거쳐 건국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스 후즈후(Who’s Who in the World)’, 영국 케임브리지국제인명센터 ‘21세기 탁월한 지식인 2000인’, 미국인명연구소 ‘21세기 탁월한 지성’에 모두 등재됐다. 저서로는 『현대사회와 지속가능경영』이 있고 경영학 분야 국내외 저널에 수십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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