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 LG생활건강 비욘드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박효희(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현대인의 소비는 단지 허기를 달래고 필요를 충당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것을 먹고, 어떤 것을 입으며, 어떤 것을 바르는지가 그 사람을 보여주는 시대다. 좀 더 비싸도 유기농 식품을 먹고 다소 번거로워도 친환경 소재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LG생활건강의 비욘드는 모든 재료의 친환경화, 화학 성분의 배제, 동물실험 반대 등으로 화장품업계 안팎에 울림을 키워가고 있다. 출시 직후 유사한 콘셉트를 가진 선발주자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좌절을 맛봤지만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오히려 뚜렷한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브랜드다. 비욘드는 현재 출시 7년 만에 매출이 30배 이상 늘어나는 성과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비욘드 부문을 총괄 책임하는 이계춘 마케팅 디렉터와 이홍주 ABM(Assistant Brand Manager)과의 인터뷰를 통해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동물실험 반대의 파장
2012년 6월 말, 싱가포르에 있는 페이스북 아시아 지사 실무진이 한국을 찾았다. 정확하게는 한국에 있는 한 기업을 찾았다. 비욘드를 생산하는 LG생활건강이 그 주인공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브랜드 홍보 및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비욘드 팀이 페이스북에 계정을 만들었다. 비욘드 제품의 취지와 목적을 소개하고 화장품을 만들면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겠으며 동물실험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올렸다. ‘좋아요’를 클릭하면 동물실험 반대 캠페인에 동의하는 서명 운동에 자동 참여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계정을 만든 날은 마침 금요일이었다. 페이스북을 만들자마자 ‘좋아요’가 빠르게 늘어났다. 비욘드 팀은 흐뭇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아침, 하나둘 출근한 비욘드 팀원들은 깜짝 놀랐다. 주말 사이에 동물실험 반대를 비난하는 글이 대거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유도 다양했다. ‘동물이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동물실험도 안 하고 판매하는 화장품은 믿을 수 없다’ ‘이런 캠페인하는 사람들이나 그 화장품 써라’ ‘신약이나 화장품을 개발할 때 하는 동물실험은 국제적 관행인데 이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등등.
“처음에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캠페인인데 반대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이계춘 마케팅 디렉터)
비욘드 팀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장시간 논의한 끝에 동물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비욘드의 정체성과 맞물리기 때문에 회피하거나 뒤로 미룰 수 없는 이슈라고 판단했다. 진정성 있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는 결론도 내렸다.
회의를 마친 비욘드 팀은 페이스북에 장문의 해명글을 올렸다. 해명글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모든 분야의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의약품 등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동물실험이 필수적일 수 있다. 화장품 분야에서는 실제 별로 의미가 없는데도 관행적으로 시행되는 동물실험이 많으며 비욘드는 오직 화장품 분야에 대해서만 동물실험을 반대한다. 둘째,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세포배양 독성평가법이나 면역세포 배양평가법, 패치 테스트 등 동물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화장품의 유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대체법이 존재한다. 셋째, 동물실험 대신 위와 같은 방법을 쓰더라도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지 않는다. 대체법을 사용하면 동물을 이용해 실험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과대 포장 등 다른 비용을 줄여 가격 인상분을 상쇄할 수 있다. 조목조목 설명한 글이 올라가자 비난이 빗발치던 게시판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찬성하는 사람은 갈수록 늘었다. 일주일 새 6만∼7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방문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싱가포르에서 연락이 온 것은 그 즈음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이처럼 단기간에 트래픽이 폭증한 사례가 없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페이스북 실무진을 만나 사정을 설명하니 그들은 기업 콘텐츠가 고객 반응을 이끌어낸 성공적인 케이스라며 호평하고 돌아갔다.
1년 만에 전면 수정에 돌입하다
비욘드가 출시된 것은 2005년 4월이다. 처음 콘셉트는 컬러 푸드가 갖고 있는 생명력을 피부에 전달하겠다는 것이었다. 웰빙 트렌드에 맞춰 1년여 동안 야심 차게 기획한 새로운 브랜드였다. 그런데 그보다 2∼3개월 앞서 시장에 나온 스킨푸드가 발목을 잡았다. 스킨푸드는 비욘드와 콘셉트가 일치했다. 이름부터 ‘푸드’를 전면에 내세운 스킨푸드는 큰 호응을 얻었다. 브랜드 취지와 이름이 꼭 맞아떨어져 인식이 쉽고 이해가 빨랐다. 비욘드가 아무리 애를 써도 스킨푸드의 아류작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웠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출시 1년 만에 비욘드는 기존 콘셉트를 포기했다. 방향을 전면 수정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네이밍에서 이미 밀린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푸드 콘셉트를 유지하는 것은 스킨푸드를 도와주는 것밖에 안 되는 일이었다. 신속하게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매장을 많이 확장하고 여러 라인을 만든 상태에서 사업을 접으면 매몰비용이 더 커진다.”
비욘드 팀은 다시 머리를 모았다. 뷰티 라이브러리로 콘셉트를 잡아 문학작품의 제목으로 상품을 구성한다든지, 심층수를 키워드로 해서 깨끗함을 강조하는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물망에 올랐다. 그중에서 친환경(eco friendly)이 가장 관심을 끌었다. 당시 건축이나 자동차, 패션 등에는 이미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었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제품이 비싼 가격에도 지지도를 높이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비욘드 팀은 화장품에도 친환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바디숍이나 러시 등 일부 해외 브랜드가 친환경을 표방하고 있었으나 국내 제품 중에는 친환경을 모티브로 한 브랜드가 없다는 점도 기회였다. 아예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의사결정의 총책임자를 맡고 있던 차석용 부회장 역시 오랜 외국 경험을 통해 글로벌 트렌드가 친환경과 유기농, 생태계 보호와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콘셉트가 정해졌다. 비욘드 팀은 친환경을 주제로 브랜드를 다시 만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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