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은행계의 ‘탈레반’ 한델스방켄: 분권화된 점조직으로 40년 신뢰를 잇다

122호 (2013년 2월 Issue 1)

 

스웨덴 2위 은행이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으로 꼽히는 한델스방켄(Handelsbanken)은 경쟁은행들로부터탈레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대의 시골마을들에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게릴라 군사조직인 탈레반처럼 한델스방켄 역시 다른 은행들이 수익성 때문에 가지 않는 작은 마을에까지 지점을 낸다는 의미다. 또한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처럼 한델스방켄 역시 은행업의근본인 직원과 고객과의 유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있다. 마지막으로 탈레반이란 별명에는 비대칭적인 경쟁우위로 시장을 잠식해 다른일반은행들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한델스방켄은 주주뿐 아니라 고객과 직원, 지역사회, 협력회사와 함께 커가는 경제민주화 경영모델을 40여 년째 실천해오고 있으며 특히 2008∼2009년의 금융위기 이후 영국 소매은행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871년 설립된 한델스방켄의 자산은 2012 6월 기준 416조 원으로 한국 최대인 우리은행(243조 원)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스웨덴 은행 고객만족도 평가에서도 1989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1위를 독차지해왔다. 금융위기 동안에는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없었고 블룸버그가 선정한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은행랭킹에서 2011 2, 2012 10위를 차지하는 등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언론과 은행 산업 종사자들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델스방켄의 성공비결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점 위주, 고객 위주의 경영을 표방한다. 고객 가까이에 가기 위해 어느 정도 수익성의 하락은 감내한다. 스웨덴 내 400여 개 지점 중에 다른 은행은 수익성이 떨어져 들어오지 않은 작은 마을에 있는 지점이 50여 개나 된다. , 전 세계 모든 지점 직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어 고객들이 언제든지 담당직원과 통화할 수 있다. 상당수 지점은 토요일에도 문을 연다. 마치 탈레반 점조직처럼 모든 예산과 운영에 대한 권한은 상부의 간섭 없이 각 지점장이 갖고 있다.

 

지점별 영업과 분권화를 중요시하는 한델스방켄의 문화를 두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는교회 종탑 원칙(church-tower principl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2  각 지점의 영업 범위는 마을의 교회 종탑을 볼 수 있는 범위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각 지점에는 직원이 고객을 11로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응대하게 한다.

 

둘째, CEO부터 창구직원까지 모든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자기가 하는 일에 큰 책임을 진다. 예를 들어 대출 승인은 본사에서 만든 컴퓨터 알고리즘이 아니라 고객을 제일 잘 아는 직원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또한 11000여 명의 직원들은 회사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매년 초과 성과분(업계 평균보다 많이 번 돈)을 전 직원에게 직급에 관계없이 동일한 액수로 나눠주는옥토고넨(Oktogonen)’ 펀드는 1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대신 다른 은행들처럼 개인별 실적에 따라 배분하는 성과급은 없다. 단기수익이 아닌 장기적 건전성과 성장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 분기, 혹은 한 해 단위의 수익이나 손해는 경영상 노이즈에 불과하다고 보고 연간 수익목표나 본사차원의 예산계획은 세우지 않는다.3  ‘은행의 단기 수익성은 외부 상황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전 CEO 얀 발란더(Jan Vallander)의 철학 때문이다. 성과급을 모아두는 옥토고넨 펀드 역시 60세가 돼야 찾을 수 있어 직원들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회사를 위해 일하도록 유도한다.

 

셋째, 주주들에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약속한다. 이 은행은 다른 은행들처럼 ‘1등을 하자’, 혹은주주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돌려주자라고 외치지 않는다. 단지 주주에게업계 평균보다 많은 투자수익(to have a higher return on equity than the average of peer banks)’만을 주는 것이 이 은행의 웹사이트와 연간보고서에 명시된 공식 경영목표다.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이 장점이다. 실제로 1970년 이래 업계 평균수익률 이하를 기록한 적이 없다. 2008년과 2009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정부의 정책지원을 받지 않고 배당금까지 지급해 다른 은행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사기도 했다. 주주들에게 단기적으로는평균 이상의 수익만을 약속하는 대신 장기적인 안정성과 건전성을 최고의 가치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웨덴의 대형 연금펀드와 뮤추얼펀드가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문화로 인해 한델스방켄은 북유럽에서도 은행의 기본에 가장 충실하면서 평등주의(egalitarianism)의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 은행으로 꼽힌다. 이는 한국의 경제민주화 움직임과도 일맥상통하다. 한델스방켄의 기업문화와 경영철학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해외업무를 총괄하는 마그누스 우글라(Magnus Uggla) 부행장을 DBR이 전화로 인터뷰했다.

 

한델스방켄의 독특한 경영관이 확립된 배경은 무엇인가?

 

 

한델스방켄도 1871년에 창립하고 나서 처음 100년간은 다른 은행들처럼 평범했다. 그런데 1970년 얀 발란더(Jan Wallander)라는 사람이 CEO로 부임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발란더는 젊은 시절 스웨덴 상공회의소에서 거시경제 애널리스트로 일했는데 그때 그는 은행의 단기 수익성은 중앙은행의 금리정책 같은 외부환경에 따라 크게 좌우되며 따라서 단기수익과 장기성장은 무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스웨덴 북부 지방의 작은 은행 CEO로 일하기도 했다. 이 경험에서는 은행의 핵심업무는 본사가 아니라 고객과의 접점인 지점(branch office)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철학을 가지고 CEO에 부임한 발란더는 한델스방켄의 체질을 바꾸어 놓았다. 가장 큰 변화는 관리직군의 계층을 6단계에서 3단계(지점장-지역담당 매니저-CEO)로 단순화시키고 지점장에게 거의 모든 권한을 집중시킨 것이다. 초기에는 반발도 있었지만 곧 잘 정착됐다. 현재 한델스방켄에서 내려지는 대출 중 약 95%가 지점에서 승인된다. 우리는 이를지점이 곧 은행이다(The branch is the bank)’라고 부른다. 본사는 지점 업무를 지원하고 직원들을 올바르게 교육하는 역할만 한다.

 

발란더가 가져온 두 번째 큰 변화는 옥토고넨(Oktogonen)이라는 펀드다. 주주수익률이 업계 평균을 넘는 해에는 그 초과분의 3분의 1을 전 직원에게 직급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배분해 옥토고넨에 집어넣는다. 옥토고넨은 모두 한델스방켄 주식에 투자된다. 그리고 직원들은 60세가 되기 전까지는 이 돈을 찾아갈 수 없다. 퇴직자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옥토고넨은 한델스방켄 주식의 10%를 소유하고 있는 최대주주가 됐다. 12인의 한델스방켄 이사회에도 옥토고넨을 대표하는 직원 2명이 이사로 등재돼 있다.

 

보너스를 전 직원에게 동일하게 지급하면 성과가 우수한 직원들의 반발은 없는가?

11000여 명의 직원 중 개인 성과에 따른 보너스를 받는 사람은 투자은행(IB) 업무를 맡은 100여 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직원은 동일한 액수의 보너스를 받지만 낮은 이직률(연간 5% 이내)에서 보듯이 불만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가 개별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 이유는 우선 은행업에서는 그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대출을 해준다면 은행도 위험해지고 해당 고객 스스로에게도 위험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한델스방켄의 직원들은 물질적 보상보다는 다른 은행에서는 얻을 수 없는 권한(responsibility)을 갖게 된다는 것에 즐거워한다. 여기서는 지점에서 일하는 일반 직원들도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된다. 사람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면 누구나 일을 더 열심히, 잘하게 된다. 분권화가 직원들의 만족도와 집중도, 그리고 숙련도도 높인다.

 

지금 이 인터뷰를 하기 직전에도 한 여성 지점장과 대화를 했다. 그는 내게월급을 두 배로 올려준대도 다른 은행에는 가기 싫다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한델스방켄을 좋아한다. 돈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 때문이다.

 

옥토고넨 보너스를 60세가 된 다음에야 지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60세가 될 때까지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 CEO 발란더의 생각이었다. 은행의 수익성은 내부 직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와 관계 없이 외부상황에 따라 매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해는 보너스를 주고 어떤 해는 주지 않는다면 열심히 일했는데도 보너스가 나오지 않는 해에는 직원들이 불만을 갖게 된다.

 

반면 옥토고넨 펀드는 모두 한델스방켄 주식으로 투자되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매년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회사의 장기 성장에 신경을 쓰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30년 근속한 직원은 약 100만 유로( 14억 원)어치의 한델스방켄 주식을 옥토고넨 펀드를 통해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약 10%만이 순적립금액이고 나머지는 주가 상승분이다. 이 정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 자연히 회사의 장기 주가 상승을 위해 일하고 싶은 강력한 인센티브가 생긴다.

 

지점을 많이 내고 토요일에도 지점을 여는 것은 고객과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지점에 많이 투자를 해도 장기적으로는 효율성을 높게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성공비결이다. 예를 들어 고객 수가 적은 토요일에 문을 열면 직원에게 수당도 더 많이 지불해야 하지만 토요일에 문을 여는 것에 대해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는 고객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의 장기 고객이 된다.

 

고객 가까이 간다는 것이 꼭 지점 안에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인터넷뱅킹과 모바일, 태블릿 뱅킹 시스템도 최고 수준으로 갖추고 있다. 또한, 한델스방켄의 모든 지점들은 각자의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은행들이라면 고객이 어제 만났던 은행원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그 사람과 통화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델스방켄에서는 가능하다. 해당 지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 지점의 직원들 연락처를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 밖에서도 이런 독특한 철학이 인정받고 있는가?

한델스방켄은 분명 노르딕 국가 특유의 평등주의(egalitarian)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북유럽에는 우리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문화를 가진 기업들이 종종 있다.

 

분명한 건 외국 고객들도 한델스방켄의 서비스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는 과거 5년간 영국사업을 담당했다. 영국 내 다른 은행들은 어떻게 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단기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에 몰두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델스방켄에 처음 방문하는 영국 고객들은옛날식 은행으로 돌아왔구나(back to the old banking)”라며 좋아한다. 예전에는 영국 은행에서도 지점 직원들과 고객들은 서로 친구처럼,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가까운 관계였다. 오늘 뭔가가 잘못됐으면 내일 다시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한델스방켄은 이런 친밀한 관계를 고객들에게 다시 찾아줬다.

 

미국은 좀 다르다. 미국은 돈을 더 중요시하는 문화가 있어서 한델스방켄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뉴욕 지사에 근무한 것이 25년 전이었는데 얼마 전 방문했더니 예전에 함께 일하던 직원 중 5명이 아직도 근무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한델스방켄을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영국 등 해외 시장에서도 M&A보다는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해외시장에서 전체적인 성장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다.

 

직원 중 남녀 성비는 어떤가?

전체 직원 수를 놓고 보면 남성보다 여성이 조금 많다. 다만 지점장과 부사장급에서는 아직까지는 남성이 많다. 스웨덴의 경우 6명의 부사장 중 3명이 여성이고 핀란드 담당 부사장도 여성이다. 앞으로 관리자급에서도 여성의 비율을 더 높여나갈 생각이다. 남녀평등 문화가 강한 북유럽에서는 직장에서 여성 비율이 높은 것은 흔한 일이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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