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 도가니탕 집들에 정작 도가니는 없었다. 손질을 하고 나면 재료가 얼마 남지 않는 도가니 대신 대부분 식당들이 스지(힘줄)를 선택한 것이었다. ‘도가니탕에 도가니를 쓰지 않는 것은 손님들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고집을 지키며 도가니만 사용한 착한 식당은 오히려 적자 속에 도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다행히 방송을 통해 ‘진짜 도가니탕’을 팔아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착한 식당은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손님들은 도가니탕의 맛이 아니라 도가니탕 한 그릇에 담긴 이 식당의 원칙과 경영철학에 감동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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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식당들이 수지타산을 맞추려고, 더 자극적인 맛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려고, 더 쉽고 빠르게 음식을 만들려고 재료를 은근슬쩍 바꿔치기하거나 적절치 않은 첨가물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는 외롭게 손님과의 약속을 지켜온 ‘착한 식당’들도 있습니다. ‘먹거리 X파일’의 진행자로 착한 식당과 그 경영자들을 만나온 김진 기자가 착한 식당에서 만난 ‘착한 경영’의 비밀을 소개합니다.
손해를 감수해가며 음식을 팔아온 착한 도가니탕 집
소의 무릎 뼈를 흔히 ‘도가니’라고 부른다. 무릎 뼈에 붙어 있는 연골과 살코기에서 우러난 특유의 고소함과 담백함, 그 영양가와 든든함은 도가니탕만이 가진 매력이다. 그런데 참 애석하게도 서울의 수십 년 된 유명 도가니탕 집들 대다수는 하나같이 ‘가짜 도가니’를 사용해왔다. 이들이 도가니 대신 ‘스지’라고 불리는 소의 힘줄로 가짜 도가니탕을 끓여왔다는 사실에 많은 소비자들을 분개했다.
그런데 이 ‘가짜 도가니탕 케이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일단 스지가 도가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도가니와 가짜 도가니(스지)의 가격은 엇비슷하다. 그렇다면 왜 진짜 도가니를 안 쓰고 힘줄로 가짜 도가니탕을 끓여서 판매해온 걸까.
비밀은 삶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재료의 비중, 한마디로 ‘로스(loss) 비율’ 차이에 있다. 스지는 조리 과정에서 양이 거의 줄어들지 않고 많은 고기가 나온다. 반면 도가니는 같은 중량이라고 해도 무릎 뼈에 붙어 있는 살코기 자체가 적기 때문에 손질을 하고 나면 정작 먹을 수 있는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도가니의 로스 비율이 훨씬 높은 셈이다. 이 때문에 식당들은 더 많은 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스지를 선택해 온 것이다.
식당을 경영하는 오너라면 이 같은 조건에서 어떤 경영 판단을 내리는 것이 현명할까. 30년 전통 도가니탕 집도 30년간 스지를 사용해왔으니 소비자들이 가짜 도가니의 맛을 구분해 낼 가능성은 적다. 게다가 스지라는 부위가 사람이 못 먹을 부위도 아니고, 나름 적당히 맛도 있는 식재료다. 그렇게까지 부도덕한 행위도 아닐뿐더러 많은 마진을 남길 수 있고, 소비자들이 알아챌 가능성도 낮은 것 아닌가.
게다가 진짜 도가니만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로스 비율이 높고 마진이 적은 진짜 도가니만을 사용하다보면 영업이 잘되거나, 안 되거나 경쟁 업체에 비해 항상 영업이익이 적다. 급기야 적자를 기록할 때도 찾아올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짜를 쓰는 집보다 ‘진짜’를 쓰는 집이 더 큰 경영상 고민에 빠져들었다. 필자가 찾은 도가니탕 편 ‘착한 식당’의 주인공 역시 식당을 계속 경영해야 하느냐는 선택의 기로에까지 몰리기도 했었다.
사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장부상의 회계 숫자들로만 보면 착한 도가니탕 집이 경영 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단 두 가지였다. 눈 딱 감고 다른 집처럼 스지를 사용하는 방법. 또 하나는 가게 문을 닫는 방법이었다. 진짜 도가니를 고집하면서 그로 인한 손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은 없어보였다.
김진Holyjjin@donga.com
-2010년 동아일보 입사
-채널A 개국 이후 방송기자 및 앵커
-2014년부터 ‘먹거리 X파일’의 진행을 맡아 착한 식당들 발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