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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개방성과 신뢰, 역(逆)혁신의 원천

한인재 | 51호 (2010년 2월 Issue 2)
‘역(逆)혁신’의 대표적 사례
현대캐피탈·현대카드와 GE의 파트너십은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과의 협업으로 성과를 낸 대표적 성공 사례로 알려져 있다. GE는 높은 신용 등급에 기반한 자금 조달 능력과 앞선 리스크 관리 기법을 보유했고, 현대는 한국 시장에서 탄탄한 고객 기반과 영업 역량을 갖고 있었다. 상호 보완적인 이들 역량이 결합하면서 두 회사의 강점은 극대화됐고 약점도 보완되는 절묘한 역량의 조합이 만들어졌다.

 

두 파트너의 협업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협업 이전과 이후의 성과를 비교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2003년에 8조 7802억 원이었던 현대캐피탈 자산은 2004년 양사가 전략적 제휴를 맺은 지 4년 만인 2008년에 16조 677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같은 기간에 영업이익은 2250억 원의 적자에서 5054억 원의 흑자로 전환됐고, 총자산이익율(ROA)은 -2.13%에서 2.35%로, 자기자본이익율(ROE)은 -29.94%에서 22.85%로 크게 높아졌다.(표1, 2, 3)

 

 
한국에서의 새로운 협업 모델이 성공하자 GE는 해외 시장 진출 모델 자체를 변화시켰다. GE는 과거 51% 이상의 지배적 지분을 획득하는 인수합병(M&A) 방식을 고수했다. 하지만 현대캐피탈과의 협업에서 GE는 38%(이후 추가 투자로 GE의 지분은 현재 43%임)의 지분만 취득했다. 이 모델로 톡톡히 재미를 본 GE는 이후 태국 및 터키의 은행 사업, 중국의 항공 엔진 사업, 인도의 의료 기기 사업 등 신흥 시장에 새로 진출할 때 소수 지분 투자에 따른 전략적 제휴 방식을 택했다. 한국에서의 성공 비결을 배우기 위해 GE 본사의 임원들이 현대캐피탈·현대카드를 방문해 성공 사례를 연구한 후 GE의 크로톤빌 연수원에서 발표했을 정도다. 즉 한국에서의 성공으로 증명된 협업 방식을 글로벌 협업 모델로 채택한 ‘역(逆)혁신(reverse innovation)’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내재적 성공 요인
두 파트너가 협업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데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역량 결합 외에 또 다른 성공 요인들이 내재돼 있었다. 이는 서로 다른 조직 문화와 강점을 보유한 두 회사가 만나 △협상 단계에서부터 협업의 프로세스를 치열하게 논의하고 △협업의 초기 단계에서 투명하고 개방적인 문화를 정착시켰으며 △협업의 진행 단계에서 자사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최선의 선택으로 지속적인 혁신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즉 올바른 파트너를 고른 것뿐만 아니라, 협업 이전 단계, 협업 초기의 관계 설정 단계, 협업 진행기의 성과 향상 단계 등 협업의 ‘생명 주기(life cycle)’를 끈기 있게 관리한 것이 큰 몫을 했다.
 
①협상 단계에서 조직 문화 차이 극복
두 파트너가 협상을 시작하고 나서 투자 및 협력 계약서에 서명하기까지 총 10개월이 걸렸다. 최초 협상은 2003년 10월에 시작됐는데, 최종 계약은 2004년 8월에, 실제 투자는 9월에 이뤄졌다. 협상이 지지부진해서 시간이 길어진 게 아니었다. GE의 협상단은 10개월 중 총 6개월간 한국에 머물렀고, 양사의 협상단은 거의 매일 만났다. 당시 현대 측 협상단의 실무 책임자였던 최진환 전무(당시 이사)는 “계약 당일인 8월 4일 새벽 3시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아 협상을 진행했고, 5 계약서를 인쇄했다. 그날 아침에 돌아와서 양사 경영진이 서명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최 전무는 “지분 구조와 투자 금액에 대한 협상은 4개월도 안 걸려 2004년 2월 초에 끝났다. 당시 우리는 지분 구조 등 협업 형태에 대해 합의하고 나면 협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길고 힘든 진짜 협상은 그 이후부터였다”고 말했다. 합작 법인의 리스크 관리, 마케팅, 영업 등 각각의 운영 프로세스와 주요 의사 결정 과정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협상이 무려 6개월이나 이어졌다. 현대 측 사람들은 “일단 협업을 시작하고 협의하면 될 것을 왜 이리 길고 지루하게 논의해야 하나”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힘겨운 협상이 지속되자 계약 자체에 대한 회의론까지 제기됐다. 협상도 이렇게 힘든데 실제 공동 경영을 하면서 견해가 엇갈리면 회사 운영이 거의 불가능해질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심지어 최고 경영진조차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협상 과정에서 GE는 ‘대손율(회수 불능 대출의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때 즉각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협의한 후 새로운 계획을 도출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자고 고집했다. 당시 치열한 영업 전쟁을 벌이고 있던 현대 측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조항이었다. 영업은 정상적으로 진행하면서 개선점을 찾아야지 대책을 세우기 전까지 영업을 중단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리스크관리협의회(RCC·Risk Control Committee)를 양사 동수로 구성하고 만장일치제로 운영한다는 조항’도 현대 측이 선뜻 수용하기 힘든 조항이었다.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강력한 견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GE가 이런 조항을 고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협업 파트너가 선진적인 리스크 관리 방법을 받아들이고 이를 실제로 경영 활동에 적용할 의지가 있는지 알고자 했던 것. GE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양사에 모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각종 통계 자료와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보여줬다. 결국 현대 측도 지배적 지분을 확보하고 기존 사명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 만큼, GE 측에 상징적인 통제권과 견제권을 주는 게 경영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최진환 전무는 “협업 시작 전 반 년 동안이나 협의하면서 구체적인 상황별 대처 방안을 담은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막상 합작 이후에는 세부 조항을 실천해야 할 일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협상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사결정 과정 등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 없이 혁신 전략 같은 건설적 논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조직 문화가 크게 다른 두 파트너가 만날 때 협업 형태뿐만 아니라 협업 프로세스에 대한 치열한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 협업을 추진할 때 전략적 목적을 명확히 하고 적합한 파트너를 선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협력 관계를 지속시켜나갈 때 어떤 절차를 거쳐 의사결정을 할지,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등에 대한 문제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으면 협상이 타결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사전 협의는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사고의 체계, 문화적 차이, 조직의 특수성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협상의 ‘진전’만 생각하다가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소홀히 하면 장기간 협력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
 
②개방적이고 투명한 협업 문화 정착
어려운 협상을 끝내고 실제 합작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GE 측의 버나드 반 버닉 부사장은 돌연 문제를 제기했다. 제휴 계약서상 양측은 서로 협의해야 할 사항과 관련한 모든 이메일을 반드시 GE 측 관련자에게도 같이 보내고, 모든 관련 회의에 GE 측이 참여해야 했다. 하지만 현대 측 담당자가 한국어로 작성된 이메일을 보내면서 무심코 이를 지키지 않았다. 반 버닉 부사장은 자신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초기의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가 이후의 협력 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사소한 이메일이나 회의라도 언어를 핑계로 관련 인물들을 제외시켜서는 안 된다. 건전하고 투명한 합작 기업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리더는 첫 단추를 꿰는 단계에서 더욱 확고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양측의 경영진은 업무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인력 통합에도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즉 누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를 따지지 않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중시하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GE 측에서 파견된 장은구 이사는 “지난번 인사 때 현대캐피탈에서 채용한 사람을 내가 강력히 추천해 주요 보직으로 승진시켰다. 이런 일이 생기다 보니 내가 GE 사람인지 모르는 직원들도 많다. 심지어 나도 월급날이 돼야 내가 어디에 소속된 사람인지 상기할 정도”라고 얘기한다. 또 “현지 합작 법인이 초기에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더라도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들과 현지 직원들이 진정으로 융합되지 않는다면 그 성과를 지속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영진은 또 지속적인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갈등은 건전한 불일치’라는 인식을 직원들에게 심어줬다. 반 버닉 부사장은 “쟁점도 없고 불일치도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다. 한 회사 내에서도 마찰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기업이 만나서 논쟁거리가 하나도 없다면 그건 조직이 투명하지 못하고 누군가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장기적으로 이런 현상이 가장 위험한 일이다.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유지하는 한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합작 법인은 이런 노력을 통해 과거의 현대캐피탈과도 다르고, GE와도 다른 새로운 조직 문화를 구축했다. 새로운 조직 문화는 직원들의 역량 발휘를 극대화하도록 유도했다. 특히 현대캐피탈의 인력 채용 방식이 바뀌면서 컨설팅사나 금융 회사 출신의 우수 인력들이 몰려들었다. GE도 파견 직원에 대해 철저한 기존 매트릭스 방식의 인사 관리 시스템을 고집하지 않았다. GE의 기존 인사 관리 제도는, 해외 자회사의 모든 GE 직원들이 자회사 내 수직적인 관리뿐만 아니라 GE 본사로부터의 관리까지 받는 철저한 매트릭스 시스템이었다. 반면 합작 법인에서는 파견 직원들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부여함으로써 현지 직원들과 융화되고 합작 법인 내에서 지속적인 경력 계발 기회를 갖도록 유도했다.
③고정관념을 깨뜨린 선택으로 혁신 실현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대출 심사 시 담보인정비율(LTV)만을 적용했다. 그런데 GE는 주택 담보 대출에도 소득 대비 부채 상환 능력을 측정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런 방법이 채무 불이행을 막는데도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채무자들이 경제적 곤경에 처하기를 원치 않는 책임 금융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도 부합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DTI를 담보 대출에 도입한 금융 회사는 한국에 전무하다시피 했다. GE가 DTI 적용을 주장하자 현대 측은 대출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GE는 강력하게 DTI 도입을 요청했고 결국 현대 측이 받아들였다.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DTI는 위력을 발휘했다. 전 세계 금융회사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대캐피탈은 부실 비율이 낮아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한국의 금융 당국은 물론 대부분 금융 회사들이 DTI를 적용하고 있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은 경쟁사 가운데 가장 강력한 금융 사기 대응팀(Anti-fraud Team)을 구성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GE 측 제안으로 만들어진 금융 사기 대응팀은 사전에 연체 및 사기 위험을 파악해서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조직이다. 문제는 GE가 금융 사기 대응팀에 인력을 무려 40명이나 배치하라고 요구하면서 현대 측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현대 측은 다른 경쟁사에는 있지도 않은 조직에 무려 40명이나 투입하라는 GE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어렵게 협상이 타결됐지만, 결과적으로 이 조치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 덕분에 현대캐피탈 연체율이 6, 7%대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의 연체율이 약 20%에 달하는 것을 볼 때 이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지금 현대캐피탈의 금융 사기 대응팀에는 140여 명의 인력이 배치돼 있다.
 
GE 측의 반발을 불러온 사안도 있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지속된 카드 사태로 대부분 카드 회사들이 마케팅 비용을 줄일 때 현대카드는 과감하게 마케팅 투자를 늘렸다. 이는 결과적으로 현대카드가 후발 주자에서 단숨에 선두권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B2B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GE 본사 경영진들은 불황기의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에 합작 법인의 현대 측 임원은 물론 GE 측 임원까지 나서 GE 본사의 경영진을 설득했다. 과학적인 도구를 활용해 마케팅 활동의 효과를 분석하고 예측한 수치를 가지고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 심지어 모든 TV 광고 성과까지 세분 고객별 응답률, 영향도, 브랜드 인지도 등으로 철저하게 분석했다. 즉 단순히 ‘돈을 줘라. 성과를 보여줄게’라는 막무가내식 접근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과감한 투자를 이끌어냈다.
 
반 버닉 부사장은 “두 파트너가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합작 회사는 GE로부터 배우기도 하고 현대캐피탈의 모기업인 현대자동차로부터 배우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로부터 가장 좋은 점들을 받아들이고, 이를 융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함으로써 더 강한 조직을 만든다”고 밝혔다.
 
현대캐피탈·현대카드는 GE에서 도입한 아이디어를 GE 본사보다 더 잘 실행해 성과를 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트폴리오 퀄리티 리뷰(Portfolo Quality Review)’라는 협의체 제도다. 이는 리스크, 영업, 사기 대응 등의 실무자 40, 50명이 매달 말 모여 이견을 조정하고 다음 달 업무 방향을 협의하는 제도다. 리스크 관련 부서와 일선 실무 부서 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도입 초기엔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는 것에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협의체 운영 취지에 공감한 직원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 제도는 GE 본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도입했지만 한국 실정에 맞게 형태를 바꿔 더 좋은 제도로 승화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GE의 아시아 본사에서 한국을 방문해 이 제도를 벤치마킹했다.
 
이같이 현대와 GE의 파트너십은 협업의 구조뿐만 아니라, 협업의 구체적인 프로세스에 이르기까지 ‘역(逆)혁신(reverse innovation)’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다. 서로 다른 조직 문화와 강점을 보유한 두 파트너가 만나 이런 성공을 거둔 것은 상호 보완적인 역량의 조합뿐만 아니라 양측의 지난한 협력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협상 진행 단계와 협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치열한 논의를 거치고 의사소통의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서로 간 신뢰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 지속적인 혁신의 발판이 됐다.
 
편집자 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홍세화 씨(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22)가 참여했습니다.
  • 한인재 한인재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 AT 커니 코리아 컨설턴트/프로젝트 매니저
    - 에이빔 컨설팅 컨설턴트/매니저 - 삼성생명 경영혁신팀 과장
    db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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