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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 in Practice

가나 영양실조 아동 돕다 새 활로 찾아. 일본 아지노모토에서 배우는 시장전략

신현암 | 226호 (2017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일본의 대표적 조미료 회사 아지노모토는 지난 2009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아프리카(가나)의 영유아들을 돕기로 결정했다. 가나 일반 가정에서 아기들에게 흔히 먹이는 이유식 ‘코코(옥수수 발효죽)’에 쉽게 섞어 먹일 수 있는 보조식품 ‘코코 플러스’ 개발에 나선 것. 가난한 사람도 구입할 수 있고(affordable), 가나의 기존 식문화에 기반(acceptable)을 두고, 맛도 좋아 구매 의욕을 자극하는(aspirational) 제품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가나 현지에서 시제품 생산을 맡을 파트너 회사를 발굴해 기술을 이전했고, 정부와도 양해각서를 맺고 코코플러스의 영양 개선 효과에 대한 대단위 실험도 실시했다. 아지노모토는 가나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어린이용 응급영양식품 개발 사업 기회를 검토해보는 등 BoP 시장 진출 방안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



요즈음 TV 채널을 돌리면 ‘먹방’ ‘쿡방’을 자주 접한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 못지않게 직접 요리해 먹거나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설탕이나 MSG(글루탐산 일나트륨)를 넣는 게 몸에 좋다, 나쁘다 말들이 많지만 음식 맛을 돋운다는 점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나이 드신 세대들은 MSG를 흔히 미원이라고 부른다. ㈜대상이 1956년에 내놓은 제품의 브랜드명인데 카테고리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마치 크리넥스, 스카치테이프처럼 말이다.

일본의 MSG 역사는 더욱 길다. 스즈키제약소라는 회사가 1909년에 아지노모토(MSG의 브랜드명)를 발매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제품 브랜드가 막강하면 회사 브랜드가 바뀌기도 한다. 맥주시장에서 하이트가 대박을 터트리자 조선맥주가 하이트맥주로 명칭을 바꾼 것이 좋은 예다. 마찬가지로 스즈키제약소도 1946년에 아지노모토로 사명을 변경했다. 당시 회사 내에서 조미료 사업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아지노모토는 이후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식품사업, 아미노산사업, 의약사업을 3대 주력 사업 분야로 꼽는다. 식품사업은 조미료 외에 냉동식품, 가공식품 등을, 아미노산사업은 감미료, 화장품, 비료 등을, 의약사업은 수액, 당뇨병 치료제 등을 각각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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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MSG의 원조 아지노모토, 영양실조 아동들에 주목

2009년 창립 100주년을 맞은 아지노모토는 뭔가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자사가 갖고 있는 강점을 활용해 사회공헌도 하고 기업 경영에도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찾고 있었다. 자사가 보유한 다양한 제품 중에서 아미노산이 눈에 띄었다. 단백질의 최소 단위인 아미노산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중요한 영양소다. 아미노산은 필수와 불필수로 나뉜다. 필수 아미노산은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 반면 불필수 아미노산은 섭취가 없어도 신체 내에서 합성이 이뤄진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20여 종의 아미노산 중 9종은 필수 아미노산이다.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 해당 아미노산으로 단백질을 만드는 데 문제가 생기고, 이는 영양 부족으로 이어진다. 필수 아미노산과 영양 부족 문제를 연계한다면 사회에도 좋고, 기업에도 좋은 무언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사내에서 개진됐다. 마침 아지노모토는 필수 아미노산을 활용해 영양 성분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1995년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던 참이었다. 사내에 노하우가 쌓여 있다는 의미다.

영양 부족 문제 해결책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아프리카 가나의 영아사망률 문제가 아지노모토의 관심을 끌었다. 2010년 WHO(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아프리카 가나의 영아 사망률(생후 12개월 내)은 1000명 당 51명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영양 부족도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가나에서 태어난 아이는 생후 6개월이 되면 젖을 떼고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다. 현지에서는 이 이유식을 ‘코코(Koko)’라고 부르는데 옥수수를 발효시킨 죽이라고 보면 된다. 옥수수에 영양분이 있어야 얼마나 있겠나. 단백질이 부족한 전통 유아식이 유아의 저성장, 저체중의 원인이 됐다. 아지노모토는 여기에 주목했다. 코코에 섞어 먹이는 영양가 높은 보조식품을 개발한다면 유아 신체 발달에 도움을 주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아지노모토는 현지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의 조건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빈곤층에서도 구입 가능할 것(affordable), 둘째, 전통적 식문화를 존중할 것(acceptable), 셋째, 현지인들이 제품 구입을 열망하고 주위에 자랑하고 싶어 할 것(aspirational). 이러한 전제 조건하에서 콩을 기반으로 단백질, 아미노산, 비타민, 미네랄을 첨가한 ‘코코 플러스’라는 제품을 만들었다. 봉지당 15g을 담아 100원 정도의 소매가를 책정했다. 끼니당 5g씩 하루에 세 번 사용할 분량이다. 최소 일주일에 사흘은 먹어야 영양 부족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다면 한 달에 12봉지, 즉 1200원 정도가 필요한 셈이다. 다행히 이 정도는 가나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도 부담할 수 있는 금액(affordable)이었다. 또한 별도의 식품을 개발하지 않고 기존 유아식에 섞어 먹는 방식을 채택해 기존의 식문화를 존중(acceptable)했다. 마지막으로 보조식품을 코코에 섞었을 때 맛이 더욱 좋아지도록(aspirational) 만들었다. 옥수수죽에 무언가를 첨가했을 때 맛이 이상하게 바뀌어 현지 엄마, 현지 아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판매가 안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지노모토는 현지인 입맛에 맞는 제품 생산에 집중했고, 결국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맛을 찾아냈다.



개도국 현지 생산 파트너 및 정부와 협력해 프로젝트 진행

가격 부담도 적고, 기존 식문화에 기반하며, 맛도 좋아 구매 의욕까지 자극할 수 있는 시제품 개발에 성공한 아지노모토는 현지 원료를 사용해 현지 생산까지 마무리 짓기 위해 적절한 파트너 물색에 나섰다. 혹시 아지노모토가 빠지더라도 지속적으로 제품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 게 목표였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현지 농업 생산성 증진, 현지 기업역량 향상, 고용 창출 등이 가치사슬의 뒷단에 연결돼 있다. 이 또한 수행 가능한 기업이어야 한다. 물색 끝에 현지 식품회사인 예덴트(Yedent)를 파트너로 선정했다. UN 산하 ‘세계식량계획(WFP·World Foods Programme)’이나 영양 강화를 위한 국제연합(GAIN·Global Alliance for Improved Nutrition)과 일해본 경험이 있어 글로벌 프로젝트를 잘 수행할 것으로 여겨졌다. 아지노모토식품연구소 연구원들이 기술 이전에 주력했다. 2011년 후반부터 시험 생산에 들어갔다.

한발 더 나아가 아지노모토는 2011년 가나 보건성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실 정부 부처가 민간기업과 MOU를 맺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아지노모토 측의 프로젝트 취지에 공감한 가나 정부는 기꺼이 MOU에 사인했다. 아지노모토 입장에서는 개발한 제품이 정말 영양 개선에 도움이 되는지 실험을 해야만 했다. 정부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아지노모토는 2012년 5월부터 2015년 3월까지 가나 중부지방에서 실험을 실시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 코코플러스를 먹은 유아가 코코플러스가 아닌 다른 영양소만 약간 섭취한 유아나, 아무 것도 섭취하지 않은 유아와 비교해 건강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나는 북부와 남부의 환경이 전혀 다르다. 농업 중심의 북부는 소득도 낮고 영양상태 문제도 심각하다. 상업과 농업이 혼재된 남부는 소득이나 영양상태 면에서 북부보다는 덜하지만 주변국에 비하면 여전히 문제점을 안고 있다. 북부지역에서는 여성 인력을 판매사원으로 하는 모델을 실험했고, 남부지역에서는 소규모 소매점 유통과 라디오 광고를 병행했다. 북부지역의 효과가 높았다. 라디오로 ‘영양 만점의 제품’이라고 광고하는 것보다 판매사원들이 일일이 제품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설명하는 것이 효과가 훨씬 컸다.



개도국 BoP 시장 공략하려면

아지노모토는 가나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5년부터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어린이용 응급영양식품(RUFT·Ready to Use for Therapeutic Food)의 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RUFT는 죽처럼 걸쭉한 액상 제품이다. 파우치를 개봉해 바로 먹을 수 있다. 6∼8주간 섭취하면 심한 영양 불량 상태에서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중에서도 사하라 이남 지역은 자연재해, 내전 등으로 식량 위기와 영양 불량 문제가 심각하다. 이 시장의 70%를 구미기업이 장악하고 있는데 아지노모토는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곡물을 중심으로 제품 개발에 나섰다. 본격 생산 체제가 갖춰지면 생산단가도 떨어지고 그만큼 가격경쟁력을 지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도국 빈곤층에 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은 C.K. 프라할라드 교수의 명저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에서 출발했다.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40억 명을 도움의 대상이 아닌 판매의 대상, 즉 시장으로 보라는 발상이 신선했다. 오늘의 빈곤층이 미래의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이들에 대해 지금부터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아지노모토는 개도국 현지에 필요한 제품 생산에 도움을 주면서 향후 유망 시장으로 부상할 개도국 저소득층 시장을 미리 경험해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이러한 실전 경험은 추후 유사한 개도국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큰 위력을 발휘한다. 개도국 측에도 필요한 상품을 무상으로 받는 것보다 상품개발을 지원받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가나에 필요한 아미노산 성분이 포함된 영양제를 아지노모토가 자체 공장에서 만들어 배송해줄 수도 있다. 시혜적 차원의 CSR 활동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영양 부족이라는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원조가 중단될 경우 그만큼 고통이 커진다. 반면 현지 공장에 기술을 지원하고 산업을 키운다면 가나의 경제 성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원조가 중단돼도 자체적으로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활동은 기술을 주는 기업도, 기술을 받는 개도국도 상생하는 모델이다.

아지노모토는 매출액 기준으로 전 세계 식품기업 중 10위가 목표다. 일본에서는 알아주는 식품 대기업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네슬레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 내 일류, 글로벌 이류’라는 위기의식이 조직 내에 팽배해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개도국 빈곤층 시장을 피할 수 없다. 이 시장은 선진국 시장은 물론이고 개도국 부유층 시장과도 전혀 다르다. 이 시장을 공략하려면 현지 정부나 NGO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정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아지노모토 사례를 곱씹어 보면 개도국 빈곤층 시장에 어떻게 진출하는가에 대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신현암 前 삼성경제연구소 사회공헌연구실장 gowmi123@gmail.com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연구실장을 지냈다. 저서로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공저)> <잉잉?윈윈!> 등이 있다.
  • 신현암 신현암 | -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회공헌연구실장
    - 제일제당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 담당
    - CJ엔터테인먼트 근무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실장
    gowmi1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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