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걸어들어간 환자가 더 행복한 이유

222호 (2017년 4월 Issue 1)

연재 첫 회에서 ‘격의 경영’을 실천하는 몇몇 병원의 사례를 간단히 소개한 바 있다. 이제 좀 더 자세한 사례로 들어가 보자. ‘기도하는 의사’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병원 얘기다.

수술실을 향하는 환자들의 하소연은 대개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혹여 수술실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영영 못 보게 될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 가족에 대한 걱정과 불안, 연민 등 수술실을 향하는 침대에 누우면 왜 그리도 걱정과 생각이 많아지는지 불안과 초조함을 달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송반원에 이끌려 수술실을 향하는 도중 잠시 서있거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시선이 너무도 부담스럽고 창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은 안대나 머리맡을 가려달라는 요구를 한다.

모든 환자에게 적용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고 동의하는 환자에 한해서 수술실까지 걸어가게 하는 병원이 있다. 이송반원이나 보호자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이동하다 보니 못 깨어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훨씬 덜할 뿐 아니라 수술실을 향하는 침대에 누울 일이 없어 다른 사람들이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 환자 만족도가 거의 만점에 가깝다.

환자가 수술실로 걸어가는 프로세스를 도입하려면 걸어가는 환자를 위한 수술복, 걸어가는 환자 이동경로에 대한 서비스 디자인 등 많은 것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따라서 침대에 누워서 가는 환자와는 다른 수술복으로 새로 디자인했고 쾌적하고 청결한 실내환경 조성에도 힘썼다. 물론, 잠시라도 창밖으로 눈길을 돌릴 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자 성경구절도 창에 새겼다. 건강한 사람은 창밖의 경치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지만 수술실을 향하는 환자는 창에 새겨진 성경구절이 그렇게나 큰 위안이 되더라는 후기가 많다.

수술실에 도착하면 환자의 동의하에 주치의 선생님을 비롯한 전 의료진이 환자의 몸에 손을 얹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기도를 한다.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기도하는 의사’ 프로그램이야말로 ‘시그니처 서비스’이자 병원의 격을 끌어올리는 최고의 프로그램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게 다가 아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눈을 뜨면 여기가 불안에 떨던 천국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품’임을 알려주는 천장에 새겨진 성경구절이 또 한번 맞아준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처럼 서비스에 대한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다. 고객이 원하지도 않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과도할 정도로 제공하던 방식에서 약간의 수고로움이 따르더라도 고객에게 꼭 필요한 가치(Value)만을 맞춤 제공하는 서비스로 바뀌고 있다. 환자가 수술실까지 걸어가야 하는 약간의 수고로움이 따르더라도 환자에게 꼭 필요한 가치, 즉 창피함이나 불안감을 떨치고 싶은 심정을 고려한 서비스로 바뀐 것이다. 격의 경영이란 그런 것이다. 약간 부족한 듯, 모자란 듯 절제하는 서비스, 그 속에 격이 숨겨져 있다. 격은 좇으려 하면 어느샌가 저 멀리 달아나 있다. 격은 좇는 대상이 아니라 불러들이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kimjin@yuhs.ac

필자는 1989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중공업 기획실, 삼성 회장비서실 인력개발원, 삼성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에서 인사교육전략수립과 현장 적용을 총괄한 HR 전문가다. 호텔신라 서비스 드림팀을 창단해 호텔 품격 서비스의 원형을 보여줬고, 차병원그룹 차움의 최고운영총괄을 맡아 의료서비스 분야에도 품격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는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 경희대에서 국제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8호 Future Mobility 2020년 6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