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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 국내 특허, 논문 같은 특허명세서 경쟁사에 기술 가져다 쓰라는 말과 같다

심영택 | 202호 (2016년 6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특허는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이때 핵심은 특허청구항의 범위다. 특정 문제에 대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밀하고 깊게 파고드는 학술 연구 논문처럼 특허명세서를 작성해선 수익을 창출하기 힘들다. 후발 경쟁업체들이 세부 내용만 살짝 고쳐 특허 기술을 우회함으로써 모든 수익을 가로챌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무용론(無用論)이 나올 정도로 열악한 국내 특허 환경을 고려할 때, 한국 기업들은 미국, 유럽, 중국 등 핵심 국가에 대한 특허 출원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때 국내 대리인(변리사)에게 처음부터 적정한 수임료를 내고 우량한 특허명세서를 국문으로 작성한 후 이를 번역해 해외 특허 출원에 힘쓰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편집자주

이 글은 필자의 책 실크로드(2016)>의 내용을 일부 발췌해 편집한 내용입니다.

 

청진기는 의사가 환자의 심장 박동과 혈류, 폐 및 호흡의 음성신호를 얻는 원시적이지만 신뢰성이 높은 의료기구다. 의사는 음성신호를 수집하는 집음반(cup)을 환자의 가슴, 복부 등에 대고 신체 내부의 소리를 듣고, 환자의 상태를 진단한다. 하지만 이러한 청진기에도 심각한 단점이 있다. 즉 의사가 환자의 음성신호를 듣고 진단을 내릴 수는 있지만 의사는 방금 자신이 들었던 음성신호를 장기적으로 저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1995년 내과전문의이자 발명가인 이 모 박사는 기존 아날로그 청진기(그림 1-1) 대신 디지털로 신호를 처리하는 <그림 1-2>의 디지털 청진기를 고안했다. 디지털 청진기는 환자의 심장, 폐의 음성신호를 저장,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내과 진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 발명이었다. 이 박사는 이를 국내 실용실안으로 등록했고, 10여 개에 달하는 해외 특허도 등록했다. 이 박사는 국내외 발명전시회에도 참여해 7∼8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그의 부스(booth)를 찾은 외국인들은 수백만 달러를 제시하며 이 박사의 디지털 청진기 특허 포트폴리오를 몽땅 매입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친절하게 명함을 주고 간 외국 바이어들은 더 이상 아무도 이 박사를 다시 찾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림 2>와 같이 수많은 외국 제조업체들이 다양한 디지털 청진기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박사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매입하거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자는 업체는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해답은 바로 이 박사의 대리인이 작성한 국내 실용신안의 청구항범위에서 찾을 수 있다.

 

 

특허청구항 범위의 중요성

< 1>은 이 박사의 대리인이 작성한 국내 실용신안의 유일한 청구항이다. < 1>에서와 같이 이 박사가 발명한 디지털 청진기에 대한 청구항은 두 개의 집음반, 연결관, 집음관, 지지관, 전자증폭회로, 스피커 등 다수의 다양한 특징을 청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특징을 청구한 청구항의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좁아터진범위.

 

 

 

 

특허청구항의 범위가 협소한 게 왜 문제가 될까? 소위죽 쑤어 개주는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박사가 청구항에 기재한 각종 특징 중 하나라도 없는 제품은 이 박사의 청구항의 권리 범위에 속하지 않게 된다.1 예를 들어, ‘두 개의 집음반대신한 개의 집음반을 사용하는 모든 디지털 청진기는 이 박사의 권리 범위를 단숨에 벗어나 합법적으로 이 박사의 특허를 우회할 수 있다. 이 박사가 아무리다른 경쟁기업들은 모두 내 특허에 무임승차한 것이라고 비난해도 그뿐이다. 결국 광범위한 청구항을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쟁기업들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다행히 이 박사는 최근 소음제거 장치를 포함하는 디지털 청진기에 대한 국내외 특허를 확보하고 이에 대한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1995년 이 박사를 대리한 대리인이 청구항에크고 작은 두 집음반이라는 구절 대신하나 이상의 집음반이라고만 기재했더라도 경쟁기업들이 이 박사의 특허를 우회하기는 몹시 어려웠을 것이며, 그 결과 이 박사는 벌써 자신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수백만 달러에 매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특허에선 범위가 매우 중요하다. 특허는범위로 시작해범위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량 특허를 만들기 위해선 특허명세서 작성 시 청구항의 범위를 최대한 넓게 잡아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특허 범위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된 원인으로 필자는 특허명세서 작성을 마치 연구 논문 작성과 비슷한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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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영택

    - (현)서울대 기술지주회사 부사장, 서울대 법과대학 초빙교수
    - 서울대 산학협력재단 본부장, 인털렉추얼벤처스 코리아 지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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