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속옷을 아는가? 세계 여성들이 특별한 날이면 꼭 갖춰 입고 싶어하는 속옷, 손바닥 크기의 속옷을 입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까지 마다하지 않게 만드는 속옷. 바로 빅토리아 시크릿이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1982년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레슬리 웩스너가 인수할 때만 해도 경박하고 야한 느낌의 속옷을 판매하던 작은 매장에 불과했다. 재무 상태도 매우 부실했다. 그런데 어떻게 숱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유명 브랜드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첫째, 빅토리아 시크릿은 철저한 시장 조사를 통해 문제를 기회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1980년대만 해도 빅토리아 시크릿을 비롯한 유명 란제리 브랜드들은 연인이나 아내에게 속옷을 선물하려는 남자들을 여성용 란제리 시장의 핵심 고객으로 여겼다. 당연히 남성 고객에게 어필하는 제품만 만들었고, 매장 인테리어도 남성 친화적으로 꾸몄다. 하지만 정작 속옷을 입을 여성 고객들은 이런 전략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웩스너는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위한 란제리 숍을 열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워 성공했다.
둘째, 패션 란제리의 원조 시장인 유럽과 미국 여성 소비자들의 취향은 전혀 달랐다. 하지만 이 차이에 주목하는 업체는 별로 없었다. 당시 유럽 여성들은 외양과 스타일에 치중한 ‘란제리’를 매일 입었지만 미국 여성들은 기능성을 중시한 ‘속옷’을 입을 때가 많았다. 즉, 미국 여성들은 유럽 여성들이 매일 입는 패셔너블 란제리를 주말 이틀 동안에만 입는 특별한 속옷으로 여겼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란제리의 패션과 속옷의 기능성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는 미국 여성들을 상대로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다. 패션과 기능성을 겸비한 ‘매일 입는 패셔너블한 란제리’를 만들어내면 미국 여성들도 유럽 여성처럼 패션 란제리를 매일 입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미국 대중시장을 겨냥한 ‘라 펄라(La Perla)’ 브랜드를 창조했다. 라 펄라는 명품업체의 프리미엄 란제리에 버금가는 고급 이미지, 기능성, 합리적 가격을 모두 갖춘 제품이었다.
셋째,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섹시한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었다. 웩스너는 스토리텔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빅토리아’라는 가상의 여성을 내세웠다. 영국계와 프랑스계의 피를 물려받은 세련되고 화려한 도시 여성을 빅토리아로 설정하고, 이 브랜드 스토리를 제품 개발, 마케팅, 매장 디자인, 모델 선정 등에 모두 적용했다. 그 결과, 세계 여성들은 빅토리아 시크릿을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꼭 입어야 할 제품’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매년 열리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에 세계 최정상급 모델들이 등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무명 모델이었던 독일 출신의 하이디 클룸은 빅토리아 시크릿 무대에 서면서 세계적인 슈퍼 모델로 떠올랐다. 그녀는 셋째 아이를 낳은 직후 옛날 몸매를 회복한 비결이 뭐냐고 묻는 기자에게 “빅토리아 시크릿을 입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다”고 답했다. 하이디 클룸 외에 지젤 번천, 아드리아나 리마, 미란다 커 등 현재 세계 패션계를 주름잡는 모델들은 모두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나 광고에 등장한 바 있다.
넷째, 핵심 제품에만 치중한 브랜드 확장 전략이 탁월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핵심 제품은 브래지어다. 브래지어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는 매우 높다. 품질과 착용감이 뛰어나다고 한번 인식하면 좀처럼 브랜드를 바꾸지 않는다. 이를 포착한 빅토리아 시크릿은 문어발식 브랜드 확장에 나서지 않고 ‘미라클 브라’ ‘세컨드 스킨 새틴’ ‘바디 바이 빅토리아’ 등 신규 브래지어 브랜드를 속속 내놓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켰다. 특히 봉제선이 없는 심리스(seamless) 브래지어에 대한 소비자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선보인 ‘바디 바이 빅토리아’는 일반 제품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에도 판매 6주 만에 품절됐다.
아서 컬먼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는 “변화는 일종의 습관이다. 이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변화하는 능력 자체를 상실한다”고 말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이 별 볼일 없던 브랜드에서 세계 최고의 란제리로 성장한 이유도 변화를 습관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