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vs. Business Strategy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단순한 계산을 넘어 점령 목표의 전략적 가치는 따로 봐야 한다. 전쟁사례 - 미군의 사이판·이오지마 점령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사이판, 괌, 티니안 섬으로 이뤄진 마리아나 제도와 이오지마 섬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무려 1만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음. 이는 당시 태평양 전선에서의 미군 전사자 총수의 10분의 1에 해당함. 과다해 보이는 피해이긴 하나 일본 본토 공격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함으로써 결국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음. 경영사례 - 레노버의 IBM 인수 중국 내수시장 기반의 PC 사업자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일견 무리해 보이는 IBM PC사업부를 인수. 당초 IMB 측에 제시했던 인수 금액(11억 달러)보다 60% 할증된 액수(17억5000달러)로 최종 계약을 마무리했지만 그 결과 세계 3위의 글로벌 PC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
편집자주
전략은 원래 전쟁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전략의 이론은 중국의 <손자병법>부터 시작해서 19세기 독일의 클라우제비츠에 이어 20세기 영국의 리델 하트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쳐 정립되고, 또 실전에서 적용돼 왔습니다. 그만큼 경영전략은 실제 전쟁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점이 많습니다. 현장형 경영전략 전문가인 김경원 박사가 전쟁 사례로부터 얻은 전략적 교훈이 어떻게 실제 경영사례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소개합니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전쟁 사례를 통해 의미 있는 경영 전략의 지혜를 얻어가시기 바랍니다.
<손자병법>의 ‘지형(地形)’ 편에 나오는 ‘통형(通形)’이란 먼저 점령하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땅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대가가 필요하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 피인수기업의 가치를 산정할 때 이 기업의 미래 현금창출 능력에 기초한 ‘적정가치’보다 가격을 더 쳐주면 인수기업의 주가가 떨어지는 사례가 많다. 단순히 주가 하락에 머물지 않고 ‘승자의 저주’에 내몰리는 경우도 많다. 치열한 기업 인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불한 탓에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설상가상 M&A로 인해 기대했던 시너지도 얻지 못해 큰 후유증을 앓는 경우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M&A에 승자의 저주가 뒤따르는 것을 많은 경영자들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비용을 치르는 경우가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피인수기업이 회사의 고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교두보적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는 따로 보아 더 쳐줄 용의가 있어야 한다. 다음의 전쟁과 경영의 사례는 목표 자체의 가치보다 ‘전략적 가치’를 봐서 대가 지불을 불사했던 경우다. 목표 자체의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이나 금전적인 비용을 치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상의 보상이 돌아왔다.
전쟁 사례
큰 희생을 무릅쓴 미군의 사이판·이오지마 점령
1944년 6월15일에 미군은 사이판, 괌, 티니안 섬으로 이뤄진 마리아나 제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군 상륙부대는 해병대 제2사단과 제4사단, 육군 제27사단으로 이뤄진 대부대였다. 이 섬들을 지키던 일본군은 총 3만1000명으로서 역시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다. 일본군의 저항은 거셌다. 수비하던 일본군 병력의 100%에 가까운 3만 명 이상이 전사한 후인 7월9일에 이르러서야 미군은 이 섬을 완전히 장악했다. 미군의 희생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들 섬에 상륙한 총 7만1000명의 병력 중 3500여 명이 전사했고 1만30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이들 섬에 상륙하자마자 미군은 비행장을 점령하고 활주로 등을 정비해 그해 11월에 100대 이상의 B-29 전략 폭격기를 배치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이 섬들을 점령하려 했던 이유였다. 사이판은 일본 본토로부터 2100㎞ 떨어져 있고, B-29의 작전 반경은 2400㎞다. 즉, 이들 폭격기는 도쿄를 폭격하고 귀환할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곳에서 발진하는 B-29의 일본 본토 폭격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B-29에는 지상에서 10㎞ 떨어진 고공을 날아가며 폭격할 수 있도록 정밀조준 장치가 장착돼 있었다. 이 고공 폭격은 최고 고도가 훨씬 낮은 일본 전투기들의 요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 폭격기 승무원들은 이를 선호했다. 그러나 편서풍이 많은 일본의 기후 때문에 고공에서 떨어뜨린 폭탄이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1944년 12월, 폭격기 사령부의 지휘관으로 새로 부임한 커티스 르메이 소장은 전략적 가치가 큰 군사시설 등에 대한 고공 정밀 폭격이 일본 전장에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폭격의 정확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주요 도시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전략 방향을 수정하고 목조건물이 많은 일본 도시의 특성상 소이탄을 이용한 공격이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르메이 소장은 소이탄을 잔뜩 실은 B-29가 최고 고도보다 훨씬 낮은 고도로 비행하면서 폭격을 실시하도록 했다. 1945년 2월 B-29 172기를 동원해 실시한 소이탄 폭격은 도쿄 도심의 상당 부분을 태워버렸다. 그런데 고도를 낮추자 이 폭격기를 잡기 위해 요격 나오는 일본 전투기에 의한 미군의 피해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유럽에서도 초기 이런 문제가 있었으나 미국이 항속거리가 긴 전투기들을 개발해 폭격기를 호위하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사이판의 비행장에서 B-29와 같이 출격해 일본 본토까지 호위해주고 돌아와 줄 만큼 긴 항속거리를 가진 전투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1945년 2월19일 아침 9시경, 미군은 사이판 섬과 일본 본토 사이의 딱 중간쯤에 위치한 화산섬인 이오지마 섬에 상륙했다. 7만 명의 해병대 병력을 동원해 2만2000여 명의 일본군 수비병력이 지키고 있는 이 섬을 공격한 것이다. 그런데 방어 책임을 맡은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중장은 미국 하버드대 등에 유학한 적이 있는 지장(智將)이었다. 그는 1년여 동안에 걸쳐 섬 전체를 지하 요새화한 채 미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 동굴들을 통로로 연결시키고 이를 이용한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로 진격해오는 미군들을 부단히 괴롭혔다. 이에 따라 미군은 동굴 하나하나를 수색하고 화염 방사기와 수류탄으로 적을 제압하고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은 상륙한 지 한 달 일주일이 지난 3월26일에서야 이오지마 섬을 장악했다. 희생은 매우 컸다. 전사자 수는 총 6800명이 넘었으며 부상자 수도 1만9000명을 크게 상회했다. 이는 상륙한 병력 중 반에 가까운 병력이 죽거나 부상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오지마 섬의 점령으로 전장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P-51 머스탱 전투기의 작전 거리 안에 일본 본토가 들어오게 됐다. 이 전투기의 작전 반경은 1500㎞를 상회해 도쿄로부터 남쪽으로 1200㎞ 떨어진 이 섬의 비행장에서 이륙하면 B-29 폭격기의 임무 수행을 지원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당연히 이때부터 미군 폭격기의 피해는 크게 줄어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전선에서의 미군 전사자 총 수는 약 10만 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10분의 1이 넘는 전사자 수(3500여 명+6800여 명=1만300여 명)가 마리아나 제도와 이오지마 상륙작전에서 나왔다. 전술하다시피 일본 본토 공격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을 치르고도 꼭 점령해야만 했던 지역이었다. 결국 1945년 8월 마리아나 제도에서 이륙한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며칠 후 미국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비록 작은 섬들에서 발생한 피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다해 보이긴 하지만 그 희생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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