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Minds
편집자주
창조와 혁신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예술가, 문학가, 학자, 엔지니어, 운동선수 등 창작가들의 노하우는 기업 경영자에게 보석 같은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의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2008년 6월15일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명문클럽인 토리 파인즈 골프장에서 108회 US 오픈 골프대회 마지막 4라운드가 펼쳐졌다. 미디에이트(Rocco Mediate)가 먼저 283타, 1언더파(기준 타수보다 1타 미만)를 치고 선두로 경기를 끝냈다.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는 타이거 우즈(Tiger Woods)와 웨스트우드(Lee Westwood)가 482m의 18번 홀에서 티 샷(tee shot)을 준비했다. 선두와 동률이 되기 위해서는 기준 타수가 5타인 파5 홀에서 1타 적은 버디를 기록해야만 했다. 웨스트우드가 친 공이 모래 웅덩이인 벙커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우즈가 친 회심의 일타 역시 또 다른 벙커 속으로 들어갔다. 클럽하우스에서 TV로 두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는 미디에이트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방송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미디에이트의 초조해하는 모습을 잡았다. 우즈가 먼저 벙커 샷을 했다. 공을 치자마자 실수를 예감한 우즈는 골프채를 집어 던졌다. 모래 벙커에서 최대한 홀 가까이 붙이려고 우즈는 공을 강하게 타격했다. 힘을 너무 가했는지 공은 잔디가 고르게 다져진 페어웨이를 넘어 잡초가 무성한 러프로 들어갔다. 버디를 하려면 90m가 넘게 남은 상황에서 러프로부터 단 두 타로 홀에 공을 집어넣어야 한다. 웨스트우드는 안전한 벙커 샷으로 페어웨이에 공을 올려놓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모두가 미디에이트의 우승을 예감했다. 중계를 맡은 NBC 아나운서는 미디에이트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번 대회에서 발전된 기량을 보인 비결과 우즈와 경쟁하는 기분에 대해 물었고 미디에이트 역시 안심과 감격이 뒤섞인 표정으로 웃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나 승부사인 우즈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캐디인 윌리엄스(Steve Williams)와 의논한 끝에 골프채를 집어 들고 여러 번 연습 스윙을 한 후 신중하게 공을 쳤다. 공은 홀 주변의 잔디밭인 그린 위에 떨어졌다. 홀까지의 거리는 4.5m였다. 관중들은 놀라 환호성을 질렀다. 미디에이트는 다시 얼굴이 사색이 됐다. 웨스트우드는 홀에서 6m 거리에 공을 올려놓았지만 버디를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의 퍼팅은 짧았고 그의 경기도 끝났다. 우즈의 차례가 왔다. 우즈는 그린을 꼼꼼히 살폈고 홀을 향해 퍼팅을 했다. 잔디 상태가 고르지 않아 울퉁불퉁한 곳을 돌돌 굴러간 공은 홀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우즈는 하늘을 향해 어퍼컷을 날렸고 관중들은 환호했다. 승부는 다음날 18홀을 도는 연장전으로 미뤄졌다.
월요일 연장전에서도 두 선수는 엎치락뒤치락하며 골프팬들에게 재미있는 경기를 선사했다. 18번 홀에서 한 타 뒤진 우즈는 이번에도 버디를 잡아냈다. 이제 승부는 한 홀에서 승부를 결정하는 서든데스 방식으로 들어갔다. 파4인 7번 홀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미디에이트가 전날 우즈가 빠졌던 상황에 처했다. 우즈의 공은 두 타 만에 그린 위에 올라갔지만 미디에이트가 친 공은 벙커에 빠졌고 3타 만에 홀까지 4.5m 거리의 그린 위에 올려놓았다. 전날 우즈와 똑같은 거리에서 한 번의 퍼팅으로 공을 집어넣어야 했다. 그러나 미디에이트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5타로 보기를 기록했고 우즈는 안전하게 파로 경기를 끝냈다. 이 대회는 골프 애호가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됐다. 골프 메이저대회 홈페이지는 이 경기를 120년 가까운 대회 역사상 역대 3위의 명승부로 기록하고 있으며 미국의 스포츠전문채널인 ESPN은 이 시합을 2000년 이후 메이저대회를 통틀어 최고의 명승부로 꼽았다.
더욱이 이 대회에서 우즈의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4일간의 정규 라운드 중 3일을 기준 타수보다 2타 많은 더블 보기로 플레이를 시작했다. 무릎 수술 후 두 달 동안 재활을 하느라 연습을 하지 못했고 나중에 밝혀졌지만 발에는 피로 누적으로 잔금이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회 내내 우즈는 절뚝거리며 걸어 다녔다. 경기를 함께한 동료선수는 “우즈는 한 발로 우리 모두를 물리쳤다”라고 말하며 감탄했다. 다른 동료는 “우즈는 필요할 때마다 최고의 샷과 퍼팅을 했다”라며 치켜세웠다. 이처럼 우즈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졌고, 위기와 압박의 순간에 플레이가 더 살아난다.
골프를 대중화시킨 우즈
우즈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진 스타였다. 1975년 12월30일 군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즈는 골프 신동이었다. 스포츠광인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운 우즈는 두 살에 TV에 나와 유명 코미디언과 퍼팅 대결을 선보였다. 다섯 살 때는 <골프 다이제스트>에 소개됐으며 ABC 방송의 ‘세상에 이런 일이(That’s Incredible)’에 골프 신동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여덟 살 때 아마추어 대회에서 최연소로 우승했으며 이후 여러 주니어 대회에서 승리를 따냈다. 청소년 시기에는 주니어 세계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하며 언론에 수시로 오르내렸다. 특히 아마추어 대회 중 가장 큰 규모와 전통을 지닌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3년 연속 석권한 것은 어떤 선수도 해내지 못한 업적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김연아를 보며 피겨스케이팅을 즐기게 된 것처럼 미국인들은 우즈로 인해 골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우즈로 인해 골프에 빠져들었다. 우즈는 스탠퍼드대에서 2년 동안 활동한 후 1996년 가을에 프로로 전향했다. 데뷔 전부터 인기스타였던 우즈는 나이키와 4000만 달러의 후원계약을 체결했고 골프용품업체 타이틀리스트와도 계약을 맺었다.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몇 개 남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 데뷔를 했지만 바로 그해에 두 개의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PGA(미 프로골프협회) 투어 신인왕에 뽑혔고 곧바로 세계랭킹 33위로 도약했다. 이듬해에는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자가 됐고 데뷔 10개월 만에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가장 빠른 1위 기록이다. 2000년에는 그의 기량이 최고조에 올라 각종 기록을 양산했다. PGA 투어에서 52년 만에 처음으로 6개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했고 US 오픈을 시작으로 이듬해 마스터스 대회까지 4개 메이저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하는 신기록을 작성했다. 2013년까지 우즈는 PGA 투어에서 79승을 거둬 3승 차이로 역대 2위에 올랐고 메이저대회 14승으로 18승을 기록한 니클라우스(Jack Nicklaus)에 이어 역시 2위를 기록 중이다. 통산 상금은 1억900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현재 670주 동안 세계랭킹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많은 골프 전문가들은 그를 역사상 최고의 골프선수로 꼽는다.
어려서부터 언론에 보도된 까닭도 있지만 우즈의 경기가 인기 있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US 오픈처럼 극적인 시합을 많이 펼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전하는 경기가 많다. 글의 서두에서 소개했던 4라운드 18홀의 플레이같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플레이를 펼친다. 또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 뛰어난 샷을 구사하며 승리를 낚아챈다. PGA 투어에서 연장전 성적이 통산 15승1패로 압도적이다. 우즈는 골프에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고 평가받는다. 이전에는 골프는 부유층이 즐기는 지루한 경기였지만 우즈가 나타난 이후 일반 대중이 골프 중계를 TV로 즐기게 됐다. 명승부를 펼친 2008년 US 오픈 연장전은 월요일에 방송됐음에도 7.6%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의 월드시리즈 시청률이 8% 전후인 것을 생각하면 우즈는 골프를 메이저리그 수준으로 대중화시킨 셈이다. 그래서 우즈가 활동한 이후 골프팬이 늘어났고 중계권료나 대회 우승상금이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상대를 질리게 하는 우즈
우즈는 체육관에서는 끈기 있는 연습 벌레였고 필드에서는 우승에 대한 집념이 넘치는 승부사였다. 그는 누구보다 근소한 차이로 이기는 승부가 많았으며 팬들에게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줬다. 어떤 이는 우즈가 신사적인 골프를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심지어 노스웨스턴대의 브라운(Jennifer Brown) 교수는 우즈가 다른 선수들의 사기를 꺾는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그녀는 우즈가 참가한 경기에서 상대 선수들의 성적이 하락한 것을 밝혀냈다. 우즈가 참가한 경기와 빠진 경기를 비교해봤더니 ‘우즈 역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 상대 선수들의 성적을 떨어뜨렸다. 재미있는 것은 우즈와 우승을 다투는 위치에 있는 상위 랭커들의 성적 하락이 더 뚜렷했다는 점이다. 상금 순위와 최근 성적이 좋아 예선을 면제받고 곧바로 본선에 참가한 선수들과 예선전을 치르고 대회 본선에 올라온 하위 선수들을 나누어 우즈의 영향을 조사했다. 하위 선수들은 우즈의 참가와 무관하게 비슷한 성적을 냈는데 상위 선수들이 우즈가 참가한 대회에서 평균적으로 1타를 더 많이 쳤다. 특히 우즈가 잘나가던 2000년 같은 시기에는 이 영향이 극대화됐다. 우승을 많이 하던 기간에 상위 선수들의 평균 타수는 우즈가 참가하는 대회에서 1.8타가 올라갔고 2004년과 같은 슬럼프 기간에는 0.6타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 브라운 교수는 우즈가 참가하는 대회에서 혹시 상대 선수들이 우승을 위해 더 위험한 플레이를 구사해서 성적이 하락하는지 분석했다. 위험한 전략을 택하면 실패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홀마다 성적이 들쭉날쭉해진다. 이를 위해 상대 선수들의 홀당 기록 분포도에 대해 조사했더니 우즈의 참가 유무와 관계없이 이들의 분산은 일정했다. 즉 우즈를 이기려고 특별히 위험한 플레이를 택했기 때문에 성적이 하락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답은 하나다. 시합을 하기도 전에 우즈에게 기가 죽어 애초에 우승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즈가 참가하지 않거나 우승에서 멀어지면 상대 선수들의 우승 의욕이 높아져 성적이 올라가게 된다.
브라운은 우즈의 영향 말고 다른 요인들은 모두 제거했다. 대회의 규모, 코스의 난이도, 날씨 등의 영향을 모두 빼고 순전히 우즈의 영향만 분석했다. 우즈가 모든 상대 선수들에게 평균 1타씩 올리게 만든다는 사실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한 사람이 다른 모든 선수를 이토록 질리게 할 만큼 우즈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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