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의 작성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윤경미(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김현태(서울시립대 경영학과 4학년), 김정수(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NHN의 ‘라인’ 사업을 맡고 있는 강현빈 실장은 올 초 지인을 만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 지인은 업무와 휴가 차 태국에 열흘 정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강 실장을 만난 자리에서 “NHN이 굉장히 돈이 많은가 보다”라고 말했다. 강 실장이 “무슨 소리냐”라고 물었더니 그 지인은 “방콕의 광고판을 NHN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 라인이 점령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강 실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NHN은 태국에서 광고집행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라인이 큰 인기를 끌면서 AIS, TELKOMSEL 같은 현지의 이동통신사들이 자사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 라인과 페이스북(facebook)이 등장하는 광고를 집행했다. 강 실장의 지인은 라인이 등장하는 TV 광고와 입간판 등을 보고 NHN에서 광고비를 지불했겠거니 미루어 짐작한 것이었다.
스마트폰 메시징 서비스로 ‘카톡’으로 불리는 카카오톡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시야를 해외로 넓히면 NHN이 만든 라인이 주목을 끈다. 특히 일본과 대만,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라인의 인기가 높다. 출시 1년2개월 만인 9월8일 전 세계 가입자 6000만 명을 돌파했고 열흘 남짓 만에 다시 200만 명을 추가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라인사업을 총괄하는 강현빈 실장은 “2012년 내에 1억 명 돌파가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지금까지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에서 1위를 차지한 나라만도 일본, 스위스, 대만, 홍콩,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러시아 등 24개 국에 이른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라인 가입자의 82%가 정기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액티브 유저’라는 것이다.
이는 후발주자라는 불리함을 딛고 이룬 성과다. 스마트폰에서 공짜 메시지를 주고받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은 라인 이전에도 많았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왓츠앱(Whats App)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은 일찌감치 2009년에 출시돼 전 세계에서 쓰이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NHN의 공동창업자인 김범수 전 대표가 이사회의장을 맡고 있는 카카오가 2010년에 출시한 카카오톡이 있다. 카카오톡은 9월 기준으로 매일 전송되는 메시지 건수가 40억 건에 달해 10억 건(6월 기준) 정도인 라인을 크게 앞섰다(자존심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NHN은 7월 이후 일일 메시지 전송건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가입자 수에서는 라인(9월27일 기준 6400만 명)이 카카오톡(9월14일 6000만 명 돌파)을 제쳤다. 회사 정책상 가입자 수를 발표하지 않는 왓츠앱도 이미 뛰어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라인은 특히 일본, 대만, 그리고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ies·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가치가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가 강한 메시징 서비스 부문에서 이미 많은 가입자를 확보한 선발 주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후발 주자인 라인은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선전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스마트폰 무료 문자 앱(app)의 등장
초기의 스마트폰 유저들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유료의 단문메시지서비스(short messaging service·SMS)를 이용하거나 e메일을 사용했다. RIM사의 블랙베리(Blackberry)처럼 e메일 기능에 특화된 스마트폰이 득세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9년경부터 스마트폰에서도 보다 빠르고 쉽고 저렴하게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해 PC 기반의 인스턴트메신저(instant messenger) 같은 서비스를 스마트폰으로 옮겨오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인스턴트메신저 서비스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PC 기반의 서비스로 널리 자리잡고 있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MSN메신저’, 네이트의 ‘네이트온’, 구글의 ‘구글챗’ 등이 대표적이다.
가장 먼저 인기를 끈 스마트폰 기반의 인스턴트메신저는 미국의 포털 서비스인 ‘야후(Yahoo!)’ 출신 개발자들이 만든 ‘왓츠앱’이었다. 왓츠앱은 애플의 앱스토어 등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었으며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국에서는 2010년 초 카카오톡이 등장했다. 한국어 지원은 물론이고 왓츠앱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해 1대1 대화뿐 아니라 여러 명이 한꺼번에 대화할 수 있는 ‘그룹채팅’을 도입해 큰 인기를 끌었다. 카카오톡의 성공을 지켜본 기존 인터넷 포털 업체들과 통신업체, 휴대전화 업체들도 각기 유사한 서비스를 무료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1년 초에는 카카오의 ‘카카오톡’, NHN의 ‘네이버톡’, 다음커뮤니케이션즈의 ‘마이피플’, 그리고 KT의 ‘올레톡’ 등이 하나의 시장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막강한 시장 지배자 카카오톡
‘네이버’ 검색포털로 한국 인터넷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NHN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노하우를 가진 NHN의 네이버톡이 조만간 카카오톡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러한 예상과는 달리 카카오톡의 인기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고 오히려 시장지배력이 커졌다. 네트워크 외부효과가 강한 메신저 서비스 시장에서는 기존 가입자 수가 많을수록 점점 더 많은 가입자를 끌어들이게 된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출발한 카카오톡은 이런 면에서 시장선점효과를 누렸고, 또 여러 가지 서비스를 관리해야 하는 경쟁사들과는 달리 카카오톡 하나에만 온 신경을 쏟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단순한 사업구조 역시 카카오에 유리한 점이었다. 또한 선발주자였던 미국의 왓츠앱이 무료에서 유료 다운로드로 전환하면서 신규가입자 수가 줄어든 것도 카카오톡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줬다.
2010년 초 출시된 카카오톡과 약 1년 후인 2011년 2월 출시된 네이버톡은 무료 문자메시지 애플리케이션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했으나 세부사항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카카오톡은 스마트폰에만 특화된 서비스로 이용자가 따로 등록을 하지 않아도 전화 주소록에 저장돼 있는 사람들과 쉽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사용자의 전화번호를 ID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반면 네이버톡은 NHN이 운영하는 네이버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가입자 아이디로 로그인한 사용자만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는 블로그, 카페, 미투데이 등 NHN의 기존 PC 기반 서비스들과 연동하는 부분을 염두에 둔 설계였다. 그러나 이러한 로그인 구조는 네이버톡의 잠재사용자층을 한국인, 그중에서도 기존 네이버 등 NHN의 서비스를 자주 사용하는 이용자들로 한정했다. 또 복잡한 구조 때문에 실행속도가 느리다는 비판도 받았다.
결국 네이버톡은 한번도 사용자 수를 공개하지 못한 채 출시 1년 후인 2012년 3월에 서비스가 중단됐다. 이미 국내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은 카카오톡을 넘어서는 메신저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은 NHN 아니라 그 누구라도 힘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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