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DBR·연세-SERI EU Center 공동 기획: EU시장 공략 전략-2

강화되는 EU규제, 사전 대응 체제 구축하라

김득갑 | 87호 (2011년 8월 Issue 2)


 
편집자주 7월1일 발효된 한-EU FTA는 국내 기업에는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이자 성장과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DBR은 한-EU FTA 발효를 맞이해 연세-SERI EU Center와 함께 한국 기업의 유럽시장 공략 전략을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1. 유럽 재정위기와 M&A 전략
현재 EU는 유로화 출범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재정위기가 해소되기는커녕 갈수록 확산되는 양상이다. 유럽 재정위기는 구제금융 3국에 이어 스페인, 이탈리아로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최악의 위기에 처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채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만약 유로지역 3, 4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마저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구제금융을 신청한다면 유로화 체제 붕괴 우려 등으로 EU 경제에 미칠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EU로서는 시장 안정을 위한 획기적인 처방을 내놓고 서둘러 시행에 옮겨야 한다. 앞으로 EU는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을 적극 모색하는 한편 재정긴축과 민영화를 통한 재정건전성 노력을 본격화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상황과 정책기조의 변화는 기업에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가져다줄 것이다.
 
첫째, EU 경제는 재정위기의 후유증으로 수년간 1%대 중반의 저성장이 예상된다. EU는 경제성장의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고자 할 것이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불안으로 단기적으로는 금리인상이 예상되지만 경기 둔화로 물가 상승세가 주춤해지면 긴축금융정책이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기위축 및 미국과의 금리차 축소 등으로 유로화 약세 가능성이 높다. 유럽 기업들은 위축된 내수시장 대신 해외시장에 눈을 돌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EU FTA 발효를 계기로 독일 등 전통 수출국은 물론 남유럽 국가들도 한국 수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EU는 경기침체로 인해 수입수요가 위축되고 수입제품에 대한 견제심리가 강해져 수출국들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국 수출에 있어 제2의 시장인 EU의 성장세 둔화는 우리 기업들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둘째,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EU 차원의 경기활성화 대책으로 특수(特需) 효과가 예상된다. EU는 구조기금 등 동원 가능한 재원을 신속히 투입해 그리스 등 재정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들을 집중 지원할 방침이다. ‘미니 마셜플랜’으로 불리는 이 정책은 이르면 2012년부터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헝가리,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등 6개국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로, 공항, 기타 개발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될 경우 한국 기업들도 참여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재정 위기국들은 정부부채를 낮추기 위해 민영화 및 국유자산 매각 정책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자금력이 풍부한 투자자들에게 절호의 사업기회를 제공한다. 그리스의 예를 들면 공기업 민영화 및 국유자산 매각을 통해 2015년까지 500억 유로의 재정수입을 올릴 계획이다. 2011년에 약 50억 유로, 2012년까지 총 150억 유로, 2015년까지 총 500억 유로를 확보할 예정이다. 매각예정 자산으로는 전력 및 에너지 공기업과 은행, 항만, 공항, 고속도로 등의 독점 운영권, 카지노 및 복권사업, 리조트 등 매우 다양하다.
 
현재 민영화와 M&A 기회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그리스에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13건의 경제·투자 관련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45억 달러 규모의 ‘그리스-중국 해운발전기금’을 신설해 그리스 선사들이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그리스선박 발주의 최대 수주국인 한국의 입지에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중국은 발칸반도와 신흥 유럽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관문 역할을 하는 그리스의 전략적 중요성에 주목해 해상운송, 관광, 통신 등의 분야에 수십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한편 중국 정부는 5000만 유로를 투자해 아일랜드에 전용공단을 건설 중이다. ‘베이징-온-샤논(Beijing-on-Shannon)’으로 명명된 프로젝트로 600에이커 부지에 수백 동의 공장건물과 학교, 철도역, 아파트 등이 건설될 예정이다. 공단이 조성되면 8000명의 고용효과가 기대된다. 중국은 최저 법인세율(12.5%)을 적용하는 아일랜드를 전략적 생산기지로 활용해 원가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중국은 스페인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스페인 국채의 약 10%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스페인 국채를 계속 사들일 방침이다. 이 밖에도 은행, 통신, IT, 관광, 에너지 및 운송, 농업 등 총 16개 분야에서 57억 유로 규모의 협력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중국 기업들의 유럽 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해외투자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5.3%에 불과하지만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5년간 중국의 EU 직접투자 규모는 15배 이상 증가했다. 선진기술과 함께 EU시장 진출에 필요한 브랜드와 노하우를 확보하기 위해 집중 투자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선호 대상 기업은 기술경쟁력을 지닌 독일기업이다. 수년 전부터 지속돼온 중국 기업의 독일 하이테크기업 인수는 2011년 들어 자동차 부품기업을 중심으로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지난 4월에 독일 자동차부품업체(Saargummi)를 인수한 데 이어 자동차 부품기업 프레(Preh)의 지분 74.9%를, 7월7일에는 독일 힐데스하임에 있는 경금속 자동차부품 전문업체인 KSM Castings그룹을 인수했다. 중국 기업의 독일 자동차기업 인수를 통한 진출이 확대됨에 따라 자동차 부품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물론 한국 기업의 입지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유럽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다. 대규모 투자 확대로 중국의 유럽 내 경쟁력이 강화된다면 국내 기업의 입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유럽의 재정위기를 유럽시장 진출 확대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프라 분야 투자와 신성장 분야, 글로벌 브랜드 확보를 위한 기업 인수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글로벌 M&A에 적극 나서고 있는 미래에셋그룹은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유럽 명품 브랜드 기업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위기 여파로 글로벌 유명 회사들을 헐값에 사들일 절호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2. FTA의 기대효과와 시장진출전략
한-EU FTA는 한국의 EU시장 내 위상을 강화하고 한국 경제시스템을 선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특히 EU와 경제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교국가로서의 위상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FTA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상품양허 분야에서 폭넓은 관세인하가 이뤄짐으로써 한국의 EU 수출이 연간 25억2000만 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성장세 둔화로 EU가 갖는 수출시장으로의 매력을 과소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경제권인 EU가 갖는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한-EU FTA가 국내 제품의 EU시장 내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맨 유럽 각국 정부와 빡빡해진 유럽 소비자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감안한다면 유럽시장 내 가격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EU FTA가 가져다주는 관세인하 혜택은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EU의 평균 관세율은 5.6%로 낮지만 우리의 주력 수출제품인 자동차(관세 10%), TV 등 영상기기(14%), 섬유·의류(12%) 등의 관세가 높아 관세가 철폐될 경우 국내 기업은 경쟁력 측면에서 상당한 이점을 누릴 수 있다. 관세 철폐는 물론 비관세장벽 철폐를 통한 가격경쟁력 제고와 원자재 및 부품조달 여건 향상 등까지 감안한다면 한국 제품의 EU시장 내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한 FTA 효과가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FTA는 자동차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깔아놓은 ‘고속도로’와 같은 존재다. 아무리 잘 닦인 고속도로라 하더라도 달리는 자동차가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FTA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인 기업의 FTA 활용 노력이 중요하다.
 
한-EU FTA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한국의 EU 수출구조가 탄탄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수출구조에는 개선해야할 점들이 적지 않다.
 
첫째, 수출시장으로서 EU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세계 최대 단일경제권인 EU는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제2위 수출시장이다. 하지만 제1위 수출시장인 중국과는 격차가 크다. 더군다나 시간이 흐를수록 수출시장으로서 EU의 비중이 줄고 국가별 순위에서도 신흥국에 밀리는 양상이다. EU 수출 비중은 2005년 한때 15.4%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수출 증가율이 둔화되면서 2010년에는 비중이 11.5%로 하락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27개국으로 구성돼 있으면서 공략도 까다로운 EU시장보다는 신흥국 시장 공략에 주력한 데 기인한다. 이러다 보니 한국의 EU시장에서의 점유율도 2%대 후반에서 정체돼 있다. 경쟁국인 중국의 EU시장점유율은 20%에 육박하고 있고 미국도 10% 이상의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둘째, EU시장에서 경쟁우위 품목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EU 수출품목 중 현시비교우위(RCA) 지수가 1 이상인 품목은 총 96개 품목 가운데 2001년 17개에서 2010년에는 13개로 감소했다. 중국(35개), 미국(26개), 일본(18개) 등 주요 경쟁국들은 한국보다 훨씬 많은 비교우위 품목을 갖고 있다. 이는 EU시장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이 정체돼 있는 주된 이유다.
 
셋째, 한국의 EU 수출은 지역적으로 문제가 있다. 서유럽은 동유럽보다 경제성장률이 낮지만 소득수준이 높아 EU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소비시장이다. 하지만 한국의 서유럽 수출 비중은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한국의 EU 수출에서 서유럽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0년간 20%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이는 서유럽 수출은 정체돼 있는 반면 동유럽 수출은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경쟁국인 미국과 중국의 서유럽 수출 비중이 90% 이상이고 일본도 70%대 후반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주력 시장인 서유럽 수출의 비중 감소는 한국 제품의 EU시장점유율 정체의 주된 요인이라고 판단된다.
 
넷째, 수출 품목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EU시장에서 주력 수출품목의 비중을 보면 10대 품목이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대기업 중심의 중화학제품 위주로 수출이 이뤄져 EU 수출의 저변이 취약함을 의미한다. EU 수출의 10대 품목 의존도는 미국 수출 59.5%, 중국 수출 52%는 물론 한국의 전체 수출(50.7%)보다 훨씬 심각하다. 또한 경쟁국과 비교하더라도 소수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10대 주력 수출품목의 비중을 비교해보면 한국 65.9%, 미국 35.4%, 중국 36.4%, 일본 38.4%다. 이는 한국 수출상품 구조의 다양성이 미흡하고 수출산업의 저변이 약해 한-EU FTA의 폭넓은 관세인하 혜택을 누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EU FTA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우선 기업 CEO들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기업들은 EU와 FTA를 체결한 최초의 아시아 국가로서 누릴 수 있는 시장선점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EU의 아시아 국가들과의 FTA 협상 속도를 고려할 경우 한국은 최소 3년 이상 시장선점 기회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기업은 FTA 발효와 더불어 EU 수출 확대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EU FTA를 활용할 경우 산술적으로 한국의 EU시장점유율은 현재 2.6%에서 2016년 2.9%, 2020년에는 3.0% 이상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정부와 기업은 한-EU FTA의 활용전략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기업들은 한-EU FTA 발효에 맞춰 대응체제를 갖춰야 한다. 우선 ‘원산지 인증 수출자’ 자격을 서둘러 취득해야 한다. 건당 6000유로 이상 수출 시 인증 수출자에 한해 원산지 증명서 자율발급이 허용된다. 둘째, 원산지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 수출기업은 수입국 검증 당국이 사후에 원산지 기준 충족 여부를 조사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 EU는 한-EU FTA 발효 이후 중국산 제품이 관세인하 혜택을 누리기 위해 한국산으로 둔갑해 대거 EU로 수출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관세추징과 벌금부과는 물론 징역형까지도 가능하다. 셋째, 수출기업들은 EU의 상이한 품목분류 체계에 주의해야 한다. EU 품목분류(CN)와 한국 품목분류(HS) 체계의 차이에 따른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EU의 무역환경 변화는 한국에 EU시장점유율 확대의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우선 FTA의 관세인하로 인한 가격경쟁력 향상으로 EU 수출 역량이 강화될 것이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관세 인하분만큼 판매가격을 인하하거나 마케팅 활동에 투자가 가능할 것이다. 매년 무역흑자가 확대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EU의 통상정책 변화도 한국의 입지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EU는 중국제품에 대한 반덤핑관세 부과 등 수입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는 일반특혜관세(GSP) 수혜대상에서 중국 등 BRICs 국가를 제외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를 활용해 대기업들은 차별화된 제품과 기술력으로 서유럽시장 공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부가가치화를 통한 제품 차별화 노력과 함께 브랜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있어야만 원가경쟁력을 앞세운 중국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미국, 일본 사이에서 넛크래커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
 
소수 대기업에 의존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들도 EU 수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수출제품의 다양화 없이는 한-EU FTA의 폭넓은 관세인하 혜택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EU 수출에 나서 매출이 급신장하고 있는 밀폐용기 생산업체인 ‘락앤락’은 좋은 사례라 하겠다. 중소기업의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중요하다. 우선 정부는 시장 트렌드를 수시로 파악해 국가별 유망 수출품목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이 EU의 공공구매시장이나 프라이빗브랜드(PB)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200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사업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또 다품종 소량 주문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동물류센터 운영 등 중소기업 지원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수출품목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재정위기 이후 변화된 EU시장 환경을 철저히 분석해 사업기회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 FTA를 계기로 진출 문호가 넓어진 EU 회원국들의 공공구매시장(총 2조2000억 유로)을 적극 공략하거나 동유럽 인프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또 유럽 기업과의 사업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방안으로는 글로벌기업의 아웃소싱에 참여하거나 유럽 녹색산업과 공동으로 사업기회를 모색하고 유럽의 원천기술 보유기업과 기술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금융, 통신, 환경, 법률 등의 분야에서 EU 서비스업체들의 국내시장 점유율 확대가 예상된다. 산업계는 한-EU FTA를 국내 서비스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3. EU의 기업규제 강화와 대응전략
2009년 12월 리스본조약이 발효되면서 EU의 법률제정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EU만이 법률을 제정하고 가결할 수 있는 배타적 권한은 물론 EU가 우선권을 갖는 공동권한 영역도 크게 확대됐다. 반면 회원국의 권한은 위생 및 보건, 문화, 교육, 스포츠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분야로 대폭 축소됐다. 특히 그동안 회원국이 협상권한을 갖고 있었던 서비스와 외국인투자(FDI) 분야도 EU가 배타적 권한을 갖는 공동통상정책에 편입됐다.
 
현재 EU 회원국에서 제정되는 법률의 80%는 EU집행위와 유럽의회에 의해 발의되고 있다. 리스본조약의 발효로 이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EU의 법률제정권한 확대에 대해 재계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있다. 우선 기대감을 갖는 이유는 EU 법률 제정의 증가로 회원국 간의 법률 부조화 문제가 해소됨으로써 단일시장이 강화돼 기업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EU기업으로서는 제3국과의 신속한 투자협정 체결이 가능해져 해외시장 개척 여건이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다수결제 적용에 따른 의사결정기간 단축으로 경영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반면 EU 법률 제정의 증가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재계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Eurochamber의 추산에 따르면 EU 법률 시행으로 지난 10년간 약 1조 유로(EU GDP 8.3%)에 이르는 비용이 발생했다. 앞으로 환경규제와 기술표준 강화 등이 예상되며 유럽의회 주도로 보호주의가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특히 경기침체와 재정위기로 각국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기업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가져갈 가능성도 있다.
 
①수입규제는 감소, 경쟁법 규제는 강화
EU는 불공정무역 관행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규제조치를 발동하고 있다. 반덤핑 및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이 동원 가능한 주요 규제 수단이다. 다행스럽게도 EU의 한국 수입규제는 감소 추세다. 1990년대에 연 2건이던 수입규제가 2000년대 들어 연 0.7건으로 감소했다. 물량 위주 수출전략 탈피, 국내외 가격차 축소, 수입규제 대응 노하우 등이 규제건수의 감소 이유다. 한-EU FTA 협정을 통해 무역구제제도를 확보함으로써 앞으로 무역규제의 사전예방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중국, 인도 등 신흥국들로 인해 최근 동반규제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반면 경쟁법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다. EU집행위는 자유 시장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경쟁법을 엄격히 집행하기로 유명하다. 카르텔(가격담합), 독점적 시장지위 남용, 기업 M&A 등에 대해 강경한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 차원의 경쟁법 제재 건수와 과징금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카르텔 제재 건수는 2005∼2009년에 33건, 과징금 규모는 98억 유로로 10년 사이에 3배 이상 증가했다.
 
경쟁법 규제는 유럽 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들도 대상에 속한다. 프랑스의 생고뱅(Saint Gobain)과 GDF수에즈(GDF Suez)는 가격 담합을 이유로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미국의 인텔은 사상 최고액인 10억6000유로를, 마이크로소프트(MS)는 9억 유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한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2009년 12월 LCD 담합사건을 비롯해 총 4개 사안에 대해 4억3442만 유로(약 6474억 원)의 과징금을 추징당한 바 있다. EU집행위원회는 6개 LCD 제조사가 지난 4년여간 카르텔(가격담합)을 유지해온 혐의에 대해 총 6억4900만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중 LG디스플레이는 2억1500만 유로(약 325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삼성전자는 담합 행위를 자진 신고해 과징금을 완전히 면제받은 바 있다. 앞으로 유럽 경쟁당국은 경쟁법 집행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럽의회는 카르텔 방지를 위해 많은 과징금을 부과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국제카르텔 제재 가능성에 적극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편 다국적기업의 이전가격(trans fer price)을 통한 절세 관행에 대한 규제강화도 예상된다. EU 회원국들은 재정위기로 인해 재정 건전화를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은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지출 억제와 더불어 세수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추가 세원 발굴이 시급한 각국 정부로서는 지하경제 근절 및 다국적기업의 탈세 행위를 찾기 위해 조사활동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②제품 및 기후변화 관련 환경규제 강화
제품의 환경규제도 대폭 강화되고 있다. 규제 대상도 일부 특정 품목이 아닌 전 제품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규제 분야도 폐전자제품 등의 재활용에서 벗어나 유해물질 규제는 물론 에너지효율화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또한 지구온난화 방지 및 저탄소경제 실현을 위해 기후변화 대응 집행위원(C. Hedegaard)을 신규 임명하는 등 기후변화 관련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의 활성화는 물론 탄소세(Carbon Tax) 부과와 함께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 국제표준화도 추진되고 있다. 참고로 탄소발자국이란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제품에 표시토록 하거나 사람의 활동 시 직간접적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을 계산해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를 말한다. 환경규제 강화로 앞으로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대폭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재활용 비용으로 2009년에 408억 원을 책정했으나 2014년에는 그 비용이 1460억 원 이상으로 3.6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③선진 기업, 규제강화 대응체제 구축
EU의 법률제정 권한 확대로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는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추세에 대응해 EU에서 사업하는 기업들은 대응체제를 갖춰야 한다. 전문가들은 규제 대상이 돼 기업이 부담해야 할 대가보다 사전 대응체제를 구축하는 비용이 훨씬 저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기업으로서는 EU를 상대로 한 현지 정보수집 및 로비활동이 필요하다. 경쟁법, 환경, 에너지, 기술표준, 지적재산권, 세금 등의 규제 강화에 대비해 EU집행위 및 유럽의회의 입법 동향에 대한 현지 모니터링 및 의견 개진 활동이 요구된다. 이러한 일환으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벨기에 브뤼셀에 EU 로비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리스본조약의 발효로 앞으로 EU를 상대로 한 로비조직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주된 관심 분야는 경쟁법, 무역정책, 환경정책, 에너지정책 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말 현재 브뤼셀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로비조직은 약 2200개, 로비스트 수는 적어도 약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로비조직 등록 추이를 보면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로비조직의 구성을 보면 산업협회, NGO, 다국적기업, 법률회사 등의 순을 보이고 있다.
 
로비조직을 운영하는 기업들을 분석해 보면 유럽 기업뿐만 아니라 주요 글로벌기업들이 로비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등록된 320개 기업의 국적은 독일 57개, 프랑스 48개, 미국 55개, 일본 8개, 스위스 8개 등이다. 이 수치는 등록기준에 따른 것이므로 등록하지 않고 활동하는 조직들은 실제로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경우 소니, 도요타, 히타치, 엡슨유럽, 재팬토바코인터내셔널 등 개별 기업은 물론 일본자동차공업협회와 70여개 회원사를 대표하는 유럽일본상공회의소(JBCE)가 브뤼셀을 거점으로 왕성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기업으로는 현재 현대차가 유일하게 브뤼셀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올해 내로 브뤼셀에 사무실을 오픈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④EU 차원의 대화 채널 필요
국내 기업은 수출과 관련한 반덤핑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단편적인 로비활동에서 벗어나 현지 기업 활동과 관련된 EU 규제에 대비하기 위해 로비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EU는 독점적 지위 남용, 가격 담합, 합병규제(Merger Control), 특허 위반, 이전가격 등의 측면에서 기업 활동이 EU 규정에 위배되는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국내 전자 및 자동차 업계의 높아진 EU 내 위상과 매출규모 등을 감안할 경우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국내 산업계는 규제를 사전 예방하고 천문학적 규모가 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EU 기관을 상대로 한 정보수집 및 로비활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국내 산업계는 EU 차원의 대화 채널이 전무한 실정이다. 우선적으로 한미 재계회의와 유사한 EU 차원의 재계회의를 발족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일본 산업계는 1995년 이래 EU-일본 재계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양측에서 50명의 재계 지도자가 참석해 주요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EU 관계를 강화하는 데는 기업만의 활동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도 EU 외교활동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국회는 한-EU FTA 발효를 계기로 법률제정 권한이 대폭 강해진 유럽의회와의 교류 확대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김득갑 연세-SERI EU Centre 부소장·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deukab@seri.org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재무관리)를, 서강대에서 글로벌기업의 국제화 전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부터 EU 통합을 비롯한 유럽 경제를 주로 연구해왔다. 1991년부터 6년 동안 삼성전자의 브뤼셀사무소에 파견돼 현장에서 EU 통합과 기업 대응전략을 연구했다. 현재 연세-SERI EU센터의 부소장직을 맡고 있으며 유럽 단일시장 및 유로화 출범에 따른 대응전략 등 많은 연구보고서와 <기로에 선 경제거인>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