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etitive Strategy in Practice
동서양 할 것 없이 우리 주변에는 범인(凡人)들이 접할 수 없는 천재와 영웅들이 매우 많다. 얼마 전에 별세한 고(故)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2011년 10월에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에 기고한 ‘The Genius of Jobs’란 글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천재인지에 대해서 “스티브 잡스의 직관력은 전통적인 교육방식이 아닌 경험적 지혜를 기반으로 두고 있으며 특히 그는 상상력이 풍부했고 이 상상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알았다”라고 했다. 아이작슨은 또한 “빌 게이츠(Bill Gates)는 매우 똑똑(super-smart)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매우 기발(super-ingenious)하다”라고 평가했다.
먼 미국 이야기에서 좀 더 가까운 우리나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 2002년 한일 월드컵 10주년 기념으로 K-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다. TEAM 2002와 TEAM 2012로 나누어 축구경기를 했는데 TEAM 2002의 감독은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의 영웅 거스 히딩크(Guus Hiddink)가 맡았다. 2002년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4강을 달성하자 각종 언론들은 그를 영웅시 하며 거의 신비주의로 몰고 갔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와 거스 히딩크의 경쟁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이들을 너무 천재 또는 영웅으로 받아들인다면 잘못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홈티칭(Home teaching)을 하거나 또는 그냥 좋은 감독이나 선생님만 만나면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고도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사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이렇게 입증되지 않은 방법들을 사용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와 거스 히딩크를 천재나 영웅으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이들의 리더십을 기술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전략수립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의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의 리더십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요즘 세계에 잘 알려진 한국 기업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기업으로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그룹의 설립자인 고(故)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은 여러 면에서 매우 다르게 평가 받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성공 패러다임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경제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이 두 거인들의 리더십을 분석해보고 이에 따른 시사점을 도출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DBR 103호에 실린 필자의 글인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데…’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는 이유’와 107호에 실린 ‘국제화+벤치마킹=국가고속성장’을 통해 기업과 국가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국제화와 벤치마킹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한국 기업가 중에서 가장 성공한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의 성공 방정식도 사실은 이와 같은 국제화와 벤치마킹이 핵심이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1915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정주영 회장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네 번의 가출을 시도했다. 그의 눈에 농사일은 매우 힘들고 고됐지만 그 대가는 한 가족이 먹고 살기도 힘들만큼 너무나도 적어 보였다. 따라서 처음에 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가난을 피하고자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네 번의 가출 끝에 그는 다행히 ‘복흥상회’라는 쌀가게의 종업원으로 취직을 하게 됐다. 그는 성실성, 고객의 입장을 고려하는 배려심, 주변상황에 대한 빠른 판단력을 바탕으로 탁월한 사업 수단을 발휘해 쌀가게는 물론 단골손님과 쌀 공급선을 모두 물려받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다른 분야의 사업에도 진출했다. 자동차 수요가 점점 늘어날 것을 예측해 자동차 수리공장을 열기도 했고, 건설업자들이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을 보고는 건설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또한 건설자재, 연료 및 전시물자를 운반하는 것을 보고 조선업이 활성화될 것이라 판단해 조선업에도 뛰어들었다. 이후 국민소득이 향상되자 자가용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해 자동차 제조업을 시작했다. 급기야 그는 전자산업에 있어서 반도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삼성전자에 이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현(現) 하이닉스의 모체인 현대반도체 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성공사례들을 보고 보통 사람들은 정주영 회장이 미래를 정확이 예측하는 능력과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정주영 회장은 미래를 예측하는 점쟁이거나 보통 사람과는 다른 동물적 감각을 가진 초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없고 배울 점도 없을 것이다. 이제 정주영 회장의 핵심역량을 좀 더 객관적인 경영학적 측면에서 분석해보자.
정주영 회장의 국제화와 벤치마킹 전략
1952년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에는 서울에 변변한 호텔 하나 없었다. 이에 미군은 운현궁을 임시거처로 삼았는데 화장실과 난방이 문제였다. 미군이 정주영 회장에게 부탁을 하자 그가 고물상에서 버려진 변기 등을 찾아내서 당시에는 힘들었던 수세식 변기와 현대식 난방공사를 완성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미군 측의 신임을 얻은 정주영 회장은 그 이후에 오산 미공군기지 활주로 공사와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공사라고 했던 인천항 제1독 복구공사 등 미군의 많은 공사들을 수주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현대건설은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정주영 회장은 국내 기업이 계획하기 힘들었던 해외진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긴다. 1965년 현대건설의 최초 해외사업이었던 태국의 ‘파나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입찰경쟁에서 현대건설은 최저가인 520만 달러를 제시해 공사를 수주했다. 이 사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현대 기술진은 인근 독일, 이탈리아 및 일본 회사의 현장을 견학해 어떤 장비를 사용하는지 면밀히 살펴봤으며 이들을 벤치마킹 하면서 3년 만에 고속도로를 준공하는 개가를 올렸다.
정주영 회장의 성공 방정식은 사실 매우 간단했다. 다른 일류기업들과 같은 품질을 유지하되 그들보다 공기(工期)를 더 단축해서 비용을 줄이면서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었다. 즉, ‘일류기업 벤치마킹 + 스피드 경영’인 것이다. 여기에다 사업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국제화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건설은 더 나아가 해외 타 건설업체들이 꺼리던 어려운 공사에 도전해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축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주영 회장을 평가할 때 그의 기발한 발상 등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러한 기발한 발상의 근저에는 일류기업을 벤치마킹 하면서 폭넓은 국제화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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