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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3인자’가 어렵게 일군 우승.. 1등 효과는 조코비치를 부동의 强者로 키웠다

168호 (2015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2011년 이후 사실상 세계 남자 테니스계를 지배하고 있는 선수 노박 조코비치는 2007년 이후 꽤 오랜 시간만년 3인자에 머물던 선수였다. 그랬던 그가 2011년 이후 갑자기 세계 테니스계의 지배자가 됐다. 계기는 바로 2010년 악조건 속에서 이뤄낸 데이비스컵 우승이었다. 1등을 한 번 하면 계속 1등을 할 수 있게 되는 이른바 ‘1등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1등을 하게 되면 자신감이 생겨 과감한 시도가 가능해지고, 자존심이 강해져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목표점을 확실히 알게 돼 끈기가 생기고 장애물 극복이 쉬워진다. 1등 효과를 체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1등을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큰 판에서 1등을 하긴 어렵다. ‘작은 1을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하다. 기업에서도 작은 성공체험을 많이 해본 직원들이 혁신성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등 효과를 위해 직원들의 작은 1등을 끊임없이 독려하고 지원하라. 

 

편집자주

창조와 혁신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예술가, 문학가, 학자, 엔지니어, 운동선수 등 창작가들의 노하우는 기업 경영자에게 보석 같은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2014 1116일 일요일 저녁 영국 런던에 있는 O2 아레나에 모인 18000명의 관중은 당황스러웠고 화가 났다. 한 해 성적을 기준으로 상위 8명만 참가해서 챔피언을 가리는 프로 테니스 투어 마지막 대회인 왕중왕전(ATP World Tour Finals)의 결승이 저녁 6시에 예정돼 있었다. 현재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와 오랜 기간 세계 테니스계를 지배해온 스위스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가 결승전에 올랐다. 세계 랭킹에서도 1, 2위가 맞붙는 경기였으니 관중의 기대는 대단했다. 그런데 경기 시작 30분 전 페더러가 스웨터 차림을 하고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부상으로 도저히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팬들에게 사과 인사를 하러 나온 것이다. 전날 벌어진 준결승전에서 밤 11시까지 이어진 2시간48분의 혈투로 허리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란다. 도저히 조코비치와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코비치는 왕중왕전을 2012년부터 내리 3연패() 한다. 왕중왕전은 각 4명씩 두 조로 나뉘어 한 사람당 3게임씩 예선리그를 벌이고 한 조의 1, 2위가 다른 조의 2, 1위와 준결승전을 치러 결승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운에 따라 한 번 지면 탈락하는 토너먼트가 아니라서 실력이 가장 좋은 사람이 우승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이런 마지막 대회를 조코비치는 완벽하게 끝냈다. 비록 결승전은 부전승이었지만 예선에서는 상대 선수를 일방적인 스코어로 제압했다. 왕중왕전이라 모두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인데도 조코비치 앞에서는 제 기량을 펴지 못했다.

 

사실 페더러가 경기를 포기한 것도 조코비치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격렬한 경기를 하는 테니스 선수들은 늘 부상과 함께 경기를 치른다. 웬만한 부상을 입어도 결승전이라면 진통제를 맞고라도 경기에 임하는 게 일반적이다. 경기 시작 두 시간 전까지도 경기를 할지 고민했던 페더러는 어차피 질 바에야 더 심각한 부상을 방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처럼 조코비치는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받는 페더러마저 두려워하는 선수가 됐다. 사실상 조코비치는 2011년부터 세계 테니스계를 지배하고 있다. 2013년에 클레이코트의 황제로 불리는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에게 1위 자리를 내줬지만 근소한 차이였다. 지난 4년간 조코비치가 테니스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금 액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코비치는 2011년부터 매년 1000만 달러가 넘는 상금을 벌어들이고 있다. 한 해 1000만 달러가 넘는 상금을 탄 경우는 나달이 2, 페더러가 1회에 불과하다. 조코비치는 2014년까지 통산 48, 메이저대회 7승을 거뒀지만 상금 액수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천재였지만 만년 3위에 머무르던 조코비치

조코비치는 1987년 세르비아의 벨그레이드에서 한 스포츠 가족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 삼촌, 고모 모두 프로 스키선수였고, 그의 부모는 운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조코비치를 축구선수로 키우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 선수 모니카 셀레스를 발굴하고 키워낸 세계적인 코치 겐치치(Jelena Gencic)가 테니스 라켓을 잡은 지 2년밖에 안 되는 6살 조코비치의 천부적 재능을 알아봤다. 이때 조코비치의 부모는 아들을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로 키워내리라고 결심했다. 그래서 아들을 겐치치에게 보내 6년간 테니스를 배우게 했다. 조코비치가 빠른 성장을 보이자 겐치치는 더 많은 경쟁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그를 독일의 테니스 아카데미로 보냈다. 거기에서 프로선수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훈련을 받으며 많은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주니어 시절 여러 대회를 석권한 이후 16세 때 프로에 데뷔, 승승장구하며 이른 나이에 재능을 활짝 꽃피웠다.

 

그렇게 조코비치는 20세가 된 2007년에 테니스계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6년에 이미 작은 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후, 2007년에는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에서 준결승에 올랐고, US오픈에서는 결승전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 메이저대회 다음으로 큰 대회인 마스터스 대회 트로피를 두 개나 거머쥐며 세계 랭킹 3위에 올랐다. 특히 캐나다에서 열린 마스터스 대회에서는 당시 세계 최고였던 나달과 페더러를 연달아 격파하고 우승해 두 사람을 이을 후계자 자리를 일찌감치 예약했다. 상승세는 이듬해까지 이어져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입증했다. 그는 4대 메이저대회 준결승 이상에 모두 오른 역사상 가장 어린 선수가 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스포츠 천재들이 걷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2007년에 무서운 상승세로 랭킹을 끌어올린 조코비치는 좀처럼 최정상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그는 한 대회에서 우승하면 다른 대회에서는 손쉽게 탈락하기도 해 1%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랭킹이 낮은 선수에게 무기력하게 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중요한 대회에서 페더러나 나달을 만나면 그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심지어 경기 도중 시합을 포기하고 기권으로 상대에게 승리를 헌납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2006년 프랑스오픈 8강에서 나달에게 2세트를 내준 후 기권을 했고, 2007년 윔블던 준결승에서는 나달에게 1세트를 빼앗았지만 2세트를 내준 후에 3세트 중간에 포기했다. 당시 해설자들이 조코비치가 더위를 먹은 것 같다는 조롱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2008년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준결승에서는 페더러에게 2세트 중간에 기권했고, 2009년 호주오픈 8강에서는 미국의 로딕에게 4세트를 치르다가 포기했다. 체력 위주의 경기로 늘 부상에 시달리는 나달조차 큰 대회에서 기권한 적은 2010년 호주오픈 8강전밖에 없다. 심지어 페더러는 경기에 들어가서 시합 도중에 기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렇다 보니 테니스계를 양분하고 있던 페더러와 나달에게 막혀 만년 3위 신세를 면치 못했다. 두 선수는 대부분의 대회에서 초반에 탈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랭킹 포인트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4년 동안 3인자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갑자기 세계 랭킹 1위로 도약한 것이다. 그해 파죽지세로 41연승을 한 이후 조코비치는 완전히 다른 선수로 거듭났다. 이후 다른 선수들도 그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재미있는 건 그 이전과 테니스 실력에서 엄청난 향상을 보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무기도 같고 전략이나 스타일도 변하지 않았는데 성적이 월등히 향상됐다. 그 사이에 조코비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모든 게 시작된 2010년 데이비스컵 우승

2010년은 조코비치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조코비치는 준수한 서브를 구사했지만 강력한 무기가 되지는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미국인 코치를 영입해 서브를 중점적으로 연습했는데 역효과가 났다. 그 코치는 조코비치의 서브 폼 자체를 완전히 바꾸기를 원했는데 오히려 더블폴트만 양산하는 등 서브가 불완전해졌다. 결국 그 코치와 결별하고 이전 폼으로 되돌아왔다. 이 과정을 시즌 중에 겪다 보니 전반기에 좋은 성적이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코비치가 2010년 한 해 내내 최선을 다한 대회가 있었는데 바로 데이비스컵이었다. 데이비스컵은 테니스올림픽으로 불리는 국가대항전으로

3일 동안 단식 4게임과 복식 1게임을 치러 승부를 결정짓는다. 한 선수는 최대 단식 2게임과 복식까지 출전할 수 있다. 월드 그룹(World Group)이라고 불리는 상위 16개 국가가 1년 동안 토너먼트를 통해 우승을 결정짓는다. 16강에서 패하면 하위 그룹 국가들과 싸워 내년도 월드 그룹 진출권을 따내야 하고, 8강 이상 진출하면 월드 그룹에 남는다. 그러니까 우승하려면 1년 동안 시즌 중간중간 벌어지는 4차례의 토너먼트를 모두 이겨야 한다. 조코비치는 컨디션 난조에도 데이비스컵에 참가해 최선을 다했다. 메이저대회처럼 5세트 경기가 펼쳐지므로 대부분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결국 프랑스와 맞붙은 결승전에서 2승을 따내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는 세르비아에 우승컵을 안겼다.

 

그리고 이 데이비스컵 우승에서 조코비치는 도약했다. 그는 여기서 우승의 참맛을 봤다. 2006년부터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바이다 코치(Marian Vajda)도 인정했다.

 

“모든 게 2010년 데이비스컵 우승에서 시작됐어요. 그 우승이 그에게 커다란 동기를 갖게 한 것 같아요. 그는 그 겨울에 2주밖에 쉬지 않고 혹독한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엄청난 연습량이었죠. 그렇지만 오히려 그걸 즐겼죠. 체력도 강해졌지만 무엇보다도 멘탈이 좋아졌어요. 그 이후 그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돼 있었어요.”

 

바로 조코비치에게 ‘1등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그는 실력에서 이미 준비돼 있었지만 그에 걸맞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힘겨운 상황에서도 우승을 제대로 경험하면서 달라졌다. 이처럼 우승이나 1등을 경험하게 되면 몇 가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1등 효과

1) 자신감이 생겨 과감한 시도가 가능

첫째, 1등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적극적이 되고 과감해진다. 오래 전에 심리학과 교수들이 재미있는 동물 실험을 했다(McDonald, Heimstra & Damkot, 1968).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그린선피시(green sunfish)를 사흘 동안 관찰하면서 어느 물고기가 지배적이고 어느 것이 순종적인지 파악했다. 그리고 지배적인 유형의 물고기들을 세 집단으로 나눴다. 한 집단은 혼자 따로 있게 했고, 다른 한 집단은 자기보다 덩치가 큰 물고기 한 마리와 함께 있게 했으며, 나머지 한 집단은 덩치가 작은 물고기와 함께 지내도록 했다. 그렇게 닷새를 보냈다. 그 다음 이 물고기들을 원래 있던 어항으로 옮긴 다음 이들의 공격성을 지켜봤다. 결과는 극명하게 나타났다. 자기보다 덩치가 큰 물고기와 닷새 동안 지냈던 녀석들은 패자로 살아야 했던 경험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낮은 공격성을 보였다. 반면 덩치가 작은 물고기와 함께 있었던 녀석들은 승리의 감정에 영향을 받아 예전보다 훨씬 사납고 공격적인 물고기로 변해 있었다.

 

승리를 경험하게 되면 생명체를 공격적으로 만드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출된다. 몇몇 심리학자들이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에 맞춰 이 사실을 분석했다(Bernhardt, Dabbs, Fielden & Lutter, 1998). 결승전은 브라질과 이탈리아가 맞붙었는데 연구팀은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두 나라의 남성팬 21명의 타액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측정했다. 경기는 치열한 접전이었으나 승부차기 끝에 브라질이 이탈리아를 이겼다. 경기가 끝나고 팬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다시 측정했는데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브라질 팬들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평균 28% 올라갔고 이탈리아 팬들은 평균 27% 떨어졌다. 승리감의 유무가 감정 상태를 이토록 극명하게 바꿔놓은 것이다.

 

게다가 승리에 의해 분출된 테스토스테론은 다음 번 싸움에서 이기는 데 기여해 이후 승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두 명의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주식중개인을 대상으로 이 사실을 밝혀냈다(Coates & Herbert, 2008). 연구자들은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일하는 17명의 주식중개인을 택해서 아침에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측정했다. 그리고 이들의 하루 수익을 기록한 후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비교했다. 일주일 동안 실험을 진행했는데 수치가 높은 사람이 더 큰 수익을 올렸고 테스토스테론이 낮을 때는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테스토스테론이 주식중개인들을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만들었으며, 이런 투자 스타일이 높은 수익을 가져왔다고 연구자들은 결론 내렸다. 즉 승리가 테스토스테론을 분출시키지만 높아진 테스토스테론은 이후 승리 확률을 다시 증가시킨다는 말이다.

 

승리로 인한 테스토스테론 분출이 이처럼 자신감을 주는 이유는 뇌의 화학적 상태를 바꾸기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수치를 높여준다. 도파민은 동기부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즉 도파민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하고 행동에 나서게 만든다. 테스토스테론은 도파민에 민감한 뇌에 영향을 줘 우리가 자신감 있게 느끼도록 생각과 감정을 바꿔놓는다. 그러면 우리는 더 과감해지고, 긍정적이 되며, 위험을 잘 감수하고,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한계점도 높아진다.

 

 

조코비치 역시 2010년 데이비스컵 우승 이후로 플레이가 더 과감해졌다. “페더러, 나달과 한 시대에 태어나 테니스를 하게 돼 지독히도 불운하다라고 탄식했던 조코비치였지만 이제는 페더러나 나달을 만나도 기죽지 않고 공격을 주도했다. 특히 2011년 당시 세계 랭킹 1위였던 나달을 완벽하게 공략했다. 나달은 빠른 발과 강한 톱스핀으로 에러가 나지 않는 스트로크를 구사하기 때문에 웬만한 공격은 모두 받아내는 수비의 천재다. 페더러를 포함해 그때까지 나달의 수비를 뚫은 선수는 없었다. 조코비치는 나달과 맞서 코트 안으로 한발 더 들어가 거세게 공격했다. 왼손잡이인 나달의 포핸드를 향해 조코비치는 자신의 주무기인 백핸드로 강하게 공격했고 나달은 밀리기 시작했다. 2011년 결승전에서만 6번 만났는데 처음에는 나달에게 가까스로 이겼지만 나중에는 손쉽게 승리해 나달을 위축시키는 징크스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나달이 강점을 보인 클레이코트에서까지 완벽하게 이겨 나달의 천적이 됐다.

 

 

 

2) 자존심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 유지

둘째, 1등을 하면 자신감과 함께 자존심이 생긴다. 자존심은 힘든 상황에서도 1등을 유지하게 도와준다. 신동엽 연세대 교수와 동료들이 우리나라 출신의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창조성의 원천을 찾는 작업을 했다. 흔히 예술가들은 작품활동 자체에서 만족을 느끼고 창작하는 행위를 즐긴다. 외적 보상보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같은 내재적 동기가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는 슬럼프에서 찾아온다. 특별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으며 다른 누가 강제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열정이 사라지면 창작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적인 예술가들은 제3의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일에 대한 소명의식과 사명감이다. 한 발자국도 떼기 힘든 상황에서도 투철한 사명감이 작동해 창작활동에 지속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DBR 147, “모든 학생은 생긴 대로 친다, 창의적 혁신의 불꽃을 태우게 붙잡아줘야 한다참조.) 바로 이런 사명감이나는 다르다라고 하는 최고만이 지닌 자존심이다.

 

이와 관련해 프로골퍼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신기한 현상이 있다. 실력이 비슷한 선수들 중 어떤 선수가 한번 우승하고 나면 그 이후의 성적이 달라진다고 한다. 우승을 한 이후에는 컨디션이 나빠도 좀처럼 톱10에서 벗어나는 일 없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연습할 때 보이는 수치를 보면 실력 차이는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우승을 경험하고 자존심이 생겼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기업에서도 이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올해 삼성전자에서 갤럭시S5를 출시할 때 루머가 돈 적이 있다. 제품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초기 생산량 130만 대를 전량 폐기했다는 것이다. 회사 측에서는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소문이 났다는 게 삼성전자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말해준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1등을 경험한 삼성전자 입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손상시키는 작은 불량도 용납할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브랜드 가치가 바로 자존심이다.

 

조코비치 역시 2011년부터 확실히 달라진 것이 대회에서 컨디션이 나빠도 초반 탈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가령 2012년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16강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시합을 위해 아침에 연습하던 중 조코비치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키 코치였던 할아버지는 스포츠 가문의 틀을 잡았고 조코비치를 아낌없이 지원하고 사랑했다. 조코비치는 충격을 받았다. 연습을 멈추고 슬픔에 잠겨 있다가 경기에 출전했다. 상대는 랭킹 21위의 우크라이나 선수로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결국 조코비치는 실수를 연발하며 1세트를 무기력하게 내줬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경기력을 회복해 2세트와 3세트를 따내며 승리했다. 이날 경기를 보면내가 1등인데 너한테 질 수야 없지라는 생각으로 싸운다는 게 느껴졌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결국 이 대회에서도 결승에 진출했다. 이처럼 조코비치는 데이비스컵 우승 이후 대부분의 대회에서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2011년부터 메이저대회에서 한 번만 8강에 그쳤고 모두 준결승 이상의 높은 성적을 거뒀다. 16번의 대회에서 11번 결승에 올랐고 그중 6번을 우승했다.

 

실력이 비슷한 선수들 중 어떤 선수가 한번 우승하고 나면 그 이후의 성적이 달라진다고 한다. 우승을 한 이후에는 컨디션이 나빠도 좀처럼 톱10에서 벗어나는 일 없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3) 끈기로 어려움과 장애물 극복

셋째, 1등을 하면 끈기가 생겨 어려움을 더 잘 극복하게 된다. 1등을 해본 사람이나 기업이 모두 처음부터 정신력이 강했거나 끈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등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힘든 고비를 넘기면 곧바로 목표점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끈기가 생긴다. 즉 성공으로 가는 길을 알기 때문에 인지적 끈기가 생기는 것이다. 마지막 한 고비를 못 넘고 포기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대부분 이것을 모른다. 아마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100여 년 전 남극 탐험에서 발생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의 스콧 일행은 노르웨이의 아문센 팀보다 늦게 남극에 도착했지만 정복을 마치고 베이스캠프를 향해 힘겹게 나아갔다. 아무리 걸어도 베이스캠프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동상에 걸려 체력이 바닥나고 날씨가 점점 악화돼 귀로를 포기하고 텐트에서 최후를 맞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포기한 장소가 베이스캠프에서 18㎞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루 행군 거리도 안 된다. 목표 지점이 그처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스콧 일행이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힘을 내어 도착했을 것이다. 이처럼 목표점을 모르면 인내력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기업의 브랜드 투자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흔히 성공한 기업이 브랜드 투자에 돈을 많이 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결코 그들에게 돈이 남아서가 아니다. 브랜드 투자는 R&D나 생산에 투자하는 것처럼 그로 인한 이득을 쉽게 계산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공한 기업은 브랜드 투자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갑자기 커다란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들은 목표로 가는 길을 알기 때문에, 그걸 모르는 기업 입장에서는 낭비하는 것처럼 돈을 쓰는 것이다.

 

1등 경험으로 생겨난 자존심도 끈기를 만든다. 목표가 높아졌으니 정신력이 강해지는 건 당연하다. 2010년 데이비스컵 우승 이후 조코비치는 정신력에서 확연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위기를 맞게 되면 포기하거나 심지어 기권하는 경기가 많았지만 2011년 이후 그는 매 경기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여러 번의 극적인 시합을 만들어내 팬들이 늘어났다. 2011 US오픈을 우승할 때 자신을 수없이 눌렀던 페더러를 준결승전에서 만났다. 페더러의 컨디션이 좋아서 조코비치는 2세트를 내리 내준 후 3, 4세트를 힘겹게 따라갔다. 마지막 5세트에서 페더러가 5-3으로 앞선 상황에서 서브를 하게 됐기 때문에 거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특히 40-15으로 페더러가 한 포인트만 따내면 승리하는 매치포인트에서 조코비치는 도박에 가까운 과감한 포핸드 샷을 휘둘러서 위기를 탈출했다. 그리고 두 손을 위로 흔들며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를 유도했다. 백전노장 페더러도 이런 상황에서 당황했는지 더블폴트를 해서 다 이긴 게임을 내줬다. 이 고비를 넘긴 조코비치는 결승에서는 나달을 손쉽게 이겨 첫 US오픈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과거 테니스 스타인 존 맥켄로는 이 샷을 테니스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샷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이듬해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은 더 힘든 과정을 거쳐 우승했다. 준결승에서 영국의 앤디 머레이(An-dy Murray)를 만나 5시간의 혈투 끝에 승리했다. 결승전 상대는 라이벌인 나달. 더욱이 결승까지 손쉬운 승리를 따낸 나달은 스케줄에 따라 이틀을 쉬었고 조코비치는 하루밖에 쉬지 못한 상황이었다.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나달과의 승부는 힘겨웠다. 이번에도 마지막 5세트에서 2-4까지 몰린 상황에서 조코비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때마침 나달이 찬스에서 실수를 범했고 조코비치는 거의 질 뻔한 경기를 되돌릴 수 있었다. 조코비치의 끈기가 아니었다면 이 같은 행운은 없었을 것이다. 이 경기는 5시간53분을 기록해 메이저대회 결승전 중 가장 긴 시합으로 테니스 역사에 남게 됐다. 경기가 끝난 후 두 선수는 다리에 쥐가 나 시상대에서 서 있지도 못해 의자에 앉아 수상하는 기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론: 작은 1등을 많이 만들라!

이처럼 1등 효과는 대단하다. 물론 1등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모든 1등이 처음부터 거창한 성과를 거두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작은 곳에서부터 1등을 경험한 후 영역을 넓혀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의성 분야의 대가인 하버드대의 애머빌(Teresa Amabile) 교수의 연구는 이런 사실을 입증하면서도 안타까운 현실까지 지적하고 있다(Amabile & Kramer, 2011). 7개 회사에서 26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238명의 회사원들로부터 평균 4개월 동안 프로젝트에서 일어난 업무의 세세한 과정과 다양한 일화, 그때 느낀 개인적인 감정 등을 일기에 쓰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12000건의 일기 자료를 분석해서 어떤 상황에서 혁신적인 성과가 나오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도 매일매일 경험하는 작은 성공체험의 역할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창의성이나 혁신은 팀원들이 긍정적인 감정상태에서 적극적인 동기를 가지며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을 때 가장 잘 발현됐다. 그런데 작은 성공체험과 그로 인한 개인적인 발전경험이 이런 환경을 조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줬다. 작은 1등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애머빌 교수는 안타까운 사실도 밝혀냈다. 그녀는 글로벌기업에서 일하는 669명의 관리자들에게 이 연구에서 나온 사실을 설문으로 만들어 물어봤다. 작은 성공에 대한 지원, 중요한 일에 대한 인식, 인센티브, 인간적인 교류, 명확한 목표 등 다섯 가지 항목을 직원들의 동기부여와 긍정적인 감정상태에 제일 큰 영향을 주는 순으로 순서를 매기라고 했다. 그랬더니 5%의 관리자들만 작은 성공에 대한 지원이 제일 중요하다고 답했다. 꼴찌였다. 기업의 리더들은 혁신을 불러오는 작은 성공체험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와 혁신을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하는 한국 기업의 리더들도 상황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Small Success의 기회를 늘려 최대한 작은 1등을 많이 경험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려면 커다란 프로젝트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작은 결과에 대해 의미부여하고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데이비스컵은 국가를 위해 뛴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상금도 없고 랭킹 포인트도 적어서 프로선수들은 그렇게 중요한 대회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톱 랭커들은 한두 번 참가한 후 부상이나 빡빡한 경기일정을 핑계로 빠지기 일쑤다. 그러나 조코비치에게 데이비스컵은 작은 대회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를 진정한 챔피언으로 도약시킨 큰 대회로 기억할 것이다. 작은 성공은 1등 효과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 capomaru@gmail.com

이병주 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창의성, 변화관리, 리더십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 <3불전략>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9호 Boosting Creativity 2020년 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