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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지속 성장의 해법, 서비사이징에서 찾아라

신성미 | 42호 (2009년 10월 Issue 1)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유력한 대안으로 ‘서비사이징(servicizing)’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서비사이징은 제품의 서비스화를 통해 생산자와 고객 모두 이익을 얻고 환경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하지만 실행은 쉽지 않습니다. 서비스화 추진 과정에서 이해관계자가 반발할 수도 있고, 친환경적이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 모델을 만들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서비사이징이 향후 기업 전략의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전문가들과 함께 ‘서비사이징 사례’와 ‘비즈니스 모델 구축 방법론’ 등을 제시해 드립니다. 내년 사업 계획을 준비하고 계신 비즈니스 리더 분들께서 서비사이징 방법론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지속 가능 경영(sustainability management)’이 화두로 등장한 지 한참 지났지만 이를 통해 직접적인 성과를 거둔 기업은 드물다. 장기적으로 꾸준히 이익을 창출하면서도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사업 모델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제조업체가 제품 생산 및 공급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사업 모델을 바꾸고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소비 축소를 이끌어 환경의 부담도 줄이는 ‘서비사이징(servicizing)’이 각광받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매니지먼트리뷰 2007년 겨울호의 논문 ‘서비사이징을 통한 지속 가능 경영(Sustainability Through Servicizing)’은 “사업을 제품의 생산 및 공급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바꾸면 지속 가능 경영을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현재 성공적으로 서비사이징을 실행하고 있는 기업들을 찾아 서비사이징 구축 과정 및 성과를 취재했다.
 

 
제록스: 문서 관련 컨설팅으로 사업 확장
복사기와 프린터, 인쇄 관련 부자재 등을 생산·판매하는 제록스 1 는 2001년 ‘제록스글로벌서비스(XGS)’라는 컨설팅 부서를 만들었다. XGS는 고객사의 인쇄기기 현황을 분석해 좀더 효율적으로 문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컨설팅하고 그 실행까지 책임진다. 즉 자사의 핵심 사업인 인쇄기기 생산·판매와 더불어 전문성을 바탕으로 관련 서비스까지 제공함으로써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제록스가 이렇게 사업 방향을 확장한 것은 사업 환경 변화와 그에 따른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1990년대 들어 복사기 및 프린터를 제조하는 경쟁업체들이 늘어났으며, 고객들마저 인쇄 비용 절감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제록스는 기존 사업만으로는 더 이상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고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것이 바로 ‘문서에 관한 고객의 모든 고민을 풀어주겠다(The Document Company)’는 야심 찬 슬로건이었다. 이 슬로건이 곧 XGS의 역할을 보여준다.
 
우상윤 한국후지제록스 영업부장은 “일반적인 기업에서 직원, 파트너 회사, 고객 등이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의 80% 정도가 문서로 이뤄진다”며 “제록스는 기술력과 전문성을 이용해 고객사의 문서 작업을 개선함으로써 고객사의 업무 효율을 올리고, 비용 절감 욕구를 충족시키자는 취지로 XGS의 신사업 모델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XGS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단순히 고객사의 사무기기를 교체해주고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소모품을 관리해주는 데 머물지 않는다. 문서의 생성에서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고객사에게 컨설팅을 해주고, 나아가 컨설팅 결과까지 실행해준다.
 
XGS의 사업은 크게 △XOS(Xerox Office Ser-vices) △DOCS(Document Outsourcing & Communication Services) △BPS(Business Process Services)의 3가지로 구성돼 있다.
 
XOS는 고객사의 모든 사무기기 현황 및 비용을 분석한 뒤, 고객사의 업무 프로세스와 사무실 동선을 고려해 효율적인 문서 작업을 할 수 있게 컨설팅해주는 서비스다. 기자는 9월 3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국후지제록스를 방문해 100페이지가 넘는 XOS 보고서를 살펴봤다. 한 고객사의 전 사업장에 있는 복사기, 프린터, 복합기, 스캐너 등 인쇄기기의 수, 각 사업장의 근무 인원, 출력 분량, 장당 출력 비용, 월평균 출력 비용, 근무 시간 동안의 인쇄기기 가동률 및 감가상각 현황 등이 꼼꼼하게 조사돼 있었다.
 
한국후지제록스는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선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인쇄기기의 숫자를 줄여 재배치한다. 그리고 전문적인 분석 도구로 고객사의 장비별·직원별 출력 사항을 모니터링해 불필요한 인쇄를 줄인다. 불필요한 출력을 줄이면 전력 사용은 물론 종이와 토너 등 인쇄 관련 부자재와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폐기물 배출도 줄일 수 있다.
 
인쇄 절감은 부서와 개인 레벨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한국후지제록스는 우선 고객사의 직원 개인별 인쇄량을 전부 집계해 인쇄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상위 10% 직원들에게 “인쇄량을 줄여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 출력되는 모든 문서가 기록되는 시스템을 고객사에 제공해, 직원들이 업무와 관계없는 개인적인 문서 출력을 줄이도록 한다. 경우에 따라 고객사가 직원 1인당 또는 부서당 인쇄량을 제한하도록 한다.
 
DOCS는 고객사가 사용하는 문서의 디자인에서부터 문서 제작, 번역, 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지원하는 서비스다.
 
한국후지제록스는 2006년부터 ING생명에 XOS와 더불어 DOCS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ING생명 본사를 비롯한 국내 150개 지점에서 보험 업무 전 과정에 들어가는 문서 작업을 대행하는 것이다. 한국후지제록스는 보험 상품설명서를 출력해 ING생명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달하며, 고객이 보험 계약을 맺으면 보험 증권을 발행해 고객의 집까지 배송해준다. 또 보험금 지급 관련 문서도 모두 처리해준다. ING생명은 문서 작업 아웃소싱으로 지난 3년간 약 20억 원을 절감했다. 한국후지제록스가 전문화된 문서 처리 도구를 사용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뤄 비용을 줄였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제록스는 세금 계산서, 회계 문서, 고객 가입 신청서, 요금 청구서 등 고객사가 매출을 내는 활동에 필요한 문서들을 전산화해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고 문서 보안, 공유, 배포 등 문서 업무 흐름 전반에 대한 컨설팅과 아웃소싱을 제공하는 BPS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전형적인 제조업체였던 제록스(왼쪽)와 트렉스타는 서비사이징을 통해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새 비즈니스가 기업 문화까지 바꿔
우상윤 부장은 XGS가 시작된 이후 생긴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영업 사원들이 인쇄기기의 특장점만 달달 외워 파는 게 전부였습니다. 과거에 직원들은 제록스가 컨설팅과 아웃소싱 서비스까지 수행한다는 걸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춰 회사의 사업 영역이 바뀌자 직원들은 고객사의 전체 업무 프로세스를 파악하고, 고객사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죠. 회사 전체에 ‘발상의 전환’이라는 기업 문화가 퍼지기 시작한 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제품-서비스의 결합은 고객과의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우 부장은 “단순히 일회적인 제품 판매에서 서비스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자 고객과의 관계가 장기적이고 더 긴밀해졌다”며 “고객사의 문서 업무를 조사·분석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업무 프로세스까지 파악하게 되자 고객사의 니즈에 맞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P&G는 전 세계 지사에 앞으로 5년간 제록스의 XOS를 이용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한국후지제록스가 앞으로 5년간 아모레퍼시픽에 XOS를 제공해 25억 원의 비용을 절감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8년 제록스(아시아 태평양 지역 제외) XGS의 매출은 약 38억 달러로, 회사 전체 매출(약 176억 달러)의 약 22%를 차지하고 있다. 아웃소싱 리서치 회사인 브라운윌슨그룹이 발행하는 연례 보고서 ‘2009 블랙북 오브 아웃소싱’에서 제록스와 후지제록스는 올해 문서 프로세스 부문에선 세계 1위, 최고의 글로벌 아웃소싱 기업 부문에선 4839개 업체 중 3위에 올랐다.
 
 
트렉스타: 한 번 고객을 단골 고객으로
트렉스타는 등산 마니아들 사이에서 ‘애프터서비스(AS)가 확실한 회사’로 꼽힌다. 이 회사는 1988년 등산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회사로 문을 열었고, 현재 등산화 및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트렉스타’ ‘레저타임’을 비롯해 신발 밑창 브랜드 ‘하이퍼그립’, 인라인 스케이트 및 안전화 브랜드 ‘E3’ 등을 보유하고 있다.
 
트렉스타가 하이퍼그립을 만든 이유는 등산화의 ‘심장’인 밑창 기술을 확보해 주력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밑창을 통해 별도의 수익도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하이퍼그립은 얼음이나 물에도 잘 미끄러지지 않는 기능성 밑창으로, 이탈리아 브랜드 비브람에 이어 밑창 분야 세계 2위(2008년 매출 900만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하이퍼그립 밑창은 트렉스타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독일의 한바그 등 약 15개 등산화 브랜드에 쓰이고 있다.
 
전형적인 제조업체였던 트렉스타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객들의 등산화 착용 패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낡으면 버리는 운동화와 달리 오래된 등산화를 소중히 여기는 고객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윤인호 트렉스타 마케팅팀장은 “등산 마니아들은 등산화를 자기 몸의 일부로 생각할 만큼 애착이 강하다”며 “새 등산화를 선물받아도 신지 않고 낡은 등산화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람들은 등산화를 최대한 오래 신을 수 있도록 닳아빠진 밑창을 갈아주는 서비스를 원했다.
 
이런 이유로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는 1995년부터 등산화 밑창을 갈아주는 AS를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곧 영업 부서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영업 사원들은 “등산화를 한 켤레라도 더 팔 궁리를 해야지, 밑창을 갈아주면 등산화 판매량이 줄어들 텐데 어떡하냐”며 성화였다. 또 AS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소비자들이 ‘트렉스타와 하이퍼그립은 금방 닳아버리는 브랜드’라고 심리적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었다. 트렉스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등산화를 사고 난 뒤 다시 구매하기까지는 6개월에서 3년이 걸린다. 가벼운 등산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 사람은 평균 1년 반이 지나면 등산화를 교체한다. 하지만 밑창을 주기적으로 갈아주면 등산화 한 켤레로 10년은 버틸 수 있다. 영업 사원들이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권 대표는 영업 부서를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AS를 하면 고객과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으니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혁신적인 신제품이 나오면 충성 고객들이 먼저 신어보거나 입소문을 내준다” “AS 한 번 받아본 손님이 새로운 손님을 2명 더 데려오더라”며 설득을 거듭했다.
 
출발은 쉽지 않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밑창만 갈아주는 게 아니라 갑피(등산화의 몸체 가죽 부분)에 방수제를 칠해주고, 새 신발 끈과 안창도 추가로 넣어주는 등 전체적인 등산화 관리까지 철저히 해줬다. AS를 반복할수록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아졌고, 수선을 맡기기 위해 매장을 찾았다가 트렉스타의 다른 아웃도어 제품을 사가는 고객도 늘었다. 영업 사원들의 우려와 달리 등산화 판매량은 AS를 시작하기 전보다 줄지 않았다. 오히려 전체 매출은 매년 늘어만 갔다.
 
트렉스타는 원래 고객들에게 무상으로 밑창갈이 서비스를 해줬지만, 비용 부담이 늘면서 2006년부터 일반 밑창 3만 원, 특수 밑창 4만5000원에 유상 AS를 하고 있다. 다른 회사의 등산화라도 밑창이 하이퍼그립이면 AS를 해준다. 트렉스타가 한 해에 밑창을 교체하는 등산화만 8000켤레, 여기서 거둬들이는 AS 매출은 12억 원 정도다. AS로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실제 거둬들이는 이익은 12억 원을 훨씬 웃돌 것이라는 게 트렉스타의 설명이다. 환경 부하 저감이라는 측면에서도 큰 이익이다.
 
윤인호 팀장은 “하이퍼그립 밑창뿐 아니라 트렉스타 등산화 브랜드의 인지도까지 긍정적으로 상승했다”며 “AS를 철저히 해주는 회사, 튼튼하고 편안한 신발을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얻은 게 최고의 성과”라고 말했다. 트렉스타는 등산화를 생산할 때 향후 밑창갈이를 고려해 등산화 수보다 밑창 수를 더 많이 만든다. 밑창갈이를 통해 신발 한 켤레를 10년은 신게 된 만큼 ‘재사용’이라는 측면에서 환경 친화적이라는 설명이다.
 
글로벌 컨설팅사 아서디리틀(ADL)의 홍대순 부사장은 “트렉스타의 등산화 생산량이 전보다 줄지는 않았지만, 타사까지 포함한 등산화 산업 전체를 보면 환경 친화적이라 할 수 있다”며 “등산화 내구성이 길어지는 만큼 소비자들의 구매 빈도가 줄어 추가 등산화 생산에 따른 가죽 등 원재료 사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최선,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위한 서비사이징 - 환경성 및 자원생산성 제고를 위한 제언’(2007)
 
성공적인 서비사이징을 위한 조언
서비사이징은 기업의 기존 핵심 사업과는 다른 신사업 모델을 만드는 과정인 만큼 기업이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히기 쉽다. 앞서 밝힌 MIT 슬론매니지먼트리뷰 논문에 따르면, 성공적인 서비사이징을 위해서는 신사업 모델을 낯설어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내부 직원들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논문의 저자인 샌드라 로텐버그 미국 로체스터공과대 경영학 교수는 “판매량을 줄이고 서비스를 확대하는 신사업 모델을 직원들이 기존의 자사 핵심 역량을 확장한 개념으로 받아들이도록 핵심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사업 모델을 직원들에게 알릴 때는 이 모델이 회사에 어떻게 이익을 줄 수 있는지를 명확히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로텐버그 교수는 “성과급 제도를 바꾸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영업 사원들은 물건을 판매한 만큼 성과급을 받았지만, 이런 성과급 구조는 서비사이징의 목표에 맞지 않는다. 미국의 페인트 재료 공급업체인 게이지는 고객사에 효율적인 페인트 사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외연을 넓히고, 이후 영업 사원의 판매 수수료를 없앴다. 제록스는 판매량이 아니라 연간 수익 증가율을 바탕으로 성과급을 지급했다.
 
물론 기업은 서비사이징으로 제품 판매량 및 관련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고려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성공적인 서비사이징을 위해서는 면밀한 분석을 거친 수익 구조 변경이 필요하다. 제록스는 서비스 비용을 포함해 제품 가격을 더 높게 정했다. 게이지는 기존에 페인트 비용을 갤런당 가격으로 받았으나, 사업 모델을 바꾼 뒤에는 서비스 가격을 포함해 페인트를 칠한 자동차 한 대당 일정한 비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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