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from the Field
IBM 기업가치연구소는 2003년부터 매년 전 세계 경영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향후 3∼5년간 기업 전략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경영진의 의견을 조사해 왔다. 올해에는 전 세계 70개 국 20여 개 산업 분야의 민간 기업 및 공공기관에서 종사하는 최고경영진1 4183명을 직접 만나 대면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물을 정리해 ‘고객에 의해 움직이는 기업(The Customer-activated enterprise)’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IBM이 2003년부터 최고경영진 대상 연구를 시작해 온 이래 눈에 띄는 추세는 기술의 중요성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점이다. 최고경영진은 가장 중대한 외적 요인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3대 요인(기술, 시장, 거시경제) 중 하나가 기술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CEO들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기술을 최우선 순위로 여겼다. 이들에게 기술은 비즈니스 전략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이며 새로운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다. (그림 1)
디지털 환경의 권력 주체는 ‘고객’
그렇다면 최고경영진은 어떻게 미래에 대비하고 있을까? 세상이 서로 연결되고 무수히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투명성을 중시하는 경제 질서가 새롭게 세워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혁신을 모색하는 최고경영진의 절반 이상은 기업이 더욱 개방될 것으로 기대하며 사내·외 협업을 확장하고자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변화는 고객과의 협업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됐다는 점이다. 현재 고객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신제품과 서비스 개발에만 국한되지 않고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CEO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고유 영역이었던 비즈니스 전략 개발의 권한마저도 내려놓고 있다.실제로 CEO들은 비즈니스 전략과 관련해 고객이 최고경영진을 제외한 그 누구보다도 큰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미래를 결정할 때 고객을 이해 당사자로 받아들이는 건 기업 문화와 조직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고객 중심의 기업이 아니라 고객에 의해 움직이는, 고객 주도의 기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과 완전한 상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고객과 기업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언제라도 기꺼이 비즈니스 방향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하고 주요 의사결정에 고객을 참여시킬 방법도 확립해야 함을 의미한다.
지난해 IBM 글로벌 CEO 조사에 따르면 CEO의 44%가 개별 고객의 의견을 듣기 위해 조직을 내·외부로 개방하고 있으며 불과 1년이 지난 2013년에는 전체의 56%가 조직 개방에 힘쓰고 있다고 응답했다. 전 세계 54%의 최고경영진은 고객이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의 경우 이 응답률은 88%에 달했다. 그러나 고객에 대한 접근 방식에는 한국과 글로벌 간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최고경영진의 54%는 고객을 개별고객(Individual)으로 보고 접근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최고경영진 중 54%는 아직도 고객을 집단(Market Segment)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늘날 고객들은 개별적 주체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객 각자를 ‘움직이는’ 요인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를테면 가치관, 신념, 습관, 특이사항 등에 대해서도 개별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서비스 대상인 고객 간 더욱 긴밀한 관계가 구축돼야 하는 이유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통합
소셜, 모바일, 디지털 네트워크의 부상으로 기업과 고객 간 평등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기업 스스로 기존의 업무 방식을 재고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최고경영진의 약 60%는 비즈니스 가치 창출에 동등한 역할을 할 만한 파트너를 찾고 있다. 그리고 절반가량은 외부로부터의 혁신을 모색하고 있다.
최첨단의 혁신은 디지털(온라인)과 현실(오프라인)이 교차하는 곳에서 이뤄진다. 최고경영진이 이미 실감하고 있듯이 이 두 가지 요소를 융합시키는 작업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스마트폰, 태블릿 같은 모바일 기기의 사용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CIO의 84%는 향후 3∼5년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추진할 5대 계획 중 하나로 ‘고객과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모바일 방식’을 포함시켰다.
문제는 전략의 부재다. 전체 기업의 약 3분의 2가 온·오프라인 통합 전략이 부실하거나 아예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한국 기업의 상황은 좀 나은 편이다. 한국 기업 가운데 통합된 온·오프라인 전략 개발을 구사하고 있는 곳은 전체의 52%로 글로벌 기업 평균(36%)보다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통합 전략의 구현을 위해 필요한 소셜미디어 전략의 경우 글로벌 기업(63%)과 한국 기업(75%) 모두에서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2) 결국 비즈니스 전략과 디지털 전략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기존 체계에서 어떻게 소셜미디어를 접목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로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이 1만 건 이상의 자연어 응답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최고경영진은 소셜, 디지털, 현실 세계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ROI(투자 대비 수익률)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소셜미디어를 기존 업무 프로세스에 끼워 맞추면 된다고 생각하는 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소셜미디어는 범조직적인 차원에서 완전히 새로운 업무, 학습, 운영 프로세스를 탄생시켰을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직원들이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도 임원들은 그저 방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최고경영진은 기업의 전략과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소셜비즈니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
고객 경험을 유도하고 활용하는 방안 모색
최고경영진 10명 중 약 7명은 소셜과 디지털 상호작용으로의 전환이라는 당면 과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은 매우 세부적인 요구사항까지 해결하려 하고 있다. 즉, 다수의 고객을 묶어 몇몇 고객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별 고객으로 이해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진은 절묘하게 균형 감각을 발휘하며 우선적으로 당면 과제를 조율하고 있다. 이들은 IT 시스템과 운영 및 그 밖의 업무를 위한 시간을 줄이고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또한 각자의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고객 경험 관리에 가능한 한 많이 개입하려 하고 있다. 이제 최고경영진 모두는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벗어나 더욱 새롭고 흥미로운 고객 경험을 창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여기서 관건은 이를 이루기 위해 서로 협업을 할 수 있느냐다.
최고경영진은 고객과 만나고 관계를 맺기 위해 디지털 채널을 훨씬 더 광범위하게 사용하려고 한다. 이미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데이터도 있다. 지난해 CEO의 57%가 디지털 채널이 향후 3∼5년 내에 고객과의 핵심적인 상호소통 수단의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2013년에는 최고경영진의 52%가 이미 이 방식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있으며 향후 88%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답해 디지털 채널의 도입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림 3) 한국의 경우 71%의 최고경영진은 현재 고객과의 핵심적인 상호 소통 수단 방안으로 소셜 등 디지털 채널을 이용하고 있으며 향후 3∼5년 내 이용 빈도가 96%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응답해 글로벌 기업에 비해 디지털 소통에 훨씬 앞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고객 경험의 개선을 위해 다양한 과제를 내세웠던 최고경영진이 소셜비즈니스 영역에서는 뒤처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고경영진의 76%가 고객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지만 이와 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제대로 된 소셜비즈니스 전략이 없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다. 선도 기업들은 소셜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의 핵심가치와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한다. 이런 고객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면 고객 개개인에게 맞춤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소셜 게놈(social genome)’, 즉 각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한 사회적 특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고객과 함께 경영하는 CEO
많은 CEO들은 향후 3∼5년간 다른 업종 기업들과의 경쟁이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혁신을 위한 압박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광범위한 파트너십을 통해 혁신의 동력을 마련함으로써 새로운 경쟁자들에 대처하고 급변하는 고객의 성향을 민첩하게 수용하려 한다.
CEO들은 개방적인 모습으로 빠르게 변화함으로써 협업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지난 12개월간 상당수의 CEO들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노력했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은 고객이 각 기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고 평가한다. 고객은 이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의 전략적 핵심 사안에 대해서까지 발언권을 갖게 됐다. 새로운 고객 경험을 창출하기 위해 고객에게 기업을 개방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접점에서 혁신을 선도하는 것은 기업이 홀로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최고경영진은 향후 몇 년간 사내·외 경계를 허물고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의 협업을 원하고 있다.
IBM 조사에 따르면 협업을 해야 하는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고객, 파트너, 공급업체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직원 네트워크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기업이 가장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협업을 장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고경영진 역시 협업해야 한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큰 보상이 따를 수 있다. 실적 상위 기업을 이끄는 CEO의 92%는 자신을 포함한 최고경영진이 각자 동등한 책임을 지면서 효과적으로 팀워크를 발휘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적 하위 기업에서 이와 같이 생각하는 CEO는 72%에 머물렀다. 경영진의 협업을 통해서 우수한 실적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이성열 한국IBM 글로벌 비즈니스 컨설팅(GBS) 대표 sungyol.lee@kr.ibm.com
필자는 연세대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마이애미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네브라스카주립대에서 경영정보시스템(MIS) 박사 학위를 받았다. 22년간 컨설팅 업계에 종사하면서 기업 전략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컨설팅 서비스를 수행해왔다. 현재 IBM 본사 GBS에서 전자산업 분야 리더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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