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마케팅의 부상
‘뜨거운 가슴으로(with glowing heart)’라는 슬로건을 내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보여준 한국 국가대표팀의 쾌거는 우리의 가슴을 정말로 뜨겁게 만들었다. 동시에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가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다시 한 번 높이는 계기가 됐다. 온 국민이 국가 브랜드와 매력도 제고, 자긍심, 자신감, 사회 통합, 행복감, 사회적 생기, 경제적 파급 효과 등 스포츠의 다목적 효과를 체험하게 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이 같은 효과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약 20조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현대 스포츠는 교육, 문화, 복지, 과학, 산업과 어우러져 양적, 질적으로 매우 빠르고 복잡하게 진화하고 있으며 이런 과정에서 스포츠 마케팅의 역할과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스포츠 마케팅이란 용어가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 크게 세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 박찬호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하면서 스포츠 선수 한 명이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온 국민이 놀랐고 스포츠 스타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됐다. 둘째, 박세리 선수가 삼성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미국여자골프협회(LPGA)에서 우승하면서 스포츠가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주목받았다. 셋째는 2002 FIFA 한일 월드컵대회 유치가 결정되면서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의 경제적 가치가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 마케팅 분야가 부상하게 된 것도 역시 크게 세 가지 배경 때문이다. 첫째, 글로벌화(globalization) 현상이다. 글로벌화는 냉전 시대가 종결되고, 미국식 신(新)자유주의 물결이 정보 통신 혁명과 맞물리면서 불어닥친 전 인류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지역화 또는 블록화도 동시에 진행되기도 하지만, 자본, 정보, 미디어의 글로벌화로 모든 분야에 시장 원리가 적용되고 치열한 생존 경쟁이 나타나게 됐다. 이러한 글로벌화 현상으로 스포츠의 언어, 문화, 국경, 종교, 이념, 세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빛을 발하게 됐다. 어떤 분야도 스포츠만큼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는 것은 없다. 둘째, 스포츠 분야의 산업화 때문이다. 냉전 시대가 끝나면서 스포츠 분야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냉전 시대에 스포츠는 이데올로기 경쟁과 국위 선양의 무대였다. 이 시기에 미국과 몇몇 선진국에서는 자국 시장 내에서의 스포츠 산업화가 시작됐으나, 세계적으로는 국가가 스포츠를 움직이는 주된 동인이었다.
그러나 냉전 해체 이후 스포츠 분야에도 자본이 유입되고 시장 원리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스포츠의 산업화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셋째, 기업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 확대, 시장 상품 수명의 축소, 고객층의 극세분화, 고객의 시장 정보력 증대,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유통 채널의 다양화 등 급변하는 시장에서 마케팅 활동의 효과성과 효율성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마케팅 투자대비효과(ROI)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마케팅 패러다임이 기능적 혜택에서 감성적·체험적 혜택으로, 판매에서 고객 관계 관리로, 매스미디어 중심 커뮤니케이션(ATL·Above The Line)에서 고객 접점의 확보가 가능한 이벤트 중심 커뮤니케이션(BTL·Below The Line)으로 바뀌게 됐다. 이것은 상품의 기능적 차별화의 한계, 고객 욕구의 정교화 및 복잡화, 정보기술(IT)의 발달, 매스미디어 광고의 한계로 나타난 자연스런 결과다. 이러한 새로운 기업 마케팅 환경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 접근 도구로 부상한 것이 바로 스포츠다. 스포츠는 감성적 소구성, 팬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계 지속성, 스포츠 이벤트의 고객 접점성 등 기업들이 새롭게 원하는 마케팅 도구로서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마케팅이란 스포츠 시장이 움직이는 현상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스포츠를 통해 기업이나 상품을 홍보하는 활동’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언론에서도 스포츠 마케팅을 처음 소개할 때 그렇게 정의했다. 세계적으로 스포츠 마케팅이란 용어는 1978년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zing Age)>에서 스포츠를 활용한 기업의 마케팅 활동(marketing th-rough sport)이란 의미로 처음 사용됐다고 알려져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냉전 시대가 종식되고 스포츠의 산업화 물결이 거세짐에 따라 스포츠 조직의 관점에서 ‘스포츠 자체를 마케팅’하는 것이 중요한 영역으로 부상하게 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스포츠 마케팅을 ‘스포츠의 마케팅(marketing of sport)’과 ‘스포츠를 통한 마케팅(mar-keting through sport)’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화됐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접근은 과거에 사용된 ‘스포츠를 통한 마케팅’이란 개념에 대한 학술적 논의 없이 ‘스포츠의 마케팅’을 단순히 추가한 것으로 논리적으로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현대 사회의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스포츠 마케팅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스포츠 마케팅 현상의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미디어는 ‘스포츠의 마케팅’인지 ‘스포츠를 통한 마케팅’인지 분명하지 않다. 또 미디어 패키지에 포함된 각종 라이선스와 관련된 권리나 재판매 활동 등은 분명 스포츠 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편,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스포츠 이벤트 장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스포츠 자체를 마케팅(생산)’하는 일에 참여하는 동시에 그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지역 브랜드를 홍보하거나 경제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스포츠를 통한 마케팅’도 하고 있다. 기업도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스포츠 조직과 파트너십 관계를 형성해 스포츠 자체를 마케팅하는 동시에 자신들을 마케팅한다. 삼성전자는 세계승마연맹(FEI)의 단순 후원사가 아니라 핵심 파트너로서 세계승마대회(WEG) 방식 자체를 완전히 혁신하는 데 능동적인 역할을 했다(사례 참조).
이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롭게 스포츠 마케팅을 이해하는 방법은 스포츠 마케팅을 ‘스포츠 시장(sport market)이 움직이는(-ing)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 시장이 움직이도록 하는 모든 활동을 실무(practice)로서의 스포츠 마케팅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