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최고의 방어진지 江, 그러나 안주하면 패한다

146호 (2014년 2월 Issue 1)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나폴레옹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강을 건너야 할 순간에 건너지 못하면 엄청난 피를 흘리게 된다.” 그만큼 강은 모든 전쟁에서 공격군 지휘관들에게는 골칫덩이였다. 반면 방어하는 측에서는 강을 주 방어선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강은 방어선으로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시야가 트여 있다. 여울목이나 다리를 이용하면 적은 한두 줄로 전진해야 한다. 만약 군대의 규모가 크다면 배나 뗏목은 아예 이용할 수 없다. 한 번에 20∼30, 많아야 100명씩 병력을 분산해 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다리로 건너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우리나라의 전쟁사를 보더라도 북방민족이 쳐들어오면 항상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임진강순으로 전장이 형성되곤 했다.

 

알렉산드로스, 인더스 강에 도달하다

 

천하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최악의 고민을 안겨준 곳도 강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지막 목표는 인도 원정이었다. 기원전 326,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을 지나 북부 인도 지역에 도달했을 때 포로스라는 인도의 왕이 알렉산드로스를 막아섰다. 포로스는 자부심이 강했고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용사였다.

 

당시 알렉산드로스의 병력은 10만 명이 넘었다는 설도 있지만 보병 6000명에 기병 5000명이란 설이 정확한 듯하다. 알렉산드로스의 최강 전력은 5.6m 창을 쓰는 장창 보병대와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지휘하는 엘리트 부대인 컴패니언 기병대였다. 반면 포로스의 군대는 3만 명이었다. 이들의 강점은 키만 한 활을 사용하는 궁병과 300대의 전차, 85마리로 구성된 코끼리 부대였다.

 

포로스는 히다스페스라는 인더스 강의 지류를 방어선으로 선택했다. 강은 폭이 800m나 되고 수심이 깊었다. 마침 우기라 물도 콸콸 넘쳐흐르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시험 삼아 강 중간에 있는 작은 하중도(河中島)에 소규모 장창부대를 보내 인도군과 전투를 벌였다. 백병전에서는 마케도니아군이 승리했다. 그러나 곧이어 건너편 강변에서 인도 궁병이 나타나 무자비한 사격을 퍼부었다. 수심 깊은 물에서 느리게 움직이던 마케도니아군은 화살 공격에 전멸하고 말았다.

 

원래 마케도니아군은 야전에서의 역동성과 스피드, 기병과 보병의 협력에 의한 전술적 융통성을 장기로 하는 군대였다. 어떤 군대와도 맞붙어 버틸 수 있는 완고한 장창부대가 적의 공격을 저지하거나 붙들고 있는 동안 기병이 적의 빈틈을 찾아 공격한다. 보병과 돌팔매 부대 등 기타 병종은 이 전술을 보조한다. 지형과 상황에 따라 이들을 운영하고 순간 전술에 변화를 주는 데 있어 마케도니아를 따라올 군대는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수심 깊은 강이 이들의 역동성을 제한해 버렸다. 포로스의 궁수들은 강을 건너는 적에게 그야말로 천적이었다.

 

중도 포기냐, 강행 돌파냐

 

알렉산드로스는 전투를 포기하든가, 아니면 희생을 감수하고 여울목으로 강행돌파를 해야 했다. 알렉산드로스에게 포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훗날 이집트의 왕이 되는 프톨레마이오스에게 기병부대를 맡기고 여울목 앞에서 대기하게 한다. 당장은 우기라서 여울목이 물에 잠겨 있지만 수심이 얕아지면 여울목을 건너 승부를 걸겠다는 의도였다. 포로스도 건너편에서 병력을 보강하고 바리케이드를 구축했다.

 

건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거대한 막사를 세우고 소일했다. 하얀 깃털을 단 모자를 쓰고 금빛 찬란한 갑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알렉산드로스가 인도군에게 관측됐다. 그러나 그는 가짜였다. 진짜 알렉산드로스는 여울목 돌파보다 더 무모한 기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군 몰래 강을 조사한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기병부대가 주둔해 있는 곳에서 히다스페스 강을 따라 동쪽으로 약 25㎞ 거슬러 올라갔더니 강 상류 지점에 또 다른 하중도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심도 얕아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그는 폭풍우 치는 밤에 몰래 이곳에 군대를 집결시키고 기습적으로 강을 건넜다.

 

 

이것이 왜 무모한 작전일까? 마케도니아군은 잠도 자지 못하고 왕복 50㎞의 강행군을 해야 했다. , 프톨레마이오스가 포르스왕과 대치하고 있는 지점에서 25㎞를 올라가 강을 건넌 후 다시 그 거리만큼 내려와 인도군과 대적해야 했다. 주 도하 지점이 너무 멀어서 일단 도강하면 후속부대의 지원도 없이 강 건너편에 고립된 채 우세한 병력의 적과 싸워야 한다. 한마디로모 아니면 도인 전술이다. 거대한 페르시아제국을 차지한 왕이 작은 강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벌인다는 것이 가능할까? 알렉산드로스에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진정으로 타고난 전사였다.

 

무모한 심장 vs. 냉철한 사고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진정한 장점은 무모한 심장이 아니라 냉철한 사고였다. 알렉산드로스가 강을 건너 포로스의 진지로 육박하자 인도군에 대혼란이 발생했다. 군대는 단독으로 싸우지 않는다. 궁병, 창병, 기병의 협력이 필요하다. 전투에 임할 때는 적절한 간격과 위치로 포진해야 한다. 소부대라면 몰라도 대부대는 부대 간의 거리도 상당히 멀다. 그런데 포로스의 군대는 모두 강을 향해, 즉 북쪽을 향해 전투배치가 돼 있었다. 이 포진을 동쪽으로 돌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급해진 포로스는 일단 출동 가능한 부대부터 알렉산드로스를 향해 내보냈다. 소위 축차적(逐次的) 투입이라는 것인데 이는 전쟁에서 금기 중의 금기다. 병력이 분할되고 병종 간의 협력도 어렵다. 지극히 저효율에 소모적인 전투를 벌이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급하게 내보낸 포로스 부대는 차례차례 전멸해 버렸다. 측면습격을 하는 와중에서도 냉철한 알렉산드로스는 놀란 적의 심리를 이용해 자기에게 유리한 지형을 골라 싸우고 부대를 나눠 협격하는 효율적인 전투를 했다. 예를 들어 인도의 전차부대를 강변의 진흙탕으로 유인해 꼼짝달싹 못하게 한 다음 경보병을 보내 처리해 버렸다.

 

마케도니아 기병에 무너진 인도 코끼리 부대

 

포로스가 빠르게 동원할 수 있는 부대는 기동력이 있는 코끼리 부대와 기병이었다. 전사답게 포로스가 직접 지휘를 했다. 포로스의 진영에서 양군의 주력이 격돌했다. 마케도니아군은 처음 보는 코끼리에 놀라 고전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코끼리의 약점을 재빨리 찾아냈다. 사실 코끼리는 말을 겁주고 동요시키는 데는 제격이지만 부리기가 어렵고 전투효율도 의외로 그리 높지 않다. 더욱이 코끼리의 기동력은 말보다 느렸다. 알렉산드로스는 기병을 우회시켜 코끼리의 측면을 공격하고 경보병을 풀어 적을 교란하면서 승리를 거뒀다.

 

그래도 전투는 격렬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미리 잠복시켜 뒀던 지원부대가 때맞춰 합류하며 마케도니아로 승기가 기울었다. 영리한 알렉산드로스는 강 하류(프톨레마이오스 기병대 주둔 지점)와 강 상류(알렉산드로스의 주 도하 지점) 중간쯤에 도하가 가능한 지점을 찾아 놓고 그곳에 기병을 몰래 주둔시켜 놓았다. 도하에 성공한 주력 부대가 강줄기를 거슬러 내려와 인도군과 전투를 치르고 있을 때 추가로 도하에 나서 협공을 하도록 한 것. 전투의 혼란 때문에 인도군은 이들 후속 지원부대의 도하를 탐지하지도 저지하지도 못했다. 최대한 빨리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대각선으로 건너온 지원부대는 전투 중인 인도군의 측면을 습격했다. 인도군은 대패했다. 포로스는 부상을 입은 채 포로로 잡혔다.

 

말처럼 쉬운 전투는 아니었다.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은 포로스가 일부 부대만 동원해 진형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싸웠던 탓이었다. 완전한 포진하에서 전쟁터를 선점하고 싸웠다면 알렉산드로스는 궁병의 십자포화에 상당한 희생을 치렀을 것이고, 코끼리 부대를 우회하고 교란하는 기동성 있는 작전을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강을 지키려다 실패한 이들

 

포로스는 강이 마케도니아군의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켜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전투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알렉산드로스가 강을 이용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투를 창조해 냈다.

 

 

알렉산드로스의 전투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늘 그의 투사적 기질, 대담성과 용맹함에 탄복한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장점은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언제나 자신에게 최선의 장점이 되도록 응용하고 도전할 줄 안다는 것이다.

 

포로스뿐 아니라 수많은 장군들이 강을 지키다가 실패했다. 논리적으로 강은 분명 최적의 방어 요지다. 그러나 전쟁사를 뒤져 보면 강을 지켜서 대승을 거둔 전투는 별로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세기의 명장들은 강에서 고전은 했지만 대패를 당하거나 좌절을 겪은 적은 거의 없다. 살수대첩같이 강에서 대승이 벌어지는 경우는 패전, 후퇴하는 군대를 강에서 막아설 때였다. 뛰어난 장군들, 능력과 추진력, 분명한 목표와 용기를 갖춘 장군들에게 강은 고통을 주긴 하지만 결정적 장애물은 아니었다.

 

강을 지키는 지휘관의 첫 번째 실수는 스스로 주도권을 적에게 양도한다는 것이다. 내가 극도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생각에 전술과 전장을 고정한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강은 수십, 수백 km까지 이어진다. 도강지점은 무수히 많고 강 전체를 방어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시야와 전장을 조금만 확대시키면 도하지점을 고정하고 그곳만 방어한다는 전술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 수 있다.

 

두 번째 실수는 고정된 도하지점을 방어함으로써 나의 전술을 완전히 노출한다는 것이다. 이는 창의와 역동성을 완전히 포기하는 지름길이다. 더 큰 문제는 알렉산드로스처럼 상류로 돌아 들어오는 전술은 너무나 무모하고 위험해 적들이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 착각하고 안도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진짜 무모하고 위험한 전술은 단 하나의 전선, 단 한 가지 전술에 자신을 고착시키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크고, 쉽고, 편안한 이익을 주는 상품과 전술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강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우리는 절대 무적이라고 자부한다. 현재의 상황으로만 보면 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모든 요소와 지표가 내가 유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지표들은 내가 보고 있는 강 안에서만 선택한 건 아닐까? 우리를 둘러싼 경제상황이라는 강은 무한하게 빠르게 변화하고 확장되고 있다. 강력한 경쟁자, 진정한 천재는 강의 저 위편에서 움직이고 있다. 도저히 건널 수 없어 보이는 깊고 빠른 강은 당신을 빠트리는 함정일 뿐이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yhkmyy@hanmail.net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8호 Dynamic Workspaces 2021년 0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