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CDC보다 빠른 구글의 독감정보 속도와 힘, 의료정보에 접목하다

139호 (2013년 10월 Issue 1)

 

발단은 단순했다. 2010년 어느 날,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있던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장의 눈이 커졌다. 10년 가까이 의료정보센터에서 일하면서 분당서울대병원의 의료정보 관리와 분석을 맡아 온 그였다. 평소에도 데이터 분류와 관리, 관련 기술의 발달 및 추세와 관련된 기사를 관심 있게 보던 터. 시선을 사로잡은 기사는 구글에 대한 것으로 어느 지역에서 감기 관련 검색이 늘면 오래지 않아 해당 지역에 독감주의보가 발표되더라는 내용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구글은 검색창에 관련 검색어가 입력되는 빈도를 토대로 독감 확산 여부를 포착하며 이는 이 분야에서 공적 권한을 가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보다 2주나 빠른 것으로 보고된다. 이제는 아예 전 세계 독감 확산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전용 페이지(www.google.org/flutrends)가 있을 정도다. 당시 황 센터장이 받은 충격은 컸다. 그는잘 짜인 데이터가 이렇게 활용될 수도 있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회상한다.

 

충격은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황 센터장은 새롭게 부각된 빅데이터를 실제 의료 현장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갖고 있는 정체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의료정보화시스템 분야의 선두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누적된 데이터를 새로 분류하고 다시 가공해서 좀 더 많은 정보와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첨단 데이터웨어하우스를 갖추기로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황희 센터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분당서울대병원의 빅데이터 활용 과정과 그 결과를 분석했다.

 

시작

의료정보시스템에 대한 투자는 사실 직접 진료와 무관하다. 예컨대 MRI CT 기계를 구입하겠다는 결정은 직접적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투자를 하는 것이므로 비용과 효과가 즉각 나타난다. 하지만 의료정보시스템에는 얼마의 투자가 적정한지 분명하지 않고 비용을 들인 만큼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투자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분당서울대병원이 빅데이터 개념을 받아들이고 차세대 CDW(Clinical Data Warehouse)를 구축하는 일에 신속하게 착수할 수 있었던 데는 설립 초기부터 갖고 있던의료정보 분야의 선두주자라는 정체성 영향이 컸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서울대 의과병원에 속한 병원 중 한 곳으로 2003년 개원해 올해로 꼭 10년 차가 됐다. 이 병원은 개원할 때부터 최첨단 의료정보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했다. 개원 당시 종이, 차트, 필름, 슬립이 없는 4리스(less) 병원으로 출발하며 관심을 모았다. 종이에 펜으로 적어 기록하는 대신 전자패드나 노트 등을 활용해 기록을 남기는 방식을 도입했다. 2000년 들어 병원 업계에서는 종이차트 없는 페이퍼리스(paperless) 병원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파일럿 형태로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1000병상 이상 대형 병원에서 이를 실제로 구현한 곳은 분당서울대병원이 처음이다.

 

2000년 이후 탄생한 덕을 톡톡히 봤다. 기존 대형 병원에서는 차트를 없애고 전자의료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s)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도 기존 데이터들을 변환해 이관 및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 출발하는 분당서울대병원은 기존 데이터 이관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그럼에도 대형 병원에서 모든 차트와 필름을 전자화한다는 것은 기존 관행에 도전하는 만만치 않은 실험이었다. 황 센터장은시스템을 구축할 때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이었지만 실패하면 다시 종이차트를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현재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형 병원은 모두 전자 기록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아마 가장 큰 공을 세운 곳이 분당서울대병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큰 문제없이 페이퍼리스 시스템을 실현하자 대형 병원에서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 검증됐고 다른 곳에서도 경쟁적으로 도입에 나섰다는 얘기다.

 

태생부터 의료정보화에 뿌리를 두고 있던 분당서울대병원은 설립 때부터 자체적인 데이터웨어하우스를 갖추고 환자들의 방문과 진료, 처방에 대한 기록을 빠짐없이 쌓아왔다. 젊은 병원답게 대부분의 의료진이 디지털 기기 사용에 거부감이 없는 3040세대라는 점도 전자 기록의 디지털화에 도움을 줬다. 디지털 자료를 검색하고 연구와 진료에 활용하는 일도 큰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기존 시스템은 이미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최신 시스템이었다.

 

황 센터장의 생각은 달랐다. 구글 기사를 접한 후 그는 빅데이터 관련 정보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고 읽었다. IT 전문가들도 찾아다니며 만났다. 결론은 명확했다. 빅데이터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누가 먼저 오르고 나중에 합류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무시하고 갈 수 없는 대세였다. 황 센터장은 빅데이터 기술을 신속하게 도입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얼마 후, 황 센터장은 자료를 정리해 의료정보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올렸다. 병원장과 부원장은 물론 병원 운영의 큰 틀을 짜고 관리하는 기획조정실장 등이 전부 참여하는 회의였다. 차세대 CDW를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최신 트렌드를 설명하는 내용과 병원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일이라는 의견이 포함됐다. 예상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수백억 원에 달했다. 웬만한 병원을 새로 짓는 것과 같았다. 당시 다른 프로젝트로 200억 원 이상을 쓰던 중이라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기존 시스템이 낡거나 제대로 가동하지 않던 상황이었다면 설득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시스템은 바로 그해 미국보건의료정보관리 및 시스템학회 애널리틱스에서 부여하는 의료정보화 단계에서 최고 수준인 7단계 레벨을 획득했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최초일뿐더러 미국을 포함해도 9번째였다. 의료정보화 분야에서 이미 최고 그룹에 속해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위원회에 안건을 올린 결과는 만장일치 통과였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의료 IT에서 선도적 지위(leading position)를 유지하려면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통한 것이다. 황 센터장은좋은 건 알겠는데 지금 이 시점에 꼭 그렇게 많이 투자해야 할까 하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통과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정보화 수준이 의료서비스 수준을 좌우한다는 기본적인 공감대가 있었던데다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모두가 신뢰를 보내준 결과라고 말했다.

 

전개

CDW TFT가 꾸려졌다. 어떤 곳과 손을 잡고 시스템 구축에 나설지를 선정하는 단계가 먼저였다. 7개 사업자로부터 제안서를 받았고 작은 프로젝트를 던져 기술검증(PoC)을 실시했다. 유수 글로벌 벤더들을 제치고 SAP가 최종 낙점됐다.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은 필요한 서비스를 즉각 받을 수 있는가였다. 병원은 업종 특성상 작업의 현지화(customization)가 필요할 때가 많다. SAP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고 한국에 연구소를 두고 있어 프로그램 수행에 유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기존 시스템이 갖고 있던 한계와 문제점을 진단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했다. 주 사용자인 의사와 간호사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진행했다. 어느 부서, 어느 팀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서울대병원 4곳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를 대상으로 설문해 병원별, 부서별로 요구사항을 정리했다. 황 센터장은분당서울대병원이 선두에서 첨단 시스템을 받아들여 적용하면 다른 서울대병원에도 순차적으로 확산된다이를 감안해 아예 처음부터 4곳의 의료진을 모두 설문 대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 시스템을 쓰면서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개선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새로 구현됐으면 하는 기능은 어떤 것인지 꼼꼼히 묻고 분석했다. 이 작업의 주체였던 의료정보팀은 워크숍을 갖고 정리된 내용을 공유했다.

 

사용자들이 제시한 최우선 과제는속도였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뭔가 하나 찾으려면 최소 10분은 기다려야 했다. 검색 대상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하거나 검색 양이 늘어나면 일단 걸어놓고 밥을 먹고 돌아와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속도가 나지 않았다. 또 다른 과제는 비정형 데이터였다. 시간이나 날짜, 약의 종류나 투여량처럼 정형화된 데이터는 개원 초부터 잘 정리돼 검색이 간편했지만 의사가 환자를 면담하며 기록한 내용과 같은 비정형 데이터는 정리가 어렵고 제각각이라 검색에서 누락되기 쉬웠다.

 

속도를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빠르게 발달한 기술이 훨씬 많은 데이터를 단숨에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문제는 비정형 데이터의 분류 및 검색의 용이성이었다. 정형 데이터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대상인 만큼 정교한 툴을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원 이후 지금까지 누적된 데이터부터 살피기로 했다. 의료정보팀에 접수되는 정보 요청은 연간 1만 건 이상. 1년에 1만 건으로 잡으면 개원 후 누적된 양은 10만 건에 달한다. 의료정보팀은 이를 카테고리별로 묶었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주로 어떤 데이터를 찾고 싶어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의료정보팀원 4명이 6개월간 온종일 이 일에만 매달렸다. 크게 9가지 시나리오가 나왔다. 여기에 속하는 정보 요청 건이 전체의 95% 이상을 차지했다. 기본 시나리오, 처방 중심 시나리오, 진단명 중심 시나리오 등 각 시나리오에 이름을 붙여 검색과 동시에 해당 시나리오 서버가 작동하도록 알고리즘을 짰다. 자동 검색 시스템도 도입했다. 사고의 흐름에 따라 검색어를 하나씩 입력할 때마다 그에 맞는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자동 나열되는 방식이다. 예컨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어느 과 누구에게 진료를 받은, 무슨 진단명을 가진 환자들 중에 어떤 검사를 했거나, 어떤 약을 먹은 환자를 알고 싶을 경우 이제까지는 제대로 검색이 안 될 뿐더러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개인이 직접 검색하지 못하고 의료정보팀에 자료를 요청해야 했다. 빠르면 하루, 길면 3∼4일 후에야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후에는 검색어를 입력하는 동시에 유형에 따라 시나리오별로 검색이 진행되고 검색어를 입력하는 즉시 그에 맞는 내용이 실시간으로 나열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아 클릭하면 대개 5초 안에 원하는 데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는 Free text 패턴을 분석해서 나타내는 text mining 기능과 자동 검색에도 연산 조건을 주는 복합 기능 등이 활용됐다.

 

기술적 난제보다 어려운 것은 사용자와 기술자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관점 차이였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하는 모든 과정에서 사용자 편의(user friendly)’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사용자가 불편하게 느끼고 잘 사용하지 않는다면 소용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황 센터장은기술적 지식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하자는 뜻에서바보도 쓸 수 있는 CDW를 만들자를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작업에 앞서 모든 병원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데 이어 실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 내내 사용자들을 계속 참여시켰다. 사용자 본인이 요구한 사항이 잘 구현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부여했다. 시나리오를 분류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랐지만 그런 중에도 1주일에 4시간 이상 요구사항을 구현한 시스템을 사용자가 실제로 써보도록 하는 과정을 멈추지 않았다. 본인이 제안한 기능이 생각대로 작동하는지 직접 써보고 피드백을 주도록 했다. 받은 피드백을 정리해 작업에 반영했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과 기술팀과의 시각차가 컸다. 사용자들은 아무렇지 않게이럴 땐 이렇게 하면 되지 않나하며 던지는 과제들이 기술로 구현하기에는 쉽지 않을 때가 많았다. 사용자는 사용자대로 기술팀은 기술팀대로 각각 알고 생각하는 바가 달라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기술적 한계에 도전하고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서라도 구현해야 하는 기능인지, 아니면 이를 제기한 사용자들을 설득해 단념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혹은 비슷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은 없는지를 판단해야 했다. 황 센터장은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의료진과 기술팀과의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모든 논의 과정에 의료정보간호사를 코디네이터로 참여시켰다. 양측의 의견이 극단으로 엇갈리지 않도록 중재자를 둬서 논의과정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요구사항을 제안한 사용자와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해야 할 엔지니어들이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도록 하되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제3자가 포함된 회의체를 별도로 구성해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거쳤다. 하나의 과제 때문에 지나치게 시간을 지체하지 않도록 여러 장치를 만든 셈이다. 환자를 진료한 후 최종 진료일을 진료과별, 특정 진료과만, 진료과 전체로 각각 볼 수 있도록 구현해 달라는 사용자의 요청에 필터 기능을 활용해서 불필요한 데이터를 걸러낼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진료과 선택 기능을 제외하고 전체 진료과만 볼 수 있도록 구현한다든지, 진료일, 검사일, 수술일 등 다양한 기준으로 기간을 분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최초 입력의 기준을 진료일로 하되 다른 날짜는 출력 항목으로 볼 수 있도록 해서 필터링이 가능하도록 협의를 이끌어 낸 일 등이 이 과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결과 및 시사점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쌓고 쉽고 빠르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첫째, 의사들의 연구 지원이다. 개원 이후 10년 동안 이런 환자가 몇 명이나 있었으며 어떤 처방이 내려졌고 결과가 어땠는지 신속하게 파악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연구 주제로서의 적합성을 판단하고 이후 연구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다. 필요한 자료가 있을 때마다 의료정보센터에 문의해 사흘씩 기다려 받아야 한다면 연구 속도와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환자들에 대한 서비스 향상이다.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환자들에게 최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려면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구비돼 병원 및 진료의 관리와 분석을 뒷받침해야 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수술 후 항생제를 5일에서 7일은 써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의 관행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술 후 하루나 이틀 이내에 항생제를 끊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실제로 미국 감염의학협회에서는 항생제를 덜 써도 환자 회복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항생제 사용을 줄이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의료계에서도 가급적 항생제를 덜 사용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하지만 경력이 오랜 의사들은 새로운 지침을 잘 따르지 않고 기존 경험이나 오랜 습관대로 행동할 때가 많다. 이때 데이터 분석툴을 사용하면 어떤 의사가 항생제를 얼마나 쓰고 있으며 이 횟수가 얼마나 누적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결과에 맞춰 의사 개개인에게 적절한 가이드라인과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제시해 행동을 고쳐가도록 유도할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항생제를 과다하게 투여받을 위험이 줄어드는 셈이다. 황 센터장은항생제 사용을 줄이라고 전체 공지 메일을 보내는 것보다 의사 개개인에게ㅇㅇㅇ선생님, 이번 달 항생제 사용에서 ㅇㅇㅇ과 1등입니다. 다음 달에는 덜 사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식으로 보내는 편이 훨씬 효과가 좋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분석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협진(協診)을 촉진하는 데도 데이터 분석이 도움을 준다. 복잡한 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들은 여러 과를 돌며 진료를 받아야 할 때가 많다. 재활의학과도 가야 하고 정형외과도 가야 하고 내과도 가야 하는 식이다. 이럴 때 환자는 대기시간이 길고 언제 어느 과 의사를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불편을 겪는다. 분당서울대병원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24시간 이내 환자를 본다는 내규를 갖고 있지만 이런저런 일정들로 바쁜 의사들은 협진 요청을 받아도 즉각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데이터를 활용해 어느 의사가 얼마나 시간이 흐른 후 답변하는지를 지표화했다. 이를 지표로 삼기 전 24시간 내 답변율은 60%에 불과했지만 지표를 만들고 6개월이 지난 후 이 비율은 90%로 상승했다. 이전에는 10명 중 4명은 협진 요청을 받은 후 하루가 지나서야 환자를 봤지만 지금은 10명 중 1명 정도만 하루를 넘긴다는 의미다.

 

이처럼 항생제 사용량이나 협진 비율 등 이른바 질관리지표(Clinical Indicator)들은 업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질관리지표란 의료의 질적 수준을 체크하기 위해 병원에서 만들어 준수하는 지표를 말한다. 외국의 경우 분야별로 상세하게 제작해 고시하며 병원 간 경쟁력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미비한 편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2006년부터 질관리지표를 공통 지표, 진료과별 지표, 간호부·약제부 지표 등으로 나눠 경쟁력 향상의 기준이자 목표로 삼아왔다. 특히 데이터를 통해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질관리지표 제작에 힘을 기울여왔다. 데이터 분석 및 관리 능력이 향상되면서 2006 100개에도 미치지 못했던 질관리지표는 현재 250여 개까지 늘어난 상태다. 분당서울대병원이 앞장서 제작한 신규 질관리지표들은 지난 2007년부터 본격화된 의료기관 평가 기준의 모태가 됐다. 의료기관 평가를 주관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평가 기준을 정할 때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든 질관리지표들을 참고했을 정도다.

 

차세대 시스템을 갖추는 데 소요된 시간은 약 2년반이다. 시스템 가동 전, 30명 정도의 의료진이 미리 사용해보도록 하는 파일럿 과정을 거쳤다. 또 새로운 시스템에 신속하게 적응하고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CDW의 기본 콘셉트와 사용방법을 부서와 진료과별로 교육하는 과정을 거쳤다. 교육 후 사용자가 직접 사용하다가 막힐 경우 개별 요청을 받아 일대일로 과외하는 식의 개인 교육도 진행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추진한 의료정보화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1. 기존 경쟁 우위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 혁신 추구

2등에서 1등으로 올라가기보다 1등을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이다. 일단 선두 지위를 차지하면 안주하기 쉽다. 과감한 시도나 모험보다는 기존 것을 지키고 유지하는 일에만 자원을 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OO였던 로버트 J. 허볼드는 성공을 경험한 기업이나 조직이 빠지기 쉬운 함정(trap)으로 태만과 자만, 권태, 복잡성, 비대증, 평범함, 무기력증, 소심함, 혼란 등 9가지를 꼽은 바 있다. 일단 성공을 맛보면 새로운 흐름을 좇아 민첩하게 움직이기보다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고수하며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의미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성공을 무너뜨리는 함정이 된다. 성공에 취한 조직은 환경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도태되고 만다. 한때 세계 최고 기업으로 꼽혔지만 이제는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없게 된 코닥과 노키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는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결과다.

 

분당서울대병원은 개원 초부터 의료정보화시스템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0년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그 수준을 인정받으며 명실상부 이 분야 최고 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2010년은 차세대 CDW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으로 착수한 시점이기도 했다. 세계 최고라는 인증을 받은 바로 그해, 곧바로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돌입한 셈이다. 기존 시스템이 세계 최고 인증을 받았고 적어도 국내에서는 대적할 곳이 없을 만큼 의료정보화에 앞서 있었지만 현재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혁신으로 경쟁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결과로 볼 수 있다.

 

2. 운영의 질 높이고 진료와 운영 통합

우리나라 의료계의 학문적 수준은 세계적이다. 아시아권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의료 관광을 올 정도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병원의 운영적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성과가 미미한 편이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여전히 많이 기다려야 하고 얼마를 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이런 점에서 병원 운영과 새로운 IT와의 결합은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개발한 질관리지표 중에는 각종 진단서 발급 시간도 포함된다. 데이터를 통해 그동안 진단서를 발급받는 데 걸린 시간을 분석하고 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이제까지는 병원을 운영 및 관리하는 사람과 진료를 보는 사람이 완전히 분리돼 있었으나 분당서울대병원의 경우 시스템을 활용해 운영과 진료를 하나로 통합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의사가 진료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질관리지표 등을 통해 병원 운영에도 관심을 갖고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이는 의료지식이 단순히 진료에만 활용되지 않고 병원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3. 제작자와 사용자의 꾸준한 커뮤니케이션과 쌍방향 제작 방식

시스템 구축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자들을 적극 참여시킨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빅데이터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가적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용하는 주체는 일반인이라는 점에서 제작과 실제 사용 사이에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전문가적 시각에서 구현한 실체와 사용자가 직접 사용하며 겪는 경험 사이에 거리가 지나치게 벌어져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제작자가 병원이라는 공간과 진료라는 업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술적으로만 접근할 때 문제가 더욱 커질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시작부터 사용자들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였다. 우선 기존 시스템을 사용하며 느낀 불편을 조사해 이들이 좀 더 빠르게 검색하고 필요 데이터를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자주 찾는 데이터 위주로 시나리오를 짰다. 특히 시스템을 만드는 내내 사용자가 개입해 직접 써보도록 하고 요청했던 제안 사항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했다. 사용해본 후 수정이나 개선에 대한 피드백도 적극 반영했다. 이는 제작자(producer)와 사용자(user)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함께 완성시켜가는 쌍방향(two-way) 제작방식으로 제작과 사용 단계에서의 시각차를 줄여 사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장영재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yjang@kaist.ac.kr

장영재 교수는 미국 보스턴대 우주항공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기계공학 석사 학위를, MIT 경영대학원(슬론스쿨)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MIT 기계공학과에서 불확실성을 고려한 생산운영방식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본사 기획실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과학적 방식을 적용한 원가절감 및 전략적 의사결정을 지원했다. 현재는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경영학 콘서트>가 있다. 트위터 아이디는 @youngjaeja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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