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구조
Article at a Glance
대한민국의 정치는 현재 ‘골칫덩이’다. 문제는 시스템에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청백리’만 골라서 뽑아도 타락한다. 사익 추구의 정치에서 정치 본연의 역할인 ‘공익추구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일단 한국 정치시스템의 문제점을 분석해보면 1) 갈등 증폭의 정치, 2) 사익 추구의 제로섬 게임과 포퓰리즘, 3)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과 대통령 단기 성과주의로 압축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선거와 의회 제도를 다시 디자인해 ‘공익추구 유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위임의 제도화’를 통해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 셋째, 전문가들의 ‘통치’, 그들만의 ‘정부’에서 벗어나 프로슈머형 시민과 함께 통치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
‘해결되지 않는 문제, 한국 정치’, 이제 재설계(Redesign)로
2002년 대선은 ‘새 정치 대 낡은 정치’ 프레임을 내건 노무현 당시 후보가 ‘정치개혁’을 약속하면서 당선됐다. 그리고 정확하게 10년 뒤인 2012년 대선, ‘안풍’을 일으키며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에 나섰던 안철수 당시 대선 후보(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는 또다시 ‘새 정치’라는 단어를 꺼냈다. 바꿔 말하면 지난 10년간 제대로 된 정치개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전히 신문에는 ‘국회 또 마비’ ‘갈등해결 못하는 국회’ ‘당청 갈등’ ‘대통령 소통 부족’ ‘제왕적 대통령’ 등의 헤드라인이 등장하고 있다. 정말 대한민국에서 ‘정치개혁’의 성공은 요원한 일일까? 그렇다. 지금의 시스템 안에서 ‘모든 정치인들이 갑자기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바뀌길 원한다면, 그런 정치개혁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국가와 민족만을 생각하는 청백리만 골라 뽑아도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타락한다. 그래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민의’가 더 잘 수렴되도록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를 재설계하고 사익 추구의 정치에서 정치 본연의 역할인 ‘공익 추구’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정치 플랫폼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지금일까. 왜 바로 당장 대한민국 정치 리디자인에 나서야 하는 것일까?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수의 국민들이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개혁으로 정치개혁을 꼽고 있다. 국민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21세기의 화두인 ‘극단적 투명성’과 ‘공익성’을 담보하는 정치가 이뤄져야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형성되고, 이는 수많은 거래비용을 줄이고 갈등 해결 비용을 낮추면서 선진 경제로 도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타이밍도 적절하다. 2015년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해다. 정치권 내외 인사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정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redesign)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다. 최소한 논의를 시작하고 추진을 시작하기에 그 어느 해보다 걸림돌이 적은 시기라는 의미다. 때마침 지난 2014년 10월30일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에 관한 공직선거법 제25조 제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올해 말까지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현행 3대 1에서 2대1 이하로 조정하라고 결정했다. 어차피 올해 안에 선거법 개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이때 새로운 시스템 설계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야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선거법 개정뿐 아니라 권력 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 필요성까지 언급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치 재설계,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글에서는 우선 현재 한국 정치 구조가 갖는 문제점과 한계를 살펴본 뒤 문제점을 극복하고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 ‘공익추구 정치’가 가능하도록 디자인하는 방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물론 제언 차원에서 이뤄지는 아이디어 제시이니만큼 확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다양한 대안 중 하나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재 한국 정치는 겉보기에는 ‘양당제’의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올드미디어는 물론 SNS를 비롯한
뉴미디어까지 가세한 ‘미디어 원심력’이
‘분극적 양당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1. 문제점 분석
1) 갈등 증폭의 정치: 정치엘리트 양극화와 미디어
민주주의의 다른 말은 ‘갈등의 제도화’다. 정치는 ‘사회를 위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고 ‘권위적 배분’을 가능케 하는 권력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극심한 갈등이 폭력으로 치닫지 않고 ‘합법적 제도’ 안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시민의 대표자들에 의해 해결될 수 있도록 타협과 절충의 과정을 거치는 것, 그것이 바로 ‘갈등의 제도화’로서의 민주주의다. 따라서 그 어떤 극렬한 경제·사회적 갈등이라도 의회 등과 같은 제도권 정치 내로 들어오면 타협과 절충의 과정을 거치면서 갈등이 줄고 협의점이 도출돼야 한다. 농민, 노동자, 기업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전형적인 이슈인 ‘자유무역 정책’을 놓고도 사회에서는 시위와 공청회, 그리고 다양한 여론전을 통해 극심한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갈등도 의회 등 제도정치 내부로 들어오면 각 지역구와 직군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협상을 벌이면서 갈등을 완화하고 타협점을 찾게 된다. 기막힌 절충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합의된 룰’인 다수결 원칙에 따라 최종안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는 ‘정당성’이 확고하기 때문에 갈등은 일단 해결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신뢰’고 사회적 자본이다. 합의된 결과에 모두가 따를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기업은 전략을 짜고 관료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성숙한 민주사회가 ‘선진 경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한민국 제도정치, 의회가 이 측면에서 특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경제와 사회 영역에서 벌어진 갈등이 의회로 들어가면 더 증폭되기 일쑤다. 수년 전 한미 FTA 추진과정에서 벌어진 극심한 여야 대립, 최근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특별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책임이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벌인 극심한 의회 내 대립 등은 ‘갈등 해결 공간’이자 조정자로서는 한국 정치의 점수가 0점에 가깝다는 걸 보여줬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이는 ‘정치엘리트의 이념적 양극화 현상’과 관련이 있다. 고려대 이내영 교수는 2011년 논문 ‘한국사회 이념갈등의 원인: 국민들의 양극화인가, 정치엘리트의 양극화인가?’에서 정치엘리트(국회의원 간) 간 이념적 거리가 일반 국민 간 진보-보수 이념적 거리에 비해 더 크다는 점을 검증한 뒤 이로 인해 한국 사회의 갈등이 국회 내에서 더 증폭되는 현상이 있음을 설명했다.1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필자들이 보기에는 ‘뉴미디어의 원심력’ 때문이다. 본래 정당 체제 내에서의 ‘원심력’과 ‘구심력’ 개념은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지오반니 사르토리가 제시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미국이나 영국처럼 양당제가 형성된 국가에서는 정치가 안정화되는데, 다당제 국가의 경우 정당체제 양 극단에 ‘근본주의 정당이 존재하느냐’ 여부가 안정성을 결정한다는 주장이었다. 풀어 설명하면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서는 ‘공산당’ 같은 극단적 좌파 정당이나 프랑스의 ‘국민전선’ 같은 극우파 정당이 부재하기 때문에 정당 간의 ‘구심력’이 있고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과 연대를 통해 ‘유사 양당제’ 같은 정치제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사르토리는 이를 ‘온건 분절적 다당제’라 불렀다. 반면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사르토리가 연구를 수행하던 20세기 중후반에는 극우극좌 정당이 모두 존재했고, 이럴 경우 양 극단에서 중도에 위치한 정당을 끌어당기는, 즉 ‘원심력’이 발생해 같은 다당제라도 극심한 갈등에 휩싸인다는 설명이다. 이를 ‘분극적 다당제’라 칭한다.
현재 한국 정치는 겉보기에는 ‘양당제’의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올드미디어는 물론 SNS를 비롯한 뉴미디어까지 가세한 ‘미디어 원심력’이 ‘분극적 양당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즉 인터넷과 SNS 등 뉴미디어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중도적 입장보다는 이념적 선명성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이 미디어 사용자들(특히 뉴미디어) 사이에서 좀 더 주목받을 수 있고 ‘선명성 경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언론도 이런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고, 진보와 보수로 각각 나뉘어 악순환의 고리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진보 매체나 보수 매체 모두 이념적 선명성을 강조하는 정치엘리트들을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자신들의 이념적 입장을 대표하는 ‘대표선수’로 키워줌으로써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는 길을 내주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적으로 중도를 자처하는, 혹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진보보수 정치엘리트들은 정치적으로 주목받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타협 가능성이 높은 대안’을 제시하는 중도/온건 정치엘리트들의 자리를 선명한 ‘싸움꾼’이 대체하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당연히 ‘갈등해결의 장’으로서의 의회는 ‘더 큰 투쟁의 장’으로 바뀔 수밖에 없고 의회 본래의 대화와 타협, 갈등 해결의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2) 사익 추구의 제로섬 게임과 의회의 포퓰리즘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구조는 기본적으로 ‘1987년 체제’의 산물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여야 합의하에 5년 단임제 대통령 직선제가 채택됐고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대선 이후에는 기존 중선거구제2 를 소선거구제로 바꿨다. 지난 25년간 이 체제는 문민정부의 등장에서부터 역사상 첫 평화적 정권 교체와 이양, 또 한 번의 정권 교체까지 이뤄내면서 나름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이젠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먼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 방식이 야기하는 문제점을 살펴보자.3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는 선거구의 크기가 작아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높일 수 있고, 선출방식도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지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지적했듯이4 서울 수도권 지역구에 비해 인구가 적은 영남과 호남지역이 과다 대표되고 이에 따라 각각 호남과 영남을 지역기반으로 둔 정당에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주는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각 지역구 의원들이 재선을 위해 ‘국익’이나 ‘공익’ 전반을 따지기보다는 ‘지역구 쪽지 예산 편성’이나 불필요한 시설 및 도로 확충 등 지역구 내 포퓰리즘 정책 추진에 골몰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상에 규정된 ‘자유위임의 원칙’5 에도 위배되는 것으로 국회의원들이 무역 정책, 규제 개혁, 세제 개혁, 외교 정책 등의 국가 중대사보다 지역구민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지역이기주의 입법에 힘을 쓰게 만드는 일종의 ‘사익추구형 정치구조’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영호남 농촌지역구는 대도시에 비해 과다 대표되면서 국가 전반에 이득을 가져올 수도 있는 다양한 무역정책이 수립되고 추진되는 데에 장애물로 작용해오기도 했다. 또한 지역구의 이해관계에 따라 ‘예산 제로섬 게임’을 벌이거나 재선을 염두에 둔 ‘강경노선’을 채택하게 함으로써 의회 내에서 정당과 이념에 따른 갈등에 ‘지역 갈등’까지 교차하면서 의회의 타협 기능을 마비시키는 데에도 일조를 해왔다. 또한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등에도 ‘국가예산을 가져올 수 있는’ 능력과 중앙정치 무대에서의 인지도를 토대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면서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고유 기능을 잠식하고 오히려 지역기반을 활용해 다양한 사익 추구를 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여기에 더해, 현재 제도하에서는 의회의 의석 비율이 선거득표율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민의’와 ‘선거결과’가 괴리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정당들로 하여금 ‘의석 수 채우기’가 유리한 농어촌 지역의 ‘지역감정 활용’과 ‘지역이기주의적 정책 추구’를 더욱 촉진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3)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과 대통령 단기 성과주의
1987년 민주화 이후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게 현실이다. 끝까지 어느 정도의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큰 ‘게이트’ 없이 지나간 경우가 없다는 뜻이다. 많은 학자들은 그 원인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찾고 있는데, 이는 일견 타당하지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먼저 ‘단임제의 한계’부터 지적할 필요가 있다. 5년 단임제는 장기적인 국가발전 계획의 입안과 실행을 어렵게 하고 ‘최대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임기 동안 성과를 내야 한다는 대통령의 ‘단기 성과주의’를 조장해 정부 정책을 왜곡시키는 폐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6년 8월30일, 당시 기획예산처는 2030년을 목표로 우리나라의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을 위한 방안으로 ‘국가비전 2030’을 제시했는데, 이 비전의 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전면 폐기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의 대통령 단임제 단기 성과주의는 극심한 ‘핌투(PIMTOO·Please In My Term Of Office)’와 동시에 ‘님투(NIMTOO·Not In My Term Of Office)’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단기적으로는 대중에게 인기 있는 정책은 장기적 비용부담과 공동체 전체의 공공이익에 끼치는 손해에도 불구하고 ‘내 임기 중에 실행해 성과를 남기기 위해’ 무리하게 추진하도록 하며, 장기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공익 증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 인기가 떨어질 수 있는 정책은 다음 정권으로 미루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대표적 핌투 정책은 ‘복지 증대’이며 대표적 님투 정책은 ‘증세’다. 물론 중임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곧바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재선을 위해 4년 안에 ‘핌투’ 정책을 다양하게 쏟아놓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5년이 넘어가서 성과가 나는 정책도 추진할 수 있고 인기 하락의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6∼7년 안에는 성과가 날 수 있어 오히려 자신이 속한 당의 집권이 자신의 임기 이후에도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정책 추진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중임제의 장점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국민들도 현재는 단임제의 경험(독재 이후에는)만을 갖고 있지만 중임제가 실시되면서 장기 정책의 성과를 느끼면 ‘정책 하나하나에 따라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근시안적지지 행태는 많이 줄어들 수 있다.
이제 다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단임제하의 대통령은 집권 2∼3년 차에는 막대한 권한을 갖다가 곧바로 레임덕에 빠진다. 초기
2∼3년은 대부분 막대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데 이 권한과 ‘핌투’가 결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갖고 단기 성과주의 정책을 정권 초기부터 추구하면 이는 실제로 이뤄진다. 견제가 어렵다는 얘기다. 대통령 1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집중돼 있는 까닭이다. 거듭되는 ‘측근 비리’와 ‘실세 논란’은 바로 이 집중된 권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 투쟁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2. 해결책 모색
1) 선거와 의회 제도 리디자인
: ‘공익추구’ 유인 구조 만들기
우선 선거제도 전반을 ‘리디자인’해 현재의 ‘사익 추구 유도형’ 구조를 ‘공익 추구 유인’ 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다. 헌재가 ‘선거구 조정’을 결정한 만큼 지금이 적기다. 당장 하루아침에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전원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꿀 순 없을 것이다. 또 선거제도라는 것이 각 국가의 정치문화적 특성과 정당정치의 성숙도 차이에 기반한 것으로 유럽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가 항상 좋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부 농어촌 지역이 과다 대표되고 ‘지역구 사업’에 목을 매도록 만드는 구조는 분명 개선할 필요가 있다. 방법은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된다.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고,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의 의석비율을 높이는 한편 권역별 석패율제6 를 도입해 소선거구제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필자들은 개인적으로 이 두 가지 방안 중에서 후자가 더 실효성이 높고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중대선거구제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이전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금권 정치, 파벌 정치 등의 폐해가 나타날 수 있고, 현재 중대선거구제 형식이 도입된 우리나라의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특정 정당의 지역독점이 깨지지 않는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들이 지난 25년간 유지돼온 소선거구제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 등도 고려해서다. 따라서 소선거구제가 갖는 장점(단순하고 대표성이 높은)을 유지하는 가운데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높여 전체 득표율과 의석 비율 사이의 괴리를 줄이는 동시에 권역별 석패율제를 도입해 소선거구제로 인해 아깝게 낙선한 후보자들 가운데 일부를 권역별 비례대표로 구제함으로써 지역주의 완화 효과까지 노리자는 것이다.
이처럼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권역별 석패율제를 도입할 경우 의원정수는 약간 늘어날 수가 있다. 구체적으로 현재 246석인 지역구 의석 수를 200석으로 20%가량 줄이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 수를 현재 54석에서 150석 정도로 확대해 이 가운데 50석을 석패율제에 따른 비례대표에 할당하고 나머지 비례 100석은 현행대로 전국 단위 1인
2표제에 따라 선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물론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정서상 쉽지는 않겠으나 세비를 10% 정도 감축하는 등의 고통 분담 모습을 보여주면 설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의원 개개인의 권력은 의원 수가 많아질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의원 개개인에게 몰리는 다양한 형태의 이권 추구’는 줄어들 수 있다. 또한 비례대표의 수가 늘어날수록 선거구민과 지역 내 유지의 민원보다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수립’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미디어가 유발하는 원심력’에 따라 인지도 상승과 스타성 확보를 위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구민에게 ‘어필’하기 위해 오히려 타협을 회피하는 문제, 극단성과 선명성을 보여주는 일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비례대표제의 정책적 효과는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이미 많이 검증됐는데 국가별 선거제도에 따른 정책입안에 대해 연구한 로고프스키 등에 따르면 인구 다수에게 이익이 되지만 강한 반대로비 단체와 특정 지역민들의(공장이나 농장이 모여 있는) 반발로 인해 추진이 어려운 무역정책이나 경제정책의 경우 비례대표제일 때에는 훨씬 수월하게 입안하고 추진할 수 있다. 지역구에서의 재선을 지상 과제로 한 사익 추구 정치보다는 ‘공익추구형 정치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이 같은 선거제도 리디자인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더불어 5년인 대통령 임기와 4년인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 임기의 차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결원을 허용하지 않아 발생하는 ‘지방선거 출마로 인한 사퇴’와 재보궐 국회의원 선거 등은 ‘지나치게 잦은 선거’를 만들어 내고 있어 이 역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정부가 일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실질적으로 첫 3∼4년뿐인데 그나마 평균 2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와 재보궐 선거로 인해 정부, 의회 모두 단기 성과주의와 포퓰리즘 정책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경우 잔여 임기가 2년 이하로 남았을 때에는 ‘결원’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잦은 선거의 폐해’를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2) ‘위임의 제도화’: 책임총리제 도입
선거제도 개혁과 의회 구조 변화를 통해 ‘사익추구형 정치’를 ‘공익추구 유인’ 구조로 바꿀 수 있듯이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통령 단기 성과주의의 폐해’를 풀 수 있는 핵심 열쇠는 ‘개헌’이다. 분권형 대통령제와 4년중임제, 혹은 아예 의회책임제(내각제)로의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개헌은 당위적으로 아무리 필요하고 정당하다 하더라도 실제 진행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우며,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개헌이라는 방향성’에는 동의하되 일단 가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위주로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현행 헌법이 가진 ‘분권형 대통령제’ 요소를 국정 운영에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미국 등 여타 대통령제 국가와 달리 국무총리에게 ‘내각 통할권’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 헌법 86조
2항은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 87조1항은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명시해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87조3항은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명시해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해임건의권을 보장하고 있다. 학자들 사이에서 우리 헌법이 보장한 국무총리의 ‘내각통할권’ ‘국무위원 제청권’ ‘국무위원 해임 건의권’의 범위와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우리 헌법이 보장한 국무총리의 이런 권한이 실질적으로 행사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예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책임 총리제’란 이름으로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해찬 총리에게 국정 운영의 실질적 권한을 부여했던 게 유일한 사례다.
이처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무총리의 권한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국무총리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법제도가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즉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면 실질적 권한이 생기고,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대독총리’로 전락하는 상황이다. 헌법 규정이 제도화가 안 되면서 오히려, 국무총리의 권한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대통령의 힘’만을 보여주는 형국이다. 따라서 법으로 국무총리의 임기를 보장하고 국무총리의 내각통할권, 국무위원 제청권, 국무위원 해임 건의권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며, 국무총리가 실질적으로 정부 부처 간 업무 협조와 조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무조정실의 기능을 강화하고 청와대와 역할을 분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회가 ‘갈등의 제도화’가 이뤄지는 장이라면 정부에서는 ‘위임의 제도화’를 통해 현 대통령중심제가 갖는 폐해를 줄일 수 있도록 리디자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여야 후보 모두 ‘책임총리제 실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정치권 내의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돼 있기 때문에 청와대와 여야의 의지만 있다면 실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 같은 책임총리제 도입은 ‘소통령’ ‘홍삼트리오’ ‘봉하대군’ ‘만사형통’ ‘비선실세’ 논란 등으로 이어져 온 ‘선출되지 않고 검증받지 않은 집단 혹은 개인’의 권력화와 관련한 이슈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또 궁극적으로는 이른 레임덕을 막아 ‘권력은 나누되 권위는 올라가는 대통령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다.
이처럼 현행 헌법이 가진 ‘분권형 대통령제’ 요소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정부부처 간, 나아가 정부와 국회, 사법부 간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각 부처 장관이 소신껏 정책추진을 할 수 있도록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는 ‘책임장관제’를 제도화할 필요도 있다.
3) professional의 government에서
prosumer와의 governance로
본래 민주주의는 ‘자치’라는 개념을 핵심에 두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통치의 단위가 커지고,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민주주의는 ‘대의제’라는 형태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주권자로서 원래 직접 결정하고 통치해야 하나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대표자를 뽑아서 나 대신 국정을 하도록 한다’라는 취지다. 문제는 ‘정치엘리트’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전문 정치인들이 대거 양산되면서 정치 역시 ‘전문가들의 일’이 됐다는 것이다. 또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끌고 갈등을 해결하면서 먼 미래를 보고 일해야 하는 정치 본연의 역할상, 점점 ‘프로페셔녈’ 한 사람들이 구성하고 일하는 정부와 의회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정보기술의 발달과 뉴미디어 플랫폼의 등장, 이러한 기술과 구조의 변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참여형 군중’의 등장은 더 이상 정치 영역이 ‘전문가들의 정치, 그들만의 정부’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로 비유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물론 정치는 프랑스혁명부터 한국의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주권자인 국민들이 직접 거리의 정치를 통해 적극적으로 게임의 룰을 세팅하고 정치 시스템을 바꾸는 등의 주도적 역할을 해온 적이 많다. 그러나 주권자의 개입을 통한 대대적인 참여와 혁신을 이루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선출된 전문가 집단’에게 일임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책 ‘상품’과 정당과 정치인이라는 브랜드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형태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민주주의사회에서 다수 시민은 ‘정치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예전보다 더 ‘정치 생산자/공급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지고 있다. 정치 시장에서 수동적 소비자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개인사업자’로서 대기업(정당)에 자신이 생산한 정책 상품을 공급하거나, 혹은 아예 직접 정치시장에서 정책상품을 공급하는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도 실렸던 것처럼 ‘신권력을 가진 군중’의 등장은 정치 생산자/공급자로서의 시민의 역할이 인터넷과 모바일, SNS 등을 통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폭발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프로슈머형 시민/유권자’의 등장을 이해하고 이들의 에너지를 국가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통치’ 혹은 ‘정부’를 의미하는 ‘government’라는 개념부터 재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치학계나 행정학계에서 거론되고 있는 ‘협치’ 즉, ‘governance’ 체제의 도입을 심도 있게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governance는 기존 일방주의적이고 상명하달식 조직구조를 갖고 있는, 톱다운(top-down) 방식의 government 개념과 달리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정부가 시민사회와 ‘함께 통치’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정부와 정당이 국정운영/정책생산 전반에 이러한 governance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단순 감시자로서의 유권자를 넘어서 함께 ‘공익적이고 미래지향적 정책’을 만들어내는 프로슈머형 유권자로부터 혁신의 동력을 얻어오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일단 변화는 정당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동안 ‘국민참여 경선’ ‘모바일 투표’ 등이 각 정당의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professional에 의한 government를 prosumer와의 governance 형태로 바꾸기 위해서는 최근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유튜브, 에어비엔비, 우버, 위키피디아, 페이스북 등의 사업모델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 사업모델의 성공비결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전까지 소비자 역할만을 담당하던 일반인들이 상품/서비스 공급자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장(플랫폼)을 마련해주고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도록 연결망을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이 같은 사업모델을 벤치마킹해 시민들이 공동으로 정책을 생산하고, 정책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추가하고 조성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국내 양대 정당이 추진하고 있는 두 가지 플랫폼은 특히 주목해볼 만하다. 먼저 새누리당에서 만들고 있는 ‘크레이지파티’부터 살펴보자.
이 프로젝트는 2014년 5월1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모바일 정당을 구현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규정’을 통해 탄생했다. 그해 7월에는 크레이지파티 투표 결과에 따라 김상민 의원이 ‘게임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달 두 번째 이슈인 ‘광역버스 입석금지’로 찬반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이는 국토부 장관이 직접 나서 정책을 바꿔야 했을 정도로 큰 파급력을 보여줬다. 그해 8월에는 세 번째 이슈 ‘18세 선거권’을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와 협업해 크레이지파티 플랫폼에 동시에 제기했고 10월에는 김세연 의원에 의해 ‘투표연령 19 → 18세 법안’이 발의됐다.하나하나 정책별로 살펴보면 첫 이슈로 몇 년간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게임규제법’을 정면으로 올려 놓으면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어냈다. 새누리당은 크레이지파티에서 실시하는 투표에서 10만 명이 ‘좋아요’를 누를 경우 그 의견을 존중해 법안을 통과 또는 수정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게임규제법을 주제로 한 온라인 투표에만 현재 1만5915명이 참여했고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중독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에서 인터넷 게임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의견까지 이끌어냈다. 또한 좌석버스 입석금지 단속에 대한 인터넷 투표는 500명이 참여(입석금지 전면 유보를 찬성하는 의견이 88.4%로 압도적)해 정부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한 것은 새누리당 스스로도 크레이지파티의 대표적 성과로 꼽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나는 정치다’ 플랫폼 역시 주목할 만하다. 페이스북을 기본으로 한 이 프로젝트는 쟁점이 되는 법률안을 두고 두 의원이 제시한 해결책 중 하나를 지지하는 ‘정책경연’ 방식과 민생법안의 제정에 아이디어를 내는 ‘의견 공모’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초부터 본격화되고 있는데 법안 경연은 JYJ법, 김부선법 등에 대해 이뤄지고 있다. JYJ법은 아이돌 그룹 JYJ가 5년간 지상파 출연을 하지 못하는 불공정한 방송환경을 바로 잡아야 한류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법안으로 최민희 의원과 홍종학 의원이 각각 해결책을 제안하면 지지투표 및 게시판을 통한 의견과 제안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방송법 개정을, 홍종학 의원은 공정거래법 개정을 각각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김부선법은 영화배우 김부선 씨를 통해 제기된 관리비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윤후덕 의원과 진선미 의원의 경연이 진행 중이다. 윤후덕 의원은 사전 규제를, 진선미 의원은 정보 공개를 각각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프로슈머형 유권자를 위한 ‘공모’도 이뤄지고 있다. 비정규직 처우와 노동환경 개선을 골자로 한 ‘미생법’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 달라고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자 을지로위원회 위원인 전순옥 의원이 동영상을 업로드했고 정책 아이디어가 모아지는 중이다. 이 밖에도 어린이집 폭력사태 해결방안 등을 함께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안심보육법’ 역시 정책제안 공모가 진행 중이다. 가장 인상적인 제안을 올린 사람에게는 ‘정책서포터’ 자격을 부여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아직 기업의 시각에서 볼 때에는 초보적인 수준의 오픈 플랫폼이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의 영역’에서 모바일 플랫폼과 참여형 군중의 특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또한 각 정당은 선거를 통해 향후 정부를 구성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치의 구조를 ‘professional’에 의한 ‘government’에서 ‘prosumer’와의 ‘governance’ 체제로 리디자인할 수 있는 단초를 보여준다.
또한 이 프로슈머형 유권자를 활용하는 방식은 뉴미디어 참여 대중이 유발하는 ‘정치엘리트 이념양극화’라는 문제를 극복하고 그 에너지가 발전적인 방향, 타협과 절충의 정책생산으로 유도된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프로슈머형 유권자를 활용하는 방식은
뉴미디어 참여 대중이 유발하는
‘정치엘리트 이념양극화’라는 문제를 극복하고
그 에너지가 발전적인 방향, 타협과 절충의
정책생산으로 유도된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3. 정치 리디자인: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
정치의 본질이 ‘공공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정치 세력 간 싸움’이라면 정치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첫째, ‘공익을 위한 싸움’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어느 한편에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는 중립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민의가 대표되는 선거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선거 제도 리디자인’과 ‘선거 개입’에 대한 엄벌 등이 바로 그런 과정이다. 둘째, 정치가 사적 이익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공공 이익을 위한 싸움이 될 수 있도록 공공성을 담보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선, 프로슈머형 유권자와의 협치, ‘위임의 제도화’ 등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고, ‘공익추구 유인구조’를 만들며, 단기 성과주의와 포퓰리즘 정책의 남발을 방지해야 한다.
편협한 당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길거리 싸움’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정치를 공동체 전체의 공공이익 추구를 위한 정치로 바꾸기 위한 정치 구조 재설계는 최근 경제, 경영, 정치, 사회문화, 교육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혹자는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고 묻기도 하고, ‘정치로 쓸데없이 싸움질하지 말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의 정치 불신이 만들어 낸 말이라 이해는 가지만 이렇게 정치 불신과 냉소에 빠져서는 선진국으로의 도약, 기업들의 글로벌한 활약과 내수 활성화 등의 과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간혹 압축적 성장이나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독재가 더 효율적’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민주정치’와 친화성을 갖는다. 불확실성의 제도화를 통해 권력을 가진 집단과 사람은 바뀌어도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과 자원배분의 방식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선진적인 민주정치의 핵심이고, 이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카다피라는 독재정권과 계약을 했다가 카다피가 쫓겨난 이후에 그 비즈니스도 함께 사라진다면 글로벌 기업의 장기적 투자는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투자’와 ‘소비’가 건전하게 활성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현재의 한국 정치가 민주주의의 외양은 갖췄으되 실제 정치가 이뤄지는 과정이 제대로 민주화되고 ‘선진화’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한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선진국도 아니다. 문턱을 한 번 더 넘어가야 한다. 지금 이 시기에 우리의 미래, 특히 경제와 그 핵심주체인 기업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건 ‘정치 리디자인’이다. 선진화된 민주정치가 주는 역설적인 안정성과 신뢰, 미래를 내다보는, 오직 정치만이 할 수 있는 ‘장기적 과제’의 실행, 그리고 민주화되고 자유로운 사회의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창의성이 곧 국가 전체의 성장 동력이기 때문이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빌 클린턴(Bill Clinton) 민주당 후보는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 구호를 내세워 선거 초반만 하더라도 재선이 유력해 보였던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H. W. Bush) 공화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이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김범수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bramhs@snu.ac.kr
김범수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시카고대와 일본 도쿄대 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정치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철학 같은 심층적 문제는 물론 선거 등 실질 정치현상 분석을 오가는 폭넓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