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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오는 문을 닫았을까

김남국 | 186호 (2015년 10월 Issue 1)

 

제오(Zeo)라는 이름의 수면분석기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머리에 차고 잠을 자면 수면의 질을 분석해주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한때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성장성이 기대되면서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했고 유명 인사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품을 써본 사람들도 꽤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회사는 2013년 폐업했습니다.

 

이번 호 DBR 스페셜 리포트 제작에 참여한 김치원 서울와이즈요양병원 원장은 제오가 수면 패턴을 정확히 알려주긴 했지만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실패 원인이라고 분석합니다. 호기심으로 제품을 사는초기 수용자(early adopter)’를 넘어서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수면의 질을 실제로 높여주는 솔루션까지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는 분석입니다. 매우 설득력이 있는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반의 제품만으로 수면의 질을 실제로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는 무척 어렵다는 점이 고민거리입니다. 제오의 경영진이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이런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의료기관이 아닌 스타트업 기업이 수면의 질을 높여주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제오는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모델이었을까요. 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오가 고객과 시장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했다면 생존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제오는 초기부터 대중시장을 겨냥했습니다. 전문 의료용품이 아니라 전자제품처럼 누구라도 살 수 있는 제품으로 포지셔닝했습니다. 근본적인 패착은 여기에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제오의 강점은 매우 전문적인 수면 패턴의 분석입니다. 그런데 다수 대중들이 이런 깊이 있는 수준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잠을 잘 못 잤다는 사실은 그냥 아침에 깨어보면 누구라도 체감할 수 있습니다. 굳이 400달러나 주고 세부적인 수면 데이터를 확보해야 할 이유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핏비트 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뒤척임 등의 데이터를 근거로 해서 제오보다는 덜 정교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히 유용한 수면 데이터를 제공하자 제오의 매력도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다급해진 제오는 대규모 마케팅비를 쏟아부었지만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만약 제오가 의료기관, 의사 등을 상대로 해서 전문 의료용품으로 판매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FDA 승인 같은 절차를 거쳐야 했겠지만 대중을 상대로 할 때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정부 승인이나 전문가 대상 마케팅을 펼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투자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도 더 길어졌겠죠. 의사들은 심각한 수면 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치료 효과가 있다는 점을 제오의 객관적인 데이터로 제시하면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구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여기에 보험사까지 설득했다면 금상첨화였겠죠. 의사를 상대로 한 시장은 일반 대중보다는 규모가 작겠지만 글로벌화를 추진한다면 성장에 대한 갈증도 해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현실 비즈니스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전문 의료용품으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이 무조건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시장의 구조, 고객의 욕구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이 있었다면 사업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의료 산업은 이해관계자가 많고 사람의 건강 및 생명과 직결된 분야여서 훨씬 깊이 있는 시장에 대한 통찰이 필요합니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보건 의료 분야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파괴전략 시리즈의 세 번째 주제로 다룬 보건·환경 산업 콘텐츠를 토대로 혁신 아이디어를 장착하시기 바랍니다. 또 이번 호 DBR Case Study 코너에서는 150일간 이어졌던 시내 면세점 입찰이 주는 교훈을 다뤘습니다. 이 사례 분석의 이유는 성공을 축하해주고 실패를 비판하자는 게 결코 아닙니다. 성공때문에망하고 실패덕분에흥하는 시대에 이런 사고는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면세점 대전은 한국 최고의 인재들이 사활을 건 경쟁을 펼친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사례이고 큰 교훈을 주기 때문에 분석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입찰 결과와 무관하게 이 사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교훈과 통찰은 얻은 기업만이 장기적으로 번영할 것입니다. 이 사례가 모든 기업에 좋은 학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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